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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넘치는 감사의 조건들 (고후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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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감사의 조건들 (고후  8:1~5)  


오늘은 2008년도 추수감사절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정말 복 받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지금 쌀이 남아돌아 100만 섬이나 쌓여있다고 하잖아요. 
‘춘궁기’, ‘보릿고개’, ‘뛰지 마라 배 꺼질라.’는 말들은 문자 그대로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배 꺼진다고 뛰지 마라.’고 했겠습니까? 
요즈음에는 ‘배 꺼지도록 좀 뛰어라.’고 권면합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지금도 지구상에는 하루 세끼 못 먹는 백성이 부지기수입니다. 
오늘은 좀 편안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말씀을 이어갈까 합니다. 

지난 11월 13일은 대학입학 수능고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치루는 시험이, 그 하루가 일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의 마음속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아들에게 준 글입니다. 

‘아들아, 네가 우리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기쁘구나. 너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란다. 하나님께서 너를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것을 감사한단다. 너로 인하여 엄마와 아빠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단다. 네가 입시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나도 조금은 알 것 같구나. 얘야, 그러나 네가 입시에 합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에 먼저 합격하면 어떠하겠니? 그런 후에 너의 시험도 하나님께 맡기자꾸나. 우리 하나님은 엄마보다 너를 더 사랑으로 지켜주실 테니깐.' 
-사랑하는 엄마가. -

여러분, 대학입시에 합격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생활에 먼저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예쁘지 않습니까? 

어떤 할아버지와 손자가 모처럼 야외에 나가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할아버지, 오늘 재미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나도 즐거웠단다.” 
“할아버지?”  
“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거든요?” 

할아버지는 손자의 “감사하다.” “오래오래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기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시지요?” 라는 고백을 듣게 되면 하나님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쉬울 것 같은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2천 년 전에 로마서 1장21절을 통해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한다.” 

하나님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생각은 더더구나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2천 년 전의 시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달라졌을까요?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이젠 ‘감사’라는 단어를 아예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세요. 
가정에서 감사라는 말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까? 
직장에서 감사라는 말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까? 
이웃 간에 감사라는 말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감사부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유대인의 미쉬나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줄 아는 사람이다. 
누가 강한 사람인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다. 
누가 부자인가? 자기 몫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이다.’ 

여러분, 감사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감사하는 것을 배웠다면 최고의 것을 배운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뇌종양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남아있던 작은 종양들을 제거하기 위해 2차 수술을 받고, 체력은 다 떨어지고 몸은 힘들었지만,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내게 주신 귀한 선물들이 내 주변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엄마의 어리광조차 받아주는 예쁘고 든든한 친구 같은 딸, 바라만 봐도 든든한 아들, 사랑하는 믿음의 친구들, 난 외롭지 않습니다.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만 해도 너무 행복합니다. 오늘도 나는 고백합니다. 나는 정말로 복이 많은 여자랍니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이 시한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수술 받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것도 감사할 제목이지만 수술을 받으며 작은 고난을 경험한 것이 더 큰 축복이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전신마취를 한 후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올 때 옆에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상이라고 여기며 감사하지 못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난 경험을 통해 매일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술실에 들어가는 많은 분들을 위해서 수없이 기도했지만 제가 수술을 받고나서야 진정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주머니가 하나도 없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후 수술침대에 누우면서 마음이 숙연해지고 진지해졌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수술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무리 시간이 바쁘더라도 꼭 수술하기 직전에 가서 기도해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여러 분들이 수술을 하셨습니다. 
그때 그 분들을 위해 찾아가서 기도할 때 이전보다 훨씬 더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을 안 받아본 것보다 수술을 받아본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더 감사했습니다.” 

세계적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다른 사람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고통 받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사촌들과 이웃사람들에게 성적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그 수치심과 고통 을 이기지 못해서 마약을 복용했던 사실도 있었던,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여인입니다. 

그러나 지금 오프라 윈프리는 자기가 겪었던 고통과 아픔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복을 헤아려보십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감사의 제목들이 있습니까? 
살아가면서 기쁨과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고통과 시련까지라도-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복음성가 <감사해요> 

감사해요 주님의 사랑. 감사해요 주님의 은혜 
목소리 높여 주님을 영원히 찬양해요. 나의 전부이신 나의 주님. 

본문은 바울 사도께서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베뢰아 교회- 보인 구제헌금의 예를 들면서 고린도 교회에게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읽을 때 받는 첫 번째 인상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뭔가 ‘풍성하다’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표현을 몇 군데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2절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그렇다면 마케도니아교회들의 형편이 넉넉하기 때문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이제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마케도니아 교회는 시련과 가난 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2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느니라.” 

실제로 성경에는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당한 시련들이 많이 거론되어 있습니다. 
살전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살전 3:3-4절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실로 그들은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내 코가 석자인데 남 돌볼 사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경제적인 상황이 악화되면 누구나 씀씀이를 줄입니다. 
그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연보를 넘치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헌금을 받아들고 눈물겹도록 고마워하면서 지른 탄성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환난 중에서 진짜 감사를 했던 교회들입니다.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환난 중에 감사하는 것은 진짜 감사의 마음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사는 돈이 있어서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2) 마케도니아 교회는 자발적으로 감사했습니다. 

3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보통 사람들은 헌금할 때 수입과 지출을 고려합니다. 
그래서 한도 내에서 헌금을 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우며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힘에 지나도록’ 드렸다는 것은 이미 계산을 떠나서 드렸다는 것인데, 이것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현재와 미래를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의탁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4절에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대하여......”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은혜’라는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특전’으로 번역했습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이웃을 위해 연보하는 일을 하나의 특전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연보를 특전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연보를 통해 뭔가를 깨닫거나 뭔가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연보를 특전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연보를 단순소비가 아니라 특전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분명히 연보는 짐이 아니라 특권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손이 떨려서 헌금을 하겠습니까?


3) 마케도니아 교회는 자신을 드리는 감사를 했습니다. 

5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 

연보는 사랑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헌신’ ‘헌신’하면서 그것이 물질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신’이라는 말은 몸을 드린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조심스러운 얘기이지만, 헌금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미얀마 아웅산 사건을 기억하시지요? 
장례식 때 대통령 비서실장의 17살 난 딸에게 기자가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버지를 잃었는데 증오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17살 난 딸의 대답은 “17년 동안 좋은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사람이 신앙 안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이렇게 위대해질 수 있는가?’ 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이런 환난 속에서의 감사를 기대할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하루만이라도 믿음의 눈으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시면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가는 행복한 여행을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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