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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목회자의 바람 (빌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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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빌 1: 1~11
제목 : 한 목회자의 바람

목회자요 전도자인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사람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을 통한 신앙적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과의 관계를 믿음의 신앙적 관계라 하면 이웃과의 관계를 윤리적 관계, 사명적, 책임적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가 나쁜가하는 모든 것들이 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아니하다 했는데 그것은 인간관계성 속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대 목자장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바람이 어떤 것인가 알아보고 우리가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삶과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생각할 때 마음이 기뻐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면, 그것이 부부의 관계이든 자녀와의 관계이든 이웃과의 관계이든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좋은 관계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생각하기도 싫은 관계가 형성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이 말을 바꾸어서 누군가가 나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면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나를 생각할 때 사람들이 힘들고 괴롭게 생각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존재가 되겠습니까? 
   
어느 서신보다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빌립보교회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우리도 또한 주님을 생각하면서 우리 맘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복된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잘아는 대로 빌립보교회는 마게도니아사람이 환상에 나타나서 그들을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바울이 마게도니아 첫성 빌립보에 들어갔다가 루디아라고 하는 자주장사를 만나서 세운 교회가 이 빌립보교회입니다. 아마 바울이 생전에 서너번은 방문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자비량선교사였습니다.  천막을 지으면서 선교를 했는데 빌립보교회는 이 바울의 선교를 돕고, 바울이 옥에 있을 때에 바울을 위해서 에바브리디도를 파송하고, 예루살렘을 위해서 헌금을 하며 바울을 돕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빌립보교회와는 대단히 아름다운 관계를 가졌습니다. 바울과 빌립보성도들과 아름답과 행복한 관계를 가진 것 처럼 여러분의 관계도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복음에 동참하기를 원했습니다.  
5절과 7절에 ‘너희가 첫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지고 어떻게 바울의 마음에 늘 빌립보교인들은 감사와 기쁨의 존재로 여겨졌습니까? 이는 복음에 함께 동참했기 떄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이방인의 사도라 내가 이 복음을 증거하려 하매 내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아니한다’했습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복음이었습니다. 이를 증거하는 일에 그의 모든 희노애락과 모든 삶을 쏟아 부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모든 복음의 일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사귐은 복음에 동참하는데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교회에 아름다움도 복음에 동참하는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입니다. 그의 나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그가 다시 오심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사역에 동참하므로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그 마음에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의 조건으로 떠오르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에 늘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복음에 동참하는 것은 꼭 선교사로 나가든지 목회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들과 주야로 함께 기도하고 너희가 나를 위하여 기도함이니라’ 기도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을 크게 생각하십시오. 기도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 많은 분들은 기도를 하고 젊은 분들은 패기가 넘쳐 기도는 안하고 행동이 앞섭니다. 기도 없는 일은 언제나 시험에 들게 됩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랑하는 바울을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사랑하는 선교사를 위해, 우리 조국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에 동참하는 것은 또한 물질로 돕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소식을 듣고 그들이 구제헌금을 했습니다. 바울의 옥에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쓸 것을 도왔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땀흘리는 수고를 기꺼이 드리는 봉사가 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이 땅에 사는 날동안 선하고 의로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보화를 쌓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질은 죄도 아니고 선도 아닙니다. 그것이 어떻게 씌여지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 있고 악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것들을 힘을 기울여 봉사했습니다. 바울이 봉사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헌금하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받은바 은혜를 감사함으로 수고하였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수고로 복음에 동참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 마음에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생존 그 자체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야 의미있는 보람된 삶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 버튼목사는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교회가 생존을 넘어서야 한다’ (Bring your church back to the life) 사는 것에만 급급한 것은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가 생존하기 위해서만 애쓰는 교회는 있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교회의 병이라 했습니다. 신앙을 잃지 않고 신앙을 지키기만 하는 것이 신앙의 병입니다. 
   
