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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강물이 흘러 닿는 곳마다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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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물이 흘러 닿는 곳마다 (겔 47:1~12)


얼마 전에 화성을 향해 쏘아 올렸던 우주선을 통해서 화성에도 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과학자들뿐 아니라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지난 2002년에 쏘아 올렸던 무인 인공위성인 오딧세이호를 통해서라든지 이미 여러 차례 발사된 우주선들을 통해서 예전에는 화성에도 물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물이 흐른 강 같은 흔적도 보였고, 암반의 분석을 통해서 여러 차례의 큰 홍수를 겪었던 일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특히, 화성의 북극 밑에는 아주 광범위하게 얼음층이 존재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피닉스호라는 인공위성을 통해서 물의 존재가 직접 확인 된 것입니다. 지난 5월 25일에 화성에 도착한 피닉스호는 약 5-6센티미터 정도의 도랑을 파 나갔는데, 그 도랑 밑에서 발견된 물체 중 흰빛을 띤 얼음 조각 같은 것이 보였고, 그것을 채취해서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수증기가 증발하기도 하고 수분이 검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화성에도 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직접 확인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고무된 과학자들은 앞으로도 한 달 동안 도랑을 두 세 개 정도 더 파보고 물의 존재여부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주된 성분들을 다시금 조사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과학자들이 화성에 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만약에 물이 있다면... 거기에는 생명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제까지의 우리의 상식에 의하면 생명은 반드시 물과는 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이 있을 때에만 거기서 생명은 자라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화성에 물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를 자아나게 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예언자 에스겔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에스겔은 원래는 예루살렘의 에서 성장한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주전 597년에 당시의 여호야긴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간 일만 여명의 귀족들이나 지식인들 중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지 5년 만에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보좌의 신비한 모습을 경험한 후에 그는 하나님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나이가 30세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직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은 때였는데, 그는 환상을 통해서 예루살렘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했는지를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기이한 행동을 통해서 이제 예루살렘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사람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이렇듯 처음에는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살면서 예루살렘의 황폐한 모습과 임박한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에스겔이 예언한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환상을 보여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골짜기를 가득 덮고 있던 마른 뼈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는데, 그곳에는 마른 뼈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뼈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이 뼈들이 살겠느냐?’ 그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그 뼈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을 대언하자 뼈들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들어맞은 뼈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가운데 아직 생명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생명의 기운이 그들 가운데 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이 살아 일어서는데... 어느덧 그들은 활력이 넘치는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을 말해주는 중요한 환상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게 누워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금 살리시고 회복시키셔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또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은 그 때가 자신이 바벨론으로 끌려 온지 25년이 지난 주전 573년경이라고 소개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관련된 환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에스겔을 환상 중에 아주 높은 산으로 데려가셨는데, 이것은 바로 예루살렘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성전과 뜰과 그것을 중심으로 부속한 건물들과 여러 방들이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장차 그들이 차지할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거기에는 성전이 세워질 곳과 왕들이 차지할 땅 그리고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차지할 땅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가나안에 그들이 처음 들어와서 살 때처럼 각 지파에게 그들이 살 땅을 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참으로 희망적인 대목입니다. 그들이 처음 바벨론으로 끌려와서 산지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 에스겔도 벌써 50대의 나이로 접어들었지요. 이때 쯤 되면 처음에 가졌던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열망이 서서히 사라질만한 시기였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여기까지 인가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희망을 접을 때도 되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장차 세워질 성전과 그들이 차지하여서 살게 될 땅을 보여주시면서,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다시금 지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환상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새롭게 세우진 성전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에스겔은 하나의 신비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성전의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재어주신 땅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그 물은 사람의 발목까지 오는 아주 얕은 물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일천 척, 우리의 단위로 하자면 약 450미터를 내려가서 다시 서 보았더니 이번에는 물이 자신의 무릎까지 차오르는 것입니다. 다시 일천 척을 내려가서 재보니 이제는 물이 그의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천 척을 내려가서 깊이를 재어보니 이미 그 물은 큰 강물을 이루어서 섣불리 건널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번에는 강가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강 좌우편에는 많은 나무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12절에서 보듯이 이 나무들은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로 인해서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철을 따라서 먹을 과일을 맺는 나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잎사귀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 재료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렇게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넘쳐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라바라든가 엔게디, 에네글라임같은 곳은 모두가 사해(dead Sea)와 연관이 되어있는 지명들입니다. 사해하면 그 이름 그대로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생명체들은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메마른 곳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온 물이 흘러들어오면서 이러한 죽음의 기운은 사라져 버리고 생명이 충만한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에스겔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우리는 이렇게 에스겔이 바벨론에 끌려간지 25년 만에 보았던 환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에스겔의 환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나온 물이 흐르는 곳마다 죽음이 극복되고 생명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에스겔의 이 환상은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친히 그들이 살 땅을 재어주신 후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들어가서 살 땅을 분배해 주셨다고 해서 그 땅이 바로 사람들이 살만한 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신 후에 그 땅들을 성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통해서 골고루 적시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넘칠 때.. 비로소 그 땅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게 되고 각양각색의 과일나무와 물고기들이 살게 되는... 모든 생명들과 사람들이 살만한 곳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과학자들이 화성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곳에 생명이 살 고 있을까? 그리고 생명이 살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증거로 찾는 것이 바로 물이라는 것이지요. 물이 있다면... 생명의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에 물이 없다면... 그곳에 생명의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새롭게 땅을 재어 주신 후에 그 가운데로 생명의 강이 흐르게 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성소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구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메마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든지 사람에 대한 건강한 기쁨이나 희망이나 감사 같은 것들... 참으로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기쁨과 감동을 주는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서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물... 우리를 참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물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 산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진정한 생명은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는 수가성 우물가에서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성에서 그녀가 구하는 물이 아닌 다른 물이 또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4:14) 

