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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 (행 16: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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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 (행 16:30~31)


미국의 한 시골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장례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추도사를 목사님이 할 차례가 왔습니다. 목사님은 고인이 되신 분이 정직했고 아내에게는 다정하고 헌신적이었으면 자녀들에게는 자상하시고 몹시 따뜻한 분이었다고 길고 긴 찬사를 늘어놓았습니다. 목사님이 고인에 대한 찬사를 말할 때마다 미망인은 앞자리에 앉아서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찬사를 동원하여 고인이 얼마나 훌륭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는지를 최고의 찬사를 사용하여 추도사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자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던 미망인이 드디어 옆에 앉아 있는 딸에게 속삭였습니다. “얘야, 너 관 안에 누어있는 사람이 네 아버지인지를 확인하고 오너라.” 

우리의 인생은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게 되어 있습니다. 기왕에 한 번의 인생을 사는 것 행복하게 그리고 보람 있게 사시고 사람들과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 듣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비전 축제에 초청을 받으시고 우리 교회를 처음 방문해주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기독교에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들라면 단연 사도 바울을 꼽을 것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지역에서 선교를 하다가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어디를 가든지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종은 점으로 돈을 벌어서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보고는 따라와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외쳤습니다. 바울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인 것을 귀신도 알았던 것입니다. 며칠을 그렇게 하니 사도 바울이 마음이 괴로워서 그 여종에게 역사하는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니 귀신이 즉시 나갔습니다. 바울의 한 마디에 여종을 힘들게 했던 귀신이 즉시로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여종의 주인이 그 여종으로 많은 돈을 벌었는데, 이제는 돈을 벌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바울과 바울을 수종들던 실라를 붙잡아서 관리들에게 넘겨주면서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 로마 사람인 우리들이 받지도 못할 풍습을 전한다”고 하며 고발했습니다. 아마도 그 여종의 주인은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발을 받은 관리들이 바울의 말도 들어보지 않고 바울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게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많이 맞은 후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깊은 옥에 갇혔고 발은 차꼬에 든든히 채워졌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 소리를 감옥의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간수가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립니다. 아마 간수도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어지는 기적에 놀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더군다나 자결하려는 자기를 말리는 바울과 실라를 보면서 어떤 영적인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간수는 주 예수를 믿게 되고 그 집에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간수는 로마의 공무원으로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구원이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누군가에게 잡혀있는 상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 그가 어떤 명예를 소유한 사람이냐 하고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이 필요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문제, 돈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 내적인 상처의 문제 등 문제없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혹 그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죄의 문제와 사후의 세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합니다. 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만 가지고 봐도 모든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죄로 인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간수의 질문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구원의 방법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구원의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핵심구절은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보내신 목적은 그분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2.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보내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주님은 수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힘을 쓰신 일은 제자들을 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을 훈련하신 목적은 제자들을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대신할 주님의 대리자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 3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하셨던 일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신 것은 병든 자를 치료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시간의 2/3를 치료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나병환자를 치료해주셨고, 중풍병자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에는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이 치료 받기 위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주님은 치료를 위하여 주님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체의 질병만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질병,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자식 문제, 죽음의 문제, 심지어 생활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간절함으로 주님을 찾아오면 주님께서는 그들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행하신 이적이 37가지 정도가 나옵니다. 병을 고치신 치유기사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풍랑을 잠잠케 하고 물위로 걸어가시고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등 자연을 변화시킨 기사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신 기적도 3번 나옵니다. 

한 번은 나인성에 가셨을 때 슬픔에 잠긴 한 무리를 보셨습니다. 그들은 죽은 청년을 메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과부가 아들을 잃었으니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주님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는 과부에게 “울지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관에 손을 대시고는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죽었던 자가 일어나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아들을 잃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아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던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그분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메리큐스 마네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은 사업에 부도를 내고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살림을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가 문방구에서 연필 하나를 훔치다 들켰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깨끗이 죽자! 아이들을 재우고 가스를 켰습니다. 가스가 스며 나오는데 정신이 몽롱해져 옵니다. 

그때 이웃집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순간 ‘그래 내가 죽을 생각을 하면서 왜 기도할 생각은 못했는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가스를 잠궜습니다.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 빈 집 하나를 얻어 새 삶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훗날 자녀들은 모두 멋지게 성공을 합니다. 그의 자서전적인 글 '근심이여 안녕'이라는 책 마지막 결론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용기로 바꾸어 보십시오! 백 번의 탄식보다 한 번의 기도가 당신에게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요. 백 번의 절망보다 한 번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을 바꾸어 줄 것이요.”

