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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요 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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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요 3:14~16)


국민일보 2001년 2월 21일자 신문에
[ 탈주범 신창원 - 독실한 기독신자되다.  
                 증오심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 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창원이란 사람 - 십대 때 강도 살인으로 무기수로 부산교도소에 복역하다 탈옥하여 강도 절도를 일삼으며 경찰들을 우롱하고 2년 6개월 동안 도피행각을 벌였던 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평생 어릴 때부터 누구로부터 사랑이란 걸 
      받아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하고 살았던 탈주범 신창원이 
감옥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이 한마디에 
          굳었던 그의 심령이 녹아지기 시작하고 
          예수를 믿게 되고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내일의 가족들과 
초청 받아 우생순의 날 예배에 참석한 새가족 여러분들에게도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1.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16절)
본래 하나님이 창1: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합니다.
특히 여섯째 날에 사람을 지어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합니다.

그리고는 창1:28절에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하시며 
         행복한 삶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창3:에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따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는데
       지산 낙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여자는 해산의 수고를, 남자는 평생 동안 땀 흘리며 수고해야 하며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쉼을 얻을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렸습니다.
행복을 잃은 인간은 삶을 살아갈수록
경제문제, 가정문제, 건강문제, 정신적 공허 등을 통해 고통을 당합니다.

이 고통을 잊기 위해서 
오락, 취미생활, 스포츠, 도박, 기 수련, 심지어는 술, 마약에 빠져보지만
      결국은 만족이 없고 공허만 느끼고 고통은 가중해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마귀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고, 점을 치고, 굿을 하며, 미신을 지키며
       이사, 결혼 날짜, 묏자리 심지어 대문 방향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한번은 강창 둑을 지나가는데 
젊은 부부가 바싹 마른명태 머리에 실타래를 감아두고 새 차 앞에 절하고 있어요.
왜 그럽니까? 물으니 안전운행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안전운행이 보장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구원을 모르니깐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문명인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에는 늘 불안, 허무, 우울증, 노이로제 등 걱정 근심 벗어날 날이 없고           
심지어는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가위 눌리고 우환에 늘 시달립니다.
그리고 육신에는 왠지 피곤하고 원인모를 질병이 찾아옵니다.
병원에 가면 다 신경성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영혼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인간이 하나님 떠나  마귀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이상 행복이 없습니다. 
더 불행한 것은 자기만 여기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까지 구렁텅이에 빠트려 놓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함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전모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면? 


2.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되 어떻게, 어느 정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까?(16절)

오늘 성경은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내게 주신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 아니었습니다. 
    아파트가 아니었습니다. 주식이나 증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주만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전을 다 펼쳐놓고 찾아본들 
  어떤 단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어서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49:15절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는데 천하에 사랑할 대상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한다.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라는 책에 보면 
 `래리 제임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기가 사랑했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한평생 도와 준 좋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특수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어머니를 병문안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몰라봐요.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그래서 아들은 이런 기도를 했답니다. 
[ 하나님 한번만 우리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아들아!` 이렇게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 엄마를 도와주세요. ]  

그런데 병세가 계속 악화되어 무의식 상태 속에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가실 모양이다` 생각하고는 식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의식 상태 속에 있던 어머니가 정신이 나신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 하고서 아들이 엄마의 손을 딱 잡았더니 
       엄마가 손을 펴더니 아들의 손등을 세 번 두들기더래요. 
그러니 아들의 눈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어요. 아버진 벌써 돌아 가셨지만, 
어머니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아버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손으로 아버지 손등을 두 번 두드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의식 상태에서 깨어난 엄마가 갑자기 아들의 손등을 세 번 두드린 겁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나지막이 말합니다. 
[ 누군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란다. ] 
그때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고생하던 모든 수고가 
     가슴에 뜨거운 눈물과 함께 말끔히 씻겨버리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은 
우리의 손등을 세 번 두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아들의 손에 못을 밖는, 천지가 진동을 하는 소리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이처럼, 이처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습니까?


3. 하나님이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16-17절)

16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은 세상의 삶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이태리 밀라노 대성당에는 문이 셋이 있는데
첫째문은 아치로 되어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 글이 새겨져 있고
둘째문은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는데 “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 
셋째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가장 짧게 정리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영원을 모르는 삶은 이것은 마치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입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같이 놀았습니다.
[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 ] [ 내일이 뭔데? ]
[ 내일은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것이 내일이야 ]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이 말을 듣고도 이해를 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 모르면 이 땅의 삶이 다 인 것 같이 삽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이 땅의 삶이 다가 아니라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이라고 해서 다 똑 같은 삶은 아닙니다. 

히9:27절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느니라 ] 

계20:15절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느니라 ]

이 말은 이 땅의 삶이 다가 아니라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모르는 영혼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 있는 곳 즉 불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설령 죄인이라 할지라도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하여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대신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4.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생 즉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15-16절)

15절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롬10:9-10절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리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요5:24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30여 년 법조계 몸담고 있던 <김 성진 검사>란 분이 
     위암으로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눈에 쌍심지가 돋을 만큼 역정을 내던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딸이 예수를 믿어 교회를 나갔는데 
위암 말기가 되어 희망이 없으니깐 
목사님에게 마지막으로 심방을 요청해 아버님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목사님도 김 검사를 잘 알기 때문에 심방 가는 것이 퍽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부탁이니 하는 수 없이 병원 심방을 갔는데 
별 할 말이 없어 딱 1분만 기도하고 내일 또 오겠다. 하고 돌아 왔답니다.