이 세상에서 우리를 항상 갈증을 느낄 수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항상 메마르고 궁핍함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 예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물을 마실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목마르지 아니하고 배고프지 아니한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물이 우리를 메마르고 목마른 삶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들 가운데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선사하여주는 물은 처음에는 아주 희마하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많아지더니 결국에는 모든 세상을 적시고도 남는 것이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것은 성전의 문지방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니까 물이 스미어 나오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2절) 이것가지고 언제 이 넓은 세상을 적실 수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물이 점점 더 깊어지고 많아져서 결국에는 큰 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발목까지 밖에는 올라오지 않더니... 일 천척... 그러니까 한 450미터쯤 가더니 무릎까지 차오르게 되고... 다시 450미터쯤 가니까 허리까지 차오르게 되고, 다시 450미터를 가니까 도저히 헤엄을 쳐서 건널 수없는 큰 강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문지방에서 희미하게 스며들던 물이 큰 강물을 이루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 다지 많지 않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항상 우리에게는 이러한 의구심이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좀 부족한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벳새다 광야까지 예수를 따라왔던 많은 사람들... 그들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예수의 말씀을 듣다가 저녁때가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우리가 먹여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의도는 참으로 좋은 것이지요. 배고픈 사람들 먹이는 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문제는 현실이지요. 한 이백 데나리온... 우리 돈으로 따지자면 한 2000만원어치의 떡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돈이 없기도 하지만... 어디서 그 많은 떡을 살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한 아이가 예수에게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안드레가 그것을 예수에게 전해드리면서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우리가 가진 것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는 달랐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기억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렇듯 작은 것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사키고 구원하시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을 예수가 말씀하신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도 깨닫게 됩니다.(마태13:31-32) 

겨자씨는 심을 때에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자라나면 어떤 식물보다 더 커져서 모든 새들이 그 곳에서 깃들이고 쉼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예수가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주 작고 드러나 보이지를 않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작은 것 가운데 세상을 구원하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듯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던 환상을 보며, 작은 것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 시키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여름철이 되면 어느 한적한 계곡이나 시원한 강가를 찾아가서 온몸을 적시고 여유를 찾습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생명의 강가야 말로 우리가 찾아가야할 피서지가 아닐까... 생각하고 여러분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세상에 여기보다 더 좋은 피서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물이 가득합니다. 강가에는 온갖 과일 나무가 있어서 풍성한 열매를 제공하며, 그 잎사귀들은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는 좋은 약재로 쓰입니다. 물론 입장료도 없습니다. 오가는 길에 교통체증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의 강가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물론 이 생명의 강가에서 피서를 즐기는 모습도 제각각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혹시라도 물에 젖고 스타일 구길까봐 발만 살짝 담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발목을 걷어 올리고는 무릎이 닿는 부분까지만 들어가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 보니 허리가 차는 곳까지는 들어 왔지만... 겁이 나서인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강물에 온 몸을 던진 채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누가 더 즐겁게 보내는 사람일까요? 여러분들이 물놀이를 하는 스타일은 어떠하십니까? 
    
기왕에 강가에 나왔으면 온 몸을 던지고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믿음이 이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따지지도 말고... 어떤 한계를 미리 정하지도 말고... 겁을 먹지도 말고... 하나님의 손길에 자기를 맡기십시오. 그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강하게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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