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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와 성령의 역사 (행 1: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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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성령의 역사 (행 1:21~26)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두려워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주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거의 같은 성령의 말씀을 듣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크고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 감리교를 위해서도 그렇고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 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어려움을 겪었다면 또 우리 눈 앞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내모는 역사라고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잠든 심령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잠이 안오면 수면제를 먹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두려우면 기도할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지난 번에 부흥을 위하여 “기도의 우물을 파라!” 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연말과 연시 “2개월 특별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2개월 동안 하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하신 많은 일들을 우리로 경험하게 하고 또 보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고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기도이고 둘째는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성령의 역사는 항상 같이 갑니다.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이 하신 일이 교회를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졌고 더 많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고(행 1:14) 성령을 받은 이후에도 저들은 모여서 빌기를 다했다(행 4:31)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설교를 통하여 우리가 기도하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주 큰 기도 집회를 앞두고 있고 어떻게 해야 성령의 놀라운 권능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우리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우리나라에도 하나님의 부흥은 어떤 기도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20문도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쓰다가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단순히 열흘 동안 기도하였더니 성령이 임하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도 열흘 동안 생업을 전폐하고 모여서 기도하면 오순절 마가다락방 같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기도 만능주의는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100일 작정 기도하고 시작한 사업도 망할 수 있습니다. 40일 금식기도하고 개척한 교회가 부흥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 당하는 교우에게 “기도해 보셨나요?” 했더니 ‘기도했다! 어쩔래?’ 하는 반응을 보이는 교인도 보았습니다. 기도가 교만이 되어도 안됩니다. 

어떤 교인은 새벽기도회를 공적 쌓는 식으로 하는 이도 있습니다. 다른 교인들을 비난하면서 "새벽 기도회도 안나오는 것들이!“ 말하는 교인도 보았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기도하고 좌절이 더 큽니다. ‘기도해도 안된다.’는 의심만 생깁니다. 

우리는 120문도가 열흘 동안 어떻게 기도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나의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기도를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고, 도를 닦는 기도를 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자신의 능력, 경험, 지혜, 계획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오직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120문도는 열흘 동안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중에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그것은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살함으로 결원이 생긴 예수님의 12제자의 수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받기를 기도하면서 자신들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자의 수가 한 사람 모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 11제자이면 안되는가? 왜 꼭 12제자를 세워야 되는가? 예수님께서 왜 제자 12명을 세우셨겠습니까? 아무렇게나 하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냥 제자들을 뽑다 보니까 12명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12라고 하는 수자가 중요한 수자입니다. 12는 완전한 수를 의미합니다. 제자 12명은 모든 교회, 구원받을 모든 성도들의 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4절에 보면 천상의 교회의 보좌에 앉은 24장로가 나옵니다. 구약 12지파, 신약 12제자를 합한 수를 상징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구약의 교회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신약 교회를 합한 수를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완전한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 12명은 채워져야 했습니다. 
기도하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우리에게 뭔가 빠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제 길로 가버렸고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이 부족하니 우리가 그 사람 채워야 되겠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신 즉시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에게 왜 어떤 때는 열흘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한 달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2개월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100일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몇 년 씩의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에게 준비되어져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기간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부족한 것이 메꾸어져서 우리가 준비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를 들어가게 되면 틀림없이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만지시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막연하게 날짜만 채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게 하고 부족한 것은 메꾸십니다. 그렇게 준비된 다음에 성령의 권능을 부으시는 것입니다.  

120문도는 부족한 한 사람의 사도를 세우기 위하여 제비 뽑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자를 세울 때, 제비 뽑기를 했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비 뽑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흔히 사용하였던 방법입니다. 어느 땅이 어느 지파에게 가야 되는가? 토지 분배를 위하여 사용했고, 제사장들이 당번을 정할 때 또 하나님께서 지목하신 사람을 밝힐 때 등에 쓰였습니다. 

