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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해를 믿음으로 건너라 (출 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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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믿음으로 건너라 (출 14:10~20)


지난 주간 우리는 온 세계의 이목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47세의 미연방 상원의원 일리노이 주 출신이며, 아프리카 케냐출신의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을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신문의 머리기사로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미국이 변화를 택했다.’ 또 어떤 기사는 ‘미국이 컬러를 피부색을 뛰어넘었다.’ 흑백을 가리지 않고 미국에 필요한 적임자를 선택했다는 머리기사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흑인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주목할 만하고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입니다.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 인생엔 절대 그런 일은 없어.”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런 일은 없어.” 아닙니다. 그건 장담 못합니다.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이런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하도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습니다. 40년 전만 해도 흑인과 백인은 버스를 같이 탈 수 없었습니다. 심한 어떤 주에서는 버스를 타면 앞에서 3줄까지는 백인만 앉을 수 있습니다. 흑인은 못 앉습니다. 흑인 할머니가 그 앞에 앉았다가 쫓겨납니다. 그래서 흑인들이 그 일로 인해서 데모를 하게 되고, 거리시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서 부르짖었던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입니다. 

그 유명한 연설이 있습니다. “I Have Dream.” “나는 꿈꿉니다. 흑인의 아이들과 백인의 아이들이 함께 놀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공부하는 그런 나라가, 그런 때가 오기를 꿈꿉니다.” 물론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그렇게 부르짖다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어디 감히 흑인이 까불어?’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죽은 지 40년 만에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변화를 실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어떻게 흑인이 대통령이 되나? 멸시 받고 핍박받던 깜둥이들이? 말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미국은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정말 흑인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시대에 돌입했습니다. 흑인들이 미국 곳곳에서 이제는 장관도 되고, 보좌관도 되고, 곳곳에서 더 많은 지위들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흑인의 시대에 그들은 가나안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출발은 늘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죽은 지 40년 만에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것을 생각해 보면 전 광야의 40년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그 고난 받고 학대받는 땅에서, 남자아이들을 낳으면 키우지 못하고 다 나일 강에다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모세의 인도로 그들은 애굽을 나왔고,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그 40년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노예의 자리에 있다가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은 놀라운 선택이었고 변화의 과정이었습니다. 

변화라는 것은 모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험이 없이는 변화가 없습니다. 100%가 보장이 없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변화란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험이 없이는 변화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의 땅을 향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에 오늘 이스라엘 성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험이 없는 사람은 발전이 없는 것 아시죠? 아브라함이 만약에 갈대아 우르에 머물러 앉아있고 우상이나 섬겼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는 땅으로 가기를 거부했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거대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전쟁하기를, 싸움하기를 포기했다면 그는 위대한 다윗 왕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정말 뜻을 정하고 예루살렘 쪽을 향해서 기도하기를 중단했더라면 그는 우리의 믿음의 훌륭한 선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마 죽음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뛰어 넘어서 흑인의 자유를 위해서 외쳤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놀라운 경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 우리가 6.25전쟁을 치를 때도 밀물같이 북에서 쏟아져내려갈 때 저 부산까지 밀려 내려갔습니다. 그 때 전세를 바꾼 것이 인천상륙작전이었습니다. 맥아더장군이 수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을 감행했기 때문에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고, 시청에 태극기를 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쟁이 다시 승리의 전쟁으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애굽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가는데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가시지 않고 홍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넘실거립니다. 그리고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 이스라엘 백성은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백성들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종종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이것이 다 누구 때문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두려움에 처하고, 위험에 처할 때마다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그냥 애굽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를 왜 여기까지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만드는가?” 그들의 입에서 원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두려움과 원망.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려움의 존재를 아십니까? 두려움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제가 두려움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에 긴긴 겨울밤에 총각들이 모여서 화롯가에서 밤을 구워먹고 있습니다. “우리 심심한데 게임이나 할까? 우리 중에 누가 제일 겁이 없는지 시험해 보자.” 그래서 그 게임의 내용이 공동묘지에 가서 말뚝을 박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말뚝을 박아서 공동묘지에 갔다 왔다는 증거로 삼기로 한 것입니다. “내가 한번 해 보겠다.”고 한 친구가 나섰습니다. 공동묘지에 가니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겨우겨우 말뚝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누군가 잡아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러져 기절해 버렸습니다.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자 친구들이 공동묘지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말뚝을 자기 옷에다 박은 것입니다. 도망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묘지에서 손이 나와서 잡는 다고 기절한 것입니다. 그것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의 실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워하는 그 실체, 그것은 인간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그것을 두려워하라." 그것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이란 불신앙입니다. 의심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불신과 의심이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원망과 불평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길로 인도하시더라도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상황이 나쁘다고, 처지가 나쁘다고, 좀 위험하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로 이끄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에디슨은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발명왕 에디슨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에디슨. 그는 너무 가난해서 기차에서 이것저것 일을 해 주고 거기서 작은 방을 얻어 실험도구를 놓고 실험을 했습니다. 