류영모 목사님이 몇 년 전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보기에도 흉하고 큼지막한 용종 두 개가 식도와 위에서 발견되어졌습니다. 위암으로 발전될 수 있으니 자주 추적 관찰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아 암진단 전문 한의원을 찾아 검진을 해보았더니 꼭같은 말을 했습니다. 다시 1년 전 같은 병원 종합검진에서도 용종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이상하네 없어지질 않네”라고 했더니 의사가 “어떻게 하셨는데요?”라고 물었습니다. 다시 목사님은 “기도했지요” 의사는 묘한 웃음으로 목사님을 보고 비웃었답니다. 그러면서 “더 크지 않고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고요 수술할 준비도 하셔야 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1년 동안 지속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했습니다. 식도와 위의 흉한 용종은 사라지고 식도와 위가 모두 건강해지라고요. 

다시 1년이 지난 후에 같은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내시경 결과 그 흉하던 용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기도했다는 말에 의사는 비웃었지만 주님은 용종이 사라지게 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당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이유는 첫째는 그분이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가능한 일이고 둘째는 그분이 내 문제를 대신 짊어지시고 나 대신 고난 당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남의 죄나 고통을 대신 당함을 말합니다. 주님이 대속물이 되셨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죄값을 자신이 치루셨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당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영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육체적인 고통, 환경적인 고통 등 사람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에 해당되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의 절정은 십자가였습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고 십자가에 양속과 발이 못 박혀서 달리셨습니다. 마지막 운명하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고후 8:9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본래 부요하신 분인데 그분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 적용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와 저주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죄와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아내가 백화점에서 옷을 한 벌 골라 입었습니다. 계산은 제가 했습니다. 제가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했습니다. 그러면 제 아내는 옷값을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미 값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의 값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값지불의 믿음을 갖기만 하면 우리는 모든 죄와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는 저주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사람에게 처형하는 형틀 이었습니다. 주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이신데,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분과 하나만 된다면 우리에게서 저주는 떠나고 영원한 소망과 생명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십자가와 하나 되어야 합니다. 나는 없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주 예수님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없어집니까, 망합니까? 아닙니다. 그 때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소금과 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금을 염화나트륨이라고도 합니다. 염화나트륨은 두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염소와 나트륨입니다. 이 둘이 합해서 소금이 된 것입니다. 나트륨과 염소는 따로 두면 독극물입니다. 먹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합해 놓으면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독이 전혀 없어지고 오히려 맛을 주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 입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물도 그렇습니다. 물이 무엇입니까? H2O, 산소와 수소입니다. 수소는 H2, 산소는 O입니다. 이 두 가지는 원래 태우는 불붙이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합하면 오히려 불 끄는 역할을 하는 물이 됩니다. 생명을 줍니다. 불은 생명을 없애 버리는데 물은 생명을 주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나의 죽음이 합하면 죽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고 주님의 저주와 나의 저주가 합하면 저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인하여 길이 없고 죽어야 마땅하지만 십자가를 만나 십자가 앞에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 에 달리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천국을 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의 저주는 완전히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성격, 새로운 성질, 새로운 요소로 바뀌어 진 다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가 거할 영원한 집을 예비하신 분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행복한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죽음 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한 번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음 후에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는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불행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현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상은 죽음 후의 내세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 3세를 믿습니다. 전세와 현세와 내세입니다. 기독교는 2세를 믿습니다. 현세와 내세입니다. 현세와 내세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내세입니다. 하지만 내세의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현세입니다. 

내세의 시간을 결정하는 현세의 열쇠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위가 믿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사실은 믿음이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그 사람의 행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말하고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 사람의 인생은 그의 믿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영생도 그 사람의 믿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요 14:1-3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을 예비하였으니 마음이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믿음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에 거처가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결코 죽음은 슬픔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행복의 나라가 믿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병도 죄도 없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보람 있는 삶은 예수를 믿는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남보다 좀 더 많은 재물이나 남보다 좀 더 큰 명예를 위하여 일생을 보내지만 죽음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새벽에 어느 신사 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친구들에 의해 업혀 온 이 신사를 급히 응급실로 옮겼지만 의사는 이미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확인되었습다. 그런데 의사는 죽어있는 이 사람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을 때는 일반적으로 손을 펴고 죽는데 이 시신은 오른손을 펴고 왼손은 꼭 쥔 상태였다. 시신의 마지막 손가락이 의사에 의해서 펼쳐질 때 그의 손에서 화투 두 장이 떨어졌습니다. 그 두 장을 보는 순간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어, 삼팔광땡이네” 

사연은 이렇습니했다. 이미 고인이 된 이 남자는 초상집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화투를 쳤습니다. 새벽녘 가지고 간 돈을 모두 잃어갈 즈음 판돈이 잔뜩 쌓였는데 화투 두 장을 받아들고 살며시 펼쳐보니 삼팔광땡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격하고 놀란 나머지 화투 두 장을 미처 펼치지도 못한 채 “삼, 삼...” 하다가 쇼크로 죽고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삶을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화투 두 장을 들고 말을 더듬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이나, 화투보다 좀 더 큰 땅 문서 서너 장을 들고 아등바등 대다가 유언도 못하고 죽는 것이나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당하신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주님은 이 땅의 문제만이 영원한 세계의 문제까지 해결하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 믿는 인생이 진정 행복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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