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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공동체 (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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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공동체 (갈 6:2)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에서 받는 직분은 높은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자리입니다. ‘집사’를 헬라어로 ‘디아코노스’(diakonos)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고대 어법에서는 ‘웨이터’를 의미했습니다. 요 2:5에 보면 ‘하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단어 역시 집사를 뜻하는 디아코노스입니다. 웨이터가 뭐하는 사람입니까? 손님이 식사할 때 편안하게 식사하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손님의 필요를 살피고 식사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웨이터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집사들은 웨이터처럼 섬겨야 하는 것이고 장로나 목사는 반장 웨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섬김에 대한 오해입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자기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섬김을 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공동체를 메마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섬겨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섬기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자녀를 섬기는 것입니다. 갓난아기가 엄마를 섬기는 것 본적 있습니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는 섬겨야 하고 아기는 섬김을 받습니다. 아기가 똥을 싸면 누가 치워줍니까? 누가 씻겨주고 누가 귀저기를 바꿔줍니까? 아기 스스로 하지 않습니다. 다 부모가 해주는 것입니다. 젖을 먹이는 것도 엄마가 아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 그 때부터 엄마를 더 바쁘게 만듭니다. 엄마는 행여나 아기가 넘어질까 해서 뒤를 따라다녀야 합니다. 아기가 움직이면서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건드리기 시작하고 집안을 온통 어지럽힙니다. 아기가 어지럽힌 것을 누가 치울까요? 엄마가 치웁니다. 학교 다니면 학비도 부모가 내줍니다. 교복도 부모가 사주지요. 용돈에 학원비에 부모는 등골이 휘도록 섬겨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이 얼마나 비쌉니까? 등록금 대기도 힘든데 용돈까지 데이트 비용까지 공급해야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시켜서 대학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자기가 번 돈이라고 자기가 관리합니다. 용돈 조금 주면서 얼마나 생색을 냅니까. 결혼하려면 결혼 비용 대느라고 힘들죠. 결혼하고 애기 낳으면 애기 봐야지요. 노인들은 돈 한 푼이라도 쓰려면 얼마나 고심하고 갈등하면서 돈을 쓰는 줄 압니까. 그러다가 죽으면 평생 모은 돈 누가 씁니까. 자식이 쓰는 겁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섬기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깊어질수록 섬김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을수록 섬겨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전보다 섬김이 많아졌다면 그만큼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 없는 교회가 교회가 아니듯, 섬김이 없는 교회, 봉사가 없는 교회도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에배 없는 교인이 신자가 아니듯 섬김 없는 신자, 봉사가 없는 신자는 온전한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함께 섬기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섬김은 능력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시고 능력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섬기려면 기도할 수 있는 영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돈으로 섬기는 것은 돈 있는 사람이 가능하지 돈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음식으로 섬기려면 음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몸으로 섬기려면 건강이 있어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남이 갖지 않은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주신 능력으로 알고 기쁨으로 섬기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45). 그리고 친히 제자들을 섬겨주셨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일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섬김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섬기는 것이 성경적인 섬김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원함으로 섬깁시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 중에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찬송하면서도 기도하면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묵상하며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주님도 우리처럼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찔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셨다면 우리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만 바라보셨다면 우리는 마귀를 아버지로 섬기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원하시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십자가 지라고 요구하십시다. 마 16:24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억지로 지는 십자가가 있고 자원함으로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는 자원함으로 짊어지신 십자가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짊어진 십자가는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입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져도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구레네 시몬을 연구해보면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도 복이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복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행 13:1에는 이방인들에게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그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에서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니게르’라는 말은 흑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시몬의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구레네 시몬은 이방인을 위해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로 유명한 안디옥 교회의 영적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 다음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시몬과 같은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구레네 시몬이 같은 동네에 사는 루기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를 말씀으로 양육한 결과,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구레네 시몬은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증거자로, 말씀으로 양육하는 교사로, 또한 안디옥 교회의 여러 가지 영적인 일을 돌보는 지도자로 쓰임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그의 가족이 복을 받았습니다. 

막 15:21에 보면 구레네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로마 사람들을 위해 쓴 복음서인 마가복음에 이름이 기록될 정도로, 그와 그의 아들 루포는 로마에까지 알려질 만큼 당시에 저명한 인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쓰는 편지 끝부분에 구레네 시몬의 아내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롬 16:13절을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루포는 십자가를 억기로 짊어진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라고 소개하는데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자기의 어머니처럼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구네레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졌는데 그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자원함으로 섬긴다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되겠습니까.

자원함으로 섬기는 것은 사랑으로 충만하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에서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말합니다. 목숨까지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2. 서로 도움으로 섬깁시다.