어린애는 귀엽지만 애기가 자라지 않고 1년이 지나고 2년, 3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면 부모의 큰 근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버튼목사는 ‘생존으로는 안된다 삶의 의의가 무엇인지 추구하는 적극적 삶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미국의 교회가 교회 지키는 데만 힘써 교회를 짓는데 돈이 모자라는데 어떻게 하면 모금을 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전통을 지키겠는가? 거기에 급급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생활이 신앙지키는데서 벗어나, 신앙의 삶의 가치와 보람을 느낄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가치와 보람은 여러분의 땀과 수고의 보배를 어디에 쌓느냐에 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기도하고 물질을 드려 동참하고 에바브리디도를 보내서 바울에게 수종들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불편을 돕고 그의 사역에 힘썼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계 곳곳에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바울같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복음을 전하러 가지는 못하나, 우리는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현지선교사를 기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의 힘이, 영국의 경제적 능력이 커졌던 때는 선교사를 온 세계에 파송할 때였습니다. 지금도 한국사람이 가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세계에 흩어져 있는데 우리 교포들에게는 특색이 있습니다. 열 사람이 가든 스무 사람이 가든 심지어 정부에서 파라과이 이민을 장려할 때에, 목사님이 이민가는 데에 지원해서 선교사들이 같이 떠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교회가 있습니다. 놀라운 얘기입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늘 경험하게 됩니다. '수종드는 일을 너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함이니라.'
  
  
셋째, 온전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저희가 온전하여지고 완성되어지며 성숙되어지기를 바라고 그것을 바라보는 바울에게 기쁨과 감사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기르면서도 그 자녀에게 희망이 있고 그 자녀에게 대한 약속이 있을 때에 재미가 있습니다. 9절 말씀에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의 지식과 모든 총명함으로 점점 풍성하게 하기를 원한다’하였습니다. 사랑을 받는 일도 행복한 일이요 사랑을 하는 일도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지식이 풍성해지지 않고 현명하지 않으면 때로는  너무 많은 사랑을 부어서 자식으로 하여금 유약한 자녀를 만드는가 하면 때로는 사랑이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랑에 지식에 더하고 지식에 총명함을 더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이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결혼하고 3년,5년이 위기라고 합니다. 사랑을 풍성하게 가꾸지 아니해서 그렇습니다. 사랑의 방법과 표현이 너무 제한되어 있으니까 사랑도 사랑으로 느끼지 아니합니다. 좀더 풍성해져야 하겠습니다. 총명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도 그렇습니다. 저들의 참 필요가 무엇인가를 알아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지식과 현명함으로 더욱 우리의 사랑이 풍성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절 말씀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별하지 못해서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할 일이 없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해야할 일도 바빠서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시간이 있으니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시간낭비이며 잘못된 삶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는 말은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갖고 이웃과의 올바른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갖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복음의 증거에 동참하라고 하는 말은 선교사가 되고 다 목사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가치있고 보람찬 삶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사랑하는 바울의 가슴속에 있는 진실이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원하심이었고 우리가 그대로 살아야 할 일인 줄 믿습니다. 
  
지금 바울은 고난중에 있습니다. 옥중에서 고통과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으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 동참하겠다는 것은, 남을 돕고 봉사하고 주의 복음에 동참하고자 하면 고난을 받을 것도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것은 편안하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서 고난도 감당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 있고 보람찬 삶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으로 내 마음의 기쁨과 감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넷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11절에 에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였습니다.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우리가 한 생명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더 중요합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간증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 버트리목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비젼을 갖고 생존을 넘어선 교회는 하나님이 오늘 내게 이렇게 하시었다 그가 오늘 내 삶을 이렇게 도우셨다는 아름다운 간증이 있는 교회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이런 간증이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존을 위한 사람들은 언제나 사건과 그가 속했던 소속과 그리고 인간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가 자랑이 되고 간증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랑이 되는 교회나 단체는 신앙이 죽어져가는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안에 기쁨이 넘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할렐루야!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가 큰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큰 일을 했고, 어떤 목회자가 성공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크게 쓰셨고 하나님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셨다고 할 때에 거기에 우리 모두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의 바람에 부합되어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의의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고 찬송이 되어져, 아름다운 이웃과의 삶으로 말미암아 누군가가 나를 생각할 때에 그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함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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