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있나요? (마 21:33~46)

  • 잡초 잡초
  • 365
  • 0

첨부 1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있나요? (마 21:33~46)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마태복음 21장의 포도원 비유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때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한 이후 예루살렘을 다섯 번쯤 방문하셨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사역의 본거지를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가버나움에 두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자주 오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다섯 번쯤 예루살렘에 오셔서 하늘나라를 선포하셨을 것이라는데 많은 분들이 동의합니다. 

다섯 번째, 다시 말하면 마지막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는 예수님께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매우 다른 행동을 보이십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지를 않나, 성전을 깨끗이 하시기 위해 장사를 하거나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내모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호통을 치시지를 않나, 무화과나무를 꾸짖어 말라죽게도 하시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대제사장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들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봉독한 대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그럽고 인자한 모습의 예수님이셨는데 21장에 와서는 매우 거칠고 혁명가적인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죽음이 임박하셨음을 알고 서둘러 하실 일을 마치셔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포도원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부자가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울타리도 치고, 포도즙 짜는 틀도 들여놓고, 망대도 세웠습니다. 완벽한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타국에 가면서 그 포도원을 여러 사람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포도를 수확할 때가 되어 주인은 종들을 세를 준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당연한 삯으로 포도열매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농부들이 세를 받으러 간 주인의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돌로 치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종들을 보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안 주인은 아들을 직접 보냈습니다. 주인의 아들이니 농부들이 잘 대해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욕심에 눈이 멀어 농부들은 아들을 죽이고 맙니다. 분노한 주인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제때에 세를 잘 낼만한 농부들에게 다시 포도원을 빌려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마치신 예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처럼 이미 천국을 얻었다고 믿었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서 천국을 빼앗을 것이며, 둘째로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마침내 천국을 차지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고 오래 예수 믿었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그 믿음의 열매를 맺어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로 종교적 냄새를 많이 풍긴다고 해서 그들이 곧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적 종교행위를 통해 알게 되는 분이 아닙니다. 종교행위가 곧 믿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꾸짖고 계시는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교라는 오랜 종교체제가 바리새인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까지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바리새인들은 철저히 종교적이었습니다.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the most religious people who ever lived)이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느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고, 다른 하나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종교적 전통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서 “hypocrites”(위선자)라고 불렀습니다. 

“위선자”란, 말과 행동이 다른 자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행동은 다르게 하는 사람들’(Saying one thing and doing another)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쁜 사람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말과 행동이 다른 종교적 인물들이라는 말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대단한 듯 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적 의인’(legalistic righteousness)이었습니다(빌3:5-6 참조).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진실로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그들의 전통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율법이 있지, 율법을 위해 사람들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왜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는지 몰랐습니다. 결국 바울은 예수님의 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회심 전의 바울을 비롯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외치며 전통을 지키는 일에는 열심이었으나 율법과 전통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Bible thumper”(터무니없는 거짓말쟁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thump라는 말은 “~을 탕탕 치다”, “~에 쿵 부딪치다”, “쿵쾅거리며 걷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Bible thumper는 그의 자신의 의(Self-righteousness)를 너무 많이 들어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을 율법적 모범으로 자랑하며 다른 사람을 자기의 개인적 종교 아래 예속시키려 합니다. 성경을 들고 큰소리치며 위선적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그들의 말처럼 살지 못하는 그들을 Bible thumper라고 합니다. 지극히 종교적(Super-religious)이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종교를 이용할 뿐 자신들은 그 종교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 

종교적 전통에 익숙한 자요, 사람보다 전통을 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율법주의자에 불과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바울은 자신을 울리는 꽹과리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대부’(God-Father)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마피아 두목 돈 코르네오네 가족을 중심으로 한 범죄영화입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사일자를 잡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성당에 가서 유아세례를 받는 날로 잡았습니다. 세례를 받는 동안 동료들은 원수들을 잔인하게 학살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감상해 봅시다(유아세례예식과 원수 살해장면을 보여줌). 

여기 유아세례라는 종교행위와 경쟁자를 잔인하게 학살하는 마피아 두목의 가슴에는 진정 하나님이 계실까요? 하나님은 마피아 두목의 세례예식을 보시며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실까요? 대강절, 또는 대림절(The Advent)을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합니다. 종교적 행위를 잘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잘 믿느 것도 아닙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는가?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고 있는가? 오늘의 질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는다 함은 믿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입니다. 
열매 없는 신앙은 껍데기 신앙이요, 죽은 신앙입니다. 야고보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은 배가 고프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무화과나무로 가까이 가서 열매를 얻으려 했으나 아무 열매도 못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 21:19) 

이 사건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신앙의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자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화과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아무리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선행이 우리의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Good works are not a matter of earning our salvation). 그러나 선행은 분명히 우리 구원의 열매입니다(Good works are the fruit of our salvation). 

