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절] 감사하면 (살전 5:16~18)

  • 잡초 잡초
  • 214
  • 0

첨부 1


감사하면 (살전 5:16~18)


재미 있는 통계 하나를 보았습니다. 사람이 평생 70년을 산다고 했을 때 무엇을 하며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는가에 대한 통계였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7년, 잠 자는데 23년, 일 하는데 26년, 먹는데 6년, 근심과 걱정을 하는데 7년을 보낸답니다. 그런데 정작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해서 웃는데 쓰는 시간에 대한 수자도 나왔는데 여러분 생각에는 우리들이 평생 사는 동안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해서 웃는 시간이 몇 년이나 될 것 같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몇 년이 아니라 고작 88일이라고 합니다.

‘먹기 위해서 사나 아니면 살기 위하여 먹나?’ 하는 장난 같은 질문이 있는데 저는 그동안 당연히 ‘살기 위하여 먹는 것이지 어떻게 사람이 먹기 위해서 사나 짐승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살기 위하여 먹는다’는 것도 별로 훌륭하고 좋은 일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먹는 즐거움도 행복 중에 하나인데, 큰 행복 중에 하나인데 사람이 먹는 것을 그저 생존만을 위해서 한다는 것은 별로 옳은 생각이 아닌 듯 싶었습니다.

먹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즐거움과 행복이라고 이해하고 다시 ‘사람은 먹기 위하여 사나 아니면 살기 위하여 먹나?’를 묻는다면 ‘먹기 위하여 산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삶의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는 행복입니다. 아니 목적 중에 하나가 아니라 궁극적인 목적일 수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냥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구원의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삽니다. 그것을 위하여 살기도하고 먹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법니다. 그리고 예수도 믿습니다. 그런데 고작 우리가 70 평생을 사는 동안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뻐서 웃는 시간이 88일 밖에 되지 않는다니 얼마나 우리가 잘못 살고 있는가를 그와 같은 통계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세상이 본래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세상에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88일 밖에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일까요?

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행복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럴까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하루에 300번에서 500번을 웃는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하루에 7번에서 15번 정도 밖에는 웃지 않는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남편을 먼저 앞세우고 어린 남매를 키우는 젊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생일 상을 차려 주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아이가 생일 상을 받기 전에 먼저 엄마에게 큰 절을 하였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아이들이 생일이 될 때마다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좀 쑥스러워 보이지만 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점점 기쁨을 잃어 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모르고 감사를 모르는 까닭은 우리들이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예를 가르쳤습니다. 예의 근본은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를 특히 많이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그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영어와 수학과 피아노와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에만 올인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예전에 비하여 말도 못하게 똑똑해졌고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더 부요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렵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이유는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세상엔 근심하고 걱정할 일보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은 다 당연한 일로 흘려 보내고 근심하고 걱정할 일은 억지로 만들어서까지 근심하고 걱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바꾸어야만 합니다. 

‘무자식 상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별로 지혜로운 말도 옳은 말도 아닙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면 참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자식이 주는 기쁨이 자식이 주는 힘듬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도 많은 부모들은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은 당연한 것으로 다 흘려보내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만 기억합니다. 그리고는 말도 안 되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허튼 소리를 하며 스스로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도 다 부모가 자신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쓴 것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잘못하고 실수하고 자신에게 상처 준 것만 가슴 깊이 묻어 둡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는 부모를 원수처럼 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으로 서울여대에서 전교인 수련회를 하였을 때 신학을 전공한 전도사 한 분이 웃음치료사라는 낯선 직함을 가지고 한 시간 와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행복해 진다는 것이고 놀라운 일은 그렇게되면 병도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치료사라는 것이 직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 상당히 괜찮은 직업 중에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병을 앓는 사람들의 치료를 위하여 많이 이용되고 응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웃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좀 쑥스럽고 몸에 익숙하지 않지만 소리 내어 웃는 일이 필요합니다. 작은 일에도. 당연한 일 같아 보이는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칭찬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참 좋아질 겁니다. 삶이 훨씬 더 밝아지고 아름다워 질 겁니다.

얼마동안, 아니 아마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과 같이 아마 얼마 동안은 근심하고 걱정하느라고 많이 힘들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무게를 잘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는 인생의 패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웃음 치료가 필요합니다. 감사 훈련이 필요합니다. 칭찬 훈련이 필요합니다.

머리가 아플 만큼, 터질 듯이 아플 만큼 삶이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제 머리의 피부 근육은 오른 쪽과 왼 쪽이 다릅니다. 오른 쪽이 아주 조금이지만 마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저도 제법 나름대로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다는 훈장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보다 더 힘든 일을 당하면 머리가 터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래도 조금 견딜 만 한 일을 당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일을 당하면 마음이 허해지고 온 몸에서 힘이란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무기력감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맥이 빠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말 온 몸과 삶으로 경험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일들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제가 되지 않는 억울함이 분통함은 없었습니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보다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저는 일부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을 기억합니다. 억지로라도 생각합니다. 그러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받고 있는 고난보다, 어려움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저는 경험적으로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알겠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분이 예수님임을 저는 압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시고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죽어도 백번은 더 죽었을 것입니다. 천 번은 더 죽었을 겁니다. 백번과 천 번의 죽을 자리에서 죽지 않았다면 앞으로 몇 번 더 당할 그 같은 자리에서도 우리는 죽지 않을 겁니다. 망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전과 같이 다시 일어설 것이고 결국에는 승리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은혜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양해야만 합니다. 시편 42편 6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시편 42편 11절에는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아멘.

낙심이 될 때에는 하나님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낙심이 될 때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삽니다. 감사하면 삽니다. 감사를 훈련하고 연습하십시다.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지금부터 시작하십시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다. 늘 기도하며 사십시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며 사십시다. 그게 믿음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을 한번 따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속으로 따라하셔도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받은 은혜와 축복이 지금 당하는 어려움보다 큽니다.

백번 천 번 죽었어야 할 모든 자리에서 저를 건져 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백번 천 번 죽을 자리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건져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앞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것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은혜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쁘게 살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