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4~7)

  • 잡초 잡초
  • 3061
  • 0

첨부 1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4~7)  

어느 날 솔로몬 왕이 현자(賢自)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복 가운데 가장 큰복이 무엇입니까?" 현자 호마가 말합니다. "부귀입니다." 솔로몬이 다시 묻습니다. "왜 부귀가 가장 큰복이라 생각합니까?" 호마가 대답하길 "부귀란 견고한 성과 같아 마음이 든든해질 뿐 아니라 어떤 힘이라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지략가 아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백발의 아쉬가 대답합니다. "저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왜 지혜라고 생각합니까?" 솔로몬이 묻자 아쉬는 대답합니다. "지혜는 선한 길로 인도하며 영혼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지혜를 가진 자는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랍비 피쉘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피쉘은 느린 말로 입을 열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복 가운데 가장 큰복은 덕(德)입니다. 덕이 많으면 좋은 친구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말을 듣고 솔로몬은 한숨을 내 쉽니다. 현자들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왕께서는 큰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솔로몬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합니다. "평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외의 대답을 들은 현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왜 평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은 주변을 돌아보며 힘없이 말합니다. "많이 가지면 무엇하겠습니까? 궁궐에 산들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걱정과 근심이 있으면 다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지혜가 많으면 무엇합니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깜박깜박 잊는 것을. 덕은 또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때로는 내 마음도 다스리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을. 우선 마음이 편해야 되지 않겠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최고의 학문을 배웠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복중에 가장 큰복은 평강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평강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평강이 옵니다. 사람은 스스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이 말하기를 "하나님을 발견하기까지는 그 어디서도 참 평안을 얻을 수 없었다" 고 했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평강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평강은 구속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의 평강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안녕(安寧)을 의미하며, 신약의 평강은 하나님과 화해를 맺어 저주와 징계가 없고 고통과 슬픔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평강을 얻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키려면, 


첫째로 주안에서 기뻐해야 

폴리애나(Pollyanna)는 미국의 여류 작가 엘러너 포터(Eleanor H. Porter)가 1913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폴리애나는 부모를 잃고 이모에게 보내져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모는 조카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폴리애나는 이모의 야박함을 원망하지 않고, 목사였던 아버지가 가르쳐준 기뻐하는 게임을 합니다. 초라한 다락방에서 혼자 말합니다. "옷장에 거울이 없어 기뻐요. 거울이 없으면 주근깨가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벽에 그림이 없어도 훌륭한 그림이 보여요. 작은 창문을 통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이모가 이 방을 내게 주셔서 기뻐요." 부엌에서 빵과 우유를 먹으면서도 기쁨 놀이는 계속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기뻐요. 낸시 언니와 함께 먹을 수 있어서 기뻐요." 하녀 낸시가 폴리애나를 불쌍히 여기며 말합니다. "아가씨는 뭐든지 기쁘군요." "그건 게임이에요." "게임이라니요?" "무엇이든 기뻐하는 게임이에요.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어요. 어느 날 위문품이 왔는데 열어보니 갖고 싶어하는 인형이 아니고 목발이었어요. 슬퍼서 울었죠.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목발을 쓰지 않아도 되니 기쁘구나' 건강한 다리가 있어서 기쁘다는 것이었어요. 기뻐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보람이 있어요. 누구나 진심으로 찾아보면 반드시 무엇인가 기뻐할 만한 것이 있어요." 폴리애나의 기쁨 놀이는 불행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열한 살짜리 소녀가 시작한 기쁨 찾기 놀이는 벨딩스빌 마을 전체에 퍼져 나가고, 마침내 무뚝뚝한 이모까지 부드럽고 상냥한 사람으로 돌아오게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 '기뻐하라' 의 헬라어 '카이레테' 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어떤 상황가운데도 기뻐해야 할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어떤 경우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본서를 기록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항상' 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는 것입니다. 주 밖에서는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주안에서만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먼저 기뻐하는 생활을 나타냈습니다. 기쁨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환경과 조건을 뛰어 넘습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시련이 와도, 아픔이나 어려움이 와도 빼앗기지 않는 절대적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평강이 임하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관용을 베풀어야 

