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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삶을 향한 결단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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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삶을 향한 결단 (눅 16:19~31)


오늘이 11월 30일이니까 만추, 늦가을 중에서도 맨 마지막 날입니다. 가을을 가리켜 사색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思索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생각할 思. 찾을 索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가을을 가리켜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그 푸르고 울창하던 나뭇잎들이 빨갛게 또는 노랗게 단풍이 들었다가 마침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아!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저 낙엽처럼 지고 말겠구나! 하면서 인생의 짧음과 허무를 느끼는 계절이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구름 한 점 없는 높푸른 창공을 바라보며, 어디엔가 있을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고 동경하게 되는 계절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을에는 유한한 인생을 통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곡에는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합니다! 영웅호걸도 가야하고 평범한 사람도 가야하고, 박학다식한 사람도 가야하고 불학무식한 사람도 가야하고, 억만장자도 가야하고 가난한 사람도 가야하고, 절세미인도 가야하고, 남자도 가야하고, 여자도 가야합니다. 

왕상 2:1-2에 보면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죽음을 가리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표현 하였습니다.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처자식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내야 하겠습니까?

지금도 살아있는 미국의 유명한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은 본래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때 아더. 머레이 댄스 학교의 인기 높은 댄스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필라델피아의 설교가 도널드 그레이 반 하우스 박사가 외친 ‘당신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라는 말씀을 듣고 번뇌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라디오를 꺼 버렸으나 무엇보다 귀중한 영원에의 물음을 잊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신학수업을 받은 다음 목사가 되는 혁명적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영혼보다 육신을 귀중히 여기고, 내세보다 현세를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살고, 더 멋있게 살고, 인생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전력투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가 그저 ‘웰빙 윌빙’ 하면서 건강하게 잘 사는데 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치열한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현세의 문제에만 급급하며 살아가기가 쉬운데, 이 시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영원에의 물음을 함께 생각해 보는 중에,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과 같은 혁명적인 회심 자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19-22의 현세와, 23-31의 내세의 두 광경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현세에서의 부자와 나사로의 대조적인 생활과, 내세에서의 부자와 나사로의 생활이 정 반대로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절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즐기더라”고 했습니다. 굉장한 부자이지만 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그의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 부자는 왕들이나 대제사장들이 입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사치를 즐겼습니다. 부자의 이러한 복장을 통해 볼 때 이 부자는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즐기더라’다는 단어는 이국적이고도 값비싼 요리로 흥청거리는 대식가와 식도락적인 연회에 사용된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산해진미로 가득 찬 상을 차려 놓고 날마다 호화로이 즐겼습니다. 이 부자는 많은 날 많은 시간들을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데 썼던 것입니다. 부자는 많은 시간과 많은 재물을 개인적인 향락과 쾌락을 위해서만 허비했을 뿐, 생산적인 일과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는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시간과 재물을 선용하지 못한 참으로 악하고 무책임한 청지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대문에는 나사로라 이름 하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 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하나님밖에 자기를 도울 자가 세상에 없다는 불쌍한 그의 처지를 뜻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그의 신앙을 나타내 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는 거지인데다 온 몸에는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고 했습니다. 

나사로는 그 곤고한 형편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견디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나사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 같은 나사로의 침묵에 대하여 Plummer는 “그는 부를 인간들에게 나누어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지 않았고, 그 부자가 돈을 그릇되게 사용함에 대하여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내세에 들어간 후, 자기와 그 부자의 형편이 완전히 바뀌어 진 일에 대하여 통쾌감을 가지지 않았고, 음부에 들어간 부자가 그를 사환으로 청할 때에도 그는 노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나사로는 성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땅위에서 대조적인 생활을 하던 나사로도 죽고, 얼마 후 부자도 죽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벌써 죽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장의 고동 소리와 힘차게 뛰는 맥박은 우리가 살았다고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지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심장의 고동 소리는 죽음으로 향하는 장송곡’ 이라고 까지 말한 바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1년 동안 약 3천만 명이 죽어 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1초 동안에 1명씩 죽는 꼴입니다. 불원간에 저와 여러분도 저 똑딱하는 초침 소리에 삼켜진 바가 되고 말 것입니다. 어느 뉘라서 이 사실을 부인하고, 어느 뉘라서 죽음을 피하거나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이 일반적 진리를 비창한 웅변으로 표현하여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의 사후에는 분명히 내세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품이란 곧 천국을 의미합니다. 그의 시체는 동네 밖 들판에 버려졌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천국으로 맞아들이신 것입니다. 

