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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뚜기 사고방식을 버려라 (민 13: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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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사고방식을 버려라 (민 13:30~33)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많은 차이점이 있겠지만 중요한 차이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믿음의 사람은 '이 일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에 관심을 보이고 올바르게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여지는대로 보고 느껴지는대로 느끼며 나오는대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더 많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자주 낙심합니다. 작은 일에도 어쩔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담대합니다. 평안합니다. 위기를 잘 극복합니다. 인생의 승리자가 됩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열 두명의 스파이들을 보냈습니다. "너희는 올라가서 그 땅이 좋은지 나쁜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강한지 약한지, 숫자가 많은지 적은지,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곳은 진영인지, 성읍인지 살펴보고 오라."  열 두명의 스파이들은 명령을 받은대로 사십일동안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왔습니다. 스파이들은 에스골 골자기에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막대기에 꿰어 둘이 메고 왔습니다. 
  
스파이들은 돌아와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앞에서 보고를 했습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입니다. 여기 그 땅에서 가져온 포도송이와 과일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땅의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심히 크고 견고하였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술렁였습니다. 그때 스파이중의 한 명인 갈렙이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치자.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파이들은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칠 수 없다. 그 땅의 거민들은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족인데 강한 군사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더라."
  
열 명의 스파이들은 메뚜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메뚜기 같다.'는 메뚜기 사고방식이 순식간에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 확산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밤새도록 울부짖게 되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려고 하며 믿음을 가질 수 잇도록 권했지만 오히려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광야에서 헤메다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메뚜기 사고방식이 이스라엘백성들을 하나님의 축복의 목전에서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메뚜기 사고방식이 그들로 패배한 인생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메뚜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크고 놀라운 비전을 성취하며 살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메뚜기 사고방식에서 던져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날마다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먼저 메뚜기 사고방식을 여러분의 머리속에서 다 뽑아 버려야만 합니다. 

  
그러면 메뚜기 사고방식이 무엇입니까? 
  
메뚜기는 아주 작습니다. 독도 없습니다. 아이들도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아주 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들입니다. 한 마디로  보잘것 없고 시시한 것들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우리는 메뚜기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형편없이 약하고 아무 가치도 없는 시시한 존재다.'라는 것입니다. 지독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에 있는 수 많은 민족들중에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려는 엄청난 계획을 품으시고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시키고 먹을 것 하나없고 마실 물조차도 없는 광야를 기적을 행하시며 인도해 오셨는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다른 민족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라며 스스로 비하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열 정탐꾼들은 자기들이 만난 아낙 자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본 아낙 자손은 키가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아낙 자손을 보자마자 '네피림'이 생각났습니다.  네피림은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전설적인 거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네피림은  반신반인 즉, 반은 신이요 반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아주 매력적인 남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당시에 여자들은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이 당시 세상을 얼마나 타락시켰는지 세상을 하나님께서 가만히 둘 수 없을 정도로  부패시켰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세상에 타락이 만연하여  노아 홍수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네피림은 그 당시에 세상을 부패시켜서 하나님의 심판을 자청한 장본인들입니다.
  
그러나 네피림과  아낙 자손은 도저히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낙 자손 군인들을 볼 때 정탐꾼들은 네피림을  보는 것 같다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신앙의 눈으로 그들을 보니까 그런 것입니다. 이미 두려움과 불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까 상대는 실제보다 더 커 보이고 상대적으로 자기는  메뚜기 같다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쉽게 잡아 죽일 수 있는 작은 곤충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이것이 메뚜기 사고입니다. 문제는 커 보이고 자기는 작아 보이는 것이 메뚜기 사고입니다.  하나님은 안보이고 세상만 크게 보이는 것이 메뚜기 사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땅에 있는 성곽들을 보고 기가 질린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살았던 애굽에 있는 성곽은 가나안의 성곽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노예 생활하면서 쌓은 성곽은 가나안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런 성곽을 보았던 사람들인데 뭐 그렇게 놀랄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어지고 불신앙이 그들의 의식을 사로잡으니까 작은 성곽도 하늘에 닿을 큰 성곽처럼  보인 것입니다. 이것이 메뚜기  사고입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커 보이는 것, 이것이 메뚜기 사고입니다.
  
