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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디서 났느냐? (마 13: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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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났느냐? (마 13:53~58)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여러분은 아프리카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강한 동물은 사자도, 몸집 큰 코끼리도 아닙니다. 
사자도 무서워하는 동물이 ‘아프리카 개미’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개미들이 떼를 지어 이동할 때는 5km나 되는 행렬을 이룬다고 합니다. 
맹수들도 개미 떼를 보면 도망가고 코끼리도 겁을 먹습니다. 
사자는 개미가 이동하는 반대 방향으로 달아난답니다. 
어떤 동물이든 아프리카 개미에게 걸리면 먹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수십만 마리의 개미가 동물의 몸에 새카맣게 붙으면 
그것을 견뎌낼 짐승은 하나도 없습니다. 
맹수들이 개미를 두려워하는 것은 개미의 몸집이 아닙니다. 
개미 떼의 협동심입니다. 
개미 한 마리는 지극히 작지만
‘아프리카 개미 떼’의 협동심은 그들을 가장 강하게 만듭니다. 
<「생명의 삶 플러스」, 두란노 2008년 8월호. 참조>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가족, 이웃, 믿음의 친구 … 들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만난 이들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한 마음이 되면 어떤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잘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믿음 안에서 한 마음 되어 신앙 생활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운 고향

사람에게는 다 고향이 있습니다.
혹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고향이 어디라고 알려 주시기 전에 
부모님과 떨어지신 분들은 고향이 어디인지 모를 뿐이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자라거나 오래 살다보니 정들어 고향처럼 느껴지는 제 2의 고향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마음이 가는 마음의 고향도 있습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의 장소이며, 
고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살기 좋고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고향은 자신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고향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향이 그리워도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좋은 모습으로 / 성공한 모습으로 고향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뚝 선 사람/된 사람/이긴 사람은 
대부분 고향 사람들도 자랑스러워합니다. 
‘우리 동네 출신 ○○○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습니다’라고 현수막을 걸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기 동네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났느냐 …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자라난 제2의 고향에 가셨습니다. (마 13:53, 54)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눅 2:4)
어린 시절 대부분을 나사렛에서 살았습니다. (눅 4:16)
그러므로 성경본문에서 말하는 고향은‘나사렛’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향에, 나사렛에 가신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마13:54)
그리고 소수의 병든 자를 위해 안수하여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막6:5)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신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랍비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 …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마 13:54) 고 하며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나사렛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가르침은 놀라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동네 출신 목수의 아들이
‘그런 지혜와 능력을 어떻게 행할 수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서 대단한 사람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나사렛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습게 여겼던 작은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 …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 … ”(요1:45)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 ”(요1:46)고 했습니다. 

영문 성경에 보면 “Nazareth?”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Nazareth? You've got to be kidding.”- Message -
“나사렛? 농담하는 거지?” 

또 다른 영문성경에 보면 
“Is it possible for anything good to come from Nazareth?” 

- The Simple English Bible -
“그게 가능한 소리냐? 나사렛에서 그런 좋은 인물이 나다니?”라고 했습니다.

나사렛은 특별한 기대를 할 수 없는 …
그야 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의 가족 배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55~56절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마 13:55~56)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목수였던 것,
예수님이 목수인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수 일을 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목수인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네 주제에 어디서 위대한 랍비들처럼 행동하느냐’고 비웃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너,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를 막아 버렸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예수님은 
더 이상 거기서 말씀을 전하지 않으셨고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마 13:58) 
“ …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마 13:57)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은혜의 말씀, 생명과 구원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그 자체가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는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집중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별 볼일 없는 자기 동네 출신 목수라는 것이었습니다. 


… 때문에 

여러분은 오늘 마음으로 교회에 오셨습니까?
그냥 잘 알고 있는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예배의 자리에 계십니까?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계시다면 앉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의 목소리로 전해지지만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자신의 나이, 지식, 경험, 판단 … 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아멘’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닌 지/예수 믿은 지 오래 된 이들이 말씀에 은혜 받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많아서입니다.
성경 공부 많이 한 이들, 성경 많이 읽은 이들, 신학공부 한 이들이 은혜 받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알고 있는 그 잘난 지식 때문에 은혜 받기가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바른 것이고 
오늘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 
말씀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오래 믿었기 때문에
교회 다닌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성경 읽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바른 것이고
자신이 처음 본 것/모르는 것은 무조건 잘못 됐다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엡 1:22)
에베소서 1장 22절에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고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나고 많이 배워 아는 것이 많아도
성경말씀보다 더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생각, 내 방식, 내 경험, 내 판단’을 고집하면 
그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교회의 머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과 몸에 밴 경험은 
선입관이 되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해 첫인상이 생기는데 필요한 시간이 
4초 이내라고 합니다. (다른 책에 보면 ‘3초’라고 함)

심리학적으로 첫인상을 결정하는데 색깔도 많이 좌우합니다.
선을 보거나 면접을 볼 때 남자들은 곤색 양복을 입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실제보다 훨씬 멋있어 보인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분홍색을 입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예뻐보이고 착해 보이고 돋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부흥회에 가면 첫날 저녁은 곤색 양복을 입습니다.
첫인상이 좋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첫인상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큰 선입관을 만듭니다. 
- 그래서 첫인상이 좋은 여자가 애교를 떨면 귀엽게 느낍니다. 
하지만 첫인상이 나쁜 여자가 애교를 떨면 푼수처럼 느껴집니다. 

- 첫인상이 좋은 사람이 머리도 좋다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을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첫인상이 나쁜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은 교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참조>

그러나 짧은 순간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
사람을 한 순간의 판단으로 생각하고 결정짓는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하며 결론 짓습니까?
여러분이 결론짓는 그 생각이 맞는 것일까요?


