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 (삼상 19:18~24)

  • 잡초 잡초
  • 344
  • 0

첨부 1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 (삼상 19:18~24)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계획은 점점 더하여 갔습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도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도망간 곳은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였습니다. 

다윗은 친척들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또 자기를 위해 환호성을 올렸던 이스라엘의 어느 한 성읍으로도 가서 은신처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장 사무엘에게로 달려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모두 알려주었습니다. 

사무엘은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될 것을 알려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지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에 대한 확신도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믿을 수 있고, 붙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사무엘 뿐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였으므로 이러한 고난의 날에 다윗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잘 충고해 주리라고 다윗은 기대했습니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의 말을 듣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시27편5-6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름부음 받은 다윗에게도 환난과 아픔이 있었던 것처럼 성도의 삶에도 때로 환난이나 고통과 아픔이 찾아옵니다. 이런 환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라마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과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있을 때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그곳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참된 위로와 평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61:3-4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환난 가운데 힘들어 하십니까? 문제를 만나 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고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과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 힘을 얻고 다시 회복하시는 은총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힘이시오 그 사랑은 모든 사랑에 뛰어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십니다.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이 여러분들도 확신과 믿음으로 담대히 이렇게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62:7)

라마 나욧, 사울을 피하여 다윗이 찾아간 곳입니다. 다윗과 사무엘은 선지자의 학교가 있는 라마 나욧으로 가서 거기 함께 있었습니다.  나욧은 선지학교라는 뜻입니다. 
그 곳은 블레셋 사람들도 방해하지 않던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참된 위로를 받고 평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정탐꾼을 통해서 다윗이 그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자들이 다윗을 데리고 오지 못하자, 더 많은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돌아오지 않자 세 번째 사자들을 보냈는데 그들에게서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20절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라마나욧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선지가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라나나욧에서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선자자들은 예언했다고 했는데 예언이라는 것은 장래의 일을 알아맞히는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였다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라마나욧 그곳에서는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사자들을 보내어 실패하자 사울은 직접 다윗을 죽이기 위해 라마 나욧으로 진군을 했습니다. 살의에 가득찬 사울의 분노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아들 요나단의 말도, 딸 미갈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울은 살의가 가득한 채 라마 나욧으로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사울에게도 임했습니다. 
23절입니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24절 “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종야에 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니...”

라마나욧의 강력한 성령의 역사는 사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강한 살의를 품고 오는 사울마져도 성령에 취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종일종야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거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성령에 사로잡힌 사울에게서는 그 어떤 살의의 느낌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의 모든 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가려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무리들과 성도들의 교제 위에 영광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원하시기만 하면 충실한 성도들의 교제위에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라마나욧에서는 사람을 바꾸는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라마나욧 오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가 오늘의 라마나욧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사랑의 하나님, 우리 교회가 오늘의 라마나욧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가 어떤 곳인가요? 문제 많은 인생들이 주님을 만나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과 함께하는 선지자들을 통해 임했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오늘 우리 교회에도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곳에 가까이 오는 자들은 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곳입니다. 슬퍼하는 자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아픔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악한 영에 사로잡혔던 이들이 악령에서 풀려 성령에 사로잡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절망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슬픔을 위로 받고 다시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아픔과 고통에 묶여 신음하던 사람들이 그 묶임에서 풀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갈 길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발견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는 복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곳에 와서 삶이 변화되는 역사를 체험하는 삶을 변화시키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히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 변하여 새 사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복된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오늘의 라마나욧이 되기를 소원하십시오. 
그러므로 어떻게 라마나욧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오늘의 라마나욧이 되기 위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하나님께서 임재 십니다. 성령이 주도하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신비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라마나욧은 성령에 감동된 무리들로 은혜가 충만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피난 온 다윗의 무리나, 악신에 사로 잡혀 미친 듯이 날뛰던 사울의 무리나, 모두가 다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부터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구별 없이 모두가 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신령한 세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라마나욧은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1.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교회에는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의 소리가 끊어지지 아니합니다. 기도는 함께할 때 더 큰 능력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가 마가 다락방에 임하였을 때 그곳에는 기도하는 120명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했습니다. 뜨겁게 마음을 다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속에 들어온 사람들은 저절로 뜨거워졌습니다. 기도의 뜨거움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때가 이르렀을 때 강한 성령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강하고 급한 바람과 함께 혀의 갈라지는 것 같은 불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방언을 하며 기도했습니다. 

혼자 조용히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네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기를 원할 때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화요일에 70여명의 성도들이 산상기도를 갔습니다. 산상기도라기 보다는 역사가 깊은 작은 예배당에서 함께 기도한 것입니다. 뜨겁게 두 시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가지 은혜들을 경험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경험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배움과 가르침이 풍성합니다. 사무엘은 선지학생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였습니다. 사무엘의 가르침에 모든 선지학생들은 순종하며 신뢰함으로 따랐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씀 안에서 일치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모든 심령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옥토의 마음으로 받지 아니하면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씨앗이 떨어질 때 길가도 있고 돌밭도 있고 가시덤불도 있고 옥토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을 옥토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의 강팍함을 일구어야 하고 돌을 골라내야 하고 가시덤불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것은 순종을 통해 하는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시고 성령의 강한 능력이 그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옥중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을 부를 때 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죄수를 지키던 간수가 등불을 들고 와서 바울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습니다(행 16:25-31). 
바울과 실라가 수감된 빌립보 감옥에 성령이 충만함으로 구원의 신비가 이루어지는 라마 나욧의 현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태신자 전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의 라마나욧으로 우리 교회를 사용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들의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며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는 그들을 변하여 새사람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태신자들을 작정하고 그들을 오늘의 라마나욧인 교회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교우들이 이곳을 오늘의 라마나욧으로 만들기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 변하여 새사람 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를 만들어 갈 때 이번 전도축제를 통해 품은 태신자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성령의 강한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되고 세워지는 은혜가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제 준비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작정하십시오. 이시간 영상을 보시면서 세사람의 태신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안내하는 분들이 복도를 다니면서 받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