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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귀중히 여김을 받으라 (잠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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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귀중히 여김을 받으라 (잠 3:1~4) 

 
사람의 가치

초등학교 시절인지 중학교 시절인지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도덕 교과서에 이런 말이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꼭 필요한 사람’이고, 둘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고, 셋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여러분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지요?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정말 세상에는 어디를 가나 그곳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곳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사람, 한 마디로 암적인 존재인 사람들인 것입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라면 참 불행하지요. 불쌍하지요. 하물며 “저 사람은 정말 없으면 좋겠어. 암적인 존재야. 저 사람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입어” 하는 그런 존재가 된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가정에서, 회사에서, 이웃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진 존재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이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꼭 필요한 존재’가 있는가 하면 ‘있으나 마나 한 존재’도 있고 ‘있어서는 안 될 존재’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하나님 앞에서 전혀 쓸모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아무리 못나 보이고 모자라 보여도 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름대로 가치를 갖습니다. 다 하나님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보았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꼭 필요한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는 ‘최고의 가치를 가진 사람,’ ‘작은 가치를 가진 사람,’ ‘별로 가치가 없는 사람’ 이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그렇습니다. 분명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가치도 정도의 차이가 분명하게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가 볼 때는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다이아몬드도 전문가들이 보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다이아몬드 이야기를 하니까 갑자기 여자분들 눈이 반짝반짝합니다만 이 보석 중의 여왕이라고 하는 다이아몬드도 똑같은 크기에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르답니다. 

특히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4C라고 부르는데 이는 Clarity(투명도), 즉 불순물이 없고 표면이 깨끗할수록 비싸다는 뜻이고, Color(색상), 즉 푸른색을 띤 블루 다이아몬드 등이 무색 다이아몬드보다 비싸다는 뜻이요, Cut(연마 상태), 같은 다이아몬드도 어떻게 커팅을 해서 잘 자르고 가공했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고, Carat(무게)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4C의 기준에 따라 같은 1캐럿의 무게라도 몇 십 만 원짜리부터 천 만 원이 넘는 것까지 수 십 수백 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똑같습니다. 얼핏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 비슷하게 보입니다만 하나님의 전문가적인 눈으로 보실 때 사람마다 엄청난 가치의 차이가 납니다. 물론 모든 성도가 다이아몬드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다 귀하지만 그 가치의 차이는 몇 십 만 원짜리가 될 수도, 몇 천 만 원짜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를 판가름할 기준은 과연 무엇이냐는 말이지요. 마치 다이아몬드의 4C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을 판단하고 감정할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이 기준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조건과 상급

먼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잠언 3장 1~4절을 봅시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문학적 구조가 나옵니다. 함께 볼까요? 1절에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내 아들아.” 이 말은 잠언에 자주 나오는 표현입니다. 잠언에 나오는 많은 교훈이 “내 아들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잠언을 쓴 솔로몬 임금이 실제 아들인 르호보암을 부르는 말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당시 학자들이나 선생들이 제자를 부를 때도 “내 아들아” 하고 불렀기 때문에 스승이 학생을 부르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 아들아” 하는 말은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아들아” 하고 부르는 말 뒤에 어떤 내용이 나옵니까? “...하지 말고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그리하면 ...하며 ...하리라, 이런 말이지요?

이번에는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3절도 1절과 똑같이 “...하지 말고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랬더니 4절 역시 2절과 마찬가지로 “그리하면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지금 국어시간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성경에 어떤 문학적인 구조가 나오는지 살펴보는 것도 성경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할까요? 1절과 3절은 조건입니다. “... 하지 말고 ...하라” 식입니다. 2절과 4절은 그 조건을 충족시킬 때 따라오는 상급입니다. “그리하면 ... 하리라” 식입니다.

자, 이제 국어시간 마치고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봅시다.

1절에 나오는 조건은 이것입니다. 뭘 하지 말고요?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뭘 하라고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법’이란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잊지 않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하는 조건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그 명령대로 잘 지키며 살라는 뜻이지요. 

