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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열매 : 선함 (살전 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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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 선함 (살전 5:12~15)


지난달에 강릉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이 후배 학생을 폭행해서 죽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청주 어느 중학교에서 폭행으로 뇌사에 빠진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도록 때린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도 한쪽에서는 여전히 가정폭력이다 여성학대다 하면서 여러 단체에서 혹은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폭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아무생각 없이 그랬노라고 후회 섞인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화를 억누르지 못해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분노이고 또 그것을 참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결코 천국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이 백년해로하기로 맹세하고 결혼한 신랑 신부도 천사가 아닙니다. 세상에 모든 것은 조건적이고 타산적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분노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화가 나고 욕도 나오고 그렇지만 그것을 표현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이지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감정 표출에 있어서 여자가 민감할까요? 남자가 민감할까요? 남자입니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남자는 일주일에 여섯 번 화를 내고 여자는 세 번 화를 낸다고 합니다. 무슨 일로 화를 내느냐 여자는 보통 사람 때문에 화를 내고 남자는 주로 사물 때문에 화를 낸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주로 마음에 안 드는 남편에게 혹은 말썽부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반면 남자들은 펑크난타이어, 잘 안 드는 면도기 등에 화를 내기 때문에 여자들이 더 민감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합니다. 

[존 헨더슨]이라는 사람이 식사시간 30분전의 감정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고 혈당이 낮아지면 신경조직이 가장 예민해지기 때문에 화를 더 잘 내기 쉬운 결정적인 시간이라고 합니다. 밥 먹다가 싸우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만 남편이 반찬투정해도 입 꾹 다물고 밥만 먹는 아내가 지혜로운 아내요, 찌개가 식었어도 맛있다고 후루룩거리며 먹는 남편이 현명한 남편입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물론 원래 의미는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어도 먹을 때는 야단치지 마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만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는 어떻겠습니까? 여하간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화를 내고 분을 내어서 저질러지는 일들이 결코 선한 일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이루는 지혜로운 삶을 배워야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속에는 악을 이루는 것보다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생각도, 철학도, 신념도 선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몇가지 발견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평생을 형벌의식에 쫓기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애초부터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억지로 살아가는 겁니다. 간혹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팔자려니 하고 산다는 사람들이 그런 류의 사람들입니다. 늘 머릿속에는 그 의식이 꽉 차있기 때문에 그 아까운 시간과 그 많은 시간들을 스스로 노예적으로 삽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드라마나 소설을 보게 되면 간혹 부부가 싸울 때 이렇게 싸우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부인이"이 집에 시집와서 아이 낳아주고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온전히 당신 하나만을 위해서 사는 내가 완전히 이 집의 노예요, 돈 받지 못하는 식모지 뭐냐!"고 그러면서 대듭니다. 그러니까 남편은"마누라하고 자식새끼들 벌여 먹이느라고 밖에 나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수고하는 나는 이 집에 머슴이라"고 그러면서 싸웁니다. 가만히 보면 그 집에는 머슴과 식모만삽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의지가 아니라 마지못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똑같은 생을 사는데 억지로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부부가 되었으니 억지로 살아가고, 부자(父子)가 되고, 모녀가 되었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렇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억지로, 부득이해서, 할 수 없이 산다고 생각하면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벌받을까봐 무서워서 매맞을까봐 무섭고, 저주받을까봐 무서워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사에 형벌이 무서워 신앙 생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어진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으로 감사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교회 안 나가면 벌받을까봐 나오고, 봉사라도 안하면 저주받을까봐 하는 이런 형벌의식에서 신앙생활 한다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것은 아주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감사해서 마땅히 드린다는 신앙입니다. 