(잠 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이집트 곱틱 정교회에서는 총대주교를 선출할 때 마지막 절차로 어린이 손으로 제비 뽑기를 해서 뽑는다고 합니다. 
감리 교단도 혼탁해진 감독 선거 때문에 감독을 제비 뽑기로 하자는 안이 입법 의회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었지만, 부결되었습니다. 이유는 제비 뽑기가 비 합리적이고 어리석고 무책임한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비 뽑기로 선출된 감독이 무슨 권위가 있겠느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성경은 감독 정도가 아니라 사도를 제비 뽑기로 택하였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제비 뽑기가 성경적인가? 아닌가?’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꼭 제비 뽑기를 통하여만 역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사람 택하는 것이 골치 아파서, 또는 호기심이나 재미삼아 제비 뽑기를 한다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제비 뽑기라는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하는 갈망입니다. 

120문도가 제비 뽑기로 예수님의 제자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 가운데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들이 결정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비 뽑기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동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이런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특별 기도 기간을 정하고 자신의 문제, 교회 문제, 나라 문제로 기도를 하게 될텐데, 기도는 날짜수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며칠 기도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기도가 내 자신에 대한 생각과 계획과 소원은 정말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 결정해 주세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저는 무조건 순종합니다.’ 이런 마음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제비 뽑기로 정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독도 제비 뽑기를 거부하는데, 사도가 될 사람을 어떻게 제비 뽑기해서 선정할 수 있을까? 만약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사도가 될 사람이 제비 뽑기에서 떨어진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실력이 모자라 떨어졌다면, 표가 적어서 떨어졌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제비 뽑기로 떨어졌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러나 당시 120문도가 사도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은 지금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달랐음을 알아야 합니다. 

25절에 보니 그들은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 맡기기 위하여 제자를 뽑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섬김을 받을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니라, 섬길 사람을 뽑았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을 제비 뽑기로 한다는 것과 평생 청소 당번을 제비 뽑기로 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서 Eejf어진 사람도 수긍이 잘 안되는데, 대통령을 제비 뽑기해서 떨어졌다면 분해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소 당번을 제비 뽑기해서 떨어졌다면 어떻겠습니까? 감사 헌금을 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는 누구였습니까? 사도의 직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인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12제자를 보충하겠다고 한 것은 달리 말하면 죽을 사람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대 교권자들이 예수의 잔당을 똑같이 감옥에 넣고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조금만 이상하게 보이면 체포하고 감옥에 보내고, 죽이려고 작정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제비 뽑기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불만이 생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직분이나 직책을 줄 때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이제 12월 둘째 주가 되면 당회를 하고 교회가 집사와 권사와 장로를 세우고 각 부서 책임자들을 임명하게 됩니다. 교회 직분을 명예나 권력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섬기는 사람, 먼저 순교할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사혐 시험이 될 것이 없습니다. 된 사람도 그것 때문에 기쁘고 자랑할 일도 아니고, 죽을 각오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니까. 안되었다고 그것 때문에 시험들고 화날 일도 아닙니다. 만약에 교회 직분이나 직책 문제로 시험이 생겼다는 말은 그것을 명예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만약 제비 뽑기에 떨어진 사람이 시험이 들었다면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초대 교회 때 모든 시험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제로 인한 시험, 과부들을 구제할 때 헬라파 히브리파 과부들을 차별하는 문제 때문에 교회가 시험이 생긴 것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인한 시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할 때 거짓말로 속여서 헌금한 것때문에 헌금하고 그 자리에서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을 뽑는 일로 시험이 생겼다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비 뽑고 난 다음 시험거리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험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시험이 되었다면 큰 시험이 될 만한 일이었습니다. 

120문도는 제비 뽑기를 했지만 아무나 뽑는 것은 아닙니다. 120명이 다 자격이 있다고 제비 뽑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조건을 명확히 했습니다. 신중히 대상을 정하였습니다. 

22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을 때부터 승천할 때까지 항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서 뽑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쉽겠습니까? 12 제자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름도 없이 예수님을 항상 따라 다녔던 사람이었다면 정말 제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두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은 것인데 먼저 추천된 요셉이라는 사람은 당연히 될 사람 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소개가 거창합니다.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언급된 것은 그가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바사바라는 이름은 사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굳이 이렇게 언급한 것은 사바라는 사람이 당시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유스도라는 말은 로마식 말인데 정의, 올바른, 의로운 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당시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처리하는 일을 했던 유력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120문도는 그가 당연히 후보 1순위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맛디아에 대하여는 이름 외에는 설명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제자로 뽑히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20문도는 자기들의 판단과 계획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이 결정해 주시기를 맡기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제비 뽑기 전에 다시 한번 기도했습니다. 

