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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엡 5: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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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엡 5:15~17) 

 
이번에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에게는 그의 자서전인 '내 아버지의 꿈'에 언급될 정도로 고교시절 단짝 친구였던 가쿠가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또 한 사람은 LA에서 노숙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흑인 혼혈아로 같은 고민을 안고 성장했던 두 사람에게 하나님은 똑같은 시간을 주었지만 한 사람은 세월을 아꼈고, 한 사람은 낭비하였기에 정반대의 인생역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비관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문제의 원인을 세상의 남의 탓으로 돌리고 삿대질하느라 귀한 시간을 소모적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동일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시간의 사용에 따라 30년 후에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오바마와 가쿠가와의 사례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붙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벌써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주일 이면 금년의 마지막 결산의 달인 12월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월의 빠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하는 본문은 바울 사도가 3년이나 머물면서 눈물과 겸손으로 섬겼던 에베소 교인들을 생각하며 하나의 편지를 띄웁니다. 아마 그가 여러 교회를 개척했지만, 이방 땅에서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문 곳은 없었습니다. 에배소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한 10년 전쯤 기록을 하지 않았나 추측을 합니다. 그 당시 바울의 나이는 이미 60대에 접어 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불행하게도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신세입니다.

자신의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이제 언제 자신의 죽음이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 자신의 땀과 사랑으로 섬겼던 교우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한 마디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능동적 명령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16절에 "세월을 아끼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17절에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명령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주의 뜻을 위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간은 곧 주의 뜻을 이루도록 허락된 삶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공한 인생을 보십시오. 단순히 오래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시간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빈부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공평한 것도 없지만, 이 시간의 사용 여하에 따라 만세에 기리는 인물이 되거나 반대로 역사에서 그림자조차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토록 차별적인 얼굴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간은 지혜로운 자들에게 열려있는 삶의 무대입니다. 지혜 있는 자의 삶의 특징은 세월을 아낍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세월을 아끼라'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반복적으로 권면하는 교훈이 있다면 '지혜로운 자'로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직역하면 본래 '시간을 구속하라'는 뜻입니다. 여기 세월을 아낀다, '엑사고라조'라는 단어는 상업적인 용어입니다. 그 당시 시장에서 통용되는 용어였어요.

