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에 비례하는 행복 (신 8:11~18)

  • 잡초 잡초
  • 289
  • 0

첨부 1


감사에 비례하는 행복 (신 8:11~18)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11-18)

며칠 전 교우들과 함께 야외를 나갔습니다. 벌써 단풍이 짙어 온 산야가 아름다운 색깔들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있었습니다. 풍년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풍성한 곡식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가을이오면 생각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훌쩍 먼 여행을 떠나고 싶다 했고, 어떤 이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문구가 떠올라 책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웁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다 했습니다. 어떤 이는 가을이 오면 낙엽을 밟으며 시를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두 가지 생각이 납니다. 하나는 풍성함에서 오는 행복감이요, 다른 하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의 흥분이 제게는 있는 듯합니다.

낙엽을 밟으며 옷을 벗은 듯 맨몸을 드러낸 감나무의 발갛게 익은 감들을 보노라면 또 한 해를 무사하게 보살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가슴을 메우곤 합니다. 

많은 이들이 가을이 오면 행복을 느낍니다. 넉넉한 가을이 주는 귀한 선물입니다. 또 가을이 오면 감사할 일들이 생각납니다.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웁고 오랜 친구가 보고 싶은 이유가 이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행복과 감사는 함께 가는 것들인가 봅니다. 어떤 분의 책을 읽다가 감동적인 문장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흔히 우리는 행복할 때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원인이 감사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영어책에서 같은 의미의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감사하는 당신의 능력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Your happiness is directly proportional to your ability to be grateful.)

감사하는 능력이 행복을 만들어 내는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감사하려는 의지에 비례 한다”라는 문장이 여기서 왔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요, 공통적인 삶의 목적일 것입니다. “행복하세요”, “복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이유도 바로 행복한 삶이 가장 큰 소원이요 바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집니까? 한 가지 대답밖에는 없습니다. “감사하세요!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옳습니다. 결혼식 주례 때마다 제가 신혼부부에게 부탁하는 권면이 있습니다. ‘작은 친절에 늘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아내의 작은 친절, 예를 들면 차 한잔을 주었을 때, 넥타이 한번 매어주었을 때, 따뜻한 밥상을 차렸을 때, “여보, 감사해요!”라는 감사의 표현은 아내에게 큰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남편이 콜라병 뚜껑 하나를 따주어도 “감사해요!”하면 남편은 행복을 느낍니다. 이와 같이 감사의 표현은 행복을 만드는 기계입니다.

더구나 감사는 상대방에게 삶의 에너지를 만들어준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감사할 때 그가 감동을 받고, 감동은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에너지는 삶을 왕성한 활력이 넘치게 하고 행복을 만들어 줍니다. 따라서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말은 옳은 표현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감사는 무엇입니까?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감사는 하나님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일들을 궁극적으로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셨던 그 은혜의 날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감사입니다. “추수감사절”을 큰 명절로 지키는 서양 국가들은 추수감사절기가 모든 휴일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날이라고 말합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가장 많이 나기도 하고, ‘가족모임’(Family Reunion)이 우리의 추석명절 때처럼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날이라 밤 지새워 놀다가 피곤한 몸으로 운전을 하기 때문에 자동차 사고가 제일 많이 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다음 날이 ‘빅 세일’(Big-Sale) 기간이어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추수감사절은 위험한 날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위험한 것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무신론적 사고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우리의 번영, 우리의 좋은 삶, 우리의 많은 축복들, 이런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으로 이뤄냈다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어떤 사회학자가 지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부모도 없습니다. 선배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오직 제 힘만 믿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신명기의 말씀은 그런 위험을 경고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집트 왕 바로의 폭정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울부짖는 고통을 들으시고 직접 모세를 보내셔서 출애굽 시켰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날 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원수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을 때 하나님이 직접 원수들을 패퇴시켰습니다. 심지어는 태양을 멈추면서까지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땅의 주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방족속들이 쳐들어오면 하나님이 천군천사를 보내어 격퇴시켜주었습니다. 샘물이 솟게 하고 푸른초장을 이루게 하시고 양과 소를 기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삶에 간여하셔서 번영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풍족한 삶을 누리는 그들의 기억에서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능력과 수고만 앞세웠습니다.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 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1-16) 

하나님을 잊을 때는 나쁜 시기가 아닙니다. 좋은 시기입니다. 좋을 때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많은 것들에 의해 점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자만도 거기서 나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제 능력으로 모든 것을 얻었고 제 재주로 잘 살게 되었다고 자만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이렇게 꾸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신 8:17-19)

