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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행 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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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행 2:37~42)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사람들은 예수 사건은 그것으로 영원히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보이시다가 산 채로 승천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한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는 신생운동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권능을 받고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가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장 23-24절에 『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고 했습니다(행 2:32).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행 2:33). 

본문 2장 36절에 『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하니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의 염려와 양심의 가책이 합쳐진 매우 심각한 고통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설교에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묻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여기 '마음에 찔려'(카테뉘게산, )라는 동사는 '때리다', '찔러 관통하다', 적극적으로는 '실신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베드로는 그들의 마음에 찔리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Ⅰ. 회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2장 38절에 『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 』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죄인된 과거를 돌이켜 보고 참 마음으로 후회하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인간의 각성 의식에서부터 생기는 지, 정, 의의 정직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과거와 관련된 행위입니다. 회개는 잘못을 깨닫는 인식의 변화와 통회 자복하는 감정의 변화와 함께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의지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장 29-32절에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엡 2:3). 

로마서 3장 20절에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시편 51편 5-6절에 『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9-10절에 『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해개해야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 3:9-18).
 
이사야 55장 7절에 『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디까지나 회개의 주체자는 역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회개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회개의 영을 불어넣어 주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 …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스가랴 12장 10절에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1절에 『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5절에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라고 했습니다. 


Ⅱ.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2장 38절에 『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고 했습니다. 
여기 『 각각 』은 한 명 한 명씩 각자의 인격을 말합니다. 여기 『 세례 』는 일반적인 물세례와는 구별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말하는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는 일과 관련된 세례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받는 것과 구원은 일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사죄의 동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 사함과 구원은 오직 믿음에 기초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1-2절에 『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1장 6절에 『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8-9절에 『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4절에 『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라고 했습니다. 

죄 사함과 세례가 구원의 근거는 될 수 없을 지라도 예수만을 믿으라는 의미를 지닐 때 그 세례는 죄 사함과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세례는 반드시 믿는다는 것이 전제됩니다. 예수 믿는다는 표식이 바로 세례입니다. 빌립보의 간수가 사도행전 16장 30-31절에 『 …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어떤 예수입니까?

①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예수라고 했습니다(2:23). 
②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인 예수라고 했습니다(2:23). 
③ 부활하신 예수라고 했습니다(2:24). 
④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높이신 예수라고 했습니다(2:33). 
⑤ 승천하신 예수라고 했습니다(2:33-35). 
⑥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신 예수라고 했습니다(2:33). 
⑦ 하나님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입니다(2:35). 
⑧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예수라고 했습니다(2:36). 

믿는 것은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예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세례는 단순히 물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성령세례(불세례)를 전제하는 말입니다. 
세례는 불세례(성령세례), 즉, 예수를 믿는다는 표식 혹은 증거로서 하는 행위입니다. 결코 세례 그 자체로서는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구원의 조건은 오직 예수만을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얻는다는 말은 그 죄에 대한 용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 없이함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이 죄는 보다 더 본질적인 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죄입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에 『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죄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아니하는 죄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고 했습니다.
 

Ⅲ. 마음의 찔림에서 해방된 결과는 축복입니다. 

1)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본문 2장 38절에 『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 그리고 』로 번역되는 카이를 '그리하면'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카이를 일반적인 용법으로 '그리고'라고 번역하면 앞에 구절과 대등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그리하면'으로 번역하면 이것은 '카이'의 특별한 용법으로 앞 구절과 인과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회개와 죄 사함을 위한 세례가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조건이 됩니다.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도행전 8장 39절에 『 둘이 물에서 올라갈 새 주의 영이… 』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 저는 진리의 영이라… 』고 했습니다. 영광의 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에 『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고 했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말은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이 내주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보장받게 되는 것입니다. 


2)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 2장 40절에 『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세대는 어떠한 세대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9절에 『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5절에 『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당시의 세대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였고 악한 세대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 41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4절에 『 악하고 음란한 세대…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7절에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42절에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대 가운데서도 유대인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이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마 12:41-42). 

본문 2장 21절에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말에 대하여 세례 숫자와 세례 방법을 놓고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 『 더하더라 』라는 성경의 표현은 점진적으로 계속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당시에 예루살렘과 주위에 살고 있던 사람의 수가 약 2만 5천 명 정도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3,000명이 일시에 반응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결과가 계속해서 효과 있는 회개로 반응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자의 수가 3,000명이 더했다는 말은 3,000명이 예수의 이름을 믿게 되었다는 것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누가는 이 사건을 세례로 표현함으로 믿음과 세례를 일치시켰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세례를 받아 죄 없이함을 받은 자에게는 이제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구원이 임했습니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유입니다. 죄의 삯인 사망에서 자유입니다. 
사탄의 올무에서 해방입니다. 온갖 육신적인 속박에서의 해방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난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렸다고 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찔림입니다. 여기 찔린다는 동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때리다, 혹은 찔러 구멍 뚫어 관통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는 실신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누가 이들의 마음을 때리고 있습니까? 누가 이들의 마음에 구멍을 뚫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이들의 마음을 때리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들의 마음에 구멍을 뚫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아픔입니다. 성령께서 실신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역시 찔렸던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심하게 마음에 구멍 뚫려 본 베드로입니다. 그는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되는 데는 인간의 노력이나 지식이나 물질이나 그 어떤 인간의 인위적인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찔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음에 구멍이 뚫렸던 사람입니다. 

오늘 여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찔림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찔렸기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다. 그 마음에 구멍이 나서 회개했습니다. 어떤 자들은 성령으로 인해서 실신하여 미친 사람 같았습니다. 믿었습니다. 불세례를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구원받는 숫자는 계속해서 더해 가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아 죄 사함 받은 우리에게는 이제 찔림이 끝났는가? 그렇습니다. 이제는 본질적인 문제로 찔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차원의 찔림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회개와 세례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늘 충성해도 주님께 보은을 다하지 못한데 대한 찔림입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한 불효의 찔림입니다. 대한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우며 각자의 받은 사명 수행과 관련된 찔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각자 각자에게 주어진 자기 십자가와 관련된 찔림입니다. 이 찔림은 받을 상급에 대한 찔림입니다. 이 찔림은 받은 은총에 대한 찔림입니다. 이 찔림은 받은 선한 명예에 대한 찔림입니다. 이 찔림은 받은 축복에 대한 찔림입니다. 이 찔림은 받은 행복에 대한 찔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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