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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다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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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다 (살전 5:16~18)


어느 목사님이 몇 달 사이에 대머리가 되셨습니다. 나이도 얼마 안 되는데 대머리가 되다 보니 나이도 들어 보이고 해서 속이 상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원망 불평이 생겼답니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데 갑자기 오늘 본문 말씀인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생각났답니다. 

그래서 대머리가 되어 감사한 이유가 뭘까? 기도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여섯 가지 감사가 깨달아졌답니다. 

첫째로, 남자라는 사실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여성이면 대머리 될 때 어쩔 뻔 했냐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날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어 대머리가 되었다는 생각에 감사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얻어먹는 사람치고 대머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머리는 가지가 없고 대개 학자나 교수, 박사 등 학식이 많은 사람이 대머리이기에 자기도 그 반열에 끼게 되어 감사하더란 것입니다. 

넷째로는, 엘리사 선지자도 대머리였고 교계의 지도자들이 대개 대머리 목사님들이 많기에 자기도 영적 지도자가 될 것이라 믿어져 감사가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대머리는 물자를 절약할 수 있어서 감사하더라답니다. 머리 감을 때 비누와 샴푸, 물을 절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대머리는 하나님을 편안하게 해드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신다고 했는데 대머리는 머리카락이 적어서 하나님이 세시는 수고를 덜어드리기 때문입니다. ㅎㅎㅎ 그래서 감사했답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는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생기지 않습니다. 감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말은 영어로 'Thank'인데 이 말은 “생각하다”라는 'Think'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 감사거리를 부지런히 찾는 사람에게는 감사거리가 풍성해집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감사가 넘치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를 잘하는 민족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구소련의 최고 지도자였던 <후르시초프>의 말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Thank you' 를 가장 많이 말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No' 라고 말할 때도 'Thank' 를 사용하여 'No thanks' 라고 말한다.” 라고 했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나 감사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입니다. 더욱이 凡事에 감사하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누구나 다 감사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땐 누구나 다 감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 있거나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중에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성경구절입니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런데 깊이 살펴보세요. 

기뻐함, 기도함, 감사함, 이 세 가지를 연속으로 언급하면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을 왜 연속으로 언급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문맥으로 보면 “이것”이 무엇이냐면 감사입니다. 앞에 있는 것들, “기뻐함,” “기도”도 같이 포함될 것이면 “이것들이” 할 텐데 단수로 “이것이” 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범사에 감사를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감사는 생필품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진정한 감사는 “기뻐함”과 “쉼 없는 기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기뻐함, 쉬지 말고 기도함, 범사에 감사, 이 세 가지는 꼭 동행을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성도가 그중 어느 하나를 빼앗긴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에게는 이 세 친구는 늘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기독교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저는 오늘 이 추수감사절에 “감사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살펴보되 특히 감사하라는 구절에 맞추어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1. 항상 기뻐해야 범사에 감사를 이룹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특색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에 왠지 모르게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슬픈 것 같지만 기뻐하고 괴로운 것 같지만 기쁨의 삶을 지내는 것이 그리스도의 삶인 것입니다. 만약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기쁨이 없이 지낸다면 그 사람은 진짜 성도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가 기쁨이 없다면 뭔가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빌 4:4을 보세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준 말씀입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권면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일까요?  왜냐면 항상 기뻐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또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항상 기쁘게 살게 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기 생애를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우연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실수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애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쁨 속에서 감사가 넘치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살펴보세요.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은 사람 치고 복의 반열에서 제외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냐고요?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우리 성도가 환경에 지배당하고 살면 안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웃을 때만 아니라 울 때도 기뻐하라는 것이고 춤출 때만 아니라 슬퍼할 때에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쁨은 우리 인생의 모든 조건과 환경을 초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기뻐하고 결국 감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쁨과 감사는 별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쉬지 말고 기도해야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기도와 감사는 늘 짝을 이룹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도는 감사함으로 드려합니다. 빌립보서 4:6을 보세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기도할 때 감사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또 골 4:2에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능력이 있으려면 감사로 아뢰어야 합니다. 

영국 조지 뮬러 목사님이 캐나다 퀘벡에 갈 때의 일입니다. 
그가 탄 배가 뉴펀들랜드에 왔을 때 짙은 안개로 22시간이나 꼼짝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조지 물러 목사님은 선장을 찾아가 오늘이 수요일이므로 토요일까지는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퀘벡에 도착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선장은 난처하다는 듯이 “보십시오, 안개가 이토록 짙은데 어디로 갑니까? 불가능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물러 목사님은 “그렇다면 우리 海圖실로 들어가서 기도합시다.” 했습니다. 그러자 선장이 “물러 목사님, 지금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아십니까?” 
“모르오, 나는 안개의 짙은 농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조정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고 있소.”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이에 선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해도실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은 해도실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이 안개를 5분 이내로 거두어 주옵소서. 당신이 퀘벡에 만들어 놓으신 약속을 아시지 않습니까? 들어 주실 줄 믿고 감사기도 드립니다.” 

