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절]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 (시 103 :1~5)

  • 잡초 잡초
  • 489
  • 0

첨부 1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 (시 103 :1~5)


오늘은 전국 교회가 추수 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감사와 관련해서 볼 때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를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도 넉넉하고, 건강도 있고, 직장도 안전하고, 가정에 어려움도 없고 하니까, 자기가 다 잘해서 살아가는 줄로만 알고, 감사를 전혀 안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감사를 하되 옅은 감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옅은 감사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하면, 생활 형편이 좋을 때는 감사하고, 생활 형편이 나쁠 때는 감사를 안 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든지, 좋은 학교에 합격을 했다든지 하면 감사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감사를 안 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하면 감사하고 건강치 못하면 감사 안 하고, 성공하면 감사하고 실패하면 감사 안 하고, 사업이 잘되면 감사하고 사업이 잘 안되면 감사 안 하고, 이렇게 조건을 따라 감사하는 옅은 감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사도 바울과 같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후에는 자나 깨나 매일 매일 감사로 일관했습니다. 그렇다고 만사가 다 형통해서 감사드린 게 아닙니다. 어려움이 많은 중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전도를 하다가 매도 맞고, 춥고, 헐벗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혀서도 감사했습니다. 

이렇듯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형편이 좋아도 감사하고, 형편이 나빠도 감사하고, 건강하든지 건강치 못하든지, 성공을 하든지 실패를 하든지, 언짢은 일이나 좋은 일이나, 기쁘든지 슬프든지를 막론하고 감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바로 그러한 감사를 드린 분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 같은 감사야말로 깊이가 있는 감사요, 전천후 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간조(내촌감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이 있어서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사업의 실패는 아니다. 가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믿어지지 않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막힌 귀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별명은 ‘감사하는 자!’ 입니다.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국가적으로 감사할 일을 찾아보십시다. 통계청은 올해 쌀 생산량을 484만 3천 톤으로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 해 생산량 440만 8천 톤보다 43만 톤(9.9%)이 더 많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재배 면적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이처럼 크게 증가한 것은, 기상 여건 호조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해까지 최고 풍작을 이루었던 1997년의 단위 면적당 518kg보다 2kg이 더 많다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사상 최고의 풍작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쌀 생산량이 증가한 이유는 벼 모내기 이후부터 수확기까지 생육 전반에 걸쳐 기상여건이 양호하여 병충해 피해가 거의 없고, 이삭당 낱알 수가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쭉정이가 거의 없었고, 벼 낱알도 충실하게 영글었기 때문이며, 특히 올해에는 태풍 피해가 전혀 없었던 것이 큰 요인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발 금융 위기 쓰나미로 전 세계의 경제가 흔들리며,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제도 매우 어려운 형편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때에 쌀농사라도 대풍년이 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크게 감사드려야 함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더구나 1997년 I M F때 큰 풍년이 들게 해주시고, 금년처럼 나라 경제가 어려운 때에 또 다시 대 풍년이 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북한은 금년에도 큰 흉년으로 2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고 보면, 금년의 쌀농사 풍년은 더더욱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회적으로 감사한 일을 찾아보십시다. 저는 어제 설교 준비를 하다가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2003년 12월 21 주일에 ‘우리 교회의 꿈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설교 원고 중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서 수십 번 돌고 돌아다니며, 그 땅을 우리 교회에 주시라고 그토록 간절히 간구했는데, 계약 날짜까지 정해 놓았던 땅을 바로 코앞에서 놓쳐버리고 난 후, 저는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울고 다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으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하셨지 않아요? 하나님 아버지, 그 박 사장의 마음을 꼭 움직여 주셔서 우리 교회에 땅을 매각하도록 해주세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는 남여선교회 회비까지 동원해서 50여 곳의 미자립 교회를 돕고, 또 50여분의 선교사님을 돕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아요! 좀 갚아 주세요! 하면서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박 사장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땅을 팔수 없노라고 그토록 완곡하게 거절했던 분이었는데, 애타게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기어코 박 사장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몇 번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긴 끝에 8,300평의 땅을 지난 12월 15일에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후로부터 근 5년 만에 우리는 이토록 넓은 장소에 이토록 아름다운 성전을 완공하고, 입당 예배 때 50가지 감사 제목을 들어서 감사를 드렸는데, 오늘 추수감사 주일을 맞게 되니 그 감회가 실로 얼마나 큰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인 시 103편은 성군이라 일컫는 다윗이 노년에 기록한 신앙 체험적 고백입니다. 그는 생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입은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함에 넘쳐 이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고 스스로를 고무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송축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죄 사함의 은혜 

성경은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단어 하나라도 그 우선순위의 배열이 정확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그 많은 은혜 가운데서도 맨 먼저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라고 사죄의 은혜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났고,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온 자는 그 누구나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게 하시며, 또한 저희 죄를 다시 기억조차 아니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죄만 사하신 것이 아니고 모든 죄를 사하십니다. 죄는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우리에게 멸망을 가져오는 법입니다. 

