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베드로의 구원론 (벧전 1:9~12)

  • 잡초 잡초
  • 288
  • 0

첨부 1


베드로의 구원론 (벧전 1:9~12)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이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자기가 받은 구원의 내용을 잘 모르고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할 줄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 똑바로 알고 누구에게든지 증거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다 들었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그 모든 일들을 다 보면서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야이심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 받게 될 구원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베드로가 생각하는 구원은 예수님과 다른 구원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은 우리가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구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땅 위에서의 구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떠난 후 하나님 나라에 가서 받을 구원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주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생각하는 구원은 예수님이 생각하는 구원과는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하는 구원은 세속적인 구원이었어요. 다시 말하면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루어질 축복을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메시야가 오면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자유를 얻게 될 것이고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될 것이고 다윗 왕 때의 영광이 회복되어 이스라엘 나라가 전 세계에 가장 뛰어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드로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메시야가 어서 와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고 세계적인 나라로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에 그 직전에 질문하기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질문했어요. 다시 말하면 이 베드로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이스라엘나라, 그리스도의 나라 세우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메시야에 대해서 크게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하는 메시야는 고난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영광을 받으시는 메시야입니다. 베드로는 영광 받으시는 메시야만 생각했지 고난 받는 메시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영광 받으시는 메시야만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받으시는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어요. 특히 이사야서를 보면 메시야가 얼마나 고난을 받으실 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영광 받으실 것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제사장과 장로들에게서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실 것을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난 받으시는 메시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영광 받으실 메시야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아예 고난 받는 메시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영광스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메시야가 와서 구원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눅24:13 이하에 보면 엠마오에 내려가던 두 제자도 아주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해주시기를 바랬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 때 그들과 동행하시던 예수님께서 낙심하고 있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해서 모든 성경에 쓰여져 있는 예수님에 관한 모든 기록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고난 받는 메시야, 그 고난을 받고 나서 영광을 받게 될 메시야를 그렇게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메시야가 오시면 먼저 고난을 받고 그 다음에 영광 받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베드로와 제자들은 메시야가 먼저 고난을 받고 나서 영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예수 믿어서 복 받고 예수 믿어서 잘되고 예수 믿어서 성공한다고 하는 생각은 하지만 고난이 오면 왜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지 거기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가져다 줄 영광이 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기 보다는 고난 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제자들이 또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고 바다 위를 걸어가기도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기도 하시고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그런 분이 왜 십자가를 지시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얼마든지 원수들을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무능한 모습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받은 후에는 그 모든 것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죽음이 있어야 부활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사실을 꼭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크게 능력을 주셨어요. 그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때때로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까지도 행했습니다. 이런 능력이 계속해서 나타나게 되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큰 효과가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런 능력이 막 나타나면 우선 사람들이 막 몰려오지 않겠습니까? 수천, 수만 명이 몰려온 그 자리에서 복음을 열심히 전한다고 하면 얼마나 좋아요? 복음이 막 퍼져 나갈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그 권능을 처음에는 나타나게 하셨지만 나중에는 그 권능이 나타나지 않아요. 그리고 밤낮 얻어터지고 헐벗고 굶주리고 얼마나 고난을 당하게 하셨는지 몰라요. 

고후11:23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말씀합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이 없이는 안 되는 줄 믿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사는 하나님의 종인데 이렇게 귀한 종에게 왜 이렇게 엄청난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을까? 내 생각에는 계속 건강하고 막 능력이 나타나면 차라리 복음 전하는데 더 좋을 텐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솔직히 불만이었어요. 속상했어요. 그런데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를 위해 삶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축복받지만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가장 큰 영광은 누가 받느냐? 주님을 위해 살 때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영광이 크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장차 큰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롬8:18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서 복 받을 생각만 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믿는 가운데 받는 고난을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서 더 기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성령 받은 후에 깨닫게 된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사건은 모두가 다 성경대로 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깨달았기 때문에 고전15:3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믿습니까? 우리 주님께 일어난 사건은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진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구원론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0절 볼까요?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영혼의 구원은 내 공로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멘.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큰 은혜는 구원받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재벌이 되고, 장관이 되고, 박사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된다 해도 구원 받지 못했다면, 예수 믿지 못했다면 영원히 지옥 갈 사람이니 저주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뭐냐 하면 예수 믿는 복이요, 가장 큰 은혜는 예수 믿는 은혜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구원 얻게 된 은혜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기뻐하고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1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여기 예언하던 선지자들은 구약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우연이나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선지자들 속에 계신 그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을 말합니다. 

요한복음15장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며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하시는 일이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 아주 중요한 일이 뭐냐 하면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약성경을 읽어도 성령이 인도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을 기록한 예언자들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셨기에 그들은 모두 다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누구며 어떤 분이시며 그분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보면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만나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인도해주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 구약 어느 부분에 누구를 향해서 기록을 보아도 그 속에서 예수님을 찾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서야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도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기 전에는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지만 영광의 메시야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메시야가 어서 빨리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어서 메시야가 와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을 받고 보니 메시야가 받으실 고난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고난의 메시야가 있고 영광의 메시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이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처럼 베드로도 이제는 메시야가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똑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1절 끝에 보면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 그랬어요. 막연하게 예언하고 증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 선지자들이 막연하게 예언하고 증언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누구를 지시하는지 어떤 때를 지시하는지 그렇게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은 선지자들을 위해서 예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그 말씀 하나 하나가 우리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 전하는 자들 속에서도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 듣는 자들의 마음속에서도 성령이 함께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을 힘입을 때 비로소 진리의 뜻을 똑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야가 먼저 고난을 받고 후에 영광 받으실 것도 똑바로 깨닫게 되고 예수님의 사건은 모두가 다 예언의 말씀대로 성취된 것임을 똑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서 똑바로 깨달음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인가를 똑바로 알고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간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