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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 30: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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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시는 하나님 (사 30:18~26)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실한 약속을 맺었습니다(렘 31:33). 그러나 백성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등 많은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치유함을 받고 회복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사 1:4-6). 이와 같은 이사야의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며 세상일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오게 되면 다시금 새로운 힘을 얻게 되고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정을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1.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1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기 백성에게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은혜를 주시고 긍휼을 베풀기로 약속하셨습니다(출 33:19).

1) 은혜의 개념

‘은혜(Χαριs)’라는 말의 뜻은 ‘값없이 받는 호의’ 또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혜택’을 뜻합니다. 
사실상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가 지으신 피조세계에 베풀어 주신 모든 조건들이 다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자기의 형상을 힘입게 해주셨고 만물을 값없이 다스리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이와 같은 자연의 은총뿐만 아니라 특별한 은총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범죄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하나님의 긍휼을 발동하셔서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은혜입니다. 어느 한 가지도 인간이 자기의 힘이나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다 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행 17:25-28).

2) 은혜의 실체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을 다 자기 스스로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처럼 착각합니다(시 14:1-3). 예수님을 모르고 또 그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이 다 은혜이지만 그 결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선민으로서받은 특권과 초자연적인 은혜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은혜의 실체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였습니다(요 1:16).

3) 은혜의 시기

이사야 49:8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고 하였습니다. ‘은혜의 때’나 ‘구원의 날’을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그 정하신 시간과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곧 은혜는 내가 원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고자 하시는 때에 베풀어 주시고 그가 정한 시간에 부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 예언한 메시야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이나, 장차 심판의 주님으로 재림하실 것도 다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체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질쳐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18절).


2.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긍휼(矜恤)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가엽게 여기고 동정함’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복음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써 기독교의 박애(博愛)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1) 죄로 인한 갈등

인간세계의 모든 불행은 죄로 말미암아 빚어졌습니다. 죄는 사람과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였고,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갈등을 빚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였고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가인이 자기 손으로 그의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창 4:8). 이후부터 인간 세계에는 골육상잔과 전쟁으로 피흘리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약 1:15)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계층 간에, 지역 간에 갈등을 빚고, 원수가 되며 서로 미움과 증오로 얼룩져 있습니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평화와 공존을 실현하고자 애를 썼지만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불행하게 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탕자 비유에 보면 아버지를 배반하고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묘사하였습니다(눅 15:11-32). 아버지는 그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다 허비해 버린 아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큰 아들의 경우는 자기 동생에 대하여 측은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를 기다리다 반갑게 맞이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하여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였습니다(눅 15:28). 사람들은 자기와 반대되는 사람을 미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3) 그리스도 안에 긍휼이 있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상입니다(요1서 4:10).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용서하시고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키고자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죄인을 불쌍히 여기셨고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도 원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눅 23:34). 예수님으로부터 긍휼을 힘입은 사람은 저도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5:7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죄에서 용서함을 받은 사람이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마 18:32-34).


3. 축복을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8절에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공정하고 의롭게 판단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1)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신명기 32:4에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공정하고 의로운 데가 없습니다. 똑같은 법의 척도를 가지고 사람마다 혈연과 지연과 학연에 따라 편리하게 적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공정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과 법도는 한 점 어김이 없고 정확합니다. 옛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으나 그의 심판이 공정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다니엘 4:37에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고 하였습니다.

2) 공정한 기준으로 축복하십니다. 

세상나라에서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라에 공을 세우고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오히려 나라에 죄를 짓고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 훈장이나 상을 받고 행세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는 기준은 정확합니다. 욥기 8:3에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2:6-8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3) 여호와를 기다려야 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사에 비유하였습니다. 이는 일정한 시기와 과정이 있음을 뜻합니다. 믿음과 봉사도 시기와 과정이 있고 그것이 축복의 열매로 돌아오는 때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고난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 같은 과정을 거치더라도 반드시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시 126:5-6).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을 헤아리시며 축복의 때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본문말씀 26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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