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지름길 (출 13:17~22)

  • 잡초 잡초
  • 722
  • 0

첨부 1


하나님의 지름길 (출 13:17~22)
  

흔히 우리 인생을 가리켜 여행길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떤 길로 걸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길로 가고 싶으십니까? 아마 쉽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원하실 겁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슨 길입니까? 지름길(Shorter Road, Shortcut)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름길로 가면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지름길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지름길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때로는 지름길이 막힐 때도 있고, 엉뚱한 데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잠14:12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무슨 말씀인가요? 자기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길이 오히려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은 모두 초행길입니다. 직접 가보고 검증한 후에 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바로 이 길이야!” 하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길을 미리 아시고 내다보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생각하는 지름길보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지름길이 정말 좋은 겁니다.  

오늘 본문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지름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 생각에는 아닌데, 하나님이 인도하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혹시 ‘내가 생각하는 지름길’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송하지만 그 길을 좋은 길이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결코 후회 없는 승리의 인생을 살고 싶다면 ‘하나님의 지름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름길’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승리하는 복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길을 정해 주십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직선 코스로 빠르고 편한 지름길로 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엉뚱하게 다른 길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실수도 오류도 없으십니다.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미련하고 둔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55:8~9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분이시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엉뚱한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이상한 길’이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본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길로 인도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길이 얼마나 좋은 길입니까? 함께 살펴봅니다. 

먼저 본문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막으신 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7절(상).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 ” 블레셋 사람의 길은 지중해 해변 길을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해변을 따라 여러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가사’(Gaza)입니다. 이스라엘에 출발한 고센 땅 라암셋에서 북동쪽 방향입니다. 상식적으로 따져 보면 그 길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직선 코스로 가장 빠르고,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여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길로 가는 것을 막으시고 정반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18절 말씀 보시죠.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 ” 이 길은 남동쪽 시내(Sinai) 광야 방향입니다. 사막을 통과하는 겁니다. 그리고 홍해 바다와 마주치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정말 아니죠. 빙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뺑뺑이 돌리는 것 같고, 위험한 데로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악취미를 가지신 분이시라 그런가요? 이스라엘을 데리고 장난치는 건가요?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돌아가는 길, 먼 길, 고달픈 길, 위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름길’이라고 부른 겁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인도하신 광야 홍해 길은 어떤 길일까요? 왜 좋은 길일까요?

[1] 안전한 길 : 적당한 고난이 있는 길 

하나님이 인도하신 홍해의 광야 길은 얼른 생각하기에는 고난의 길 같은데, 오히려 적당한 고난이 있을 뿐 사실은 안전한 길이라는 겁니다.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상식으로 볼 때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블레셋 사람의 길로 인도하지 않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 ...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무슨 말인가요? 그 길은 직선 코스이고 안전한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위험한 길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은 호전적인 민족입니다. 군사력도 대단합니다. 분명히 싸움을 겁니다. 반면에 그 당시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갑자기 애굽에서 나왔는데 무슨 군사력이 있겠습니까? 장정들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인들, 여자들, 아이들도 많습니다. 싸움을 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블레셋이 싸움을 걸어오면 혼비백산 겁을 먹도 뒤 돌아서 도망할 게 뻔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출애굽의 역사는 도루묵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체질과 형편을 아시고 다른 길로 인도하신 겁니다. 그 길은 고달픈 광야 길이지만, 시간이 더 걸리는 먼 길이지만 그래도 안전한 길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전10:13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시험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감당하지 못하고 망할 정도의 시험은 아니고, ‘적당한 시험’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길이 무조건 순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계속 직선 코스로 만들면 너무 단조로워서 방심하다 졸게 되고 자칫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적당하게 곡선 코스를 만들어 놓는다고 합니다. 건설 비용도 더 들고 운전하기도 어렵지만,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훨씬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현재 나에게 있는 고난을 감사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그 고난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 그러다 보니까 더 안전한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고난은 내 인생을 지켜주는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고난을 가리켜 ‘변장된 축복’이라 불렀습니다. 

인간이 참 이상합니다. 너무 고난이 커도 문제지만 너무 고난이 없어도 문제입니다. 요즘 자살 문제로 시끄러운데, 자실하는 사람들이 두 부류입니다. 너무 고난이 커서 감당하지 못해서 죽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고난이 없어서 삶이 지루하고 공허해서 죽기도 합니다. 완벽한 복지제도가 있는 선진국이 오히려 자살률이 높은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로 예를 들어 봐도 같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물맛이 언제 가장 좋을까요? 섭씨 13도 정도라고 합니다. 너무 더워도 너무 차도 좋지 않습니다. 마시기도 힘들고 물맛도 덜합니다. 적당하게 차가울 때 물맛이 최고라는 겁니다. 인생도 적당한 고난이 있을 때 오히려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고난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이 잘 안 되시나요? 정말로 이 말씀은 “아멘!”입니다! 우리 인생길에 나름대로 다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이 이 정도 고난 주시는 것 오히려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바른 길 :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