약 2:10에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죄함을 받을 때에, 몇 가지 죄만 사함 받은 줄 생각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몇 가지 죄만 사함 받았다면, 그것은 효과적 사죄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사죄 받았다면, 그것은 모든 죄를 다 사함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는 얼마나 많습니까? 시 40:12에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머리털보다 많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셨습니다. 죄악은 우리를 영원토록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문제시하지 않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잠14:9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죄하여 주시는 은혜야말로 첫째로 꼽을 만한 은혜입니다. 사죄의 은혜야말로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은혜인 것입니다. 이 은혜를 회상하여 잊지 않는 자는 늘 감사와 감격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2. 병 고쳐 주심의 은혜 

다윗은 “저가 네 모든 병을 고쳐주시며”라고 하면서 병고쳐주신 은혜를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병 고침의 은혜가 죄 사함의 은혜와 나란히 언급되어 있는 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질병은 영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들은 결국 영적인 부조화와 연약함으로 인하여 발생합니다. 때문에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영혼의 죄악을 먼저 사하시고,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들은 모든 죄악을 사유하심에서 그 치유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육체의 모든 병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은, 영 육간에 치료하여 주신 은혜를 의미합니다. 질병은 인간이 안고 있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날 그 많은 병원마다 환자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중에는 난치병 불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듯 무서운 질병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오늘 우리가 이만한 건강을 가지고 주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 파멸에서 구속하신 은혜 

4절에 “저가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이는 앞에서 주신 죄 사함과 병 고침의 은혜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멸’에서 란 말은 죽음, 무덤, 지옥 등을 포함한 ‘웅덩이’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파멸을 당한다는 것은 인생에게 최대의 절망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그 절망, 그 비극을 하나님은 구속의 은혜로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죄에서 구속함을 받으며, 또한 죄의 형벌인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결코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며, 이 구속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감사의 마음 또한 메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4. 존귀케 하신 은혜 

4절에 “저가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라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놀라우리만치 함축성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낱 보잘것없는 베들레헴의 양치기 소년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도록 존귀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 대한 사랑은, 죄와 질병과 죽음 등의 파멸에서 구원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을 마치 왕같이 존귀하게 해주십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시고, 그 위에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심 곧 영원한 사랑으로, 그분의 거룩한 속성에서 흘러나오는 애정으로, 그의 자녀들을 영화롭게 관을 씌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선 그의 자녀들은 이제 초라한 죄인들이 아니라, 존귀와 영화로 관을 쓴 하나님의 후사들인 것입니다. 

  5. 소원을 이루어 주신 은혜 

5절에 “저가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도 특별히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여 주십니다.시 107:9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고 했습니다. 좋은 것이란 영. 육간의 모든 선물을 뜻합니다. 우리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임”을 믿고, 또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분”임을 믿습니다. 

  6. 새롭게 하시는 은혜 

5절에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결코 속절없이 시들지 않고 측량할 수 없는 힘과 기쁨이 날마다 새롭게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황혼기에서 청춘을 노래하고 있으며, 마치 독수리 같이 새롭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몸은 늙었으나 그는 하나님으로 인해 심령의 청춘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청춘은 하나님의 은총에 붙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M. J. 라이언이라는 사람은 ‘감사’ 라는 책에서 인생을 변화시키는 감사의 힘에 대하여 유사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치며, 감사하면 언제나 생기가 있고,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유되며, 감사하면 건강해지고, 감사하면 걱정 근심이 없어지며, 감사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감사하면 고통과 분노가 사라지며, 감사하면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고,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으며, 감사하면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되고, 감사하면 상처받더라도 사랑하며, 감사하면 무엇이든 나누어 주고 싶고, 감사하면 모든 생명체와 교감할 수 있으며, 감사하면 평범한 일상도 은총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에 실린 대한 글입니다. (동양상 자료) 그녀는 1978년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7월 30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레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음주운전자가 낸 6중 추돌 사고였습니다. 응급실을 향해 달려가는 엠블런스 안에서 이지선의 곁을 지켰던 오빠는 “살 가망이 없으니 동생에게 작별 인사라도 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4-5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중상환자로 의사들마저 치료를 포기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7개월간의 입원, 1차례의 수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치료, 3년여의 시간을 뒤로한 지금, 더 이상 예전의 곱던 얼굴은 찾아볼 수 없고, 온 몸에 화상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지만, 이지선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 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이 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서도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그런 생각, 그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무런 희망 없이 길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하는 노숙자도, 평생 코와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는 이 없이 자라나는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신 이상 그 생명은 충분히 귀중하고 존중 받아야 할 삶입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 “네 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마이로 H.게이트는 “사람의 성격을 알아보는 가장 정교한 방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주 감사를 하느냐로 판명될 수 있다.”고 했고, 촬스 피니는 “성령 충만은 곧 감사 충만이다.”고 했으며, 스피로스 조해테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인하여 감사드리는 것은 악마를 대적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고 했습니다. 

추수 감사주일로 지키는 이 시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고 한 시인의 다짐이 우리 모두의 다짐이 되시기 바랍니다. 국가적으로는 금년에 대풍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교회적으로는 이토록 널따란 장소에 이토록 아름다운 성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뜨겁게 감사하시기를 바라고, 

우리 모두 1)사죄의 은혜 2)병 고쳐 주심의 은혜 3)파멸에서 구속하신 은혜 4)존귀케 해주신 은혜 5)소원을 이루어주신 은혜 6)새롭게 하시는 은혜 등등 그 모든 은택을 절대로 잊지 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이 고마운 추수 감사주일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마시고, 무엇보다도 감사 충만한 은혜를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