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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의 웨딩드레스 (계 1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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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웨딩드레스 (계 19:6~10)

  
오늘은 11월 마지막 날! 이제 2008년 달력도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종말이 있습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살다보면 잊기 쉬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혹시 잊어버린다 해도 분명히 종말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마치 시계 바늘이 재깍재깍 움직이듯이 신속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인생은 종말을 의식하며 삽니다. 그럴 때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고 올바로 살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종말을 의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리켜 ‘종말론적 신앙’이라 부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분명히 재림하십니다. 그때 인류의 역사와 우주만물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이른 바 ‘우주적 종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개인적 종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종말’ 하면 사람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물론 그런 면이 있죠. 종말과 더불어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종말이 부정적인 게 아닙니다. 종말은 예수님을 만나는 날이요, 천국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이 얼마나 좋은 날인지 성경은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해서 설명합니다.(막2:19, 고후11:2) 종말은 바로 신랑 되신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이 혼인하는 날입니다. 우리 생애 가운데 결혼하는 날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것처럼 종말의 날이 그토록 복되고 아름답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성경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의 혼인 풍습을 이해하면 좋습니다. 유대인의 결혼은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어린 시절 두 집안이 자식들을 정혼(定婚) 시킵니다. 정혼은 약혼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파혼이 안 되고, 결혼한 것과 동일한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혼 기간 동안 신랑과 신부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다가 결혼의 시기가 오면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갑니다. 지참금을 주고 혼인예식을 합니다. 그리고 난 후 신부를 신랑 집으로 데려와서 혼인 잔치를 베풉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꼭 이와 같이 진행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정혼한 겁니다. 신랑은 예수님, 신부는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는 지참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 피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그 날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주님과 더불어 기쁨을 누리지만, 그 날은 이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가장 영광스럽고 복스러운 날이 될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무엇이 요구됩니까? 그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까? 그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함께 상고하면서 그 날을 준비하는 신앙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1] 어린 양의 혼인 잔치 : 천국의 지복(至福) 참여

본문 보면 예수님의 재림의 날 성도들은 어린 양 예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복된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게 있다고 할지라도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본문 9절에 보면, 뭐라고 말씀합니까?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 ” 여기서 복이 있다는 말은 단순히 기쁘고 즐겁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누릴 완전한 복락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 누리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복’(至福)이라 부릅니다. 눈물도 슬픔도 없는 천국, 고통도 죽음도 없는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복락이 얼마나 좋은지 이 세상에서 겪었던 슬픔과 고통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2] 신부의 예복 준비 :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될 사실이 무엇입니까? 그 날을 위해 준비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영부영하다 얼렁뚱땅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혼인할 때 신부에게 웨딩드레스가 필요한 것처럼 어린 양 예수의 신부인 성도들에게 예복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예복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입니다. 

본문 7절~8절을 보시죠.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세마포는 고운 삼실로 짠 흰 빛깔의 고급 옷입니다. 그와 같이 곱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세마포 옷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요? 

① 칭의의 옷 :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겁니다. 창세가 3장을 보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한 이후 어떻게 되죠? 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 입습니다. 그러나 그 옷으로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서 입혀 주십니다.(창3:21) 그런데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 어린 양이 대신 피흘려 죽었을 겁니다. 이게 바로 ‘대속’(代贖)의 원리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속죄의 방법입니다. 이를 믿는 자를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 바로 이게 ‘복음’입니다.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의인이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소식 곧 복음인 겁니다.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의인으로 인정된다는 겁니다. 이를 가리켜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칭의를 얻는 것은 더러운 죄의 옷을 벗고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칭의의 옷’을 입지 않으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천국의 복락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마22:1~14 보면 혼인 잔치의 비유가 나오죠. 거기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초청되어 왔는데,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죠? 가차 없이 쫓겨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칭의의 옷을 입었습니까? 예수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믿음으로 칭의의 옷을 꼭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 주님이 오셔도, 언제 주님이 나를 부르셔도 기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② 성화의 옷 : 

