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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에 합당하게 (빌 1: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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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하게 (빌 1:27~30)  

CBS '새롭게 하소서' 라는 간증프로그램의 MC 고은아 권사는 60세를 넘긴 나이지만 늘 웃음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그녀는 서울극장 대표이면서, NGO의 기아대책 기구인 '행복한 나눔'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고은아 권사는 처음부터 열심 있는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러 기도원에 갔다가 성령의 역사로 회개와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자신이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교만하게 살아 왔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려고 모든 활동을 접고 기도하며 새로운 일을 준비하던 중 '새롭게 하소서' 제작진으로부터 MC 제의를 받고 일하게 됩니다. 그녀는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고 고백합니다. 잠시 방송을 떠났던 그녀는 아프리카 봉사에 이어 인도의 빈민촌 봉사까지 다녀오게 됩니다. 오래 앉아있는 것이 힘든 그녀는 연이은 봉사활동으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져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간증합니다. "오랫동안 앉아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치료를 받게 하시고 체력을 만들어주신 거예요. 방송국에서 다시 와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 오래 앉아있을 수 없고, 눈이 안 좋아 강한 조명을 받을 수 없기에 힘들다고 거절했었거든요." 그녀는 거듭된 요청에 방송을 결정하고 녹화하던 첫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힘들기는커녕 새 힘이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기처럼 호흡 속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라고 그녀는 간증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해 달라고. 프로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그래야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은아 권사, 그녀야말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빌립보(Philippi)는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중요한 군사기지로 삼고 전쟁에 공을 세운 퇴역군인들을 이주시킨 곳입니다. 식민지 빌립보 사람들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하고 동동한 권리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로마의 언어를 쓰고 로마식으로 옷을 입고 로마의 풍습을 따랐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의 시민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로마 시민답게 일등 시민임을 자랑하며 살고 싶어했습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빌립보 사람들이 로마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것처럼 이제 복음을 통하여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시민답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천국 시민권에 걸맞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의 '합당하게'는 '아크시오스' 로서 '가치에 맞도록 행한다' 는 뜻이며 가치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또 '생활하라' 는 '폴리튜에스테' 로 '시민답게 살라' 는 뜻입니다. 즉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에 천국 시민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살 때 복음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첫째로 한 뜻으로 협력해야 

기러기는 이동할 때 V자 형태로 무리를 지어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V자 형태로 날아가면서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 짓하면 그 바람의 힘이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준다고 합니다. 이것을 양력이라고 합니다. V자 형태로 무리를 지어 날아가면 혼자 날 때보다 무려 75%나 힘이 덜 든다고 합니다. 제일 앞에 날아가는 기러기는 빨리 지치기 때문에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날아간다고 합니다. 기러기들은 날아가며 끼룩 끼룩 소리를 냅니다. 서로 방향을 알려주며 격려하는 소리입니다.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해 날지 못하면 반드시 서너 마리가 함께 머문다고 합니다.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료의 불행을 외면하는 법이 없이 서로 협력한다고 합니다. 미물인 기러기의 모습도 이러한대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합니까? 

본문 27절입니다. "너희가 일심(一心)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여기서 바울은 성도가 지녀야 할 생활태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마귀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귀와 싸워 이기려면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해야 되겠기에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악한 세력은 성도들을 넘어뜨리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그때나 지금이나 방해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지 못하도록 역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한 뜻으로 복음을 위해 협력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의 '협력' 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쉬나 쓸룬테스' 로서 승리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한 뜻으로 협력하며 승리로 이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은 개인적 믿음의 고백으로 주어지나 신앙의 성장은 혼자 서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계급으로 이루어진 조직체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유기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연결된 세포와 같기 때문에 모든 지체는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한 뜻을 품고 협력하며 서로 돌아볼 때 복음에 합당한 삶이 이루어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대적을 두려워 말아야 

1948년 루마니아의 범브란트(R. Wurmbrand) 목사는 루마니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될 때 체포되어 14년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예수의 십자가와 바울이 감옥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며 고통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마지막 3년은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서 말 못할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수백 번 성경을 읽다가 곳곳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 는 말씀이 몇 번이나 있는지 헤아려 보았더니, 삼백 예순 다섯 번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 는 말씀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석방이 되자 그에게 자유세계로 망명하라고 주위에서 권유합니다. 그러나 그는 루마니아를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공산치하에서 끌려가 또 고생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루마니아에 남아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복음에 합당한 자의 삶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여기의 '두려워한다' 는 원문의 뜻은 '겁을 먹은 말 같이, 놀란 새 같이' 라는 뜻입니다. 겁을 먹은 말이나 놀란 새처럼 나약해서는 안 되고 항상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결코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핍박이 있더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적하는 사람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적이 우리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면 이는 자랑거리입니다. 영광스러운 일이 됩니다. 따라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면 반드시 승리가 보장됨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대적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더욱 담대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어떤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고난도 기꺼이 받아야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던 선교사가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한 달 동안 생활비도 도착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일 보리죽과 깡통에 든 분유만으로 목숨을 연명하였습니다. 선교사는 너무도 힘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30일정도 지나자 그토록 심했던 질병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생활비도 다시 오게되어 식량을 구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해 지난 후 안식년으로 귀국한 선교사는 당시 힘들었던 경험을 간증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의사가 찾아와 그 질병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선교사님의 생활비가 제 때 왔더라면 선교사님은 오늘 살아서 저와 대화를 하지 못했을 뻔했습니다. 사실 그런 소화장애 질병은 30일간 보리죽 처방을 해야 낫는 병입니다." 그제서야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웁게 자기를 돌봐주셨는지를 깨닫고 감사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를 위한 고난을 기꺼이 받았더니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기꺼이 받으면 하나님께서 이길 힘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9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여기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이라는 말은 '너희에게 은혜가 주어진 것은' 이란 뜻입니다. 즉 고난을 받는 자는 고난 그 자체가 이미 은혜라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 것은 주와 하나 되는 상태입니다. 이는 좋은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도 같이 나누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복음에 합당하게 살려면 고난도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현대 교인들은 편안하고 쉽게 신앙생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힘든 것을 피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힘든 것, 고통스러운 고난까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더 강한 믿음의 군사로 태어나야 합니다.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며 극복할 때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자가 되어지며 또한 하나님께서 승리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린다' 는 뜻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성도는 좋은 때만이 아니라 나쁠 때도 변함이 없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는 성도라면 고난까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까지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크신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렵다고, 힘들다고 고난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하게 살려면 고난이 닥쳐와도 변함 없이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힘이 들어도, 마음에 안 들어도 예수를 좇아가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자의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남은 바 생애 동안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천국 시민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한 뜻으로 복음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코 대적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음을 은혜로 알고 기꺼이 감당하심으로 승리를 얻는 복음에 합당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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