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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친히 가리라 (출 3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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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히 가리라 (출 33:12~23)

 
모세는 백성을 사랑하는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볼 때마다 인간적으로 부럽고 때로는 질투가 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나 담대하게 중보 기도를 하는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백성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모습이 너무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서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백성의 죄악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과 아픔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만날 수가 없었기에 그는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한 민족을 이끄는 대단한 마음과 태도를 가질 수가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모세에 대한 예찬이 참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말합니다(민수기 12:3). 그는 수많은 비판과 비난, 조롱과 원망을 들어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를 보면서 무엇보다 부럽게 여기게 되는 점은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참으로 좋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모세를 이렇게까지 표현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출애굽기 33:11) 

하나님은 모세와 대화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보면 하나님은 아주 외로우셨던 것 같습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넉넉함을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중보 기도하는 모세가 하나님 눈에 보기에는 참으로 기특했습니다. 모세는 백성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백성의 죄악을 자기의 죄악으로, 백성이 받을 징계를 자기가 받을 징계로 여기며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짐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기를 즐거워했습니다. 

모세는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진 사람입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음으로 다른 사람이 풍성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그 사람이 있음으로 다른 사람이 가진 풍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엘러 윌콕스가 쓴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오늘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지요. 
단지 두 부류의 사람들뿐, 더는 없어요. 
죄인과 성자는 아니에요. 잘 알다시피 
선한 이에게도 나쁜 점이, 나쁜 이에게도 좋은 점이 있지요. 
부자와 가난뱅이도 아니죠.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그의 양심과 건강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잘난 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잖아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지요. 유수한 세월 속에 
누구나 웃을 때도 있고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 
짐을 드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 
어딜 가든 보게 될 거에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늘 이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는 걸 
그리고 참으로 이상한 일은 내 생각엔
기대는 자가 스물이라면 짐 드는 사람은 하나뿐이지요. 
당신은 어느 쪽인 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길을 가는 이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 지우고 
걱정과 근심을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때로는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져야할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라고 얹은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려고 작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것도 100만 명도 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과 불평, 불만과 원망의 짐을 혼자 등에 지고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가 얼마나 지치고 낙심했겠습니까? 모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모세는 백성의 죄악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마음의 평안과 육체의 쉼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출애굽기 33:14) 

하나님께서 모세가 가진 근심을 해결해 주시려고 합니다. “내가 너에게 쉼과 평안을 주겠다. 너무 고생했다. 네 마음이 불편하구나. 네가 이 백성의 무거운 짐을 내 대신 지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분노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 하나님은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출애굽을 인도했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우상숭배하며 경배했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큰 애통함과 분노를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이스라엘 백성은 내 백성 아니다. 이들을 이 광야에서 다 진멸시킬 것이다. 내가 이제 너의 자녀로 새로운 백성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은 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에서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백성은 광야에서 진멸당해야 할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백성을 광야에서 멸망시키시면 하나님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참된 하나님으로 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면 마지막도 만들어 주세요. 주님, 이 백성은 다른 어느 곳에도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너무나 애절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가슴에 품으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나왔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고 진멸하시겠다고 했던 약속을 취소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지도자의 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라는 인물을 지도자로 복 받은 백성입니다. 공동체에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공동체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려하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 풍성한 복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는 심판을 취소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화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면 용서해주고 싶은 데 화가 안 풀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라” (출애굽기 33:3) 

“모세야, 좋다. 내가 약속을 했으니까 이 백성을 가나안까지는 인도해주겠다. 그러나 나는 가나안에 안 들어가겠다. 이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지 않겠다. 그 이상은 내가 상관하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동행하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가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을 붙들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약속의 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모세도 깨달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깨달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가셔야 한다고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던 복은 하나님의 친구였던 모세를 지도자로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의인이었을까요? 모세가 죄가 없었을까요? 모세가 완벽한 사람이었을까요? 모세도 죄인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었던 죄인이었습니다. 모세의 품성에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닮은 마음을 품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한 모세를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헌금을 많이 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세상의 지위와 명예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거룩함과 넉넉한 마음을 가슴으로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받는 인생과 힘든 사람의 짐을 가슴으로 안는 하나님의 품성을 갖는 모습을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지혜로운 대답을 듣고 판단하시며 결정하십니다. 모세의 사고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모세는 이런 말로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 백성을 어떻게 인도했는데요? 여기에 제 수고와 땀이 얼마나 녹아있는데요? 제가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했는데요? 제가 얼마나 이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요?” 
  
모세는 자기 존재의 규정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하나님으로부터 결정하기 원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전에 나의 이름을 아신다고 하셨잖아요. 제 이름을 부르시면서 찾아오셨잖아요. 하나님 제발 기억력을 살려주세요. 제가 무력한 종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 저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로 삼으셨잖아요. 하나님께서 은혜로 축복하시며 이 백성을 이끌라고 제게 말씀하셨잖아요. 제 능력, 제 판단, 제 힘, 제 지혜로 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오직 하나님 때문에 했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할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없는 비판과 비난, 적대하는 원망을 받았던 모세는 백성들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토로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심리학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을 미워하고 분노를 너무 쉽게 표출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어떤 면을 스스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치유되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상처가 더 큰 상처를 만듭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미움과 분노와 상처가 서로를 더 촉발하는 위험성으로 나아갑니다. 
  
어떤 사람의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는데 그것을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래서 염증이 생기고 퉁퉁 부었습니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그 손가락을 스치면서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도 이 사람의 고통이 엄청났습니다. 그러자 그가 불평합니다. “너무 아파죽겠어. 당신 때문에 너무 아파. 당신이 안 건드렸으면 안 아팠을 텐데.” 그러나 여러분! 문제의 본질은 지나가다가 건드린 상대방에게 있지 않습니다. 손가락의 가시를 그대로 방치한 자신에게 있을 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미움, 잘못된 분노를 말씀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의 축복, 기쁨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입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영향력을 끼쳐 과도하게 주도권을 잡으려고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공동체에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심리학적인 억압에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로 누리는 자유함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져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끊임없이 백성들에게 도전받았습니다. 과단성 있는 행동을 하면 고집불통이고 오만하며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서서히 행동에 옮기면 우유부단하고 게으르다고 혹평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옳다고 입증해주실 것을 믿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주님 앞에 은혜를 입은 모세의 모습입니다. 마음의 깊은 상처가 주님의 은혜로 치유 받았기 때문에 이제 미움과 분노가 자신을 억압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의 짐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모세를 보면서 그에게 새로운 결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출애굽기 33: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꿈과 비전을 보여주시며 약속해주셨습니다. “이제는 평안히 가라. 두려워하지 말라. 환경도 너를 무너뜨릴 수 없다. 공동체가 가진 위기가 있으면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며 신뢰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가정의 어려움, 직장의 어려움, 교회 의 어려움, 사회와 민족의 어려움이 한 사람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믿고 모세의 마음으로 아뢸 때 새로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역사, 평화의 역사, 쉼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통해서 이 귀한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충족함을 맛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먼저 화내고 먼저 미워하고 먼저 분노했던 우리의 완악함을 용서해주옵소서. 모세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서 자신의 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짐까지 지는 멋진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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