다음날 부득이한 일이 생겨 부목사를 심방을 보내게 되었는데
부목사도 “목사님, 그렇게 무서운 분인데 제가 어떻게 심방을 가요?” 하며
          별로 달갑잖은 표정입니다. 
그래도 어떠합니까? 담임목사가 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부목사님이 심방을 갔는데 
김 검사가 부목사는 만만했던지 
“목사님 거기 좀 않으십시오.” 하고는
수십 년 검사생활에 직접 담당했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온갖 비리를
    쉴새없이 쏟아 놓으며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시간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듣기만 했습니다.
목사 장로가 그 모양인데 나 보고 무슨 예수를 믿으라는 거지요 라는 말입니다.

한참 후에 그래도 부목사가 나도 한마디 해야 되겠다 싶어
“선생님 제가 성경 한 곳을 좀 읽겠습니다”하고는 

고후5:15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이 말씀은 절대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오래 믿은 교인도 이 말슴이 귀에 쏙 들어오기 힘드는데 
이 어른이 이 말씀을 듣고 나더니 갑자기 “그것 내가 좀 봅시다.” 하고는 
   한참 성경을 보더니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놀란 사람은 부목사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이었습니다.
이분은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아랫사람들 앞에서는 냉수 한 사발도 후루룩 마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 역사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때 부목사님이 “이 말씀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설명을 해 드릴까요?”
                  하니 그러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인데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니 고개를 꺼떡이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예수를 믿으시겠단 말입니까?” 
“예 믿겠습니다.”
그렇게 악담을 퍼붓던 예수쟁이였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예수님이 잘못된 게 아니고 내가 만난 사람들이 잘못된 것입니다.”하며
          계속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이 분이 왜 성경 말씀 한마디 듣고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 잘못 살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잘못 살았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할 인생이 너무 나를 믿고 헛되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며칠 후에 이분이 가망이 없어 
한 달 시한부 인생이 되어 퇴원하여 집에 와서 누워있었습니다.
누워서도 노상 기도하고 찬송 테이프 털어 놓고 하나님만 찾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분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검사 법관들이 병문안을 오는데 오는 사람에게 마다
“자네 예수 믿게 나는 너무 늦게 믿었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일찍 예수 믿게” 
     하고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병이 중해지고 너무 탈진하니 사람이 와도 말을 못합니다.
그러니 이 어른이 아들을 불러 큰 종이에다가 
       <예수 믿으시오> 라고 쓰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베게 밑에 넣어 두고 오는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예수 믿은 사람이 한두 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날 교회 목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게 되는데 기어코 일어나서 벽에 기대어 세례를 받는데
“하나님 내가 너무 바보였습니다. 내가 너무 멍청했습니다.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떠나가기 직전 5남매를 불러 놓고는
“나는 인생에 실패했다 내 인생에 주인이 나인 줄 알고 살았다.
      너희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라.
 이것이 내가 남길 유일한 유산이다”
그리고 그 분은 평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우리 아버지 돌아가실 때가 되니 마음이 약해지는구나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버지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벼락 치듯이 회오리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려 왔읍니다.
그런데 창문 밖 마당에 대추나무가 있는데 잎사귀 하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말씀하신 예수님이 오셨읍니까?”하니                
       눈을 뜨고 환한 얼굴로 창문을 가리키더라는 것입니다.  
이 분이 병상에서 하는 말이
“내가 살아나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예수님 전하며 살고 싶다”고 했답니다.

사실 이 아들은 연세대학 신학과를 나왔는데 
예수를 믿지 않은 체 뉴욕에서 광고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캠프스에서 만난 장로 딸과 결혼을 했는데
           이 딸마저 남편 따라 신앙을 저버리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결혼식도 어머니가 너무 불도가 심해
결혼식장에 반은 교회 목사 장로 교인들이고 
           반은 절에 스님 그리고 보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님 임종을 보고 예수를 다시 믿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뜨겁게 믿는지 십년이 넘도록 일과를 마치면 
       날마다 전도지를 들고 뉴욕의 지하철에 나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택은 오가는 목회자들 쉴 수 있도록 숙소로 사용하며 섬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유명 사찰 스님 찾아다니며 참선을 하는 불도가 심한 사람인데          
지금은 사랑의교회 권사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딸과 사위도 미국 컬럼비아 의대를 나와 
의사 세 명을 둔 큰 치과를 하는데 자기 부인한테 
“당신은 회사 과장 마누라다 생각하고 살아라.” 하고는
수입은 모두를 선교를 위해 바친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너무 기가막힌 한편의 복음 드라마가 아닙니까?
복음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란 것입니다. 
여기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16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 

이 말씀은 우리가 듣고 믿고 구원을 얻는데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이 복음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 검사같이 회심하고 구원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얻는 방법을              
믿음이라고 하면서 그 믿음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5.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14절) 

그 사건이 무엇인가 하면 14절에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하면서
광야에서 일어난 놋뱀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놋뱀 사건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해 주는 사건입니다.

민22:3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때
길 때문에 백성들이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불평하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살려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들면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 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데
     또 뱀소리 한다고 하면서 그냥 죽어갔지만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은 [ 쳐다본즉 살더라 ] 고 합니다.
고개 까딱하는 것 -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라고 합니다. 공짜란 말입니다.

왜? 사람들이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 즉 구원얻는다 하니
그런 것 있으면 너나 믿으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짜 없는 세상 살다보니 은혜라 하니 실감이 안 나는 거지요.
맞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이 사실이 믿기어 진다는 것이 되려 이상하고 기적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 문을 열어야 믿기어 집니다.
계3:20절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마음 문 열고 예수님의 내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요1:12절 [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오늘부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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