그런가하면 매사에 보상을 바라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투자의식(投資意識)을 가지고 상 받을 마음으로, 보상받는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항상 받으려는 마음에 아주 민감합니다. 그랬다가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는 원망 불평입니다. 그래서 허영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위선적인 사람이 되기도 됩니다. 보상의식 이것이 문제입니다. 가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오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give and take의 철학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신앙생활에도 나타나면 큰일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보상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다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의 보상이란 이미 주어졌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받았습니까? 천국보다 더 귀한 보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 무언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상을 기대합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도 하다못해 칭찬이라도 주어져야 기분 좋게 일합니다. 물론 적당한 칭찬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칭찬이 주어져야합니다. 그러나 그 칭찬이란 내가 원하거나 바라지 않는 것이지만 상대방이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칭찬도 안 해주느냐고 내 쪽에서 요구하거나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런고로 세 번째의 삶의 모습은 존경과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일을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이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더군다나 나 같은 미천한 자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혜를 주신 것에 감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일합니다. 어찌나 감사한 지 밤을 새우면서 심취해서 일하는 이런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신앙인 이라면 언제나 선한 일에 대해서 적극적 이어야합니다.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5:41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처음 오 리까지 가는 것은 내 뜻이 아니요, 초행길에 길 안내를 부탁하니까 거절하기가 안돼서 가주었습니다.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억지로 피동적이고 수동적이고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오 리를 가서 보니까 만만치 않습니다. 혼자 보내자니 또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내가 더 가주겠습니다."하고 십 리까지 동행하는 마음입니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내가 선택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강요된 것이 아닙니다. 내 의지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일의 발단은 억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가고 싶어 오리를 간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 가서 무슨 저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간 것이지만 이제는 내가 기쁨으로 더 해줍니다. 이게 놀라운 것입니다. 

남자가 삼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결혼해 달라고 졸라대는 바람에 결혼을 한 어떤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우려먹는 말이"당신이 하도 쫓아다녀서 결혼해 주었더니 겨우 이게 뭐냐!"고 하는 불만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결혼을 그렇게 끌려가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선택하지 못하고 남의 선택에 끌려간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말은 부끄럽게도 스스로를 한 평생 자기를 그렇게 노예로 묶어 두는 말입니다. 설사 시작은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혼식 날부터는 얘기가 달라져야 합니다."당신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당신을 선택한 겁니다."이러고 살아야지 평생 남의 선택에 끌려 다녀서야 되겠습니까? 

결혼은 서로 선택했다는 필연적인 자세가 될 때 부부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설령 빼앗기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할지라도 지금 이 현실부터는 주는 마음으로, 시작은 억지로 된 것이나 이제부터는 자발적으로 하는 동기 전환(動機 轉換)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태도를 바꾸고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야 그 때부터 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선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만이 아니라 매사가 그래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선(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잘 보면 선이란 화목에서 오는 것이요, 오래 참는 데서 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마음의 태도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곧 그가 선한가 악한가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를 잘 압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이 외딴 곳에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이 상황에서 생각합니다.'이 사람을 해한 강도가 이 근방에 있을 것이고 내가 이 사람을 돕는다고 어름어름 하다간 내가 죽을 것'입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죽을 사람 돕다가 나 죽을 거 없잖아요. 합리적으로 생각한<레위인>도<제사장>도 도망가 버립니다. 그런데<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생각은"이 사람을 돕다가는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그 생각이 아니라"내가 이 사람을 돕지 아니하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중요한 생각을 합니다. 생각의 중심이<나 자신>에게서<이웃>에게로 옮겨가는 겁니다. 거기서 사마리아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 되는 것입니다. 

[리차드 니버(Richard Neibourh)]라는 신학자는 이 비유 속에 나오는 세 종류의 인간상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강도>와 같이[목적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두 번째는<레위사람>과<제사장>처럼[자기 공동체에 충실하게 살겠다는 사람]이 있으며 그 다음에<선한 사마리아 사람>같은[책임적인 인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선함이라 이런 책임적인 인간상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간디]하면 유명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시골에 갔다가 기차가 막 떠날 때에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간신히 올라타면서 신발 하나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간디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남은 신발을 벗어서 열차 밖으로 던지더랍니다. 그래서"아니 왜 그건 던집니까?"물었더니"저 신발짝은 누군가가 주워서 신게 되겠는데 하나 가지고는 안 되잖아?"하더랍니다. 자기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간디라고 하는 사람의 인간다운 모습을 보게 합니다. 내가 손해를 보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저 사람이 어떻게 될까를 먼저 생각하는데서 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5:1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면 나 자신을 먼저 보고 남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는가, 거기서부터 나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 선을 따라 사는 출발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심지어는 오늘 말씀처럼 악이 다가 올지라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선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어느 형편에 있든지<성령의 열매인 선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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