하나님이 인도하신 홍해 광야 길은 ‘바른 길’입니다. 그 길은 가나안 땅을 분명한 목적지로 삼고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편한 길이나 ‘빠른 길’을 좋아하는데, 사실은 ‘바른 길’이 정말 좋은 길입니다. 빠른 길이 무조건 바른 길은 아닙니다. 아무리 빠르고 편해도 바른 길이 아니면 갈 수 없습니다. 아니, 가면 큰일 납니다. 때때로 운전하면서 길을 가다 보면 이런 경험을 종종하게 됩니다. 내가 가고 있는 쪽으로 길이 밀립니다. 어떤 때는 꼼짝도 못하고 한 시간을 서 있는 경우도 있고, 엉금엉금 기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짜증납니다. 약속 시간이라도 있으면 안절부절 못 합니다. 그런데 반대편을 보니까 차가 거의 없으면, 재빨리 U턴해서 가면 되나요? 절대 안 되죠. 막혀도 늦어도 그냥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만일 블레셋 길로 가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전쟁이 나서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름대로 발달된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이 가득한 우상 문화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고생도 했지만 한편으로 애굽의 세속적인 우상 문화에 절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해 놓고 사는 것을 보면 눈이 뒤집힙니다. 다시 유혹을 받고 그냥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행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습니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의 길은 얼른 보면 가나안 땅을 가는 가장 빠른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른 길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지 못합니다. 중간에 주저앉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마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길은 넓은 길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 길은 목적지가 틀립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길이 좁고 험한 길이지만 그 목적지가 분명합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영생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좁은 길이라도 고달픈 길이라도 가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괴로운 일이 왜 없겠습니까? 핍박이 왜 없겠습니까? 외로움과 고독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 길이 바른 길이기에 우리는 뚜벅뚜벅 걸어가야 됩니다. 

본문을 보면 특별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19절 보시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죠? ‘요셉의 유골’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갖고 갑니다. 옛적에 요셉이 임종 시에 유언을 합니다.(창50:24~25 참조) 어떤 유언이죠? 언젠가 하나님이 약속대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출애굽의 역사를 허락하실 텐데, 그때가 되면 유골을 꼭 가져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유골은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었나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반드시 들어간다는 약속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로 가면 반드시 가나안 땅에 도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 하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묵묵히 가라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화려한 것, 안락한 것, 즐거운 것 등 유혹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는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편하다고 빠르다고 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천국 길로 가야 합니다. 의의 길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찰스 콜슨(Charles Colson 1931~ )을 아시나요? 그는 아이비리그 명문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엘리트입니다. 닉슨 대통령 보좌관으로 실세 중의 실세였습니다. 출세 가도를 달린 겁니다. 그런데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구속 수감됩니다. 재판 과정 중에 그는 친구의 전도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화려한 길을 달려왔지만 인생을 잘못 살았음을 깨닫게 된 겁니다. 만일 계속 그 길로 갔더라면 그 종착지는 멸망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결단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정직하게 고백하고 복역합니다. 출소 후에는 완전히 인생길을 바꿉니다. 교도소 선교회를 창설하고, 기독교 저술가 겸 연설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생의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 1993년에는 종교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는 빠른 길을 접고 바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빠르고 화려한 세상 길보다 느리고 힘들어도 천국 길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3] 복된 길 :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길   

홍해 광야 길은 멀고 험한 길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복된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누가 지나가도 모래 바람 한 번 불면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릅니다. 낮에는 살인적인 더위, 밤에는 살인적인 추위가 있습니다. 맹수의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동행하시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승리의 길이요 복된 길입니다.   

본문 21절~22절을 봅니다.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 하니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둘로 생각하기 쉬운데, 본래는 하나입니다. 구름기둥이 밤에는 야광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분명 그들과 함께 해 주신다는 증표입니다. 요즘 내비게이션이 나와서 편리한데, 사실은 구름기둥 불기둥이 ‘원조 내비게이션’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길로 나아갔지만 막막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매순간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결코 잘못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불순종해서 문제이지, 순종만 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승리케 하신 분은 ‘시속 4 km/h의 하나님’이라고. 보통 사람들의 걸음으로 한 시간에 4 km 가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동행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길을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님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내주(內住)하십니다. 내주하시면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시고 깨달음을 주십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기도할 때 성령님이 주시는 깨달음과 확신이 바로 성령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욕심에 미혹되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할 뿐이지, 성령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밤중에 시골길을 운전하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지 앞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불안했지만, 가만히 보니까 옆에 차선이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희미하지만 저 멀리 앞에 가는 자동차의 미등 불빛이 보이는 겁니다. 아무리 어둡고 희미해도 이 두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래서 차선을 보면서 불빛을 보면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 길에도 말씀과 성령의 확실한 인도가 있기에 우리는 방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면 인생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애물이 있어도 거뜬히 돌파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홍해를 건넌 기적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다보니까 홍해 바다가 딱 가로막습니다.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모세에게 항의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끌고 나왔느냐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동행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가만히 있어 보라! 하나님이 하신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큰 동풍이 불어와 바닷물이 벽처럼 양쪽으로 갈라섭니다. 그래서 마치 육지처럼 통과합니다. 출14: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이 멀고 험한 것 같아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해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라면! 절대 보호의 축복이 있습니다. 

사43:1~2 “1 ...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래서 결국 이런 고난 저런 고난 많은 것 같지만 지나 놓고 보면 결국 승리를 주십니다!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의 지름길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진정한 지름길이 없습니다. 우직해 보여도 하나님의 지름길 찾아가십시오. 멀어도 느려도 험해도 하나님의 지름길로 가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이 안전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천국 가는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승리하는 복된 길로 인도해 해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한눈팔지 말고 하나님의 지름길로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