불신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갑자기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대신 세상이 커 보이고 무서워집니다. 그리고 현실을 믿음으로 보지 않고 감각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눈에는 작아 보이던 것이 감각의 눈에는 엄청나게 커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자연히 자기를 메뚜기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메뚜기 사고를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존재가 자리 잡을 공간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메뚜기 사고방식은 영적인 질병입니다. 우리 안에 만연되어 있으면서도 금방 그 증세가 드러나지 않는 무서운 병입니다. 메뚜기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조금 독특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장점은 잘 보지 못하고, 그 대신 약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자신의 잠재력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날마다 할 수 없는 것과 실패할 일만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래서 성취하고자 하는 모험을 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메뚜기 사고 방식은 일종의 패배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 주위를 맴돌 뿐, 강하게 그  문제에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용기를  가지지 못합니다.   
  
메뚜기 사고방식은 열등감입니다. 많은 사람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헐값에 싸구려로 넘겨줍니다. 정말 멋진 성공을 기대하며 아무 도전도 하지 않고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절대 자신을 못난 사람이라고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어떻게 대해도 스스로 자신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향하여 반복하여 말씀하십시오. "너는 절대 메뚜기가 아니고 거인이야."  
  
왜 사람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며 대인기피증으로 고생하는지 아십니까?  왜 사람들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잇는지 아십니까?  왜 우리 사회에 패배주의가 만연하고 사람들은 쉽게 지치며 인생을 쉽게 포기하는지 아십니까?  자신을 불행한 패배자로 여기는 메뚜기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잇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은 없는지 각자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메뚜기 사고방식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두렵게하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잇느니라.(빌4;13)'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메뚜기 사고방식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거인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골리앗은 몸집이 매우 큰 거인이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그 키는 작았고 그 모습은 보잘것없었지만 그 생각은 거인이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골리앗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골리앗보다 크시고 강하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기편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제든지 자기와 함께 한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을 보니 골리앗은 자기가 찢어 죽인 사자 새끼보다 못한 존재요, 자기가 쫓아버린 곰보다 못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눈에는 골리앗이  메뚜기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의 시각입니다.
  
'Bear(곰)'라는 영화가 수년 전에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 내용 중에 아직 어린 새끼 곰 한 마리가 뒷발로 서서  자기 보다 큰 산 고양이를 쫓아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린 곰이 겁 없이 산  고양이를 상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때 새끼 곰이 산같이 큰 산고양이와 싸울 때   곰 뒤에 아비 곰이 딱 버티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 고양이가 아비 곰을 보고 놀라 달아난 것입니다. 우리도 겁없이 우리보다 큰 문제와 맞서면 뒤에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 딱 버티고 서서 큰 문제를 쫓아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뚜기 사고방식을 벗어버리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거인이 많고, 아낙 자손도 많고, 하늘에 닿을 만한 높은 성곽도 많은  너무나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메뚜기로 보지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자신을 큰 사람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열두 정탐꾼 가운데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에 떠는 백성들을 향하여 독려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올라만 가자.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바로 그 사람 자체입니다. 잠언 23장 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바로 그가 어떤 사람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본다면 그 사람은 대장부가 될 수 있지만, 믿음 없이 모든 사물이나 문제를 대하면 자신을 메뚜기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질병을 만나 싸우고 있습니까?  질병이 거인같이 다가와 여러분을 짓누르려고 합니까?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생각하지 말고 질병을 메뚜기라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불황을 만나 사업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를 메뚜기라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사명을 감당하다가 실패를 만났습니까? 비전을 잃어버릴 위기를 만났습니까? 시험을 만났습니까? 무엇을 만났든지 절대 자신을 메뚜기라고 말하지 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삼키려는 어떤 적보다도 여러분은 크고 강하며 싸워서 이길 능력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함께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깁니다.
  
여러분은 메뚜기입니까? 거인입니까?  거인이 되어 거인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뒤에 서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며 메뚜기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바랍니다. 우리가 결단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방해하는 대적과 담대하게 맞서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삼키려는 위기를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날마다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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