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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라 (마 1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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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라 (마 18:19~20)  

 
종교개혁의 3대 모토

지금부터 꼭 한 달 후인 10월 마지막 주 26일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 부속예배당 정문에 95개 조항을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부패한 중세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독교가 다시 성경과 바른 신앙으로 돌아오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루터를 비롯해 우리 장로교회의 시초인 칼빈 등 종교 개혁자들은 세 가지 모토를 주장했습니다. 제가 한 번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Sola Gratia’(솔라 그라치아), ‘Sola Fide’(솔라 피데), ‘Sola Scriptura’(솔라 스크립투라), 제가 방언한다고요? 예, 방언 맞습니다. 모두 라틴어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이 라틴어가 세계공용어였고 성경도 오직 라틴어로만 쓰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시대에도 중요한 사상은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종교개혁의 3대 모토는 좀 어렵더라도 크리스천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하기에 제가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Sola Gratia’(솔라 그라치아), 이것은 ‘오직 은혜’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 받는 방법은 오직 은혜뿐이라는 뜻입니다.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Sola Fide’(솔라 피데), 이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중세시대 로마가톨릭은 믿음 외에도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이런 잘못된 생각에 반대하며 우리가 구원 받는 방법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입니다.

‘Sola Scriptura’(솔라 스크립투라), 이것은 ‘오직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중세시대 로마가톨릭은 성경 외에도 진리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결정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외에 결코 그 어떤 것도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에서 이 ‘Sola Scriptura’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장황한 설명을 듣다 보니 조금 따분해지지 않으셨습니까? 갑자기 라틴어가 막 나오니 머리가 복잡하십니까? 하지만 꼭 알아야 합니다. 이 기본을 모르면 우리가 바로 믿을 수 없습니다. 다함께 따라합시다. “바로 알고/ 바로 믿자!” 그래서 바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되새겨서 바로 믿자는 뜻으로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해마다 지키는 것입니다.


코람 데오

그런데 방금 말씀드린 ‘Sola Gratia’(솔라 그라치아), ‘Sola Fide’(솔라 피데), ‘Sola Scriptura’(솔라 스크립투라), 이 세 가지 외에도 또 하나 종교 개혁자들이 소중히 생각한 라틴어로 된 모토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부터 말씀을 나눌 ‘Coram Deo’(코람 데오)입니다. 여기서 ‘Coram’이란 라틴어로 “누구누구 앞에서”라는 뜻이고, ‘Deo’란 라틴어로 ‘데오스’ 즉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붙여서 읽으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이 됩니다. 히브리말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그대로 읽으면 ‘리프네 엘로힘’ 혹은 ‘리프네 아도나이’로, 말 그대로 풀면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성경 곳곳에 이 표현이 나오는데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 있다가 내려왔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뛰놀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표현을 “하나님 목전(目前)에서” 즉 “하나님의 눈앞에서”라고 번역했지만 사실은 ‘눈앞’이 아니라 ‘얼굴 앞에서’인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무 가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은혜 받는 것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받는 것이고, 제가 기도를 하거나 찬양을 해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하는 것이고, 혹시 제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짓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도 이 표현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말 “리프네 엘로힘” 이 말을 그대로 라틴어로 옮긴 것이 바로 ‘Coram Deo’(코람 데오)인 것이지요.

그러면 왜 종교 개혁자들이 이 ‘Coram Deo’(코람 데오)라는 말을 좋아했을까요? 그것은 중세시대 교회가 너무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황을 숭배하고, 마리아 상을 숭배하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교회 종탑과 으리으리한 교회당 건물을 지었지만 정작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제도나 사람, 건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종교의 이름으로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면서도 조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 위에 계시고 나와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교 개혁자들은 뭐라고 생각했느냐?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Coram Deo’(코람 데오), 즉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얼굴 앞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 바로 앞에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바로 앞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때로는 하나님이 너무나 가까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또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져서 감히 그 분 얼굴 앞에서 죄 짓지 못하게 되는 정말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오늘부터 다섯 주에 걸쳐 이 ‘Coram Deo’(코람 데오)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표현이 성경에 정말 여러 번 나오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다섯 가지 뽑아서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나누는 다섯 주 동안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바로 내 앞에 계심을 느끼면서 깊은 은혜 받는 시간 되기 바랍니다.


코람 데오의 기도, 코람 데오의 예배

오늘은 그 첫 번째 주제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눕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기도할 때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 있습니까? “아, 지금 하나님이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시면서 내 기도를 들으실 거야.” 아니면 이런 느낌 받아본 적 있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바로 내 앞에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실 거야.” 어떤 것이 옳습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할 때 어디서 어떻게 내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여러분이 예배할 때 혹시 이런 생각 드신 적 있습니까? “하나님이 저 하늘 위에서 이 예배를 받으시고 계실 거야.” 아니면 이런 느낌입니까? “하나님이 지금 바로 내 앞에서 예배를 받으시고 영광 받고 계실 거야.”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옳은 생각일까요?