몸은 서로 도움을 주므로 존재하고 서로 도움을 주므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물건 하나를 들어도 온 몸은 연합하고 서로 도움을 줍니다. 눈은 보고 머리는 손을 움직이게 합니다. 한 손으로 힘들면 다른 손이 도와줍니다. 모든 일을 협력하고 서로 도움으로 섬기기 때문에 몸은 존재하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우리의 몸의 지체가 서로 돕고 협력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서로 도움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형제자매의 치명적인 상실, 절망적인 환경, 고통스러운 질병 등의 삶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우리 주변에 문제 있는 사람들을 다 도와 줄 수는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두 가지 가이드라인(guideline)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 셀 가족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펼치십시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어도 가장 먼저 내 가족에게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처럼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지체들 중에서 먼저 셀 가족에게 사랑의 손을 내미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돕지 말아야 할 사람을 돕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신앙인으로 인정을 받은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악한 아합왕과 연혼을 하였고 한번은 전쟁을 하는 아합왕을 돕다가 죽음의 위기를 경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쟁을 통해서 아합을 죽이시려고 하는데 여호사밧은 아합왕을 도왔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아합을 도운 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마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하십시오.


3. 서로 나누어줌으로 섬깁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약 교회 안의 누군가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모든 성도들이 함께 협력하여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자신의 재산을 팔아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행 4:34, 35).

저는 나눔에 대해서는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면 계산하지 말고 나누십시오. 왕상 17장에는 엘리야 시대에 3년 반의 가뭄 때 일어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가뭄 중에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서 엘리야에게 고기와 떡을 공급하시다가 시냇물이 마른 후에는 사르밧의 과부를 통해서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의 필요를 채울 것을 명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먹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때 과부는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가루로 마지막 떡을 해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가루를 엘리야에게 나눴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헌신이 복이 되게 하셔서 가루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기름병의 기름이 다하지 않는 복을 주셨습니다. 

둘째, 내가 풍족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낌없이 후하게 나누십시오. 돈이나 입지 않는 옷들 그리고 여분의 살림살이들 그 외에 쓰지 않는 물건들은 아무런 요구나 대가 없이 나누십시오. 만약 나에게 풍족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이어서 그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나누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거저 줄 수는 없어도 빌려줄 수 있는 것들은 빌려주십시오. 항상 쓰는 물건은 아니지만 집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습니다. 빌려간 사람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빌려간 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반드시 갚겠다는 생각을 하고 갚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목회적인 경험으로 볼 때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돈 문제는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교인들끼리 돈 거래는 삼가야 합니다. 빌려달라는 사람의 사정을 생각해서 빌려주는 경우에는 받지 않아도 될 만큼만 주십시오.


4. 서로 겸손함으로 섬깁시다.

릭 워랜 목사님은 겸손의 핵심은 당신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그 사람은 절대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이요 모두가 멸망을 당해야 할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은혜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정치인들을 보면 상호비방을 위하여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당은 야당 하는 일에 매사에 비방하고 야당은 여당 하는 일에 매사에 비방합니다. 정치인들의 비방전을 보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책망한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루마니아의 감옥에서 옥고를 치룬 살아있는 순교자로 불리는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전도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는 교회에 안 갑니다. 교회에 가면 위선자들로 꽉 차 있어 역겨워서 안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범브란트 목사님이 “그렇습니까? 나는 교회에 가면 편합니다. 내가 위선자이기 때문에 위선자가 많이 모이는 교회에 가면 나는 편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계인이 존경하는 성자 같은 분이지만 범브란트 목사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지 마십시오. 자기의 권위와 가치를 자신의 계층과 소유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꽃도 10일을 가지 못하고 아무리 강력한 권력도 10년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인이요. 멸망 받을 존재요.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요 천국 백성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을 봐도 교만할 것이 없는 존재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봐도 교만할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회와 다른 사람을 섬기되 겸손함으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5. 서로 은사를 사용함으로 섬깁시다.

인생이 행복하려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 은사로 섬기면 됩니다. 은사로 일하면 일도 잘 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습니다.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돼지도 힘들고, 그 노래를 듣는 사람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노래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한다면 그것은 노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코미디 때문에 즐거운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섬기려고 하지 마시고 내가 잘 하는 것으로 섬기십시오. 그래야 다른 사람도 부담이 없고 자신도 행복하고 일도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적당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독특한 섬김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목사님은 통신으로 신학공부를 하고 어떨 결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에 개척을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신학의 기초도 부족하고 성경실력도 부족하고 설교도 못하는데 이상하게 교회가 부흥합니다. 다른 목사님 한 분이 보니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라 그 목사님께 교회 부흥의 원인을 질문했습니다. 목사님이 그 질문에 답을 하셨습니다. 자신은 눈물의 은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눈물이 많습니다. 조금만 슬퍼도 눈물이 펑펑 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설교하다가 펑펑 울고 심방 가서 조금만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펑펑 웁니다. 그 눈물에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서 교회에 정착하고 목사님의 돕는 자가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눈물로 다른 사람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아픈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는 것이 큰 섬김이었습니다. 그것이 부흥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섬기십시오. 기도의 은사를 받았으면 기도로 섬기고, 찬양의 은사를 받았으면 찬양으로 섬기시고, 정리를 잘하는 은사를 받은 분은 집 정리, 교회 정리로 섬기십시오.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은사로 섬기자”입니다. 내가 은사를 받았다면 그 은사로 섬기십시오. 달란트의 비유에서 달란트를 주신 목적은 묻어두기 위해서가 압니다. 달란트를 사용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함께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자원함으로, 서로도움으로, 서로 나눔으로, 서로 겸손함으로, 서로 은사를 사용함으로 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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