우리 몸 안에 대표적 소화기관으로 위(胃)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유 1리터를 마시게 되면 소에게 있던 알부민(Albumin)이 짙은 농도로 혈액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위를 통해 흡수된 알부민이 혈관 속으로 흘러 들어가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유를 주사기에 넣어 혈관에 투입하면 쇼크사를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소의 알부민이 위안에만 들어가면 몸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럽게 흡수가 됩니다. 우유뿐만 아니라 온갖 음식물이 위 속으로만 들어가면 몸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영양분을 공급하게 됩니다. 어떤 이물질이 들어와도 함께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생물학적 장치가 위안에 있습니다. 이 생물학적 장치를 일컬어 관용이란 뜻의 탈러런스(Tolerance)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위는 관용의 장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관용은 자기 안에 자기와 다른 사람을 품는 것입니다. 마치 위가 이물질을 다 소화하듯이 관용이란 자기와 다른 사람을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르지만 받아주는 것, 틀리지만 품어주는 것, 잘 맞지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어안아 주는 것이 진정한 관용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기 '관용'의 헬라어 '에피에이케스' 는 손해를 입어도 동요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관용을 베풀어야 할 대상은 '모든 사람(to all)' 입니다. 좋은 사람에게나 까다로운 사람에게나, 강한 자에게나 약한 자에게나, 아는 사람이거나 모르는 사람에게도 누구에게나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후일 내게 아무런 영향이 어떤 모양으로도 없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관용해야 합니다. 관용을 베풀어야 할이유는 '주께서 가까우시기(The Lord is near)'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역을 하다보면 경쟁의식이 작용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약한 부분을 도와 서로 잘되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서로에 대한 판단이나 정죄가 아닌 관용을 통해 수용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 때 사단이 틈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관용은 예수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면 누구나 가능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푸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감사로 간구해야

해지는 들녘 초라한 부부가 마주보면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의 피곤한 발끝에 조그마한 아기의 관이 놓여 있습니다. 불쌍한 젊은 부부가 아기 관을 묻기 전 기도하는 비통한 모습입니다. 밀레(Jean Francois Millet)는 이 모습을 그려 선배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선배가 충고합니다. "애틋한 사연, 아름다운 전원과 황혼, 그리고 감사기도, 다 좋은데 가운데 관이 맘에 걸린다. 관 대신 바구니를 그려 넣으면 어떨까?" 그래서 아기의 관을 바구니로 고쳐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미가 몇 배로 살아났습니다. 전체 그림은 그대로인데 중간 하단에 바구니 하나 고쳐 그리니 비통한 장례식이 황혼의 감사로 승화되면서 불멸의 명화인 '만종(L'Angelus)'이 되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는 현재 명령형으로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염려와 불안에 눌리면 감사를 잊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든 일, 슬픈 일, 화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감사로 간구해야 합니다. 감사로 간구할 때 과거의 은혜가 떠오르며, 현재 누리는 축복도 깨달아집니다. 또 하나님이 미래까지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깁니다. 그때 먹구름이 걷히는 것처럼 염려와 불안이 사라지며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염려와 기도는 반비례합니다. 염려하면 기도가 사라지고 기도하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평강이 근심과 염려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며 악으로부터 보호하여 줍니다. 

엘리자 에드먼드 히윗(E. E. Hewitt)이 갑작스런 사고로 척추를 다쳤습니다. 몇 개월에 걸친 병상 생활로 인해 신앙이 약화되어 가해자에 대한 원망만 쌓여갈 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찬송을 잃지 않는 병실 청소부의 신앙에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원망에 찬 생활을 회개하며 찬송가를 쓰게 됩니다. 바로 455장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부디 세상의 조건으로 기쁨의 조건을 삼지 말고 주안에서 기쁨의 조건을 삼으며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구하여 임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