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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마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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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마 25:1~13)


우리는 인생을 살되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대를 볼 줄 아는 지혜의 눈, 신령한 세계를 바라다보는 영안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살기 좋은 상태로 수백 년 계속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실 너무나 많습니다. “목사님,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처지인데, 어떻게 내일을 준비하겠습니까?”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오늘을 절약하면서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하이럼 스미스(Hyrum W. Smith)가 지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What Matters Most”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하이럼 스미스는 프랭클린코비사의 부회장이며, 1984년 프랭클린 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세미나를 통하여 개인들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해주고, 그 가치관을 기초로 하여 시간을 관리하고 인생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하이럼은 시간 관리에 대한 세계적인 전문가이며, 사회에 공헌한 바가 인정되어 많은 상을 받은 바 있고, 3개의 명예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복되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첫 번째로 하는 말이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의 힘”을 말합니다. 자신을 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주제파악입니다. 정체성을 확립하라는 것입니다. 지으신 목적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아의식이 그를 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나에게 소중한 것을 발견하라고 합니다.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그 소중한 것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그는 그 책을 쓰면서 ‘세인트헬렌스 산’이 주는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 남서부 끝에 한 때 세인트헬렌스라는 아름답고 웅장한 산이 있었습니다. 이 산은 캐나다 남부에서 시작하여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 북부지역까지 뻗은 캐스케이드 산맥의 등줄기를 따라 형성된 화산 봉우리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세인트헬렌스 산은 1980년 이전까지는 사화산이나 휴화산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세인트헬렌스 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이요, 눈 덮인 정상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1980년 1월부터 이 산 정상 분화구에서 가스와 증기를 토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산의 내부 깊은 곳의 움직임이 지진계에 감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계의 지질학자와 화산전문가들이 워싱턴 주 남서부로 모여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이 세인트헬렌스 산이 100년간의 잠에서 깨어나 내부 깊은 곳으로부터 강력한 힘을 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해 2월에 산의 북동사면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여, 돌출부분은 하루에 3m씩 커져갔으며, 5월 초에는 120m로 확대되었습니다. 대재난의 가능성 때문에 워싱턴 주지사는 이 산에서 반경 32Km 이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대피령을 내려지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재도구를 챙겨서 산을 떠났지만, 몇몇 사람들은 대피명령에 불쾌한 반응을 나타내었습니다. 

산 아래에 있는 스피리트 호수의 산장관리인 트루먼이라는 사람은 대단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 호수는 산의 정상이 수면에 비춰지는데 정말 아름다운 호수였습니다. 정부의 대피명령이 거세질수록 이 사람의 거부하는 목소리도 거세졌습니다. 그는 TV 카메라 앞에 나타나 호전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이 산에서 35년을 살았습니다. 이 산에 대하여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산이 감히 나를 날려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했고, 그는 산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재도구를 다 챙겨가지고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주지사에게 간청하여 집에 가서 가재도구를 가지고 나올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했습니다. 주지사는 주민의 강력한 요구에 24시간만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토요일 저녁까지는 반드시 산에서 내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가 밤을 보낸 후 지시한 대로 토요일 오후 늦게 대피하기 시작했습니다. 84명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맑은 하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멋진 주말이야. 이런 주말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들은 산에 있는 자기들의 집에 남기로 했습니다. 5월 18일 일요일 아침 6시경 세인트헤렌스 산이 폭발했습니다. 단순한 용암이 분출하는 수준이 아니라 산을 날려버리는 대폭발이었습니다. 1.6㎦의 산 정상 부분이 1만8천m 상공으로 솟구친 뒤 유황과 재로 변하여 미전역으로 퍼질 정도의 엄청나게 폭발하였고, 산의 1/3이 날아갔습니다. 수천 에이커의 나무가 화산 폭발로 생긴 바람과 열에 날아가거나 불타버렸습니다. 스피리트호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산장지기의 집은 100m가 넘는 바위와 재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폭발이 진정되었을 때 세인트헬렌스 산은 당당했던 예전 모습을 잃은 채 꼭대기가 잘려나간 깡똥한 난쟁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만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줄로 알았는데, 미국에도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는 독불장군이 있었습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고집피우는 것은 자기를 파멸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문가가 하지 말라고 하면, 기분은 나쁘지만, 그대로 따라주는 것이 자기를 살리는 길입니다. 

