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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돌아보라 (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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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돌아보라 (빌 2:1~4)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 일만 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서로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요즘 경영전문인들이 CEO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데, 겅호라는 책을 썼던 분이 ‘하이파이브란’ 책을 썼습니다. 한 회사에 아주 건실하고 창의적이고 열심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 쫒겨납니다. ‘너는 아이스하키 퍽을 혼자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아니하고, 너는 똑똑하고 잘하지만 팀웍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해고 당합니다. 해고된 그는 자기아들을 따라서 리버밴드라는 조그만 아이들의 아이스하키 팀을 따라다니면서 팀웍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관리되는지에 대해 쓴 감동적인 책입니다  퍽이라고 하는 puck의 첫 자를 따서 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우리 둘을 합하는 것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돕고 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교회보다도 사랑을 했고 또 사랑을 받았던 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이 빌 2장 1절에서 18절까지 교회가 연합하는 일을 강조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받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그것은 서로 연합하는 일이다’. 
   
신앙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 관계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된 자들을 모으셔서 하나의 무리를 만듭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이면서 우리이고 우리이면서 나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권고하기를 ‘아내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합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너를 상대로만 여기고, 경쟁과 싸움과 미움의 상대, 그리고 나의 행복의 수단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복하고 짓밟는 역사가, 지구촌, 세계화가 되면서 바뀝니다. 한 나라의 경제적 공황이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며, 산 너머 다른 산, 다른 밭의 돌이 아니라 하나로 생각해야 되는 시대에 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 귀한 말씀은 하나로 연합하는 일과 서로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합니다.
   
축구에서 골을 넣으면 우리는 누가 넣었다고 크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 공격수가 볼을 넣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방위하고 정확히 패스하는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연합, 서로돌봄,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진리요, 우리가 터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인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의 공동저자인 스펜서 존슨은 말하기를 21세기를 생존하고 번영하려고 하는 자는 어떻게 팀이 성공하는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독불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시대입니다. 특성과 장기가 많은 사람들이 우월할지는 모르나 연합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외를 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서로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안에서 우리의 삶의 지혜를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의 생활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믿음에 굳게 섰던 빌립보교회를 생각하면 이 일이 얼마나 시급하고 귀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바울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람을 보내 도와준 빌립보교회처럼, 성장과 활동이 있는 교회는 믿음에 굳게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가슴속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있는 곳은 언제나 시끌벅쩍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녀 소란죄를 받았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복잡합니다. 프로그램이 있고 기도하러 가고 오고  봉사하러 가고 전도하러 가고 구역예배보고 남성구역에배보고 일일일생명잔치하고 일대일 성경공부합니다. 제일 조용한 곳은 공동묘지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활동속에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내 구주로 섬기는 사람은 다 하나입니다. 교회가 새롭게 되려면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달랐습니다. 그들이 받은 은사가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모이고 함께 먹고 전심으로 기도하고 연합되는 일을 함으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켰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어떤 일에든지 연합과 통일을 방해하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일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능력있는 교회가 되어 연합하고 하나되는 인식을 갖고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돌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서로 돌보고 연합하게 되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몇가지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하나가 됩니다. 격려하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은 힘을 줍니다. 그러나 좋은 의미에서 잘했다 못했다 비판하고 충고하는 일은 때로는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편을 갈라놓습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관심있는 사람과 관심없는 사람 모두에게 사랑의 권고와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평과 불만과 다툼은 연합을 파괴하는 가장 악한 일이 되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관심을 갖고 사랑하십니다. 요 14장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버려두지 아니합니다. 우리도 서로를 버려두면 안됩니다. 우리는 악을 행치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은 죄입니다.
   
사랑의 권고를 하고 사랑의 위로를 하면 우리는 힘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족해 보이지만 잘한다고 칭찬하면 용기를 얻고, 더 잘하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에 조금만 더 잘해보라고 하면 그에게 낙담이 됩니다. 그것이 상처가 됩니다. 칭찬보다 더 좋은 교육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안에서 서로를 버려두지 말고 서로 칭찬하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부모가 자녀를 그렇게 돌보면 서로를 세우게 되는 일입니다. 이사야 40장 1절~9절을 보면 하나님의 의 앞에 이스라엘에 선함과 의로움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 할 백성이며 하나님의 진노아래 거할 백성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에 그들이 서로 굳게 세우고 그리스도의 사랑, 아가페적 사랑가운데 저들은 서로 사랑했습니다. 사랑할만하니 사랑하는 조건부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조금 모자라야 사랑을 하는 겁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따질 것 다 따지고는 사랑 못합니다. 사랑이 그것을 덮습니다. 사랑으로 서로 허물을 덮고 세울 수 있을 때에 그것이 서로 돌보는 일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때로는 강해 보이고 때로는 모두가 똑똑해 보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외로운 것이 인간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서로에게 사랑의 위로와 격려가 있을 때에 하나로 굳게 설 줄 믿습니다.

