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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 1: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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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빌 1: 27~30
 제목 : 복음에 합당한 생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부모가 부모다워야 한다는 말은 쉽지만 부모답게 산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자녀다워야 한다고 하지만 참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자녀다운가는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규범들이 깨어지고 혼탁하며 가치가 전도되어진 오늘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뮤지컬중에 ‘캣츠’라고 하는 뮤지컬이 있습니다. 모든 배우들이 고양이모양을 했습니다. 징그러울 만큼 고양이흉내를 잘 냅니다. 가만히 앉아서 입을 쓰다듬는 모습이라든지 꼬리를 흔드는 모습, 누워서 배를 살살 긁는 모습이라든지 아주 연기를 잘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몇십년동안 연기를 잘한다한들 고양이만큼 잘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양이는 연기를 안하고 그냥 살아가면 그것이 고양이가 되는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말씀으로 생각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과 별개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연기를 하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연기는 어렵고 어떤 연기는 환경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어떤 연기는 내게 너무 잘 맞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면 고양이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 우리는 연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데 그것을 억지로 행하려고 하니 율법이 되어지고 그렇게 행할 수 밖에 없게 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교의 연기를 버리십시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복음에 합당한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히딩크감독은 우리선수들을 훈련시키면서 선수들에게 시합에 나가면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한 엔조이를 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말은 참 좋은 얘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고 할 때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즐거움과 즐김이 여러분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즐겁고 감사하고 기쁘고 흥겹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옥중에 있는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을 향하여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복음에 합당한 생활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하면 복음이 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정신적 갈등은 어디서 옵니까? 마음은 저기에 있고 육체는 여기에 있을 때입니다.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입니다. 그런데 마음과 육체가, 생각과 행동이 조화를 이룰 때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은혜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말은 은혜의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셨습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시고 다시오심,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엡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나니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복음은 선물입니다. 주신 것을 받으면 됩니다. 여러분과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우리가 열심히 선한 일을 하고 의로운 일을 많이 쌓아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은혜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은혜를 은혜로 알고 은혜에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삶, 그것이 복음적 삶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윤리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고 은혜를 생각하고 은혜를 보답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라 하면 그것이 율법이 되고 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히브리인의 한 사람, 베냐민지파의 한사람이요 카멜문학에서 배웠고 율법으로 흠이 없고 십일조를 잘 내었고 성일을 지켰고 금식기도를 했고 하루 두번씩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했고 안식일을 잘 지키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하였으나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는 그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고, 이제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제는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증거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불안과 초조, 원망과 불만이 싹트는 것은 받은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하는데 받지 않았다는 원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 받은 복을 세워보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몸이 자랐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와 사귀면서 그 은혜로 우리가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스승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지식을 얻고 오늘 사회의 은혜로 부지런히 일하여 돈도 모았습니다.
    
   나는 우리나라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배 고프고 압박과 설움속에 살고 보릿고개에서 굶주리고 허덕이던 이 백성에게 어찌하여 거리마다 차가 넘치게 되었는가?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상과 술취함과 방탕속에 있던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새벽마다 기도소리가 그치지 아니하며, 세계속에 일만이천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국교회가 된 것을 생각하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있는 것이, 여러분의 사는 것이 여러분이 잘난 덕입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되게 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에 그것이 복음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만달란트를 빚을 졌는데 임금이 불러서 보니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이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한 달란트가 하루 일당이었으니 만달란트는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런데 이 빚을 탕감해준다 하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마음에 깊이 눌려진 짐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독일말에 죄는 빚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빚진 자요 죄인이요 우리 모두가 죽음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오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삶, 그것이 복음적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나치게 욕심이 많고 욕망이 큰 우리자신을 돌이켜보면 오늘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우리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둘째,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화해입니다.
   고후 5장 17~1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께서 우리를 화평케 하셨고 우리로 화목케하시는 직책을 주셨느니라’.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는 멸망자요,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자이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원수되었던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르쳐 ‘화해의 복음’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졌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가치가 무너졌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세계가 하나되고 통일되게 하는 화해와 평화가 바로 복음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화해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된 것처럼 화목케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어떻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인가? 우리 마음의 담을 허물어뜨리기 바랍니다. 
   
   하나됨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했을 때의 특징은 하나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이하에 ‘저들이 함께 모여 같은 마음으로 있는 것을 다 내어놓고 필요를 따라 함께 나누었으며 먹고 마시며 함께 즐거워 하더라’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외로운 존재가 되어졌습니다. 나 안에 닫혀진 고독한 달팽이가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나를 넘어 너에게로 너를 넘어 우리에게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화목 제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므로 우리가 하나됨같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는 기쁨과 감사가 곧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버리십시오. 마음에 쌓은 담을 헐어 버리십시오. 이제는 국경도 문화도 종족도 선교도 담을 헐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고 화목하게 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속받았다는 감동이 있으십니까? 내가 오늘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감동이 있으십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선하게 살까? 그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마음에 은혜가 있으면 그렇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모이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 발로 온 것입니다. 누가 돈줘서 억지로 입은 옷 벗기고 빨간 티셔츠 입히려고 하면 누가 입겠습니까? 제 손으로 제 돈으로 사서 입는 겁니다. 거룩한 복음의 감동의 역사가 물결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어 얼싸 안는 감동, 그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인 줄 믿습니다.

   셋째, 복음은 능력입니다. 
   롬 1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니라’. 그렇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는 것입니다. 축구를 보고 우리도 스스로 어떻게 저렇게 잘하는냐고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안의 복음의 능력 때문에 스스로 놀랍니다.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하나님의 자녀가 갖고 있는 특권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거꾸로 삽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지혜가 없어서,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부끄러워 하십니까? 언제 성경에 그렇게 살라고 합니까? 내 지혜대로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여호와를 앙망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살리신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너희를 죽음에서 일으키시리라 그리고 너희는 구하라 문을 두드리라 하나님께 간구하고 찾으라 그리하면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요 찾는 자는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라’. 
   바울은 자기의 총명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위대한 능력의 삶이었습니다. 저들은 저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운데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라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리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싸움이 아닙니다. 어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에 많은 장군들이 있었고 많은 훈련받은 병사들이 있었으나 그들도 꼼짝을 못했는데 소년 다윗이 무슨 힘으로 골리앗을 이겼겠습니까? 우리는 이 일을 한 옛날의 토막극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살아계시는 하나님, 너는 창과 칼로 내게 오고 네 기술, 네 가진 힘으로 나오지만 나는 내 힘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 ‘너희가 환란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이는 너희로 하여금 연단하게 하고 연단은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낳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거룩한 주님의 권능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지도자를 향하여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놀라지 마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되느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하셨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사는 것은 착한 일을 하고 마음에 위로를 받고 마음좋게 살아가는 것, 그 이상입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의 삶이 약동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안에 살아가는 삶인 줄 믿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의 보람과 가치로 승리하고 복되게 살아갈 줄 믿습니다. 
   한국교회가 새로이 복음의 능력안에 돌아와서 하나님이 이 백성을 이렇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계에 간증하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로 모두어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는 이때에 온 세계의 복음화에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이 백성이 되어지고 우리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복음에 합당한 삶은 증인의 삶입니다. 
   마 28장 19절 20절에 ‘너희는 가서 곧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네가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았느냐 영원한 생명을 받았느냐 너희가 화목하고 이 세상 속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게 되었느냐 그러면 네 삶이 네 이웃과 사람들에게 증인이 되라’ 이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우뚝 세워진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과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의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이제 남은 생을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말미암아 이 복음을 증거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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