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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삼하 22: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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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삼하 22:42~51) 


‘인사가 만사다’란 말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 중에서..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가 재상을 뽑기 위해 李克이란 원로 정치가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가난한 집에는 어진 아내가 필요하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명 재상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지금 재상의 후보로 위성자와 적황 두 사람이 있는데 이 두 사람 중에 어느 사람을 재상으로 등용해야 겠소이까?’ 

그러자 이극이 조심스레 답변하였다. ‘인물의 감정은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평소에는 어떤 사람과 친히 지냈는가? 둘째 부유했을 때 그와 왕래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셋째 관직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등용했는가? 넷째 궁지에 몰렸을 때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지 않았는가? 다섯째 가난했을 때 욕심껏 재물을 탐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다섯 가지 조건을 놓고 사람을 고르면 됩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위나라 문후는 위성자를 재상으로 택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비록 자기 동생이었으나 자신의 수입 중에 10%만 자기를 위해 쓰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도 크고 작은 단체나 조직의 수장들은 좋은 인물을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 인재를 잘 등용하면 그 정부나 단체가 발전하지만 잘못 등용하게 되면 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잘 건설할 인물을 찾고 계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가? 오늘 본문은 다윗이 쓴 시의 마지막 부분이지만 22장 전체의 내용을 통해서 다윗이란 인물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1절 말씀을 보면

(삼하 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

다윗은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아 10년 이상을 피난다니며 시련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 수난의 세월을 마친 후,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지은 감사와 찬송의 시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다윗의 신앙과 삶을 살펴볼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삼하 22: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적진을 향하여 용감하게 달려 들어갈 수 있는 베짱, 성벽을 뛰어 넘는 담대함의 근거를 ‘내가 주를 의뢰하고...’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라고 말하고 있다. 

적당한 믿음 가지고는 할 수는 없는 행동이다. 조금도 의심 없는 확고한 신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인가?

(삼하 22:2)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삼하 22:3)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란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10년이 넘는 도망자의 삶, 망명 생활에서 그가 얻은 결론은 무엇인가? 사람은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오직 의지할 것은 하나님 외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시 60: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시 60: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

시편 146편은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 146:3)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 146:4)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 찾아다니기 분주하다. 사람들에게 실컷 당한 후에야 알게 된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우리 자녀들을 잘 보라.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부모에게 가지 않는다. 오늘 본문을 잘 보라.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삼하 22:19)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삼하 22: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요 구원자로 믿고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자를 사용하신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도를 사랑하고 지키는 자를 사용하신다.

(삼하 22: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환난과 전쟁 중에 필요한 것은 말이 무엇이겠는가? 잘 훈련된 군사와 무기와 견고한 성벽일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방패라고 증거하고 있다. 승리의 결과가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한 것이라는 것이다. 

(삼하 22: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삼하 22:23)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법보다는 감정이나 자신의 이해를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실패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이 불편하고 손해 보는 것이지만 결국은 법은 남게 되고 불법한 자는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울왕의 실패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만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위에 있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며 그 결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조상들의 역사 속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수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왜냐하면 시편 119편 기자의 말대로,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나의 삶을 말씀의 눈으로 보고, 말씀 안에서 행하고, 말씀에 나의 모든 미래를 거는 것이 손해 보는 듯 하나 결국은 승리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가?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 앞에 복종하는 자를 사용하신다.


3.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사용하신다.

(삼하 22: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환난’ 중에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여호와’께 아뢰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119 구급대’를 부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119에 신고했는데 안 오는 경우가 있는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벨이 울리면 장소를 확인한 후에 쏜살같이 돕기 위해서 달려 오지 않는가! 다윗이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의 귀에 들렸도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다윗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다윗이 환난 가운데 늘 찾는 장소는 하나님의 전이었다. 물론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이 땅에 성막, 또는 성전을 짓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곳에서 만나셨다. 박윤선목사님은, ‘하나님은 멀리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이 땅에 성전을 두셨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서 들으셨다고 증거했다. (8-20절) 

성전에서 부르짖은 결과 하나님께서는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응답하셨음을 경험하였고 그분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를 즐겨하였다. 밤에도 기도하였고, 새벽에도 기도하였다. 

(시 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어려움이 있는가?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인가? 건강의 문제인가? 사업상의 문제인가? 부부 간의 문제인가? 자녀들의 문제인가? 근심만 하지 말고 문제를 안고 기도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중에 부르짖는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4. 하나님은 성결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삼하 22:21)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삼하 22:24) 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여기서 ‘내 손의 깨끗함’이란 말은 ‘자신의 성결한 삶,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완벽하게 성결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결한 삶은 하나님 앞에 상급을 쌓는 것이다. 다윗은 모든 유혹을 피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성결을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그렇게 살았다.

우리는 다윗의 실패를 잘 알고 있다. 그가 배부르고 한가할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말았다. 그가 범죄에 빠진 이유는 경건 생활이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영적 나태는 곧 바로 범죄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죄에 대하여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성결한 삶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신자는 누구든 성결한 삶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듣기만 해서는 안된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성결한 삶을 위한 결단이 날마다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손이 깨끗한 자를 사용하신다.


5.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삼하 22:44)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존하사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하나님의 높이심은 어느 정도인가? ‘열방의 으뜸’이요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도록’ 높이셨다. 그러나 다윗은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어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종 거만을 떠는 사람들에게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는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다윗은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은 듯 보인다. 우리는 다윗의 이와 같은 고백 속에서 천년 후에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하였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돌리고 있다. 
(삼하 22: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높아지면 교만해지기 쉽고, 부유하면 거만해지기 쉽다. 그러나 다윗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쓰시며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를 기뻐하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불을 밝히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연습하고,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고 돈을 벌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유명해지고, 지위를 얻기도 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노년에 이르게 되면 육신의 쇠약함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과 허무함에 눈물 짓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과연 그들에게서 다윗과 같은 감사와 찬양의 시를 들을 수 있겠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류에게 공헌도 하고 쓰임 받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관계 없는 것이다. 인간이 세운 것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고 잊혀지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불순종으로 행복을 상실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정말 행복하고 보람 있고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이 말씀에 유념해야 한다. 구원 받은 것으로 특권을 삼고, 현세적 축복 만을 구하는 안이한 태도는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져 가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양치기 소년 다윗을 사용하셨다. 오늘날 이 시대도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점점 더 세속화 되어 가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숨으려 하지 말라. 편하려 하지 말라. 물러서지 말라. 주님의 나라와 주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기를 소망하라. 그렇게 결단하는 사람은 훗날 다윗과 같은 고백과 감사와 찬양의 시를 쓰게 될 것이다. 

1)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사람. 2)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
3)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사람 4)기도하는 사람 
5)항상 겸손히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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