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종교개혁] 오직 성경,오직 믿음 (롬 1:16~17)

  • 잡초 잡초
  • 613
  • 0

첨부 1


오직 성경,오직 믿음 (롬 1:16~17)


진찰 결과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의사 입장에서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오늘 종교개혁 491 주년을 맞는 역사적이고 경사스런 날에 서두부터 우리 한국교회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현실을 증언해야 하는 고통이 내게도 있다. 또한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수술대에 올라야 할 정도로 심각한 증상들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정신을 본 받아 우리 자신을 먼저 살피면서 갱신과 변화의 결단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6세기 초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로마천주교회의 젊은 신부 마틴 루터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원래 법학도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을 통해 신앙적 고민을 하다가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가장 엄격하기로 정평 있는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1505년이었다.

그는 그 수도원에서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천주교의 교리와 계명과 규율을 배웠다. 그리고 1507년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답답하고 무거운 짐 같은 것이 누르고 있었다. 

1510년, 그는 모범 신부로 뽑혀서 5개월 동안 로마를 방문하였다. 베드로 성당의 빌라도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 가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 그래도 그의 마음의 답답함을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믿음과 행함이 부족한 줄로 알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자신의 죄성만 드러남으로 그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날 놀라운 소식이 들려 왔다. ‘면죄부’라는 것을 사면 죄가 용서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죄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의 죄도 용서받고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이 면죄부는 로마에 건축 중인 베드로 성당의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교황청은 독일의 면죄부 판매 책임자로 ‘텟젤’이란 독일 신부를 지명하였는데 그는 당대의 유명한 학자요 웅변가였다. 텟젤은 면죄부 판매를 위해서 사람들을 회유했다.

‘이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죄를 용서 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사면 그 은화가 헌금함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독일 전역을 순회하며 면죄부가 팔리고 있을 때 루터는 비텐베르그라는 작은 도시의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로마서를 연구하는 중이었다. 그는 로마서 1장 중에서 17절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있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의 뇌리 속에 이 한 구절이 오랫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떠나질 않았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지금까지 루터는 의롭게 되려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금식하고 회개하며 계명을 지키려고 애써왔는가? 그는 계속 이 구절의 의미를 묵상하였다. 

‘의롭게 되는 것이 나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어진다는 말이지?!’

고민 고민하던 어느날 드디어 루터는 이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 것과 같은 감격을 경험하였으며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의롭다 하신 것은 나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에 젖게 됐던 것이다. 그는 이 진리를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쳤다.

그때 텟젤이 면죄부를 팔기 위해 루터가 있는 비텐베르그로 왔다. 루터는 텟젤이 그 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사고 파는 마귀의 수법을 루터는 분노했다. 그는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대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대학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게시하였다. 그 주요 골자를 요약하면...

1.면죄부가 죄를 속할 수 없다.
2.면죄부가 죄의 형벌을 면케 할 수 없다.
3.면죄부가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4.회개한 자는 이미 죄 용서함을 받았다.

이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작은 불씨에 불과했지만 순식간에 독일과 전유럽으로 번져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1517년 10월31일의 일이었다. 이것은 로마 교황에서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교황은 루터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들을 보내기도 하였으나 독일의 귀족들이 그를 보호하였고 그들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다. 교황은 루터를 파문하였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촬스5세의 법정 부름을 받았을 때 루터의 친구들이 가는 것을 만류했다. 그때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수들이 보름스의 기왓장 만큼 많아도 나는 가리라!’ 루터의 사건을 심문하기 위해 국회 법정에서 황제는 루터에게 적의에 가득찬 어조로 심문했다.

‘너는 너의 주장을 취소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고집할 것인가?’ 그때 루터는 하루 생각할 여유를 얻은 다음에 엄중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굳게 여기 섰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아멘’ 

그는 진리를 파수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마틴 루터에 의해 오늘날 개신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혹자는 천주교가 큰 집이고, 개신교가 작은 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세 로마천주교가 기독교의 가장 핵심되는 구원의 진리를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목적은 진리를 떠난 교회를 다시 진리 가운데로 돌이키는 운동이다. 십자가가 붙었다고 다 교회가 아니다. 구원의 진리가 바르게 선포되고 그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진리를 놓치면 그것은 거대한 종교집단이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는 아닌 것이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몸부림 쳤던 사람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처단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다메섹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살기등등해서 달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종교적 열심히 그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었는가? 아니다. 도리어 고통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전격적으로 만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율법이 무엇인가를...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오늘날도 천주교인 뿐 아니라 개신교인들 중에도 선한 행위나 공로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 헌금을 드리는 것, 봉사하는 것 이런 것을 잘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바울의 말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사람은 없다’ 율법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하여 정죄하고 있다. ‘너는 죄인이다!’ 우리로 하여금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루터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됐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바울은 같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1)믿음으로 얻는다(22절)
우리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의가 되는가? 그분이 우리의 죄, 나의 죄, 모든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죄인들을 의롭게 하는 것이다. 

전도폭발훈련 내용 중에서 참된 믿음의 여부를 판단하는 진단 질문 2가지가 있다. 
1)만일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선생님은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고 계십니까?
2)만일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나 천국 문 앞에 섰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하여 정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에게 속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 만을 신뢰함으로 의롭게 된다. 

2)은혜로 얻는다(24절)
‘은혜’란? 죄 지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에는 값이 없다. 그래서 선물과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 자리에 모여 앉은 우리 중에 자신의 구원, 곧 의롭게 됨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값없이 거저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댓가를 지불한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닌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받기 전에 우리의 모습을 설명하였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래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이말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았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와 같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의롭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른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찬송가 410장

그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가 터져 나오고, 찬송이 터져 나온다. 예배를 사모하고, 봉사하기를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십자가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우려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모습을 걱정하고 있다. 교회가 진리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성도들이 십자가에서 점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느낀다. 
십자가는 많으나 십자가를 잃어버린 교회가 많아졌다. 교회가 다투고 갈라지고 냉랭해져가고 있다.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기복주의 신비주의... 이단 사이비가 너무 많아졌다. 교회가 더 이상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약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의 세속화 현상이다. 주일성수가 약해졌다. 주일날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고 있다.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려고 한다. 신앙을 이익의 재료로 삼으려고 한다. 장사할 목적으로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신자들의 마음에 양심이 없어지고 있다. 불의를 보고도 화를 내지 않고 쉽게 타협한다. 

교회 안에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다. 교인들끼리도 쉽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고, 다투고 사소한 일에 시험에 잘들고, 입에는 감사와 찬송대신에 불평과 비난과 정죄가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를 교회의 위기 시대라고 진단하고 있고, 제2의 종교개혁의 때가 됐다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교회와 성도들이 진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시의 종교개혁의 3대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1.오직 성경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자!’ 중세 천주교의 타락은 성경에 대한 무지였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성경책은 많은데 성경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생활에 유일무이한 규범이 된다. 예)성경읽기,듣고, 쓰기, 암송, 묵상.

2.오직 믿음으로..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며 의롭게 하실 분임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예)돈으로도, 착한 행실로도...자신의 믿음을 잘 점검해야 한다. 

3.오직 은혜로 ... 

자신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께 대한 교만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면 하나님의 사랑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려는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 교회를 살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마틴 루터와 같이 죽음을 불사하고 진리를 사수하려는 마음으로 개혁해 나가야 한다. ‘나는 굳게 여기 섰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