한번은 불을 놓고 실험을 하다가 기차가 덜컹하는 바람에 엎질러져서 기차에 화재가 났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승무원이 화가 나서 이 에디슨을 창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떨어지면서 귀를 다쳐서 청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연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 불편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안 들리니까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비록 그것이 장애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것 때문에 더 많은 연구에 집중하여서 우리에게 더 많은 발명의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리로 인도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 이유를 알지 못할 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홍해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사면초가입니다. 한쪽은 강이 막혀 있고, 한쪽은 사막이라 갈 수가 없습니다. 한쪽은 아주 잘 훈련된 애굽군대가 600대의 전차를 이끌고 그들을 추격해오고 있었습니다. 이 홍해 앞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 홍해가 단순히 몇 천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그 넘실대던 바다라고만 생각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 앞에는 홍해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홍해 앞에 서 계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입시라는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이것을 건너지 않으면 대학에 입학할 수 없습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불황이라는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아마 직장생활하시는 분들은 진급이라는 홍해를 건너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시험과 연단이라는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특히 힘든 질병이라는 홍해도 건너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적으로는 이제 건축 상환이라는 홍해도 건너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2004년 11월 11일 11시인가요? 우리가 3년 전에 건축 첫 삽을 뜬 역사가 11월 11일이었습니다. 며칠 안 남았습니다. 낼 모래입니다. 11시. 아주 건축위원장님이 기억을 잘 하라고 이렇게 11월 11일 11시로 정하신 듯 합니다.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첫 변화의 삽을 뜬 날이 11월 11일 11시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과정은 두려운 것입니다. 불안한 것입니다.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우리는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홍해를 건너지 않으면 가나안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이후 경비를 몇 배 강화했다고 합니다. 마틴루터킹 목사도 암살당했기 때문에, 케네디도 암살당했고, 많은 대통령들이 암살당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후보는 흑인이기 때문에 암살당할 위험이 더할나위없이 높습니다. 만일 오바마가 암살당할 것을 두려워했다면 그는 대통령에 나서면 안 됩니다. 그냥 변호사로, 법대 교수로 지내면 편안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도 불사하고 대통령 후보에 나와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홍해를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읽은 성경본문에서 몇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본문 1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물론 그들에게 두려움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도 홍해 앞에 있을 때, 위기 앞에 있을 때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다이얼이라고 부르는 예레미아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당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고 비밀한 일,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우리 앞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흑인들이 흑인들의 권리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들의 기도라는 것은 아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빌립보 4장 6절에 보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염려대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대신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변화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일 중요한 첫 번째 무기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뛰어넘기를 원하십니까? 홍해를 건너가기 원하십니까? 사업의 부도를 해결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안식년을 열방대학에 다녀와서 이 간증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간 알파에서도 이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열방대학에 가서 3개월 동안 새벽마다 커피 봉사를 했습니다. 커피기계 스위치를 눌러서 커피를 갈고 그 가루를 뜨거운 물을 내려서 커피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그런 봉사를 3개월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가 고장 났을 때 다급한 상황 속에서 저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커피 기계는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이럴 때 바로 기도가 필요할 때가 아니냐.’ 그래서 제가 커피 기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오니 커피 기계는 고쳐질지어다. 아멘.” 될까 안 될까 스위치를 켰는데 이 커피기계가 윙하며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제가 와서 그 간증을 했더니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갔는데 TV가 안 켜지더랍니다. 어떻게 고칠까 하다가 무거워서 가져가지도 못하고 ‘에라! 목사님도 기도했다는데 나도 기도해봐야겠다.’ TV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TV를 켜봤더니 TV가 켜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인 것입니다. “목사님! 어떻게 쇠붙이가 기도한다고, 생명이 있어서 듣겠습니까?” 여러분!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제가 신일덕 장로님 이야기를 종종합니다. 그분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이 다 이해를 하십니다. 그분은 대한항공 조종사로 30년 동안 계셨던 분입니다. 목동에 있는 교회의 장로님입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간증도 하셨습니다. 그분이 쓰신 책 제목이 <할렐루야 캡틴>입니다. 그분은 늘 승객을 태우고 출발할 때 이렇게 인사합니다. “할렐루야 신일덕기장입니다. 이 비행기에는 하나님이 동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편안한 여행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그런 줄 알았습니다. 장로님이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신혼 여행가는 신혼부부 31쌍 약 60여명, 일반승객까지 해서 150명을 태우고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사이판 공항으로 갑니다. 공항 도착 15분 전에 이제 유압장치를 점검했더니 유압장치가 고장 났습니다. 하이드로릭(hydraulics)이라는 이 유압장치가 고장 나면 바퀴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바퀴를 빼지 않으면 비행기가 동체착륙을 해야 합니다. 관제소에 연락했더니 그냥 동체 착륙을 하라고 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죽으니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바퀴가 없이 그냥 그 쇠붙이가 땅바닥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불이 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습니다. 두 동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로님 마음속에 ‘적어도 내가 교회 장로인데 장로가 운전하는 이 비행기가 사고 나서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나? 그럴 순 없지.’ 그는 자기 조종간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조종실 바닥에 무릎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장로가 운전하는 비행기가 고장 나면 이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얼마 동안을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자기 몸이 붕 뜨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뇌리 속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그는 마음에 응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부기장에게 “여보게! 이제 한번 수동으로 조작해봐. 유압장치를 한번 조작해봐.” 손으로 유압장치를 움직였는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퀴가 한쪽이 빠졌습니다. 또 한쪽이 빠졌습니다. 관제소에 연락했더니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있느냐”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착륙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퀴를 다 펴고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기내방송을 통해 그 사실을 알렸을 때 그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면서 서로 감격의 포옹을 했다고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오면서 부기장이 기장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기장님! 정말 그 기도해서 바퀴가 빠진 것입니까?” “아니! 여보게! 자네 아까 옆에서 보고도 못 믿나? 하나님이 하신거야.”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부기장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개척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원래 불교신도였는데. 여러분! 기도하는 곳에는 오늘도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던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홍해 앞에 있을 때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홍해를 건너려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서 모세는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가만히 서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아라. 가만히 서서 봐라.”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을 다 했다면, 이제 기도했다면,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가시는지 기대하고 기다려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서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는 것만을 기다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그 이상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들을 다시는 못 볼 것이다.” 그들은 다시는 이스라엘을 추격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완전히 심판을 받기 때문에. 또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대신해서 싸워주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을 높이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날 대신해서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대장되신 주님을 의지하고 그 뒤를 따를 때 우리는 승리자의 반열에 설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란 내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한 유명한 문학가의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시장을 데리고 갔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따라 시장 구경을 하다가 어떤 과일가게에서 앵두가 예쁘게 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아이가 그 앵두 앞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얘야! 가자.” 그래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던 과일가게 아저씨가 참 안되었던지 “얘야! 너 앵두 먹고 싶어서 그렇지? 니 손으로 한 움큼 퍼가지고 가서 먹어. 내가 오늘 너에게 서비스하마.”얘가 자기 손으로 안 집습니다. 계속 쳐다보고만 있습니다. 참다못한 성격 급한 아저씨가 자기 손으로 푹 집어서 주었습니다. 집에 와서 엄마가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 앵두 먹고 싶다고 하더니 왜 손으로 안 집고 가만히 있었니?” 아이가 아주 지혜롭습니다. “아저씨 손이 제 손보다 크잖아요.”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해결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거기에는 다분히 교육적인 의도가 있습니다. 정말 그들이 이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하나님을 바라보는가? 그것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종종 하나님은 우리를 위기의 상황에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정말 믿음 좋다는 김 집사가 정말 믿음 있는 사람인지, 믿음 좋다는 박권사가 정말 믿음의 사람인지 하나님은 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노라하다가도 급하면 점쟁이에게 달려가면 안 됩니다. 엉뚱한 데 가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고난당할 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미국의 대설교가인 ‘헨리 워드 비처’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두 개의 손잡이를 잡는다. 두 개의 손잡이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하나는 두려움의 손잡이, 하나는 믿음의 손잡이다.” 