짧은 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학교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 그 때 어떤 아저씨 한분이 탔다. 
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차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딸이 백혈병에 걸려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래서 … ”
순간 지하철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딸을 팔아 먹냐, 돈이 그렇게 궁하냐” 등등 …
한동안 아저씨는 상기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서 계셨다. 
그리고는 … “오늘 제 딸이 수술을 받는데 
제발 단 1초만이라도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순간 열차 안은 숨소리도 안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 역시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
< 권태일 엮음, 「딩동, 사랑이 도착했습니다 」참조>

사람들은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딸을 향한 
안타까운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얻게 된 지식 / 느낌 / 판단으로
한 사람의 전부를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순간에 느끼고 알게 된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편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왜 내가 가진 생각을 남도 똑같이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
- 왜 내가 만들어 놓은 나만의 기준에 다른 사람을 끼어 맞추려고 했는지 …
- 왜 내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죄했는지 … 
자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 버리고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교회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양한다고 모인 사람들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 교회에 분쟁이 많습니다.

- 교회에서 다투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새신자들이 아닙니다.
목사와 목사가, 목사와 장로가, 장로와 장로가, 권사와 권사가 …
꼭 예수님 사촌처럼 느껴지는 훌륭한 사람들이 불화합니다.

- 교회를 비난하고 목사에게 덤벼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불교의 승려들이 아닙니다. 더 깍듯합니다. 예의를 갖춥니다.
비전센타 다소에 가끔 승려 한 분이 오셔서 차를 드십니다. 
그리고 가실 때는 선교헌금도 꼭 내고 가십니다.

천주교의 신부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정중하고 예의 바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교회를 비난하고, 목사에게 대들고, 선교의 길을 막습니까?
언론에 교회의 지저분한 이야기를 제보하고 
지저분한 자료를 찾는 사람들이 목사/장로입니다.
‘정의감’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마귀짓을 합니다.
교회를 혼란케 하고 선교를 어렵게 만듭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전후서를 보십시오.
고린도교회, 웃기는 교회입니다.
- 파당을 지어 다투고
- 온갖 추한 모습 다 보여주고
- 성찬식조차도 바르게 하기 어려운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 했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고전1:2)

여러분은, 교회를 … 성도들에 대해/목사에 대해 … 뭐라고 말하십니까?
여러분의 입으로 하는 그 말이 곧 마음입니다.
남에게 들었다고 해도 들은 소리를 전하는 입이 문제이기에
성경에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약 1:19) 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 자식에 대해 / 가족에 대해 …
여러분이 출석하는 교회에 대해 / 목사와 성도에 대해 …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떻게 말하십니까?
그 생각이, 그 마음이 여러분을 고정시켜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나사렛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 경험 … 
그것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귀를 열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성경 공부 왜 하라고 합니까? 
하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억지로 권하여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정된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성경공부하라는 것입니다.


호박벌, 험블비(humblebee/범블비bumblebee)라는 벌이 있습니다.
몸통은 크고 날개는 작아 기체역학적으로(공기역학적) 
도저히 날 수 없는데도 잘 날아 다닌다고 합니다.
꿀을 따 모으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1주일에 1,600킬로미터를 날아다닙니다.
고작 2.5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체구에 비하면 천문학적 거리를 날아다니는 셈입니다.
하지만 호박벌은 사실상 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몸은 너무 크고 뚱뚱한 데 비해 날개는 형편없이 작고 가벼워서 공기역학적으로, 
날기는커녕 떠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녀석은 어떻게 그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닐 수 있을까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과학자들이 연구 후에 내린 추론이 ‘자신감’때문이라고 합니다.
험블비는 ‘나는 벌이다. 고로 나는 당연히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과감히 날개 짓을 하니까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슴 뛰는 삶 / 강헌구 지음. 참조>

닭은 범블비에 비하면 자기 몸집에 비해 큰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날 수 있는 데도 다른 닭들이 모두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날기를 포기했습니다. 
갑자기 개가 달려들면 닭은 지붕 위로 날아갑니다. 
그것을 보면 닭은 충분히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날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학생들 중에도 공부안하는 친구들을 보며
‘쟤도 공부 안하지, 쟤도 공부 안하니까 나도 안하지 …’하는 학생이 있고, 
집사님 중에도 ‘저 이도 봉사 안하지, 저 이도 … 나도 안하지’하는 분이 있습니다.
반대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며 나도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공부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내가 정한 생각/판단 … 그것이 모두 옳은 것일까요?
내가 닫은 귀의 문, 내가 닫은 마음의 문 그것은 자신을 날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가로 막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나사렛 사람들과 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내가 아는 예수, 목수인 예수 …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고정관념이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멈추게 했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멈추게 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듣지만 목사 때문에/교회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는다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때문에 말씀과 능력을 외면하고 
고개를 흔든다면 은혜와 능력의 기적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부족한 목사의 입을 통하여 하늘의 말씀을 전합니다.
어떤 이는 아멘으로 받고 능력의 말씀으로 삼지만 어떤 이는 고개를 흔듭니다. 
호박벌이 되시렵니까? 닭이 되시렵니까?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복된 자리의 주인공이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머릿속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으로 
예수님을 평가하고 말씀을 멈추게 하고 기적을 멈추게 했던
나사렛 사람들이 오늘 우리 중에 하나도 없게 하여 주옵소서.
겸손히 마음 문을 열고 귀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며
순종하는 하늘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 땅에 수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보아야 할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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