아무리 재주가 좋고 머리가 좋아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날지, 언제 태어날지에 대해 내 마음대로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태어났을 수도 있고 지난번 지진으로 폐허가 된 중국의 쓰촨성에 태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날마다 폭탄을 피하느라 공포 속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맘대로 부모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학교나 담임선생님을 우리 맘대로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좋은 학교에서 별탈없이 공부하며 성장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전염병이나 장애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여기 앉으신 분 가운데 60대 이상은 6.25전쟁의 환란 가운데 있었던 분들입니다. 어쩌면 오늘의 내가 될 수 없었던 환경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모두 생존해서 오늘의 “나”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아무도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나는 어떤 환경 중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절대로 죽거나 병들거나 손상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장담할 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만들어진 사람’(Self-made man/woman)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신 일이 없다고 여긴다면 여러분처럼 재수가 좋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재수나 행운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졌던 행운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오늘 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무지한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신 8:17)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외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18)


둘째로 감사는 행복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인생의 덕목입니다. 에모리대학교의 후레드 크레독 교수(Dr. Fred Craddock)는 아직도 자기의 두 아이들이 어리고 천사들이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한 가지 덕목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의심없이 감사하는 아이들이 되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 시기를 하거나, 잔인하거나, 남을 증오하거나, 또는 생색을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을 둘로 나누어 본다면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백만장자 존 템플톤 경(Sir John Templeton)은 부를 이루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서슴없이 “감사입니다. 만일 당신이 감사할 줄 모르면, 당신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느냐에 관계없이 부자는 아닙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리챠드 칼손(Richard Carlson)은 ‘작은 것에 땀 흘리지 말라’(Don't sweat the small stuff)는 책에서 좋은 제안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아침을 맞이한다면 그날 하루의 일은 언제나 기쁨과 축복으로 넘쳐날 것이라 했습니다.

감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감사해야 할 일이 도무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감사는 그냥 느껴지거나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감사할 것을 찾으려 할 때 찾게 되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려면 감사할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합니다.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감사할 것을 찾아 나서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이 보여 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감사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감사절기 때마다 감사할 일들을 일지로 적어서 드리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훈련을 위해서입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갔을 때 뉴올리언즈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집과 재산을 잃은 수재민들은 언론의 인터뷰에서 허리케인의 참혹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같은 수재민인데도 그녀의 얼굴은 빛이 났고 미소가 아름다웠습니다. 기자가 “어떤 점이 힘듭니까?”고 묻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힘들지 않아요. 저는 불평하러 나온 게 아닙니다. 터럭하나 다치지 않게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러 나왔어요. 하나님이 애들까지 무사히 지켜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교통수단이 마비된 암흑의 상황에서 그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물론 전력은커녕 아예 집 전체가 홍수에 떠내려갔어요. 제가 가진 것들을 말해볼게요”하고는 그는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제게는 희망과 기쁨과 평안이 가득해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제 편이십니다” 

여자의 얼굴은 더욱 환해졌습니다. 이 여자는 비통하고 불행한 상황에서 오히려 감사를 선택하였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 보여도 믿음을 갖고 감사를 선택하면 희망이 보입니다. 평안이 옵니다. 행복이 찾아옵니다. 

영어단어 중에 감사(gratitude), 사랑(love), 존경(respect)은 같은 의미의 뿌리를 갖고 있는데 “자기의 의지적 선택과 노력으로 얻어지는 열매들”이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느껴지거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의지적 결단과 선택, 그리고 노력해야 만이 찾아오는 단어들이라는 말입니다. 감사를 선택해서 인생의 중요한 덕목을 길러 행복을 얻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는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옵니다. 감사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는 물질적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마음에 무엇을 가졌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믿음을 가졌으면 감사가 나옵니다. 은행계좌에 많은 돈을 가졌다 해서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창고에 곡식들이 가득 찼다 해서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물질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Things will make us happy).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이 아닙니다. 항구적이지도 않습니다. 잠시 행복감을 주는 것뿐입니다. 엄청난 물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비율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감사는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신앙인들은 감사할 줄 압니다. 어떤 환경 중에서도 먼저 감사할 줄 압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박국의 고백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하박국 3:17-19) 

왠지 아십니까? 감사할 때 모든 걱정, 근심, 염려, 환난을 비범한 축복의 기회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은 큰 걱정거리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감사의 재료들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미래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행복의 열쇠는 하나님이 갖고 계시거늘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비결은 바로 감사입니다. 

따라서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감사하십시오. 복 받고 싶습니까? 감사하십시오. 건강해지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풍성한 은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감사는 당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