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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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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18)


본문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세겜 언약’입니다. 여호수아 23, 1과 14을 보면, 이 언약을 맺을 당시 여호수아는 “나이 많은 늙은 노인이 되어, 이제 나는 누구나 가야 하는 마지막 길을 가게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사를 보면, 족장들이 죽을 때 남긴 마지막 한 마디가 있습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그들이 남긴 마지막 단어는 󰡔하나님󰡕입니다. “나는 이제 죽겠지만 하나님께서 너희를 보살펴 주셔서”(족장 야곱의 말). “나는 이제 죽을 터이지만 하나님께서 너희를 반드시 찾아오시리니”(요셉의 말).

이 마지막 ‘한 마디의 고리’는 여호수아에게서도 끊어지지 않고 다시 나타납니다. “나는 이제 누구나 가야 하는 마지막 길을 가게 되었소. 아무쪼록 마음 속 깊이 뼛속에 새겨 두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수 23, 14). 「하나님 여호와」란 이 한 마디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나님이 세우신 인물들이 죽을 때, 할 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들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하나님」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크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주식가치가 반토막 났습니다. 매일 실업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G7이라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미국 주도의 선진 7개국이 세계 경제를 左之右之했습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미국이 금융위기에 휘말리면서 그 리더십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포함된 G20이라는 모임이 형성되었습니다. 역부족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금융시장 안정대책, 건설․부동산 대책, 11․3 경제대책,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우리들이 하던 걱정이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국민들이 생각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이상 정부의 대책만 기다리고 앉아 있을 때가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의 대책만 바라볼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국가의 興亡盛衰는 필부유책(匹夫有責)이라 했습니다(보잘 것 없어 보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책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살 길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답은 있습니다. 답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의 마지막 한 마디, 󰡔하나님󰡕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답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여호수아 24, 1-13말씀을 유념해서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소집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 어른들, 법관들, 공무원들, 모두 여호수아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를 꿰뚫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동」이었습니다.

옛적에 너희 조상들은, 유프라테스강 건너 저 편에 살고 있을 때 다른 신들을 섬겼단다.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그의 아버지 데라도 그러했단다. 그런데 내가 그 강 건너 저편에서,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다가 이 땅을 샅샅이 밟게 하였고, 많은 후손을 보게 해 주었다···말씀합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요지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셨는가? 어떻게 행동하셨는가? 무엇을 행하셨는가? 입니다. 이 말씀들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단어 하나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라는 주어와 󰡔나는󰡕이라는 주어입니다. 󰡔내가󰡕라는 주어가 14번, 󰡔나는󰡕이라는 주어가 2번 나옵니다.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무려 16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주권자가 바로 나 야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바로 나 야웨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바로 나 야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에게 言約한 것을 성취한 이도 바로 나 야웨/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모든 역사의 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를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시작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모인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줍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일편단심으로 여호와만 섬기십시오]

14절 말씀보십시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며,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기시오/ 여러분의 조상들이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섬겼고, 이집트에서도 섬겼던/ 다른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시오.󰡕” 15절에서는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선택하십시오” 촉구하면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결단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모든 것의 궁극적인 답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안에, 경제위기를 맞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답이 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에 구약, 욥기의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욥기 말씀을 보면, 욥이 당하는 아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열 자녀를 하루에 다 잃습니다, 가진 재물 한 순간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아픔 어떠했겠습니까? 세계적인 금융위기 위기하지만, 주식가치가 반토막 나고 부동산 가치가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욥보다는 낫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자였습니다. 가장 부요한 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양이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소가 500겨리, 암나귀가 500마리, 종도 많았습니다. 그 많던 재산 한 순간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온 몸에 종기가 났습니다.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만 견딜 수 있었습니다(친구들이, 욥을 알아보지 못함).

육체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던 욥은, 자기가 태어난 생일을 저주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합니다.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자기 생일을 다 저주했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이 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2) 그것은, 욥이 왜 자기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지, 고통당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는 겁니다. 무슨 죄를 지은 까닭도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없다는 것 고백합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이렇게까지 고통당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해서, 절망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우리를 절망케 하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아닙니까? 

그러면 오늘 이 시대가 당하고 있는 금융위기는 어떻습니까? 오늘의 금융위기에는, 삼척동자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명백한 󰡔위기의 要因󰡕이 있습니다. 그 위기의 요인이 무엇입니까? 미국사람, 영국사람, 러시아사람, 일본사람, 한국사람, 아이슬란드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긴 데 있습니다. 財物이 神(Mammon)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천민자본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한 것이지요(Mammonism).