(24절)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 본인이 지명을 하셨지만 누가복음 6장12절을 보면 그 전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120문도도 이렇게 기도한 후 믿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과는 맛디아였습니다. 시험들만한 결과였습니다. 제비 뽑기가 아니었다면 요셉이 선출될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결정하셨다고 분명히 믿었기 때문이고, 사도가 되는 것은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맛디아는 유대 여러 지역에서 순회 설교자로 활동하였고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에디오피아에서 순교할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였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가 오죽 힘들어 보였으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배신했을까요? 가룟유다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계산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제자로 택함받은 것이 후회막심이었고 두려웠습니다. 결국 '유다는 제자의 길을 버렸고 제 곳으로 갔습니다' 

교회의 임원이 귀한 것은 순교할 각오가 된 헌신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어야 할 때 먼저 죽는 순서를 받은 것입니다. 이 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교회일지라도 사람 뽑고 시험에 듭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일꾼을 세울 때 "누가 순교할 수 있는 자인가?" 하는 기준으로 사람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는 중에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사명이 힘들어서 섬기는 일이 부담되어서 도망가는 마음은 해결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의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이것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신앙 자세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역사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 생명의 삶에 책 한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밥쇼그린과 제럴드로비슨이 함께 쓴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 라는 책입니다.   
저자인 쇼그린이 강아지와 고앙이를 키웠는데 두 동물이 너무나 다르더랍니다. 일터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개는 주인을 열렬히 환영하는 공식 접대원이 되었습니다. 주인에게 자신의 깊고 큰 사랑과 유대감을 적극적으로 표시합니다. 이에 반해 고양이는 주인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다가 살며시 다가와 주인의 다리에 머리를 대고 ‘당신은 내거야’ 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내 의자로 다가가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 순간 고양이의 삶에서 주인은 의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쇼그린은 교인도 강아지 성도와 고양이 신자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고앙이 신자는 한마디로 자기 중심인 교인입니다. 자신 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존재해야 하고, 자신의 교회 외에 다른 교회나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강아지 성도는 다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기꺼이 드리기 원합니다.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열방 속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아직도 자기 만족의 신앙을 갖고 말씀을 골라서 읽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슬그머니 가로채고 영원보다는 현재만 중시하며 살아간다면 고양이 신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마음에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지만 이런 신앙에 계속 머물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제비 뽑기가 아닙니다. 120문도는 성령받기 전에 어떻게 기도하며 무엇을 준비하였느냐가 주제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부족한 것을 메꾸고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갈망하였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자기 주장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계획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인가. 어떤 교회가 진정으로 기도하는 교회인가. 어떤 사람, 어떤 교회가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자기 판단, 자기 계획, 자기 소원이 완전히 죽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주님 인도해 주옵소서.” 하면 반드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어제 어느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는 중에 어느 목사님을 만났는데 제가 너무 달라졌다고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말씀도 별로 없고 좀 냉정해 보이더니 최근 만났더니 말도 많이 하시고 너무나 살갑게 대해 주어서 감동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많이 찔렸습니다. ‘내가 전에는 도대체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했나?’ 돌아보았습니다. 제 성격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제 부족함임을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변화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2개월의 특별기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부족한 것을 메꾸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저 날짜 채워 기도만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제가 무엇을 변화 받아야 합니까? 지금 제게 빠져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가룟유다의 요소가 있습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으로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중에 하나님도 배신하고 떠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결국 가룟유다는 자기 갈 길로 가버리고 맙니다. 그 자리를 맛디아로 채웁니다. 맛디아는 순교자가 될 직책을 받은 것입니다. 누구는 버리고 떠난 자리를 누구는 감사하므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부흥이 임하기 전 성결 운동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이루기 전에 우리가 정말 성령님께 복종하기를 원하는 지를 먼저 보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정말 진정으로 갈망하며 주님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기도를 해도 그냥 기도하지 말고 살려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이끌어 주십시오. 나의 삶도, 가정도, 우리 교회도, 한국 감리교회도, 이 민족도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완전히 복종할 자에게만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십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능력에 대한 확신 위에 서야 합니다. 
완전한 순종의 결단, 순종의 삶에 대한 감격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갈망할 때 반드시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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