나사로는 그가 거지였고 불행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짤막한 비유이기 때문에 많은 설명이 생략되어 있지만, 나사로는 가난하고 병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표상인 것입니다. 이생에서 그 누구도 영접하지 않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영접을 받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품에 안김으로써, 더 이상 비천과 궁핍의 신분인 거지로서가 아니라, 그의 이름 나사로의 뜻처럼 하나님이 돕는 자가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호화롭고 조문객이 줄지었을 것이며, 무덤은 웅장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음부에 곧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서울에서 목회할 때인데 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장례식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단칸방에서 네 식구와 살며 구두닦이를 하는 성도의 아내인데, 그만 폐암에 걸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 날은 많은 비까지 내려서 슬픔이 더하였고, 마침내 벽제의 공동묘지에 묘비조차 없는 참으로 초라한 무덤이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강남에 사는 넉넉한 성도의 아버지인데,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한 천안에 있는 공원묘지의 가족 묘지에 묻힌 것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죽은 다음에도 차별이 심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덤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부자의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부자라는 이유로 지옥에 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살았을 때에 그에게 주어진 온갖 축복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을 거역했고, 재물만 의지하고 교만했으며, 쾌락만을 좇아 살았고, 이웃의 불행에 눈감고 살았습니다. 그는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 하는 불신자의 표상입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그의 불신앙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인생이 비록 육체적으로 죽으나, 그것으로 인생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내세에서 그 생이 계속되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현세와 내세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러면 나사로가 들어간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눅 14:17에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행복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곳이면서도, 천국에 없는 것도 있습니다. 무엇이 없을까요? 

천국에는 마귀가 없습니다. 마귀가 없으니 죄가 없고, 죄가 없으니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으니 이별이 없습니다. 질병과 고통이 없고, 가난과 슬픔, 한숨과 눈물이 없습니다. 미움도 없고, 거짓도 없고, 시기와 질투도 없고, 싸움과 분쟁이 없고,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이 없는 나라, 추위도 없고, 더위도 없는 나라, 대신 생명과 평화, 사랑과 행복, 기쁨과 감사만이 넘치는 나라, 그래서 천년이 하루처럼 짧게 느껴지는 나라, 그러한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에 대한 그림)

그 천성의 문은 진주 대문으로 되어 있고, 성곽은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과 같은 열두 가지 보석으로 되어 있으며, 천국의 길들은 정금으로 깔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 찬란한 천국에는 또한 생명수 강물이 흐르고,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달마다 12가지 실과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기화요초 만발하고, 아름다운 새 소리, 천군 천사들의 청아한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리는 곳,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때문에, 해와 달이 필요 없는 곳, 그러한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나라를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데, 그 곳에 갈 수 없는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그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부자가 들어간 지옥은 어떠한 곳일까요? (지옥에 대한 그림)성경에 보면 지옥을 가리켜 부르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1) 무저갱-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곳을 말합니다.

2) 지옥-일체의 자유가 없습니다. 여행 다니지 못하고, 제사 음식 먹으러 올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지옥이라 하겠습니까? (감옥, 군대?)

3) 불 못-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입니다. 단 5분도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4) 영원한 불-영원히 세세 무궁토록 꺼지지 않는 불 못입니다.

일단 이러한 지옥에 가면 어떻게 됩니까?

1) 다시 나올 수가 없습니다-어느 건물이나 비상구가 있고, 어떠한 감옥이라도 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올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절대로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형무소에 간 사람도, 출소할 날이 있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퇴원할 날이 있지만, 지옥에 간 사람은 절대로 다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영원히 그곳에서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2)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그 곳에서는 불신앙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 믿어 구원받을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3) 시간이 계산되지 아니합니다-만사에 다 때가 있으나, 지옥은 시간을 사용할 수 없는 영원한 처소입니다. 그 곳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고 했습니다.

4) 안식이 없습니다-밤낮 잠시도 쉼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의사도, 부모 형제도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 전혀 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아무런 위안도 맛보지 못하고, 아무런 기쁨도 누릴 수 없는 곳입니다.

5) 구더기도 죽지 않고, 죽고 싶어도 죽음마저 피하여 달아나는 곳, 그래서 자살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마다 불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6)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곳입니다-지옥으로 떨어진 수천수만 영혼들의 통곡 소리와 비명 때문에, 더욱 공포와 전율에 떨게 되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 “당신이 가 봤어?”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하면 어린아이들 동화책에나 나오는 유치한 얘기로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인간 박목사의 말이 아니고, 세계의 수많은 위인들이 믿는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이 시간 꼭 잊지 말 것은,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하시며, 죄인을 보실 때 마치 어미 닭이 그 새끼를 품듯이 사랑으로 품어 주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이, 듣기에도 몸서리쳐지는 지옥이라는 말을 13번이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하셨고,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지옥을 부인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몸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분이 지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천사람 만 사람이 천국이 지옥이 있네 없네 해도, 예수님께서 지옥이 있다고 하셨다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그 무서운 지옥을 피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이르고 혹은 낙원에 이르기 위해, 종교, 철학, 도덕, 윤리, 선행 등을 힘써왔지만, 그러한 것으로는 결코 아무도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밑에서 6년 동안이나 죄 닦음을 위해 고행을 하였고, 공자는 뇌성벽력이 치는 밤에는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 의관을 바로 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의란 태양 앞의 촛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그리고 그 무슨 방법으로도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동해안에 남한 인구 4천 8백만 명이 일렬로 서서, 순전히 수영 실력만으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영리 그림-1)거룩하신 하나님. 죄에 빠진 인간 2)골짜기 그림 3)죄와 사망의 바다에 빠진 인간 그림)

