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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법궤를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대상 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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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법궤를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대상 15:11~16)


다윗의 간절한 소망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궤 즉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다윗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상13: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매”
다윗에게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신앙적인 열망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사는 인생과 하나님께 묻지 않고 사는 인생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옮겨오는 과정 중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고 언약궤를 운반하던 웃사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두려워했습니다. 

대상13: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그래서 다윗은 다윗 성으로 언약궤를 모셔드리기를 두려워하여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대상13:14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벳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함께하는 모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두려움으로 받아 드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단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언약궤를 옮기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옮기는 방법 때문인 것을 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 집과 모든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이처럼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사람도 복을 받고, 하는 모든 일에도 복을 받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은혜가 함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오는 것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제사장들이 메고 오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궤를 모셔올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도를 한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실패는 다윗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 방법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행한 결과 드디어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성공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실패는 값진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절망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절망하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가장 무서운 병이 절망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하셨나요? 고난 가운데 계시나요?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실패 가운데서, 고난 중에서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절망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사단의 계략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절망하여 포기하게 만들려는 악한 계획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2차 시도의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다윗과 백성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는 일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대상15장1-10까지는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과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론의 자손들과 레위의 자손들이 모두 함께하였습니다. 그 수가 852명에 이르고 또한 찬양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하면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기 위해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작은 궤입니다. 몇 사람만 움직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얼마나 이 일에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놓을 처소를 마련하고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독려했습니다. 이것을 위한 대단위의 찬양대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참여 속에서 하나님의 궤는 성공적으로 다윗성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함께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함께하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모두 함께 일치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여리고 성의 기적도 함께하는 이들의 일치된 순종 속에서 일어난 역사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모두가 함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큰 일에는 물론 함께하며 작은 일에도 함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쉬워 보이고 몇 사람만 해도 될 일처럼 여겨져도 모두가 함께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올 제사장들만 참여해도 될 일입니다. 그런데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자기들의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궤를 메는 제사장들과 똑 같은 마음으로 그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파를 타면서,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사람은 행진의 대열을 지키며 걸으면서, 각기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궤를 모셔,들이는 기쁨과 감격을 함께 누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예배 때 예수생명 전도축제의 태신자들을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참여하여 1965명의 태신자를 봉헌하는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함께 하는 기쁨이 그런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100%가 이일에 동참할 수 있게 하옵소서. 지난 한 주간 기도주간을 지내면서 2009년에 대한 목회구상을 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게 뜨거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교회 모든 성도들이 100% 태신자들을 품과 기도하면서 시작하는 2009년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분명하고도 똑똑하게 말씀하시는 감동이 제 마음속에 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생명입니다. 전도 속에는 복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성도 여러분들이 함께하는 기쁨과 감격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태신자를 작정하지 못하신 분들은 거룩한 부담을 갖고 기도하면서 꼭 태신자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올려진 사람들이 2009년도에는 계속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서 간구하는 이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모든 크고 작은 일에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80대20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에 이 법칙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20%의 헌신자들을 통해서 교회는 세워지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하나님 우리 교회는 80대 20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가 되지 말고 100%의 헌신자들로 인해 세워지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것은 방법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의미는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멜 수 없습니다. 함께 메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채로 들어 올리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가마를 메듯 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함께 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궤가 넘어지거나 쏫아지지 않으려면 균형을 잘 맞추고 호흡을 같이하면서 메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사람들의 일치와 협동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함께 메고 가는 것에 있습니다. 균형과 호흡을 맞추며 일치와 협동을 통해서 함께 메고 가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함으로 날마다 부흥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법대로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신앙생활의 원칙은 하나님의 법대로 규례대로 하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려는 첫 번째 시도가 실패했던 것은 메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메는 것이 하나님의 규례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이 효과적이냐 효율적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수레에 싣고 끌고 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훨씬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실패였습니다. 
어깨에 메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지혜로운 방법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신앙생활은 효과적인 것과 효율적인 것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대로 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련한 것처럼 보여도 가장 지혜로운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 주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라는 말은 역대기 기자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때 이스라엘에게는 평안과 번영과 행복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에게는 재앙과 고난과 오욕의 역사가 닥쳐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했느냐 아니냐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는 중요한 관점이라는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28장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대조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모든 삶에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상식을 좇아가는 것도 아니요 경험을 좇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상식과 경험을 떠나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의 지혜입니다. 

여리고 성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상식과 이치에 맞아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군사적 전략과 전술에 뛰어남이 있어서 순종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따라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상식과 이치를 따라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것을 따라 하는 신앙생활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성취될 것입니다. 


셋째, 자기 헌신을 담아야 합니다. 

25절 말씀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즐거이 메고 라는 말씀은 기쁨으로 참여하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헌신을 했다는 말씀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자기 헌신을 담아내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땀과 눈물과 헌신이 담겨진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에는 헌신하는 땀과 눈물과 피가 있다고 합니다. 옳은 말이며 합당한 말입니다. 

지난 번 산상 기도회를 간 곳이 가까운 곳에 있는 ‘ㄱ’교회로 알려진 금산교회입니다. 
그 교회에는 유명한 두분이 역사 속에 남겨져 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한분은 목회자였던 이자익 목사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조덕삼 장로님이십니다.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은 주인과 머슴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예수를 함께 믿게 되었고 두분은 함께 장로 피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거에서 주인이었던 조장로님은 떨어지고 이자익 목사님이 장로로 피택되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겸손히 일어나서 말합니다. 오늘 장로로 피택되신 이자익 장로님을 잘 보필하고 교회를 섬기자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신학을 하여 목회자가 되었고 훗날 조덕삼 장로님은 이자익 목사님을 청빙하여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교회의 전통을 아름답게 만들어 갔습니다. 
조순형 국회 위원이 바로 조장로님의 손자입니다. 금산교회 담임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조순형장로님은 모든 일에 목회자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인간적인 판단과 지혜로서 신앙생활하려고 합니다. 효율성을 찾고 효과적인 것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헌신을 담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메고 가고자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함정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헌신을 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또 적당히 하는 헌신이 아니라 온전히 하는 헌신을 담아야 합니다. 
14절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하여 몸을 성결케 하였다고 했습니다. 궤를 메고자 할 때 온전한 헌신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이 원동이라는 곳에 살 때입니다. 집 앞 도로가 언덕이었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리어커를 끌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짐을 잔득 실었는데 제가 봐도 너무 힘들게 가는 겁니다. 그래서 저와 몇 친구들이 뒤에 가서 밀어드렸습니다. 

갑자기 기러커가 잘 올라가자 아저씨가 소리쳤습니다. ‘애들아 고맙다.’ 그리고 아저씨와 저희들은 으쌰 으쌰 소리를 지르면 언덕을 다 올라왔습니다. 아저씨의 이마에도 땀이 흐르고 우리들 작은 이마에도 땀이 흘렀습니다. 너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착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을 금방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훨씬 가볍게 언덕을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정말 저희들이 꾀 안부리고 힘껏 밀어드렸습니다. 

어깨에 메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너의 헌신을 담아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법이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규례대로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적당히 요령부리 듯 신앙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과 충돌하는 결과만을 초래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헌신을 담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땀과 눈물과 헌신이 담긴 교회를 향한 섬김과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함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사람에 함께 하는 기쁨과 가격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더불어 위대한 승리하심의 은총을 경험하며 실패를 넘어서는 성공적인 축복의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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