2절에는 우리가 이렇게 살 때 주어지는 상급이 나옵니다. 그리하면 ‘장수와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수’와 ‘평강’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장수, 즉 오래 오래 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저도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 테니까 여러분 모두 아흔 살, 백 살까지 건강하게 장수하기 바랍니다. 

아흔 살, 백 살 하니까 좀 징그러우세요? 아니지요. 우리 교단의 큰 어른인 영등포교회 방지일 원로목사님은 지금 98세신데도 얼마나 건강하신지 모릅니다. 지금도 외국으로 집회 나가실 정도로 강건하십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모세도 죽을 때 나이 120세인데도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고 한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면 이렇게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많은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장수와 건강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도 120세까지는 몰라도 90세, 100세까지 살면서 건강하게 하나님 일 잘 감당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장수’라는 복에 조건이 하나 붙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히브리말로는 ‘샬롬’입니다. 왜 이 말이 붙어야 하느냐? 무조건 장수하는 것이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연세가 많지만 너무 건강한 권사님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권사님, 이렇게 건강하게 장수하시니 참 좋으시겠습니다” 했더니 그 권사님은 “감사합니다” 소리도 안 하고 “목사님, 무슨 말씀이세요. 전 빨리 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권사님이 그렇게 오래 사시면서 아들 하나는 먼저 하늘나라 보내고, 또 다른 아들은 사업 실패해서 도망 다니고, 딸은 결혼에 실패하는 참 불행한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권사님에게는 장수가 복으로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불행으로 느껴진 것이지요. 그래서 장수에는 반드시 ‘평강’이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강’이라고 번역된 히브리말 ‘샬롬’은 단순히 평화나 평강뿐 아니라 복지, 번영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말은 장수하면서도 샬롬의 삶을 사는 것, 잘 되고 행복하고 번영하는 삶의 질(質, quality)을 뜻하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3절과 4절에도 ‘조건과 상급’이 나옵니다.

먼저 3절에 나온 조건에는 뭘 하지 말고 뭘 하라고 했습니까?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목에 매고 마음판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인자’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또 ‘진리’란 성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그 성실하심을 목걸이 걸 듯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잘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돌판에 글씨를 새기면 안 지워지는 것처럼 이 인자와 진리를 마음판에 깊숙이 새겨서 절대 안 지워지게, 절대로 잊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전에 제가 이런 말을 했지요? 흔히 머리 나쁜 사람 보고 ‘돌◯◯◯’라고 한다고요. ‘돌대가리’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돌대가리는 나쁜 머리가 아닙니다. 돌은 글씨 새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새겨 놓으면 절대 안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진짜 나쁜 대가리는 ‘돌대가리’가 아니라 ‘물대가리’라고 해야 맞습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정말 돌판에 새기듯 하나님의 사랑과 성실하심을 우리 마음판에 깊숙이 새겨서 절대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4절에 그에 따른 상급이 나옵니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은총’은 ‘호의’라는 뜻입니다. 또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히브리말 원어로 보면 ‘좋게 생각한다, 잘 보인다’는 뜻입니다. 귀하게, 선하게 평가 받는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저 친구 괜찮은 친구야, 좋은 사람이야, 훌륭한 친구야” 하고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또한 하나님께도 “너 참 괜찮은 성도다, 참 훌륭하고 가치 있는 성도다”라고 좋게 평가 받는다는 뜻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같은 교회 다니는 성도라도, 이 자리에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는 성도라도 하나님 앞에 높은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잠언 3장 1~4절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평가 기준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4C라는 기준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성도를 평가하는 네 가지 기준이 본문에 나오는데 먼저 1절에 두 가지 기준이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둘째 “네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3절에도 두 가지 기준이 나옵니다. 셋째,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넷째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입니다. 

그렇습니다. 4C라는 기준에 의해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 가격이 수십 수백 배 차이 나는 것처럼 같은 성도라도 이 네 가지 기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의 가치는 수십 수 백 배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이 네 가지 기준에 얼마나 합당한 성도냐?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 감정(鑑定)하시기에 얼마짜리 성도냐?” 하고 말입니다.