두려움의 손잡이를 잡는 사람은 하루를 두려움과 불안 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나가서 믿음의 손잡이를 잡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승리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두 개의 손잡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기 속에서 지금 어떤 손잡이를 잡으시겠습니까? 

여러분! 믿음의 손잡이를 잡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손잡이를 잡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능력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홍해를 건너려면 순종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 성경 본문 15절, 16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어찌하여 부르짖고만 있느냐? 이제 앞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나갑니까? 넘실대는 홍해가 있는데.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아직 홍해는 갈라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지팡이로 바다를 치라.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 많은 백성들 앞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를 쳤는데 홍해가 갈라지지 않으면 이 얼마나 창피할까요?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그러나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를 내리칩니다. 동시에 백성은 앞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동시적으로 하나님은 동풍을 불어오셔서 홍해를 가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같이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반 건넜을 때 애굽의 추격 군이 도착했지만 그들 또한 마른땅을 건너다가 하나님이 다시 홍해를 합쳐지게 하셔서 그들은 거기서 수장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온 백성이 여호와가 진정한 하나님임을 거기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역사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24절에 보니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27절에 보니까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새벽에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새벽에 역사하는 시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번 한 주간 동안 이제 말씀집회에 나오셔서 말씀으로 충만함을 입으시고, 또 한 주간동안 나라와 민족, 수험생을 위한 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새벽은 변화의 시간이요, 축복의 시간이요, 기적의 시간인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시간인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회개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깨달은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새벽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새벽에 은혜를 체험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새벽에 나오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부르짖음으로 여러분의 인생 앞에 놓인 홍해를 가르시는 축복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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