돈이 최고다, 성공의 척도도, 좋은 직업의 기준도, 다 돈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현대적 바알종교입니다. 바알우상을 숭배입니다. 오늘의 경제위기 요인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욕심 때문에, 끝없는 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있습니다. 성장지상주의자들에게는, 자본은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투자를 통한 이윤이 목적이고, 축적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자원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인데, 끝없이 성장만 하려다보니 결국 사람도 죽이고, 자연도 죽이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성장주의, 성공주의, 물질만능주의는 하나님 섬김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나라는, 금융위기가 오기 이전부터, 이미 일 안 하는 20대가 늘어가던 사회였습니다. 고학력 청년백수가 200만이 넘는 위험사회였습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청년실업의 핵심은 청년자신입니다. 중소기업 가느니 차라리 자발적인 백수를 선택하는 정신이 문제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안정된 곳을 찾아야 한다, 도전보다는 편하고 폼 나는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성공지향적인 직업정신 때문입니다(월급적은 쪽을 택하라, 부르심이 어딘가? 召命따라서 살아라).

목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작년에, 강남에 있는 모 교회에 부목사 4명을 청빙하는 데 (놀라지 마십시오) 신학교 동기생 500명이 그 교회를 지원했답니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불러 주는 교회가 있을까? 가장 먼저 불러주는 교회에, 가겠습니다는 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쉬운 것이 아닌 가 봅니다(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월급이 적은).


[그러면, 여호와만 섬긴다. 섬길 자로 여호와를 선택한다는 말씀의 의미?]

자의반 타의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끝없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면서, 돈이라는 우상, 물질이라는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두 主人을 섬길 수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경제 강국 아이슬란드가 부도 위기에 몰린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북극권에 가까운 대서양의 작은 섬나라입니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6만 2,733달러(세계3위) 국가입니다(남한 절반 크기에, 인구 32만 밖에 되지 않는 나라, 1944년까지 20C 중반까지만 해도 노르웨이 식민지였던 나라). 2007년도 유엔 주도 투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나라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던 아이슬란드가 어떻게 한 순간에 거품이 되고 말았습니까?

이 나라는, 남보다 금융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하고, 고금리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높은 이자수입을 얻으려는 유럽의 자본들이 모여들면서, 금융으로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나라입니다. 본래는, 가난한 어업 국가였습니다. 그러던 나라가 유럽의 금융허브가 되었습니다. 외국자본들이 몰리자,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재산가치가 매년 45%씩 증가했다고 합니다. 남의 돈을 이용해서, 거품 부자가 된 나라지요. 100% 은행대출로 자동차를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온라인으로 금융기관에 신청만 하면, 10분 만에 자동차를 살 수 있습니다.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세계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과잉생산을 했습니다. 과잉투자를 했습니다. 소비를 미덕이라고 했습니다. 지나간 20세기 한 세기만에 우리는(주로 제1세계국가들), 인류역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써버린 자원보다, 더 많은 천연자원을 불과 한 세기만에 써버렸다고 합니다. 자연이 500,000일(1,369년) 걸려서 만들어 놓은 資源을, 20세기 제1세계국가들이 단 하루 만에 그 자원을 써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쓸 것까지, 다 써버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인구 13억이 넘은 중국에 앞으로 마이 카 시대가 到來하게 되면, 세계의 석유자원이 고갈되고 만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본주의 시대, 돈이 우상이 되어 버린 시대, 정신적인 가치보다는 끝없는 성장과 외형주의가 신이 되어버린 시대, 성공가치가 이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물질우상을 버리고, 현대적인 바알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말은, 어려운 위기의 때 주님만 믿습니다. 하나님만 믿습니다. 모든 염려 주님께 맡깁니다. 경제를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믿음 가지고 사는 자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자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며 산다는 말은, 오늘과 같은 성공주의, 성장주의를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지나친 탐욕, 욕심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좀 더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발적으로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청빈의 삶을 살았던 수도자들의 삶을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세계은행의 조사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8억의 사람이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가난하게 산다는 말이지요).

지금보다 더 부요해지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오늘의 금융위기는 해결도지 않을 것입니다. 끝없는 성장주의가 빚어낸 20C의 역사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사회에 일어났던 세계적인 大戰爭입니다. 힘 있는 나라가 힘 없는 나라를 점령하고 빼앗아야만 더 부요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은 모두 극심한 경제위기 가운데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비극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직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매일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관심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조세계 안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창조세계 保全없이는 인류가 살 길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임이라 하신 예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삶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지나친 탐욕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이 시대의 죄악이고, 불신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성공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더 안일하고, 더 부요하기만을 바라면서 살았습니다. 금융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을 종교적으로만 믿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주인으로 섬기던 물질 대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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