그 다음에 우리 성도가 준비할 옷은 ‘성화의 옷’입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칭의를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칭의를 얻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아직 더 이루어야 할 구원이 남아 있습니다. 빌2:12 “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미 구원 받은 성도들인데 무슨 구원을 또 이루라는 겁니까? 이게 바로 성화(聖化 Sanctification)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은 받았습니다. 신분으로나 법적으로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실제 삶과 인격의 모습을 보면 의롭지 못합니다. 추하고 악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not Yet)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과 정혼한 신부이지만, 아직 삶과 인격의 내용을 보면 부족하기 짝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 속에 성령을 보내셔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 변화의 과정을 가리켜 ‘성화’라고 부르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당신의 자녀 삼으신 목적이 무엇인지 알면, 더욱 성화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형상 즉 고상한 인격을 본받게 하려는 겁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마땅히 믿음으로 칭의를 얻은 이후 자신의 인격 변화를 위해 계속 정진해야 됩니다.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예수님에게까지! 성화의 최종 목표인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부단히 성화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리하면 이런 겁니다. 우리의 구원의 과정은 크게 3단계입니다.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榮化 Glorification)입니다. 영화는 성화의 완성 단계로 구원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영화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혹은 재림의 주님을 만날 때 완전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칭의는 이미 이룬 ‘과거적 구원’이고, 영화는 장차 이룰 ‘미래적 구원’이고, 성화는 현재 이루어가야 할 ‘현재적 구원’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흔히 예수 믿는 신자를 성도(聖徒)라도 부르죠. 신자의 존칭입니다. 성도는 영어 성경에 보면 성자(聖者 Saints)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칭호에 합당해 지려면 이미 믿음으로 칭의의 옷을 입었지만, 계속해서 정진함으로 성화의 옷을 준비해야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이 예수님처럼 되기를 소원하신다.”(맥스 루카도「예수님처럼」)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지만 용납하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러나 죄인의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모습에서 벗어나 예수님처럼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청년이 군대에 입대합니다. 언제부터 군인입니까? 입대하는 그날 즉시 군인이 됩니다. 군복을 입고 나면 군인인 겁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군인 티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꾸부정하고, 줄도 맞추지 못하고 ... 그런데 훈련을 받고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자세도 바르게 되고, 줄도 잘 맞추고, ... 절도 있는 군인의 모습이 되어 갑니다. 동일한 군인의 신분이지만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군인다운 군인이 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으면 즉시 성도가 됩니다. 그러나 그 후 변화되면서 죄악된 구습에서 벗어나 새사람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동일한 성도의 신분이지만,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성도다운 성도가 되는 겁니다. 


[3] 신부의 준비 : 평생 성화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변화되어야 합니까? 주님 만날 때까지, 즉 평생 동안입니다. 평생 성화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기대하시는 겁니다. 

벧전3:3~4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여기서 ‘마음에 숨은 사람’(inner self)은 인격을 가리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보기 원하시는 귀한 모습입니다. 삼상16:7 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중심은 곧 인격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아직 재림하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아직 천국으로 불러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 부족한 인격을 더욱 갈고 닦아 성화를 이루라는 겁니다. 성화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닮는 성화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일까요? 

① 성결/거룩 : 

벧전1:15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나님이 거룩하시니까 성도도 거룩해야 한다는 겁니다. ‘거룩’은 ‘구별’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과 차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얼마나 유혹이 많습니까? 핍박이 많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타협을 강요합니다. 죄로 물들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로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거룩한 인격을 보존하고 계발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정원을 그대로 두면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잘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놔둬도 마음 속에 죄가 끓어오릅니다. 외부에서 많은 유혹과 핍박이 몰려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싸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죄를 이기고 성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춘향전을 읽어 보면 춘향이와 이 도령 이야기가 마치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춘향이와 미래를 약속한 이 도령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갑니다. 그런데 오래 기다려도 오질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변 사또가 괴롭힙니다. 애가 탑니다. 그래도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결국 급제해서 찾아온 이 도령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그 날까지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② 온유/겸손 :

마11:29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므로 성도 역시 그래야 합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무조건 부드러운 게 아닙니다. 악한 성품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능력입니다. 결코 약해빠진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약합니까? 아니죠. 강한 분입니다. 그러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미움이 끓어오를 때 컨트럴(control) 하고 절제하는 힘이 있으신 겁니다. 그래서 라틴어로 온유(mitis)는 본래 ‘말에 재갈을 먹인다’는 뜻입니다. 