몇 해 전 짐 캐리라는 미국 배우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라는 코미디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었습니다. 좀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신앙인들이 보면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 있는 영화입니다. 하나님이 TV 리포터인 브루스에게 잠시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주인공 브루스는 그야말로 영화 제목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가지고 그동안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전지전능한 능력을 얻으면 무엇을 하고 싶겠습니까? 주인공은 그동안 꼴 보기 싫었던 자기 라이벌을 혼내주기도 하고 구박 받던 아내에게 점수를 따기도 합니다. 정말 신나는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점차 하나님의 일이 그리 즐겁고 신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사방에서 1초에도 수만 수십만 개씩 들려오는 기도 소리를 도대체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합니다. 

그래서 한 번은 그 모든 기도를 이메일로 받은 다음 한꺼번에 “Yes”하고 응답했다가 세상이 뒤집히는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점차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쉽고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수많은 기도에 응답하고 수많은 사람과 우주 만물을 운영하면서도 작은 일 하나까지,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까지 섬세하게 돌봐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동안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산 것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모독한 영화라고 비판도 했지만 저는 특히 이 영화에서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정말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 기도를 들으실까?” 

물론 영화에서처럼 이메일로 들으실 리는 없겠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과연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우리가 외치는 기도 소리를 어쩌다 들으시고, 또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시다가 “음, 저렇게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나에게 예배하는 것을 보니 오늘이 주일인가 보네. 어, 저 한국 땅 포항에 있는 교회에서도 모여 예배하는구먼.” 하시는 분이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최근 읽은 글 중에 제 신학교 은사가 쓰신 글을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귀 기울여 잘 들어보면 참 공감이 가는 귀한 내용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귀담아 들으시려고
여러분이 기도하는 바로 그 장소에
일부러 와 계신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여러분의 기도 한 마디 한 마디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신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멀리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낮은 땅을 굽어보시다가
마침, 기도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이 눈이 띄자
여러분의 기도 소리를 들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예배할 때
여러분이 예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앉아 계신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루하루 살아갈 때
하나님이 이리저리 여러분과 함께 다니신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함부로 허튼 생각을 할 엄두도 못 내고
막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제 맘대로 행동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느끼므로
늘 자신을 삼가고 가꿀 뿐만 아니라
하나님 품 안에서 응석부리듯이 살아가는 데에
믿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Coram Deo’(코람 데오)의 신앙입니다. 특히 ‘코람 데오’의 기도요 예배의 자세입니다. 이 글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저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며 여러분의 기도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 중 하나 정도로 여기고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순간 여러분 앞에 일부러 찾아 오셔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그래 하준아, 그래 아무개야, 그래 내 아들아, 그래 내 딸아, 내가 네 마음 다 안다. 네 기도 다 들었다.” 하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람 데오’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바로 하나님 얼굴 앞에서 그분의 얼굴을 마주 보며 기도하고 있고, 하나님은 그 얼굴을, 그 귀를 내게 바짝 가까이 대고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기도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됩니까?

또한 우리가 예배할 때도 하나님은 저 높은 하늘에서 세상 사람들이 드리는 수많은 예배 중 하나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하는 그 순간 하나님이 이 자리에 친히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저 앞에서 떡하니 높은 보좌에 앉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자리에, 우리 옆자리에 함께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람 데오’의 예배인데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까?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바로 이 말씀대로입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도 아니라, 꼭 으리으리하게 큰 교회당 건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 두 사람이 모이더라도 땅에서 합심하여, 마음을 합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다 듣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늘에서가 아니라 땅에 내려오셔서 말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바로 그 다음 구절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맞지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친히 오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예배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라!”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예배는 물론 하나님이 안 받으십니다. 겉으로는 예배요 말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정작 사람이 중심 되고, 사람이 드러나고, 사람이 기뻐하는 예배는 하나님과 무관한 예배입니다. 겉으로는 기도요 말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정작 자신의 주장과 고집, 욕심만 내세우는 기도는 하나님과 무관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과 무관한 예배와 기도뿐 아니라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고 저 높은 하늘만 향해 드리는 기도와 예배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요? ‘코람 데오’의 신앙에 의하면 지금 하나님이 기도하는 내 앞에 계신데, 예배하는 내 옆에 함께 계신데, 이것이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는 이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저 높은 하늘에, 마냥 멀리만 계신 분으로 여기고 하늘만 쳐다보며 부르짖고 예배하고 있지는 않냐는 것입니다. 방향이 틀렸습니다. 

기도할 때 내 바로 앞에 얼굴이 닿을 듯 가까이 계신 그 분께 아뢰십시오. 예배할 때 내 곁에 계신 그 분과 대화하고 그 분께 영광 돌리십시오. 그래서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아니, ‘아빠(아바)’ 아닙니까? 내 말을 귀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다 들으시는 내 아빠 아니십니까? 예배할 때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하는 것도 좋지만 바로 내 곁에 계신 아빠에게 “하나님 아빠, 저는 아빠가 참 좋아요. 사랑합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 더 좋은 예배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요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 좋아하시는 예배요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예배 때마다 목사도 아닌, 찬양대도 아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찾아와 계신 하나님 얼굴 말입니다. 여러분이 엎드려 기도할 때 내 앞에서 나의 기도에만 귀를 기울이시는 그 분을 만나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미 ‘코람 데오’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귀한 자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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