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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은 사람들 (엡 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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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은 사람들 (엡 2:8~10) 

우리 주변에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행복한 삶을 보장 받았음에도 그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자신의 신분과 삶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종교적 부담에 불과할 뿐이다. 신앙생활하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시금 율법주의, 행위주의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었고, 율법의 짐을 벗겨 주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니의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 진리는 중세 천년의 암흑에서 벗어나게 한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다시금 돈을 들여 면죄부를 살 필요가 없게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는 ‘칭의’에 관한 교리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천주교에서의 칭의는 믿음에다가 행위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천주교의 칭의 = 믿음 +행위 개신교의 칭의 = 믿음

성경은 행위적 구원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틴 루터의 고민은 롬 1:17의 말씀을 통해서 해결되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미국의 유명한 방송 설교가인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 목사는 우리 인간이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런 예화를 소개하였다. 

구시대에는 식료품 가게에서 설탕이나 소금, 건어물 같은 식품을 팔 때 구식 저울을 사용했다. 한 쪽 저울에는 1kg 짜리 저울추를 올려 놓는다. 그리고 저울대가 수평이 될 때까지 설탕을 퍼서 반대쪽 접시에 올려놓는다. 반대편 쪽의 1kg 짜리 저울추는 하나님의 의라 할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본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편 쪽 접시에 우리의 선한 행위를 올려 놓으로고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사회적 범죄자들에게도 인간적 선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선행을 달아보니 100g이었다. 900g이나 부족했다. 다음 사람을 올려 놓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선행은 500g 정도 되었다. 다음 도덕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사람들의 행위를 올려 놓았다. 이사람은 소위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다. 그들의 무게는 800g 정도 나왔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거룩하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이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므로 결국 하나님의 진노 아래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900g이 부족하든, 200g이 부족하든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선행으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사도 바울이 이렇게 증거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어떤 수단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묘사했다.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롬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평안이 없다. 물질적 풍요가 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마져도 이런 탄식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고문 기술자로 유명했던 이근안 경감이 수형 생활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숨어서 피해다니고 교도소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가정은 깨어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을 악랄하게 괴롭힌 그 고통이 자신에 돌아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그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교도소에서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선한 행동을 했다할지라도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를 사망의 늪에서 건져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악랄한 고문기술자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1.은혜

사도 바울은 엡 2:2-3에서 인간의 곤고한 현실에 대하여 고발한 후,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사도 바울은 인간들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속에는 아직 죄성이란 것이 남아 있어서 자신의 구원 받은 것과 의롭게 된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의 선행으로 된 것인양 자랑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고, 의롭게 된 것이다. 내가 직분을 받은 것도, 내가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하는 것이지 자신의 의로 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신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항상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은혜를 떠나면 교만이란 것이 꼭 머리를 들고 일어나서 ‘내가’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나의 죄악된 모습을 알고 늘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어선 안된다. 


2.신분

10절 상반절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만지셨다는 뜻이다. 

1972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말리브 해안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큰 바위가 고속도로상에 떨어질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바위를 안전지대로 옮기는데만 비용이 약 9만불 정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호주의 한 조각가가 그 바위를 100불에 샀다고 한다. 자기 작업장으로 옮기는데만 2만5천불이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8주 동안 열심히 그 바위를 두드리고 깨뜨리는 작업을 했다. 위험하고 쓸모 없던 바윗돌이 미국의 힘과 정의의 상징적 존재인 영화배우 존 웨인 흉상으로 변한 것이다. 그 흉상은 1백만 달러에 팔려서 지금 폴 게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백불짜리 바위덩어리가 백만불짜리 명품으로 변한 것이다. 브렛 리빙스턴 스트롱이란 조각가에 의해서..., 하나님이 만지시면 돌덩이 같이 보잘 것 없는 인생도 명품 인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이제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것이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고 그 사람들의 심령 속에는 거룩한 영이신 성령이 내주하신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되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내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며, 썩어질 이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엡 2:8-9은 잘 알고 있는데 10절의 말씀은 잘 모른다. 그래서 시시하게 패배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를 삼으신 아버지의 슬픔이 되는 것이다.

제가 처음으로 승용차는 타게 되었다. 13년된 봉고차 몰고 다니니 존경한다는 말도 들었고, 빈티 내고 다닌다는 비난의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13년된 봉고차 몰고 다녔어도 조금도 자존심 상한 적 없었다. 좋은 차 타고 다니는 사람들 부러워한 적도 없었다. 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 요즘 청와대 비서관(차관)들이 ‘모닝’같은 소형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에쿠스 승용차 탄 사람이 재빨리 내려서 모닝에서 내린 사람에게 절을 한다는 것이다. 
비싼 명품 사려고 빚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기 바란다. 5천원짜리 싸구려 옷 사입어도 명사가 입으면 명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불행은 자신이 명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고,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되었고, 내 안에 거룩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이미 된 것이다.

최고의 조각가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만지셔서 이미 돌덩이 같이 볼품 없는 나를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거룩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기 바란다. 자신을 값싸게 취급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다. 나는 거룩한 성전이다. 당당하게 살라.


3.목적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마다 하는 일이 다 다르다. 똑같이 하루 세끼 밥을 먹지만 어떤 사람은 일당이 백만원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5만원인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물론 우리가 생업을 위해 자신의 직업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생업 말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일들이 있다. 사도 바울는 그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이라고 했다.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도 인류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말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기 위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내셨고,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선한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석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주장할 수 있겠으나 적용적 입장에서 나는 3가지로 증거하고 싶다.

1) 자신에 대하여 - 성화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 타인에 대하여 - 서로 사랑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 사명에 대하여 - 복음전파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난 27일, 서울 논현동 고시원 화재로 목숨을 잃은 중국동포 합동 장례식이 있었다. 정부 언론 시민단체마저 외면한 상태에서 서울의 몇 교회가 연합해서 장례를 치러주고 위로금 7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비난의 소리만 듣다가 칭찬의 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반가웠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 기저귀 찬 어린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의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1)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이전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저주 받을 존재였다가 그 은혜로 구원받고 의롭게 된 사실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다.

2) 신분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과거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성전이요, 소망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3) 목적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은혜 받았어도 주 안에서 분명한 목적과 목표가 없다면 방황하게 된다. 자신을 넘어 이웃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인 것이다. 내게 주신 은사를 따라 열심히 섬기라. 
나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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