온유함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인지 모세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보면 예수님 빼고 가장 온유한 사람이 누구라고 했나요? 모세입니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그는 본래 살인할 정도로 성격이 과격하고 성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민20:1~13 보면 므리바 사건이 나옵니다.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면서 물이 없다고 원망 불평합니다. 그 모습으로 보고 화가 난 모세가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이나 내리칩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 분을 낸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모습을 싫어하셨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모세는 그토록 대망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유함을 얼마나 크게 기대하시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 이야기입니다. 그의 풀 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입니다. 사실은 좋은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버락’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오바마’는 9.11 테러 배후조종자로 지목되는 ‘오사마 빈 라덴’의 이름을 연상시킵니다. ‘후세인’은 이라크 전 대통령의 이름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반대파로부터 많은 공격을 당했습니다. 매케인 진영으로부터는 심지어 ‘테러리스트’ ‘매국노’ ‘사회주의자’ ‘무슬림’ 등별별 말을 다 들었습니다. 그는 분명 크리스천인데도 그런 말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내하고 끝까지 온유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선 후에는 반대파를 끌어안았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내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가 링컨을 닮았다고 평가합니다. 오바마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매일 나의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의 온유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그 힘의 원천이 예수님이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함은 예수님을 닮은 모습 가운데 대표적인 것입니다. 온유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닮은 온유함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③ 사랑/섬김 :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까?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는 섬기되 자기 목숨까지 희생해서 섬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의 본성이 남아 있어 섬기기보다 섬김 받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섬김을 위해서는 물질, 시간, 자존심 등 내 것을 많이 투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물쭈물하면 섬김만 받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날 때 당당하지 못할 겁니다. 

목사들 사이에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서, 먼저 간 목사님을 만나려고 찾았습니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어봤답니다. 그랬더니 대답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아! 그 분이요, 배달 나갔어요!” 세상에서 교인들에게 섬김만 받아 와서 이제는 섬기려고 배달 나갔다는 겁니다. 천국에 무슨 배달이 있겠습니까? 우스갯소리 같지만 그 속에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그만큼 섬기는 것이 어렵다는 겁니다. 

의정부의 모 교회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선교회 모임에서 그 교회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한꺼번에 10가정 선교사를 파송했답니다. 가족과 친지들을 초청했는데 100명 정도 되더랍니다. 교회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하는데, 한 청년이 선교사님들이 해외에 나가면 회를 못 드실 테니까 자기가 회를 준비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아르바이트 해서 푼푼이 모은 돈을 털어 여수에서 회를 공수해 왔습니다. 얼마나 기특한지 목사님이 흐뭇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몇 달 후 미국의 대학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보상을 받으려고 섬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섬기는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와 같은 인격의 성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성화의 방편입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시련을 통해 성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자기를 성찰하고 실천하다 보면 성화됩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을 붙들고 회개하고, 성령님을 통해 변화시켜 달라고 가도하면 우리가 점진적으로 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화가 너무 중요하기에 심지어 우리에게 시련을 주어서까지 성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히12:8,10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10 ...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시키기 위해 징계도 불사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런 게 없으면 사생자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성화가 중요함을 인식하고 이제는 평생 성화를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천박한 교인이 아니라, 기품 있고 품격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재성은 항상 감탄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격이다.”(새무얼 스마일즈 「인격론」) 정말 그렇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나고 똑똑한 사람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혹시 감탄은 할지 모르지만 존경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통해 감동받지 않습니다. 오직 인격이 겸비될 때 감동 받고 존경합니다. 인격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복음 전파도 입술로만 되는 게 아니라, 인격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어떤 게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겁니까? 예수 믿고 축복 받는 것만 생각지 마십시오! 업적을 많이 남기는 것만 생각지 마십시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에 훌륭한 신앙 인격의 소유자들이 많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고 삼가 부탁드립니다. 

믿음으로 칭의의 옷을 입으셨다면, 이제는 성화의 옷을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장차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입을 천국의 웨딩드레스입니다. 부디 이 말씀 꼭 명심하셔서 남은 생애 내내 성화를 이루시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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