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마 13:3~9)

  • 잡초 잡초
  • 860
  • 0

첨부 1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마 13:3~9)

 
성도는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목적 있는 삶을 위하여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듯 살아갑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집니다. 이른 봄 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여름 내내 더위와 풍수해와 싸워가며 성실하게 일을 한 농부도 가을에 거두어들일 소출이 없어 허탈해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교회를 중심으로 열심히 섬기며 봉사를 하곤 하지만 만족할만한 실적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자기는 최선을 다했지만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주변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그 결과는 여러 가지로 차이가 나게 됩니다. 여기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추수 때 거두는 실적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차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2008년을 결산하는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나라 사역의 실적을 생각하며 피차간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토양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 비유에는 씨 뿌리는 비유와 또 알곡과 가라지 비유로 유사한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둘 다 농사를 소재로 하였다는 것과 또 그 거두는 결실에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으나 전자는 토양의 차이를, 후자는 종자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 네 종류의 밭입니다.

똑같은 종자라도 그 심겨지는 밭의 종류에 따라서 자라나는 과정이나 결실의 차이가 현저히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네 종류의 밭은 길가 밭과 흙이 얇은 돌밭, 가시떨기가 우거진 밭, 그리고 좋은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말하는 네 종류의 밭은 복음운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지만 사실상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세계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의 심성이나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나 문화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같은 몸에서 태어난 형제들도 제각기 다른 모습과 성격, 생활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밭의 종류가 다른 만큼 거기서 거두는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2) 제각기 특징이 있습니다.

길가 밭은 사람이나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와 같이 씨가 뿌려질 수 없는 곳입니다. 설령 뿌려 지더라도 새들이 주워먹어버리고 맙니다. 흙이 얇은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즉시 말라버립니다. 가시밭의 경우 길가 밭이나 돌밭과는 달리 흙이 좋고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은 되었지만 가시 덩굴과 엉겅퀴로 숲이 우거져 있어서 곡식이 그 틈새에서 자랄 수 없는 경우입니다. 거기 비하여 좋은 땅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서 열매가 보장되는 땅입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좋은 땅을 선호 하지만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용이하지 않습니다. 전체의 25% 밖에 안 되는 그것을 차지하려고 다투기보다는 75%의 버려진 땅에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3) 농부에게 맡겨진 영역입니다.

경제적 논리로 따지면 이익이 없는 곳에 투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복의 농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토양을 구별해서 씨를 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모든 지역,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했던 제자들은 거친 토양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다가 모진 박해에 부딪쳤고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지금도 척박한 아프리카의 내전지역에서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처절하게 부딪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을 넘나들며 목숨을 던져 무슬림토양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처럼 얼어붙은 동토에도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2. 실적의 차이가 있습니다.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4:8에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1) 많이 남긴 자가 있습니다.

백 배의 열매를 맺은 것은 많이 남긴 경우이고, 육십 배의 경우 보통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삼십 배는 적게 남긴 것입니다. 많으나 적으나 남겼다는데 대하여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주인의 의도를 헤아린다면 반드시 많이 남겨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였습니다(눅 19:26).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성도가 하나님께 받는 은혜와 축복도 가속력이 붙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축복의 체험을 한 사람은 더 많은 축복을 향하여 도전하곤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였습니다(요 1:16).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1:12).

2) 적게 남긴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운동은 흔히 말하는 ‘시장경제’의 원리와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시장 경제는 투자의 여력이나 사업의 역량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비유에서 보는 것처럼 다 같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지만 자라서 결실을 거둘 때는 엄청난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주변의 환경과 같은 외적 요인 보다 받은 사람 자신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 보면 주인이 종들을 불러 놓고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맡겼다고 하였습니다(마 25:14-30). 훗날 주인이 종들을 불러놓고 회계할 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겨 온 사람에게 칭찬을 하였습니다. 남겨 온 금액에 상관없이 둘 다 100% 역량을 발휘하였기 때문입니다.

3) 남기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인간은 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선한 동기와 목적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했던 결과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럴 경우 남의 탓을 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자기의 부족함 때문인 줄 알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것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빈손으로 와서는 주인에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변명을 들은 주인은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였습니다(마 25:24, 30).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삼 년 동안 열매를 얻지 못하고도 주인에게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사정하는 과원지기처럼 인내하면서 또다시 그 일을 계속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눅 13:8-9).


3. 상급에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행위에 따르는 보상을 약속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41에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기준에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요구에 상관없이 하나님만이 가지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권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포도원의 품꾼의 이야기에는 이와 같은 포상의 원리가 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에 와서 일하는 사람에게포상의 원리가 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에 와서 일하는 사람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씩의 품삯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 중에는 제 6시와 9시, 11시에 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주인이 품삯을 줄 때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 똑같이 주는 것이 불공평하여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잘못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애당초 그들이 일하러 올 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마 20:8-13). 사람들은 보이는 현상을 가지고 말하지만 주인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롬 2:7). 또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의중에 맞는 일을 했을 때 최상의 보상을 하십니다(마 25:40).

2) 실적에 따라서 보상하십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는 자연의 법칙은 “많이 남긴 자는 많은 상급을 받고 적게 남긴 자는 적은 상급을 받는다”는 상벌의 법칙에 적용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하여 행한 실적에 따라 보상 받는 상급의 원리를 말씀 하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하여 먼 나라로 떠나면서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은화 한 므나씩을 주고 갔는데 돌아왔을 때 종들이 모두 장사하여 남긴 실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중에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사람도 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도 있었으며 한 므나 그대로 보관 했다가 가져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임금이 된 주인은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습니다(눅 19:12-27).

3) 하나님의 즐거움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충성을 하고 많은 실적을 남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요한복음 15:8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에게 그 기쁨을 같이 누리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5:11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에게 받은 다섯 달란트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겨 온 종에게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마 25:21). 최상의 상급은 주인과 함께 기쁨을 같이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