과연 잠시 후에 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고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음으로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가 아닙니다. 원망 불평의 기도가 아닙니다. 감사의 기도가 능력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머나먼 유럽 땅까지 와서 주님의 명령대로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매를 맞고 쇠고랑에 채워져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옥문이 열립니다. 간수가 예수를 믿습니다. 감사 기도는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능력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말하기를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절대 없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절대로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감사하는 것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환경에 상관없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성령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1)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1967년 이스라엘의 총리가 된 골다 메이어 여사는 말하기를 “나는 내 얼굴이 못생긴 걸 감사한다. 그래서 기도했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나라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신문으로 사진을 보았는데 그녀는 정말 못생겼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그를 사랑하거나 가까이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전화위복이 되어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 로빈슨 크루소가 항해 중 난파당해서 무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노트에 감사한 일과 불평할 일을 기록했답니다. 

1) 황량한 섬에 던져졌지만 물에 빠져 죽지 않음을 감사. 2) 인간 세상에서 쫓겨났지만 굶어죽지 않아서 감사. 3) 옷이 없지만 더운 날씨라 옷이 필요 없어서 감사. 4) 무기가 없지만 맹수가 없어서 감사. 

그는 감사 제목들을 적으며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답니다. 아무리 불행한 상황이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감사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속는 것 중의 하나가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받는 사랑도 당연한 것이고, 내가 받는 대우도 당연한 것이고, 내가 하는 일도, 내 건강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사로 받는 사람은  늘 행복하고 그러기에 하나님에 의해 크게 쓰임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의 글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라. 큰 것을 얻으리라.
부족할 때에 감사하라. 넘침이 있으리라. 
고통 중에 감사하라. 문제가 풀리리라.
있는 중에 감사하라. 누리며 살리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1막만을 보고 원망치 마세요. 인생의 2막이 있습니다. 


2) 행위보다는 존재 자체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원망 불평하며 삽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신 것, 받은 사랑, 갖가지 사랑을 부모가 되어 깨닫고 효도할 만하면 떠나시잖습니까? 그래서 ‘나실 제 괴로움’만 불러도 눈물이 납니다. 부모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배우자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귀한 존재인줄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 감사하지 못하는 대상이다. 뭘 해주어서 감사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 한 사람 바라보고 산다는 그 자체가 감사입니다. 그가 옆에 살아 있다는 그것을 감사해보시길 축원합니다. 

옆에 배우자가 있다면 말해 보시오. “나 같은 사람 옆에 있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함께해주어 고맙습니다” 

자식도 감사거리입니다. 속 썩여도 감사, 공부 못해도 감사, 그냥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입니다. 

여러분 옆에 믿음의 동역자가 있습니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것을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때론 속도 썩이고 골치도 아프기도 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행복합니다. 아멘?   행위보다는 존재 자체를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이너스(손해)를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내게 유익한 것만이 아닌 내게 손해가 되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고난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욥입니다. 당대에 가장 잘나가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천재지변이 일어나 자식도, 재산도, 심지어 건강까지 다 잃습니다. 철저하게 망했습니다. 결국 잿더미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되었소? 차라리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시오” 라고 저주를 합니다. 

그때 욥은 뭐라 합니까? 욥1:21을 보세요.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감사의 고백입니다. 훗날 이 고백이 욥을 고난 받는 인생에서 축복받는 인생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갖고 온 것이 없습니다.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 빈손의식을 잊고 삽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이만큼 누리는 것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은 전 세계 사람 중 5%만 누리는 혜택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 감사해야 할까요? 지금 여기서 감사해야 합니다. now and here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하는 감사가 진짜 감사입니다. 

오늘 추수 감사절에 한번 믿음의 감사를 드려 봅시다. 

따라 합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준 사람은 가장 좋은 사람이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은 가장 좋은 상황이다.” 
“나의 남편(아내)은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다.” 
“나의 자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녀이다.” 아멘? 

하번 더하세요. “내가 섬기는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이고 내가 따르는 최목사님이 가장 좋은 목사님이다.” 아멘입니까? ㅎㅎㅎㅎ 


[낮은 울타리]에 실린 글입니다. 

- 옷이 몸에 좀 끼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라. 
- 잔디를 깎아야 하고, 유리창을 닦아야 하고, 하수구를 고쳐야 한다면 감사하라.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니.., 
- 정부에 대해서 불평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면 감사하라.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니.., 
-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라. 당신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 전기 값과 난방비가 많이 나왔다면 감사하라. 당신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니.., 
- 세탁물이 많고 다림질 할 옷이 많다면 감사하라. 당신에게 옷이 많다는 것이니.., 

제가 몇 가지 추가하면 

- 예배후 식사봉사가 힘들다면 감사하라. 섬길 교인이 많다는 것이니.., 
- 성가대 연습이 힘들다면 감사하라. 그 연습 자체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니  

지금 여러분 앞에 충분히 원망과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인 것으로 믿으십시오. 
범사에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성도만이 갖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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