예를 들면, 시장에 갔는데 굉장히 싱싱한 갈치가 너 댓 마리 남아있는 겁니다. 너무나 귀해서 다른 사람이 사기전에 모두 샀어요. 떨이를 한 거죠. 이때의 '다 산다'라는 단어가 바로 엑사그라조! '아낀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여기에 적용해 보면 '다 산다' 즉 '세월을 최대한 이용한다'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일정합니다. 자원이 일정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돈과 건강과 지위, 이 모든 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 그것을 통해 최대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을 '세월을 아낀다(엑사고라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내게 찾아온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선용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왜 세월을 최대한 이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까?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때가 악하니라!' 이 때는 어떤 때인가 하면, 할 수만 있으면 사탄이 눈에 보이지 않게 저와 여러분의 세월과 자원, 건강과 재능, 지위와 물질, 모든 것을 악한 일에 사용하도록 유혹하는 시대라는 겁니다.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세요. 시간과 자원과 물질을 빼앗기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뭐, 멀리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잠시 한눈 팔면 우리의 자원들을 다른 곳으로 빼앗아 갈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컴퓨터를 켜 보면, 오늘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끔 이-메일을 체크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어 보았을 때, 아주 점잖아 보이는 메일을 클릭했는데, 여자의 알몸이 그대로 뜹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당하는 세대입니다. 악한 세대입니다. 이 마수에 걸려들어 구원은 받았지만, 마귀에 휘둘려 그 아까운 자원과 세월을 낭비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잃어버린 영혼의 아픔만큼이나 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계획할 때마다 위로부터 지혜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이 유한한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사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라틴어로 목표라고 하는 말이 '피니스(finis)' 인데 이것은 종말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목표가 무엇입니까? 종말입니다. 목표가 무엇입니까? 끝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진짜 목표는 인생 종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 후회하지 아니하는 목표라야 진짜 목표라는 말입니다. 거기다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생 목표를 바로 정하고 달려 왔다는 증거입니다. 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그는 환호하듯이 외친 것이 아닙니까? 바로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표를 정할 바에는 우리가 그런 목표를 정해야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으로 남게 될 질문이 무엇입니까?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것입니까? 물론 중요합니다. '우리 후손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입니까? 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쓸 데 없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흐르면 다 먼지 속에 파묻히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하는 그것입니다. '과연 내가 예수님 앞에 예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을까?' 그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역사의 승리자는 예수님입니다. 이 세상은 다 심판 받아 없어집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통일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한 백성들이 사는 하늘의 나라를 완성하시고 그분이 영원토록 다스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바로 살았느냐 바로 살지 못했느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목표를 정했다면 그 마지막에 가서 큰 소리를 치고 마지막에 가서 찬양할 수 있는 목표라야 하지, 중간에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세 가지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 복음 전하는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전서 9장 23절에서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그 일에 바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태도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선교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소명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세상 직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아니면 가정에 틀어박혀서 살림만 하는 주부라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분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있습니다. 그 소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추상적이라 우리 가슴에 얼른 와서 닿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좀더 구체화시켜서 각자 개인이 어떻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 소명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저는 종교개혁이 인류에게 선물한 가장 큰 기여 중에 하나는 만인 제사장직의 성경적 발견과 함께 "모든 직업의 성직성"을 우리로 깨닫게 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개혁자 루터는 "만일 소젖을 짜는 하녀가 하나님이 이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일에 임한다면 그녀의 직업이 바로 성직이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날 이 땅의 그리스도인 만이라도 자신의 직업의 장에서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임한다면 이 땅, 이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여러분의 소명을 분명히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소명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기 쉽습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무슨 일을 소명으로 주셨는가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한번밖에 없는 한 생의 기회를 허무하게 물거품으로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자기 자신만을 위해 다 써버리고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비참한 자리에 서기 싫다면 지금부터라도 자기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능력과 시간의 한계점을 인정하고 자기 분수를 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능력의 한계점 안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서 12장 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 말씀은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분수에 맞게 절제하고 분수에 지나친 일을 가지고 시간낭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 자기 일도 아닌데 팟 나와라 콩 나와라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지나친 간섭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사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기죽지 않으려고 과도한 지출을 하는 사람들,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그 일에 부담이 되니까 여론 몰이를 하면서 남 마져 못하게 하거나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한계점을 모르고 마냥 오래 살겠지 하고 무사태평으로 지내다가 40세도 안되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한계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어리석은 종말을 고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바로 관리하고 싶습니까? 기회를 바로 선용하고 싶습니까? 무엇보다도 자기의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놓고 선명하게 선을 긋고, 할 수 있는 일에 좀더 시간을 많이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결정하는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덜 중요한 것을 앞세우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는 잘못을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한정된 시간을 도저히 최선의 기회로 선용할 수 없습니다.

'E.M. 그레이'라고 하는 교수가 쓴 "성공의 공통분모"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성공비결에 공통분모가 없을까, 공통점이 무엇일까를 연구해서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첫째는,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성공이 없습니다. 열정을 다하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복 주셔야 성공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같이 인간관계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하고 원수지고, 누구를 비방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레이 교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세 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 부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급한 것을 먼저 하면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급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쫓겨 중요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하여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고 끌려 다니다가 끝납니다. 급할수록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급한 것만 서두르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성숙한 사람이란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숲이라고 하는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부분보다 전체를 봅니다. 그런데 미숙한 사람은 언제나 부분만을 봅니다. 작은 것을 보고 큰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전체를 보고 보다 멀리 내다봅니다. 눈앞의 현실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멀리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세월을 아끼며 살아갈 때,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분수를 압니다. 더 나아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성숙함이 보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날마다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감옥이라는 환경도 바울을 꺾지 못했습니다. 나이도 꺾지 못했습니다. 그 몸에 있는 병도 꺾지 못했습니다. 다가오는 죽음의 불길한 예감도 그를 기죽지 못하게 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힘이 솟았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라도 지고 달려갈 수 있는 새 힘이 솟았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은혜를 그가 맛보고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가 휘청거린다고 합니다. 정부를 믿을 수가 없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말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온 세상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불신의 덩어리로 화해 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미칠 듯이 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앞에는 무언가 밝은 미래를 점칠 수가 없는 답답한 환경만이 놓여 있지만 그러나 감옥과 같은 이런 환경도 우리를 절대 꺾지 못할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이 세월을 아끼는 지혜만 있다면 그래서 바른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기만 하면 주님이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병이 있습니까? 여러분, 남이 모르는 개인의 상처와 고통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무거운 십자가의 짐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자세로 시간 관리를 하기만 하면 주님은 그 모든 것들을 이기고도 남은 새 힘을 날마다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애써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용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하루 24시간을 살 동안 나는 25시간을 사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지혜로 안됩니다. 성령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구하십시오. 응답을 받을 때까지 매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되는 대로 세월을 허송하도록 주님이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는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을 쓰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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