   
둘째, 성령의 교제가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고 네 안에 거하여 하나가 되기에,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되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거나 예배가 기쁨과 은혜가 되지 않는 사람은 자연적으로 하나가 되거나 섞이지를 못합니다. 교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안에서 서로가 하나되는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너와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믿음 한 소망을 갖고 하나로 사귀며 서로 믿음의 격려를 나누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구원은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 된 사람들입니다.

셋째, 긍휼과 겸손으로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상처입은 자, 마음이 상한 자, 나와 의견이 다른자, 나를 비방하는 자를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됩니다. 우리모두는 다른 생각과 경험과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면 우리는 나라고 하는 아성(兒城)에 스스로 갇히게 될 것이며 ‘너’를 나의 상대로 만들고 맙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긍휼히 여기라’, 긍휼이 없는 자는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롬15장 1절에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눈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에게로 내려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강한 자, 아는 자, 가진 자가, 약한자와 없는자와 연약한 자를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도와줘야 합니다. 조금 뭘 안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을 무시해 버리면 너와 내가 갈라집니다. 사랑으로 도와주고 권면해야 하나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패를 지어 당을 짓게 되는 것은 나 중심적이고 내 의견 내 생각만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 103편 13절에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 구원해 주었거늘 나도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마땅한 일이요, 우리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 때문에 교만한 사람이 되고 그것 때문에 너와 나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되고 서로를 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님과 앉은뱅이가 서로 연합하여 구걸하는데 이 앉은뱅이가 맛있는 것은 자기가 다 먹고 맛없는 것은 장님을 주어 나중에는 자기는 살이 쪄서 몸이 무거워지고 자기를 업고 다니는 장님은 점점 영양실조가 되고 약해져 무거운 앉은뱅이를 업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서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이 되면 남과 다투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교회안에서마저도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내 이름을 챙기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겸손해야 하고 다투기를 피해야 합니다. 잠 20장 3절에 다툼을 멀리하는 자는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남의 다른 것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하고 질투와 시기대신 서로 대화를 통하여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지위에 대한 욕망보다는 함께 참여를 강조하고, 반대보다는 설명과 대화를, 파벌을 만들기보다 하나로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물건은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지만 사람은 한사람 두사람이 모이면 우리라고 하는 엄청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겸손히 여길 때만이 하나가 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우리가 겸손하려면
   
첫째,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는 냉철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정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가 하는 것은 언제나 아량으로 보이고 로맨스로 보이나, 남이 하는 것은 스캔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정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용기가 필요합니다. 
   
겸손하려면 때로는 소외당한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온유하면 바보라는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참된 용기입니다. 참된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고전 8장 2절에 ‘누구든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모르는 자요’, 갈 6장 3절에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한 자를 내치십니다.

셋째, 자기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를 넘어선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위대하고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동과 감격이 없는 것은 자기안에 갇히기 때문입니다. 내 시야와 내 식견과 내 경험으로 온 세상을 판단하지 말고 온 우주를 통괄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지혜앞에 자유로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스스로 겸손해집니다. 자기자신을 온전히 알고 자기자신에게서 벗어나서 자기의 야망과 용기와 믿음과 심지어는 경험까지도 벗어나버릴 때에, 우리는 스스로 섬기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도와줘야겠다고 해서 도와주지 못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될 때에 자연히 그렇게 되어집니다. 그럴 때에 겸손한 자가 되어져 서로를 섬기고 서로를 나보다 낫게 여기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보다 못한데 어떻게 낫게 여기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일대일로 맞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 나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그 앞에 맞설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너’와 맞설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럴 때에 지극히 겸손해 지는 줄 믿습니다. 그럴 때에 서로 돌아보고 하나가 되어집니다. 겸손은 지혜입니다. 겸손은 무능한 것 같으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머물게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겸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연합은 기쁨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인간은 자기 배를 채울 때보다 ‘너’를 사랑하고 도울 때에 기쁨이 배로 증가합니다. 바울은 ‘내가 옥중에 있을지라도 믿음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여 서로를 돌보며 하나가 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기를 원합니까? 저들이 사랑하고 서로를 세울 때에, 부모가 서로 세워가며 하나가 될 때 거기에 큰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서 전체 주제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만물을 통일케 하시고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는 것을 굳게 지켜, 나의 일뿐만 아니라 서로 돌아보고 서로를 세워,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승리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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