둘째 교훈은 이것입니다. 이 네 가지 기준을 잘 지키는 사람은 어떤 복을 받느냐? 물론 3절에 약속하신 대로 장수하고 샬롬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4절에는 이보다 더 큰 복을 약속하십니다. 바로 사람 앞에서, 그리고도 하나님 앞에서 은총 받고 귀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호의를 사고 좋은 평가를 받고 가치가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도 아니요, 그렇다고 있어서는 안 될 존재도 아니요, 정말 꼭 필요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정말 가치 있는 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보면 사람 앞에서 귀한 사람이요 높이 평가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는 귀한지 모르나 사람들 앞에서는 천시 받고 쓸모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둘 중에 어느 한쪽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크리스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앞에서도, 그리고 사람 앞에서도 다 은총 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입니다. 두 쪽 모두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런 사람, 이런 성도 되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귀하게 평가 받고 인정받고 귀한 인생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코람 데오(Coram Deo) 존귀히 여김을 받는 귀한 존재 되기 바랍니다.


퇴임하는 분들, 임직하는 분들, 그리고 성도들에게

오늘 오후 4시에 우리 교회에서 퇴임식과 임직식이 있습니다. 오늘 원로장로로 추대 받는 현세강장로님, 그리고 은퇴하시는 안예준, 정정례 두 분 권사님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평생 교회를 섬긴 그 아름다운 충성과 공로를 치하 드립니다. 또한 오늘 임직 또는 취임하실 두 분의 장로님, 스물 두 분의 안수집사님, 쉰 두 분의 권사님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임직식 때 또 한 분을 기리며 공로패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27년 동안 교회를 섬기며 충성하시다가 작년 이맘 때 천국 가신 이성환장로님입니다. 물론 부인이신 박명자 권사님이 공로패를 대신 받게 되시지요. 그런데 이번에 이성환장로님, 현세강장로님, 안예준권사님, 정정례권사님 네 분에게 공로패를 드리면서 그 패에 어떤 성구를 써넣을까 고민하다가 이 두 구절을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7년 동안 교회를 섬기다가 천국 가신 이성환장로님은 분명히 이 마태복음 13장 43절 말씀처럼 아버지 나라,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실 것입니다. 또한 원로장로, 은퇴권사로 추대 받는 세 분은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서 서면 이 마태복음 25장 21절 말씀처럼 반드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 천국잔치에 참여할지어다”하는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들은 바로 다이아몬드 같은 분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다이아몬드요 성도들의 다이아몬드입니다. 그것도 수십 만 원짜리 싸구려가 아니요 하나님의 네 가지 기준에 꼭 맞는 가장 최상품, 가장 값비싸고 가치 있는 다이아몬드입니다.

이번에 임직 받을 우리 후배 장로 집사 권사님들도 이 분들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꼭 이 분들처럼 다이아몬드가 되기 바랍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먼저 가치 있고 인정받는 다이아몬드 장로 집사 권사가 되시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에게도, 성도들에게도, 그리고 나아가 주변 모든 사람들과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인정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는 그런 다이아몬드 같은 분들이 되십시오.

오늘 설교 후 부를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찬송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을 쓴 존 뉴튼(J. Newton)은 탕자 중의 탕자였습니다. 뉴튼은 뱃사람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배를 타면서 방탕하고 음란한 삶에 빠져 살았습니다. 군인이 되어 배를 탔다가 탈영하는 바람에 붙잡혀 중 범죄자가 되기도 하고 노예선 선장이 되어 노예를 사고파는 죄도 저질렀습니다. 정말 거친 돌멩이 같은, 남들이나 걸려 넘어지게 하고 상처나 주는 돌멩이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을 만난 뒤 목회자가 되고 가장 위대한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를 만든 보석 같은, 다이아몬드처럼 귀하고 가치 있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기왕 하나님 믿었으면, 기왕 세상에 살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돌멩이가 아닌 보석이, 그것도 보석 중의 보석인 다이아몬드 같은 가치를 가진 그런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여섯 주 동안 나눈 ‘코람 데오’(Coram Deo) 시리즈 설교를 마치면서 오늘 퇴임하고 임직 받는 모든 분들뿐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 모두가 이 코람 데오의 신앙을 가진, 참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한 사람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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