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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좋은 길 (빌 1: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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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빌 1:22-26
제목 : 더 좋은 길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0절, 21절에서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생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 바울에게는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보다 선한 길을 택하고 보다 전진하고 성숙하게 되기를 바울은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성숙해 가는 존재입니다. 누구나 더 전진하고 긍정적이며 아름다운 길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주하는 것은 오히려 죽음과 퇴보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더 좋은 길을 택하여 가려고 합니다. 진정한 선함의 길이 무엇인지 그리스도 안에서 찾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선택해 온 길이 어떠하든지 앞으로 택하는 길은 더욱 선하고 아름다운 길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바울이 선택하는 더 좋은 길을 따라 여러분 역시도 아름다고 귀한 길을 선택하는 용기와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선하며 아름다운 길은 무엇일까요?
   첫째, 더 좋은 길은 선택이 어렵습니다.
   사람은 늘 선택하고 그 선택하는 일에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실패와 좌절, 혹은 성취와 기쁨을 경험합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은 점점 성숙해 갑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아무렇게나 살아지는 운명이 아닙니다. 삶의 뚜렷한 목적이 있으면 시련과 역경도 때로는 행복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련과 역경 마저도 우리에게 보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삶의 뚜렷한 목표를 자진 소명의 사람은 자기 자리에 안주하기보다는 보다 좋은 길을 선택하여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더 좋은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는 좋아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길이 사실은 좋은 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길은 순간의 만족이나 기쁨을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선한 길이 순간의 만족은 줄 수 있지만, 영원한 상처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더 좋은 길은 눈에 보기에, 상처와 아픔을 줄 수도 있습니다. 결코 눈에 보이는 기쁨이나 행복이 없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젊은이는 자신의 눈에 좋은 길을 택합니다. 아버지를 찾아가 “내가 이만큼 장성하였으니 내게 돌아올 재산을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돈을 가지고 나가서 돈도 많이 벌고 금의환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길이며 좋은 선택이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되어 유혹에 빠지고 방탕하게 되어 아버지가 준 모든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맙니다. 
   창세기 25장에 보면 장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배가 잔뜩 고팠을 때 동생 야곱은 형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주면 자기가 만든 죽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배가 고파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던 에서는 순간의 만족을 위해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내어주고 맙니다. 결국 이 일로 에서와 그 자손은 눈물과 서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길이었고,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길이라 생각했지만, 그것 때문에 때로는 상처를 받고 인생의 시련과 어려움 속에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만족으로 선택한 길로 더욱 큰 좌절과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8절을 보면, 그는 돼지가 먹는 주엄열매로 배를 채우고, 돼지와 함께 살아가다가 “내가 여기서 주려 죽겠구나 내 아버지 집에는 일꾼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내가 이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처음 생각은 잘못 되었지만, 두 번째느 보다 좋은 길을 택했습니다. 보다 좋은 길을 택하기까지 시행착오와 아픔과 절망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보다 좋은 길을 택함으로 새로운 인생의 기쁨을 찾게 됩니다.

   둘째, 더 좋은 길은 자기에게 유익한 길을 버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핵심은 탕자가 아니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는 새사람이 되고,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용서함 받습니다. 잘 선택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길이기 때문에 지혜와 현명함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택한 길은 어떠합니까?
본문 23절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였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빌 1:23)"
   그리고 뒤이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24절)”.

   바울은 지금 갈등상황에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오히려 육신을 떠나 하나님 곁에 있는 것이 더욱 편하고 행복합니다. 육신으로 있는 바울 사도의 삶은 오히려 핍박과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이 말을 전하고 있는 지금도 옥중에 갇혀 있는 고난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동안 매도 많이 맞았고, 굶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한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만 꽁꽁 묶여 무엇이 유익하고 편리할지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점점 가지게 되고 넉넉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에고(ego)”자아는 커지게 되고, 커져버린 자아는 결국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우리는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것에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럴 때 참으로 행복해집니다. 바울은 육신적으로 유익한 것을 버렸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의 한 사람이었고, 로마의 한 시민이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율법으로 흠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위대한 율법의 지도자였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렸다”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힘을 기르고 강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강한 자에 의하여, 부러지고, 나보다 더 큰 자에 의하여 상처를 받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기적 생각으로 사회는 점점 혼란하고 어려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욕심과 상처와 한을 버려야 합니다. 버려야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 주장, 방법에 매여 있으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식자우환이라는 말이 있듯이 많이 배운 사람은 아는 것에 매입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꽁꽁 묶이게 됩니다. 우리는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학문도 있었고, 당시 로마 시민으로서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이 있었지만, 주를 위하여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를 위하여 다른 하나를 버릴줄 아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가 환경정리에 관한 책에서 보니, 집안에 많은 것을 들여놓아 물건이 많으면 그 집안에 생기가 순회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안이 단순하고 깨끗해야 생기가 활동을 하여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많은 것을 두면 행복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우직한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아도, 사실, 그런 사람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경향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꼼꼼히 따지고 제대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속담대로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것같이 조심스럽고 침착해 보이는 듯하지만, 참 힘든 사람입니다.
   삶이 좀더 가볍고 행복하려면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상처와 쌓인 것들을 풀어 버리십시오. 그래야 건강해지고 행복해집니다. “나”를 내려놓으십시오. 그래야 자유해지고 행복해 집니다. 

   셋째, 더 좋은 길은 “너”의 유익을 택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내가 힘과 능력을 다하여 힘써 싸워야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삶의 원리는 나를 놓아야 내가 삽니다. 24절에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유익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바울이 육신으로 사는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사는 것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기쁨을 구하였으며(고전 10:33), 주님께 떠나 있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요 16:7)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지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된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나의 유익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에 유익이 되는지는 먼저 생각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려 하셨습니다. (히 12:10)

   요즘 경영하시는 분들이 CEO의 책을 읽으며 경영법과 세일즈맨, 시장에 대해 연구를 하지만, 모든 경영 원리는 성경에 다 쓰여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말한 대로 행하면 부자 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너의 유익”을 생각함으로 그렇게 되어집니다.
   
   올림픽 때 일본에 “남”이라고 하는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음식점을 찾은 한 손님의 아이가 스프를 카펫에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화나는 일이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손님이 무안해서 우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자, 유모차를 접어 차에 실어주면서 우는 아이를 달래주고 친절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 때 손님은 그 음식점 주인의 친절이 고마워 지갑에서 팁을 꺼내 줍니다. 여기서 주인은 중요한 착안을 하게 됩니다.
   바로 돈을 버는 일은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친절을 파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오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귀하게 대해 장사가 잘 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냅니다. 나를 친절히 대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천천히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화해하고 사랑하면 복된 삶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잘 되고 이웃이 잘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자신을 세워 부딪칩니다. 선거 때 보면 “내가 잘하겠다”는 목소리를 흔히 접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시민들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유익이 아닌, 시민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유익만을 구하지 말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남의 유익도 생각하라” 이것이 바울이 택한 보다 좋은 길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운데, 가난한 구두장사 시몬의 얘기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은 한 천사와의 대화 가운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 우리는 사랑에 의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자는 하나님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영광이요 상급입니다.”
   바울은 늘 선하고 좋은 길을 택하기를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며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까지 왔든지 참으로 말씀을 따라 보다 아름답고 선하며 더 좋은 귀한 길을 택하여 살아가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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