인생의 가장 톱클래스의 전문가는 누구입니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인생은 끝이 있다고 하시며, 다른 사람의 믿음이나, 의가 아닌 주님의 의를 힘입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옛날 팔레스타인의 한 결혼식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들이 있었습니다. 이 열 명의 처녀들은 신부의 친구들로 신부의 들러리였습니다. 유대나라는 결혼식을 거행하는데, 주로 저녁에 거행하였습니다.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와서 신부와 혼인예식을 거행하고, 신부를 데리고 신랑의 집으로 가서 한 주간 잔치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마치게 됩니다. 때로는 신랑의 집이 조금 먼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한 주간 잔치하면서 혼인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결혼식을 거행하는데, 왜 밤에 합니까? 유대인들은 시간 개념이 우리와 다른데, 저녁이 되면 하루가 끝난 시간이 아니라,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루의 개념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5)고 하셨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하루가 시작되는데,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열 명의 처녀들이 신부의 집에서 신랑의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들 열 명은 등불을 가지고 갔습니다. 오늘과 같이 전기불로 대낮같이 밝히는 때라면, 누가 등불을 가지고 갈 것입니까? 신랑이 동네로 들어온다는 말을 들으면 각자의 등불을 들고 신랑이 오시는 길을 밝히며, 집에서 나와 거리에서 신랑을 맞이해야 하고, 신랑의 뒤를 따라, 신부의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랑의 일행이 집에 들어오게 되면 문은 닫히게 됩니다. 

신부의 집에서 신부의 친구 들러리들이 신랑을 기다리는 것은 본격적인 결혼이 시작되기 전에, 편의상 신부의 집에서 기다린 것이지, 반드시 등불을 들고 나가서 길을 밝히면서 신랑을 맞이한 사람만 결혼식장에 들어가는데, 등불을 가진 사람만 결혼식에 초대 받은 사람이요, 등불이 없는 사람은 초대받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보았고, 심지어는 도둑으로 여겼습니다. 

세상에는 슬기로운 사람도 있고, 미련한 사람도 있습니다. 10명 중의 절반인 다섯 명은 지혜가 있었고, 다섯 명은 미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여자들 슬기로운 다섯 명의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을 여분으로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다른 다섯 명은 등불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신랑이 일찍 도착하였으면, 가지고 있는 등불에 담긴 기름으로 신랑이 오시는 길을 밝히며 혼인식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이고, 신랑이 더디 오므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신부의 집에 모인 들러리 처녀들이 새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온다는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처녀는 하품을 합니다.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한 명 두 명 잠에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열 명의 처녀들이 잠에 빠졌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나 미련한 처녀 할 것 없이 다 졸며 잠이 들었습니다. 신랑이 일찍 왔으면, 문제가 될 것도 아니나, 더디 오므로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잠을 잔 것을 가지고 지혜가 있다, 혹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초저녁에 결혼식을 거행해야 하는데, 밤중이 되었습니다. 밤이 깊었을 때에, 밤공기를 가르며, 소리가 났습니다. 소리가 났다고 하지만, ‘마침내 한 외침이 들려왔다“라고 해야 합니다. 신랑 앞에서 신랑의 길을 인도하던, 한 사람이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실로 고대하던 음성이었지만, 막상 그 소리가 선포되는 순간. 인내와 대망의 기간은 끝이 나고, 영원한 심판과 상벌의 때가 시작되었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말씀은 지상에서의 최후에 선포된 말씀이요, 영원한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천사장의 호령이었습니다. 

이 때 신부의 집에 잠자던 처녀들이 일어나 보니, 아주 큰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등불에 불이 꺼져 가는데, 이미 기름이 상당량 소모되었기에, 불이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기름통에서 기름을 내어 등불에 보충하고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미련한 처녀들은 등불이 꺼져 가는데, 보충해줄 기름이 없었습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인데, 조금 전까지 깔깔거리며, 웃음꽃을 피우던 친구들인데,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합니다. 

신랑은 동네로 들어온다고 하는데, 친구들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사정해보아도 한 마디로 거절하는데,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신랑을 맞으러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기름을 파는 집으로 달려가서 기름을 사기로 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므로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였던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히고 말았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급히 기름을 구해가지고 등불을 밝히면서 집 앞에 왔으니, 문이 닫힌 것을 보면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간절히 호소하였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주신 말씀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라는 말은 이미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과 때였습니다. 

마24:30에서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마24:35-36에서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신랑 예수님이 거룩한 신부인 교회와 성도들을 데려가기 위하여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는데,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이신 당신 자신의 소관도 아니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준비하라

처녀들이 자기가 결혼하는 것처럼 단장하고 좋은 옷을 내어 입었다고 하여도 정작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다고 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예쁘게 치장하고 패물을 내어 걸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등불과 기름을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등불이란 신랑이 오시는 길을 밝히는 것만이 아니라, 신랑신부와 함께 둥글게 둘러서서 등불을 들고 춤추는데, 자기 등불이 없거나, 등불이 꺼져 있으면 그 순서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관심이 있어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등을 준비하였는데,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다고 하면,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자, 그러면 혼인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등불과 기름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우리가 구원받는 것,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리 주님의 의를 힘입어, 주님의 공로로 들어가는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이지, 내가 잘 나서 들어가는 나라는 아닙니다. 

