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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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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5)

    
지난 주일에 있었던 우리 교회의 새생명축제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겠다고 다짐하신 분들! 오늘은 그분들이 등록을 하시고 정식으로 교회 가족이 되셔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겠다고, 우리와 함께 천국여행을 하게 되심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에 등록 하신 분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한 주간 동안 새생명축제를 지나고 난 다음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본문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감동도 되고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사용하려면 우리가 뭔가 다른 사람들과 좀 나은것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학식이 많다거나 경험이 많다거나 또는 남과 다른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거나 재산이 많다거나 아이디어가 많다거나, 출신 배경이 좋다거나 등등 사회적이고 경제적이고 여러 가지 면에 좀 더 특출 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사용합니다. 어느 회사가 직원을 뽑을 때에도 기본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그에게 일을 맡깁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축복 받으려면 나도 그런 기본적인 어떤 것들이 갖추어져야 되지 않나 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몇 년 전인가! 우리 집사님들과 전도를 하는데 어떤 남자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는 교회를 못갑니다. 왜 교회에 가실 수 없으세요? 했더니, 나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매일 술 먹고 담배 피고 어떤 때는 마누라도 뚜드려 패고 거짓말도 하고, 나같이 죄가 많은 사람이 무슨 교회를 갑니까? 교회는 죄가 없는 사람이 가야하지 않습니까? 실재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대로 조금 깨끗하고 돈도 있고 뭐 좀 배워서 여러 사람 앞에 나가서도 말도 할 줄 알아야지, 교회에 나 같은 사람이 가면 되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병원에 누가 갑니까? 건강한 사람들이 병원에 갑니까? 목욕탕에 누가 갑니까? 깨끗한 사람이 가나요? 학교에 왜 갑니까? 공부 잘하는 사람이 가나요? 병원이나 기타 많은 곳에 사람들이 가는 이유는 내가 더럽고 내가 부족한 것이 있으니까 배우려고 나으려고 갑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오신 분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축복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셔서 혹시 그렇게 생각하셔서 이 자리에 와 계신 분들이 계십니까? 아마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 어느 정도 기본적인 자격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만약에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그런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습니다. 별로 없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서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신앙생활을 하시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자격이 있어서, 할 만하니까 부르셨을까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가치 체계로부터 기준으로부터 우리들 자신을 조금 바꾸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 체계에 너무 억눌려 있다 보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는데 다 장애 요소가 됩니다. 이런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그런 어떤 것들로 인해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게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그의 자격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이스라엘 민족들의 시조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의 첫 번째 사람으로 이 사람의 후손이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전 세계에 현재 유대인들이 한 3,000만명이 되는데, 지금 이스라엘에 550~600만명, 나머지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 아프리카에 흩어져 삽니다. 그 모든 유대인들의 조상이 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처음에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었을 때 이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고, 한 민족의 시조가 될 만한 자격이 있던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24장에 보면, 이 아브라함의 가족에 관한 기록이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어디에 살았냐 하면, 지금의 이라크 동부에 있는 유브라데스라는 강이 있는데 그 강 건너편 우르라고 하는 곳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그의 조상에 대한 기록하고 있는데, 뒤에 뭐라고 덧붙이냐 하면 그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아버지를 둔 사람, 부모님이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니까 자녀들도 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하고는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 그리고 아브라함이 결혼을 했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고대 시대 때 결혼을 했는데 자식이 없는 것은 수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내 땅이 확실히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디 보다가 넓은 좋은 곳이 있으면 말뚝 박고 이것이 내 땅이다 하고 유목생활을 했는데, 양이나 염소를 키우려면 사람이 있어야지요? 그런데 양이나 염소를 키우는 사람은 자기 자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식이 없다는 것은 땅도 없고 양이나 염소 가축도 없는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아브라함이 우상을 숭배하는 부모님에게서 살았고 아내는 있지만 자식도 없는, 그저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상을 섬기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만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도 조금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 사라가 아주 예뻤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내 아내가 너무 예쁘니까 이 이집트 사람들이 내 아내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나를 죽이는 것은 아닌가? 내 아내 사라를 아내라고 하면 내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를 불러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가서 나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 부터는 아내라고 하지 말고 당신이 내 동생이라고 해” 여러분 같으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아내를 다른 사람들에게 동생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조금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 아닙니까? 이렇게 뭔가 부족한 사람, 별 볼일 없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 아브라함!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를 때 그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가정적으로 흠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아주 괜찮은 사람,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도 아주 대단한 괜찮은 사람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 아주 괜찮은 사람만 부른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 대부분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사도바울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세상 적으로 부자가 없고 학문이 많은 사람들이 없고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라고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나 그리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부르실 때나 지금 여러분과 저를 부르실 때나 하나님은 동일한 기준을 갖고 부르십니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사회적인 조건이나 환경을 가지고 절대 사람을 부르시지 않는 다는 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이런 기준을 가지고 부르십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 우리교회에 오신 여러분, 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옛날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실 때를 생각해 보세요.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 대단했기 때문에 자격이 되어서 하나님이 부르셨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과거의 삶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 목적이 중요한 것이지 그 목적이 우리가 부합하느냐 아니냐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관심 사항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땅으로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부르신 것은 어떤 목적을 놓고 그곳으로 우리를 보내시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의도 없이 우리교회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회를 가시건 간에 관계없습니다.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교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불렀다는 것입니다. 어떤 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어떤 목적을 가지시고 배경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생각, 이것이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보면, 하나님께서“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어떤 땅을 놓고 아브라함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은 뭘까요? 땅문서 주고, 땅 투기 하라고, 땅 가지고 돈 벌라고 땅으로 가라는 것일까요? 그 뜻은 아닙니다.