구원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22에서 성령의 열매라는 말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 5:22-23)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 9가지를 성령의 열매(the fruit of the Spirit), 또는 구원의 열매(The Fruit of our Salvation)라고 말합니다. 이 열매들은 하나님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심장으로부터 넘쳐나는 것들입니다(They are the outpouring of a heart that is filled with God). 

빌 올(Dr. Bill Orr)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였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예수님의 제자답게 사셨는지 그의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빌 올 박사는 조직신학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조직신학으로 사셨습니다.”(Dr. Bill Orr didn't just taught it, he lived it) 어느 추운 날 집에서 코트를 입고 나간 그가 교실에 들어올 때 보니 코트가 없었습니다. 출근을 하다가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불우한 사람에게 벗어주고 온 것입니다. “코트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자가 묻자 “네, 집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올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업을 계속하곤 했답니다. 신학을 가르친 분이 아니라 신학을 사셨던 빌 올 박사님, 그분은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는 사실을 아신 분이셨고 몸으로 가르치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말한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위선자들은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울리는 꽹과리일 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시대에 매우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종교를 보여주는(the appearance of religion) 사람에 불과 했지 믿음의 열매를 맺는 지도자들이 못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들에게서 천국을 빼앗아 열매 맺는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들어야 할 경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Bible thumper, 즉 소리만 내는 종교인들에게서 천국을 빼앗아 열매 맺는 사람들에게 주시겠다는 경고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의 집에 와 있습니다. 이집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잘 알고 계십니까? 그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그러려면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의 심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심장 소리가 들려옵니까? 이웃에서 슬퍼하는 소리를 듣고 안타까워하는 예수님의 심장 소리가 들립니까? 동료의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아픔을 나누려는 예수님의 심장소리가 들립니까? 실패의 늪에서 통곡하는 사람과 함께 통곡하는 예수님의 심장소리가 들려옵니까? 

셜리라는 사람은 외롭게 사는 과부였습니다. 다른 때보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더 많은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습니다. 11월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나면 성탄장식들을 찬란하게 꾸밉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셜리도 성탄트리를 거실에 장식하려고 백화점엘 갔습니다. 이것저것 쇼핑을 해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계산대 앞에 오니 긴 줄이 서있었습니다. 꽤 오래 기다리다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두 아이가 황금색 실내화를 사려고 하는데 돈이 모자라는 모양입니다. 계산대 아가씨는 돈이 모자라니 다음날 오라며 그 실내화를 거둬들였습니다. 여섯 살쯤 되는 동생이 사정을 합니다. “내일도 돈은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꼭 갚을게요. 오늘 갖고 가게 해주세요.”, “안돼요. 회사규칙상 외상은 안돼요.” 그러자 초등학교 2학년쯤 되는 형이 동생을 달랩니다. “가자. 엄마도 이해하실거야. 한 달이나 알루미늄 캔을 모아 팔았는데 절반 값밖에는 안되잖니? 어서 그냥가자. 엄마는 이해하실거야!” 

뒤에 서있던 셜리 부인은 자초지종을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얼른 대답합니다. “우리 엄마 아파요. 의사는 오늘밤에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런데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 천국은 황금 길로 되었다고 하셨어요. 엄마도 천국가면 예수님과 함께 황금 길을 거니실 텐데! 천국 가는 엄마에게 어떤 신발을 사드리나 우리들이 의논하다가 여기서 저 황금신을 보았어요. 우리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알루미늄 캔을 모아 팔았어요. 그런데 엄마가 오늘 밤을 못 넘긴데요. 아주머니 좀 도와주세요. 꼭 갚을게요.” 

셜리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른 값을 치러주고 그 아이들의 가슴에 황금색 실내화를 안겨주었습니다. “어서 가려무나. 엄마가 기다리겠다.” 몇번이나 고맙다고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 두 형제는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이라도 엄마가 하늘나라 가시면 어떻게 하나 염려되어 더 뛰었을 것입니다. 

셜리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에서야 예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사랑의 열매로 오시는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열매를 맞는 성도들을 예수님은 만나시려 하실 것입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면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요?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