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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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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충성된 종 (마 25:14~30)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우리는 그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잘 했다는 칭찬을 듣고 주님과 함께 천국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무익한 종이라는 책망을 듣고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일찍이 전도서 기자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도서 12장 14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없이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즐거운 천국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들려 주시는 답을 분명히 들을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는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그의 소유를 맡기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여행을 떠나는 주인은 우리 주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소유를 맡은 종들은 바로 주님의 제자인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이 맡기신 것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우리에게 속해 있다고 해서 우리의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의 진짜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이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우리의 재능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도 다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생명도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이 맡겨 주신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종들에게 소유를 맡길 때에 첫 번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두 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 세 번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인의 처사가 불공평하다고 합니다.

'돈을 맡기려면 똑같이 맡겨야지 왜 누구는 다섯 달란트, 누구는 두 달란트, 또 누구는 한 달란트를 주는 것입니까?'

과연 주인의 처사가 불공평한 것일까요? 만일 맡긴 금액만 가지고 따진다면 주인은 분명히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단서가 붙어 있지 않습니까? 주인은 세 명의 종이 지닌 능력을 보고 그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만일 대학생과 중학생과 유치원생에게 "너희는 공평하게 일을 해야 하니 똑같이 쌀 십 킬로그램을 들고 와라."고 시키는 부모가 있다면 공평한 부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오히려 불공평한 것이요 또한 어리석은 일 아니겠습니까?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각기 종들에게 주었습니다. 나보다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고 계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적게 받은 종이 불평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세 번째 종이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는 과연 요즘 시세로 얼마나 될까요? 당시 금 한 달란트의 무게는 약 30Kg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시세로 환산하면 약 10억 원에 해당합니다. 누가 10억 원을 받고 고작 10억 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불평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분명히 요즘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평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0억 원이라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엄청난 것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엄청난 것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이 주신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먼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라는 것입니다.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를 받자마자 일터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배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금 즉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나중으로 미루지 않습니까?
"좀 더 배운 다음에 교사로 섬기겠습니다."
"좀 더 많이 번 다음에 바치겠습니다."
"저는 아직 전도할 정도로 믿음이 성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핑계들입니다. 얼른 듣기에는 다음에 하겠다는 말이 겸손한 것 같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어설플지라도 지금 바로 섬기지 않으면 주님을 섬길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달랐습니다. 그는 땅을 파고 그 돈을 감췄습니다. 그 당시 돈을 땅에 묻는 것은 원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원했던 것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이 달란트를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달란트를 좋은 곳에 투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윤을 남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고 결국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가 혹시 손해라도 보았으면 주인이 어떻게 했을까요? 그러나 이런 질문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질문입니다. 왜냐 하면 여기서 말하는 달란트는 돈이나 재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달란트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돈이나 재물은 잘못 투자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때로는 원금까지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재능, 즉 은사는 결코 손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결실을 맺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한 달란트를 받은 종도 최선을 다해서 이윤을 남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것은 주님이 주신 복을 땅에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사용하기만 하면 이윤이 남는 은사를 땅에 쏟아 버리는 행위와도 같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주님이 보실 때에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것은 결국 본전이 아니라 손해였습니다. 결국 한 달란트를 받았던 그 종은 받았던 것마저 빼앗기고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채 어두운 데 쫓겨나는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로 알려져 있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년 시절 안토니오의 꿈은 크레모나 소년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결국 그 합창단에 들어가는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바이올린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으면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 제발 좀 그를 말려 달라고 그의 부모에게 말할 정도로 그의 바이올린 연주 솜씨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여전히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안토니오는 고민했습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안토니오가 그나마 잘하는 일이라고는 나무를 깎아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안토니오는 음악을 하고 싶은 열정과 자신이 그나마 잘할 수 있는 나무를 깎는 기술을 합쳐서 바이올린 제작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취미로 나무나 파던 그의 손놀림에선 어느덧 바이올린을 조각하는 장인으로서의 솜씨가 묻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평생 바이올린 제작에 몰두했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명품 바이올린을 무려 1,500개 이상이나 만들었습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바이올린은 하나에 1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며, 2006년 한 경매에서는 그의 바이올린 중 하나가 약 35억 원이라는 가격에 팔릴 정도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에게는 노래의 재능도 없었고 악기를 연주하는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이올린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로도 얼마든지 두 달란트, 세 달란트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집, 우리의 차, 우리의 직업, 심지어 우리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까지 우리의 소유가 아닌 주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런 고백이 중요합니까? 이 고백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에게 있는 것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주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믿고 주님의 것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을 잘 아시기 때문에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맡기셨습니다. 아니 사실은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결코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맡기신 재능을 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봉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충성스럽게 봉사할 것입니까?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받은 것을 그냥 땅에 묻어 두겠습니까? 대답은 지극히 분명하지 않습니까?

맡은 바 모든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믿고 맡기신 주님과 그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마음과 뜻을 다해서 충성스럽게 봉사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그 보좌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칭찬과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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