이 땅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땅은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소출해 내는 곳입니다. 

땅에 씨앗을 뿌리게 되면 거기에서 모든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은 다 땅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생산과 소출이 일어나는 곳으로 우리를 보내시기 위하여 우리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서 이야기 하면 여러분의 삶에 생산이 없을 수 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자녀가 없고 직장을 다니는데 직장에서 승진 하지 못하고 사업을 하는데 사업이 발전도 진보도 없습니다. 삶에 소출이 하나도 없을 수 있지요? 그렇게 빈털터리 인생을 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소출과 재생산을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눈으로 보이는 어떤 땅의 개념보다도 생산과 소출,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으로 하나님이 보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빈털터리 인생을 살아가지 마시라고요.

아브라함은 아내가 있지만 자식이 없습니다. 자식이 없어 외롭게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땅을 준다는 말은 너의 삶에 땅이 소출을 내고 생산해 내는 것처럼 너의 삶에 매일매일 뭔가가 만들어지고 태어나고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를 원해서 하나님이 그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이 매일매일 빈털터리 인생, 보잘 것 없는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업을 하건 가정이건 건강이건 삶의 현장에서 매일매일 소출이 넘쳐나고 재생산이 일어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두 번째로 이 땅의 개념은 안정적인 삶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땅이 없습니다. 그러나 땅이 있는 사람은 정착을 해서 살게 됩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데 마음을 붙이지 못하면 사람이 공허해집니다. 요 며칠 전 우리 국민들이 사랑하는 배우 최진실이 자살로 죽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참 마음이 아프지요? 왜 죽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남편도 자식도 돈도 명예도 인기도 어느 것 하나에 마음 붙이고 정 붙이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까, 혼자라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품안에서 정착해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돈을 추구하며 살아봤지만 돈이 그렇게 쉽게 잡히나요? 인기를 추구하며 살아보지만 인기가 그렇게 원하는 데로 잡히나요? 세상에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세상의 쾌락이 안정을 가져다주나요?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안정적으로 뿌리 내리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부리 내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우리를 하나님은 정착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정착해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마음의 안정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돈이 아니고, 세상의 쾌락이 아니고, 연애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인기도 아니고요, 명예나 권력도 아니고, 그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안식과 평안에 정착해 살라고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당신이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가려면 먼저 이 세상의 것을 떠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가 정착한 재생산의 인생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뭔가를 요구하시는데 그것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조건은 오늘 본문에 보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믿으면 아버지도 버리고 고향도 버리고 친척도 버리라는 말일가요? 여기서 말하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일가친척과 친족을 무시하고 버리고 절연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내 삶의 주변, 익숙해진 삶, 변화를 싫어하는 삶, 그리고 그냥 눌러앉고 싶은 삶, 이것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전 코미디 프로에 유행했던 주인공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좀 이렇게 바꾸어 보라고 이야기 하면, 좀 시도해 보라고 하면 이 사람이 꼭 하는 말이 “내버려 둬, 이대로 살다가 죽을 거야” 변화도 싫어하고, 지금의 이 삶, 절망가운데 있는 편안한 삶, 안주하는 삶, 하나님은 우리 보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그 땅에 들어가려면 하나님과 함께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가려면 지금의 이곳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삶,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고 재미에 빠져 살고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인기를 추구하는 세상적인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그 땅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버리고 그곳을 떠나가라.” 

성경에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떠날 때 아버지 데라를 하란에 장사지내고 죽고 난 다음에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삶,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삶을 모두 다 땅에 묻으라고 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벗어버리고 잊고 땅에 묻어버리지 않은 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으로 갈 수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경기에 임하기전 감량하려고 체중 조절하려고 먹지 않습니다. 잠도 덜 잡니다. 하고 싶은 것 다 절제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경기에 임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그 땅으로 가셔서 하나님과 함께 안정된 평안한 인생을 누리시려면 뭔가를 희생하셔야 합니다. 그 희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 여기를 벗어나야합니다. 옛날처럼 생각하고, 옛날처럼 행동하고, 옛날에 좋았던 것 그대로 다하고 하나님에 우리에게 예비하신 그 땅으로 갈 수 없습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축복의 근원이자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다 뒤로하고, 하나님이 가시고자 하는 보여주시고자 하는 땅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어떻게 만드시느냐 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2절)

너를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해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고 후손을 내가 축복해주리라. 여러분이 세상에 있는 것을 다 땅에 묻고 주님이 마련하신 땅으로 가겠다고 다짐만 하면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 주십니다. 

믿음생활하시는 분들을 가만히 보면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분들은 확실히 자녀 손들이 잘 됩니다. 부모님의 믿음의 유산이, 부모님의 축복의 근원이 이어져 가니까 확실히 잘되는 것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고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샘물을 마시고 싶어도 샘의 근원이 있어야 샘물이 나오는 것이지요. 자녀가 아무리 세상에서 잘 되고 싶어도 여러분 자신이 축복의 근원이 되지 않으면 뭔가 하나님의 축복이 나오지 않으면 자녀들은 그것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런 축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특별히 우리 교회 등록하셔서 신앙생활을 하시려고 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괜히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의도도 없이 부르신 것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는 아는 분이, 친구가 자꾸 교회가자고 해서 몇 번 다녀보려고 그저 예의상 체면 봐서 몇 번 와 준거야,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축복하시려고, 축복의 샘으로, 축복의 근원으로, 그래서 후손 후손에게 축복을 전달해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아주 세밀한 계획을 가지시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과거의 삶을 다 뒤로 하고 주님이 마련하신 땅, 재생산과 소출이 일어나고, 안정된, 정착된 삶을 살아가라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마시고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의 쾌락에 연연해하지 마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슴에 담아 안정된 축복받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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