동두천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병사와 한국인 여자 사이에 태어난 한 초등학교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혼혈아였습니다. 그 아이는 날 때부터 아버지 피부색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 흑인 아이 다시 말해 검둥이였습니다. 

어느 날 아이의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다가 놀라운 일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이가 수돗가에서 꺼칠꺼칠한 수세미를 들고 엉엉 울면서 손등을 빡빡 문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의 피부 껍질은 벗겨지고 손등에서는 빨간 피가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겁에 질린 엄마는 “이 녀석아 이게 무슨 짓이냐?” 하면서 등을 마구 때렸습니다. 그 때 그 아이는 울면서 “나는 검둥이가 싫어요. 검둥이가 싫단 말이에요!” 하면서 마구 울었습니다. 이유인즉 학교에 가면 자기 혼자 흑인인지라, 친구들이 너는 왜 검둥이냐고 놀려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괴로움을 참다못해 수세미로라도 빡빡 문지르면, 자기의 검은 피부가 벗겨지고 하얗게 되지 않을까 해서 손등을 피가 나도록 수세미로 문질렀던 것입니다.

검둥이 아이가 수세미로 자기 손등을 문질러 피부를 하얗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어떤 노력이나 선행으로도 결코 자기의 죄를 씻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그 어찌할 수 없는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벌을 받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의 머리털보다 더 많은 더럽고 추한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시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셔야 했습니다. 그 분은 저와 여러분이 지은 모든 부끄러운 죄를 가리워 주시기 위해서, 대신 벌거벗기시고 수치를 당하셔야 했습니다. 

우리의 죄는 비누나 잿물로 씻을 수 없고, 하이타이나 샴푸로도 절대로 씻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특사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설사 사형을 당한다 해도, 지은 죄가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피로만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 그림)

결혼 50주년을 축하하는 예식을 가리켜 금혼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금혼식을 갖기가 누구에게나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50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얼마나 신중하게 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확률이 희박한 복권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천국의 삶을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습니다. 혼숫감을 준비하고, 학자금을 준비하고, 보험과 적금을 들어 내일을 준비하면서도, 영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은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간은 내세를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일 것입니다. 

잠 27:22에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랑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녀를 낳고, 먹고, 자고, 하는 일이야 동물들도 하는 것 아닙니까? 꿈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꿈이고, 깨고 나면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세의 영화는 일장춘몽과도 같습니다. 죽고 나면 그것이 따라 가지 못합니다.

언젠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 만일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찾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내실 것입니까? 영원이란 시간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어려운 무궁한 기간을 의미합니다. 희락과 복락만이 가득한 영원무궁한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저주와 고통만이 가득한 영원무궁한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이들 부모님, 남편과, 아내, 자녀들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내야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영원을 천국에서 살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결단의 시간>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이제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저주냐? 영생이냐 멸망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간곡하게 권면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생명과 복을 택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 중대한 결단을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그러므로 예수 믿고 천국 보험을 다 들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마귀 중에서 제일 간교하고 무서운 마귀는, 예수를 믿기는 믿되, 차차 믿으라고 하는 차차 마귀가 제일 악질적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을 기회가 오늘로서 마지막이 되고, 뜻하지도 않았던 순간에 유명을 달리하게 될 분이, 우리 가운데서 상당수가 될 것이며,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 될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젊어서의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년에는 고생을 하고 살더라도 그 고생 때문에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면 고생을 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초년은 행복했지만, 중년기와 노년기를 불행하게 보낸다면 결코 바람직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는데, 세상에서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죽은 후에는 또 영원한 지옥 형벌과 고통을 겪는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반대로 세상에서는 잠시 혹 가난과 질병과 슬픔을 맛보고 살지라도, 천국에서 영원복락을 누리며 살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예수 믿어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장차 천국에서 영원무궁토록 영생복락을 누리시기 원하는 분은, 이 시간 그 자리에서 모두 오른 손을 높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많은 죄를 지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죄인을 사랑하사, 예수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믿고, 제 마음에 모셔 들이기를 원합니다.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며, 사죄의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하시고, 제 모든 삶을 인도해 주시며, 장차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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