사실 이 비유가 말씀하려는 교훈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해야 하는 준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는 이 땅에서만 가능합니다. 지금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 있는 사람으로 무엇을 해도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게, 넉넉하게,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아버지의 집,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습니까? 준비하는 중이라구요. 그냥 이대로 들어가실 것입니까? 아무런 준비도 못하셨습니까? 은혜로 들어가신다구요? 

저는 목회자로서 우리 교우님들의 애경사나 교계 목회자들의 애경사에 참석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분의 칠순에 초대를 받아, 강남의 모 호텔에 갔는데, 강남의 교통이 정말 지옥과 같았습니다. 일찍 출발하였는데도 조금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호텔의 뷔페식당에 들어서니, 벌써 오래 전에 식사가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야단이 났습니다. 축하하러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는데 이미 호텔 측에서 준비한 음식은 다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저와 함께 간 사람들은 접수대에서 축하금만 접수하고 돌아서야만 하였습니다. 아마도 호텔 측에서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계약한 사람의 수보다 음식을 덜 준비하였던지, 아니면 설마 초청한다고 다 오겠느냐 조금 적게 예약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일찍 오신 분들이 음식에 욕심을 내어 많이 담아갔든지, 어쨌든 절반의 사람들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돌아서는 마음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모자람이 없고, 충분하게, 넉넉하게, 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2. 깨어 있으라.

이 비유는 깨어있으라는 교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비유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비유인지 알레고리인지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비유라고 하며, 어떤 학자들은 은유, 영해인 알레고리라고 합니다. 

이 비유를 알레고리로 해석하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랑은 누구이고, 신랑이 늦게 온다는 것은 무엇이며, 신랑을 맞이하는 처녀는 누구인지 자명하게 풀리게 됩니다. 

그러나 등불은 무엇이고, 기름은 무엇이며, 기름 파는 가계는 무엇이고, 기름을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기름을 살 때에 치르는 값은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하면 복잡해집니다. 

알레고리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모든 것을 다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초대교회의 영적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랑이 예상한 시간에 오지 않고 늦어지므로 처녀들이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는 것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됨으로 긴장을 풀고, 영적인 해이에 빠져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마태가 속한 유대공동체는 예수님의 재림을 생생하게 사모하거나 기다리지 않고, 세상으로 치우치고 물질에 대한 탐욕에 빠지고 영적인 해이가 왔다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미래의 교회와 성도들이 당신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 않고, 육신의 잠에 빠지고,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지 않고, 세상의 깊은 잠에 빠질 것을 내다보시면서 경고의 말씀으로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데, 생각지 않은 날에 오십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말씀하려고 합니다. 

마24:44에도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3절에서도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육신적으로 자지 말고, 눈을 뜨고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졸음을 쫓아내고 전혀 잠자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시각과 그 때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그 시각을 일력상으로 확정시킬 수 없다는 말이지, 그 날과 그 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시에,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더 갑자기 닥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성을 예민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주님의 일에 민감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고 하셨습니다. 


3. 자기 신앙을 점검하라

예수님은 마5:42에서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윤리적인 말씀이요, 좋은 인간관계를 강조하신 것이요, 마지막 날에, 주님이 오신다는 말씀이 들린 때에는 나의 것만 나의 것입니다. 내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름을 좀 나누어 함께 쓰면 좋을 터이나, 그것은 우리 사람의 생각이지,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자기의 믿음, 자기의 영성, 자신의 신앙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걸고 각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공유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대망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 신앙은 어디까지나 내 신앙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영혼, 나의 생명, 진리를 소유해야 합니다. 빌려올 수도 없고, 빌려줄 수도 없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개인적인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아버지가 우리 교회 초대 장로님이시고, 우리 어머니가 기도의 어머니였습니까? 그래도 자기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내 신앙은 어디까지나 내 신앙입니다. 

우리 앞에는 더 이상은 은혜를 받을 수 없는 ‘닫히는 날’이 다가옵니다. 노아의 방주의 문이 닫히는 날이 있었습니다. 닫힌 문 안에는 축제요, 기쁨이지만, 밖에는 어둠이요, 슬피 우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준비하는 것도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날 동안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신 영원한 신랑이요, 친구요, 주님이 되십니다. 정결한 몸으로, 참사랑하는 마음으로, 믿음과 행동도 진실하게, 성실을 다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강력한 권능을 사모해야 합니다. 모두 다 착하고 신실한 종이 되시고, 정결한 처녀들과 같이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였다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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