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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함께 하는 기쁨 (눅 2: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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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기쁨 (눅 2:41~52)


1. 귀성길은 고생길입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 힘들게 고향에 오신 형제 자매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향의 품은 넉넉하고 따뜻합니다. 거기에는 어릴 적 뛰놀던 산천이 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함께 딩굴던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추석에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일 때 한가위 보름달보다 더 넉넉한 사랑과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9월 10일에 여성 포털사이트인 아줌마닷컴에서 기혼여성 1800명을 상대로 추석명절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께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이렇습니다.
 
1위: 용돈 좀 올려달라. 2위: 둘째는 언제 낳니? 3위: 더 있다 가라 .
‘왜 이제 왔니?’ 와 ‘음식 많이 만들어 시누이들 나눠주라’ 는 말이 각각 4, 5위를 차지했습니다. 

작년에는 ‘더 있다 가라’ 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는데, 올해는 용돈을 좀 더 달라가 1위인 것을 보면 서민들의 살림이 더 힘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편,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께 가장 듣고 싶은 말 순위는 이렇습니다. 
1위: 준비하느라 수고했다. 2위: 어서 친정가야지, 3위: 우리 며느리가 최고다
‘명절 음식 간단하게 하자’ 와 ‘아들도 거들어라’ 가 4, 5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명절이 행복한지를 조사해보니 행복지수가 54점 낙제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에게는 명절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올케, 동서지간에 서로 조금씩만 더 배려해준다면 힘든 명절이 행복한 명절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2. 오늘 말씀은 함께 하는 명절, 참 좋은 명절이지만 명절이 끝난 후 아이를 잃어버려서 몹시 혼란스럽고 당황해하는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을 보여줍니다. 명절이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아픔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는 추석과 설날이 큰 명절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큰 명절이 셋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이 명절에는 전국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이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12살 되던 해 유월절에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120km 정도 되는데, 걸어서 넉넉히 사흘이 걸립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명절을 마치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하룻길쯤 가다가 아이 예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명절을 지내면서 누렸던 평안과 기쁨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불안이 엄습해오고, 걱정근심 염려에 휩싸였습니다. 동행하는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을 뒤지며 찾았지만 찾지 못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왜 아이 예수님을 잃어버렸을까요? 
아마 예루살렘이 너무 복잡하여 아이 예수에게 신경쓰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도 너무 복잡하고 바쁘게 살면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합니다. 형제 자매들간의 만남도 뜸합니다. 그러다 보니 명절에 오랜만에 보는 형제 자매들인데도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또, 아들 예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부모가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성경학자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예수를 찾은 후 어머니가 “아이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을 보세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아들의 관심사는 아버지의 집 즉 성전입니다. 그 부모는 아들의 관심사를 몰랐습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의 결여가 관계를 소원하게 합니다. 부모님이 자식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모르면 함께 있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불안하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도통 대화가 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명절에 함께 모이는 것이 기쁨이 되려면, 평시에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부모님은 당연히 예수가 따라올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라는 의무감 때문에  때로는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맏이니까, 며느리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부담, 이것이 명절을 행복한 날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날로 만들기도 합니다. 누구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힘든 일은 내가 먼저 해야지 하는 분위기, 이런 분위기로 모인 가정은 모임 자체가 행복입니다. 


3. 예수를 잃어버린 요셉과 마리아, 그 분위기는 지옥입니다. 

천국은 함께 함으로 기쁨을 누리는 곳입니다. 지옥은 분단, 분리, 상실감으로 슬퍼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함께 한다고 항상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함께 할 때, 속상하고 다투기도 합니다. 혼자 있으면 괜찮은데, 함께 있으면 스트레스 받습니다. 명절에 함께 하는 기쁨,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길은 일할 때 함께 일하고, 놀 때 함께 노는 것입니다. 기쁨은 함께 하고 고통은 분담하는 것입니다. 함께 식사준비하고, 함께 설거지하고, 함께 청소하는 것입니다. 추석 명절을 앞둔 어느 가장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어서 소개합니다. 

벽에 걸린 달력 보니 어이쿠야 추석이네짐 싸면서 투덜대는 당신보고 괴로웠네마누라야 니만 되나 눈치보는 나도 되다아내들은 육체 노동 가장들은 마음 고생욕을 해도 추석 가고, 웃고 가도 세월 간다.속 편하게 보여지는 직장 얘기 들어보게직장에서 더러븐 꼴 속속들이 밝혀봄세봉급쟁이 오장육부 시꺼멓게 다 탄다네.자네 조금 참아주니 온 집안에 칭찬 자자당신 얼굴 밝게 하니 보름달이 따로 없다이번 추석 마치거든 우리 둘만 시간내자이리 옆에 오려무나 내 팔 베개 빌려 주께.

남편은 언제 철드나 생각해보니, 아내의 고생을 알아줄 때 비로소 철이 듭니다. 
추석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 먼 길을 오신 여러분, 피곤한데도 잠시 쉴 여유도 없이 부엌에 들어가 음식장만하며 고생하는 부인 여러분, 부인 눈치보며 부모님 눈치 보며 명절마다 마음 졸이는 남편 여러분, 명절에 힘들 때마다 예수님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러 가실 때, 제자들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힘든 일을 외면하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께서 이번 명절에 힘든 일을 잘 감당한 것은 여러분이 주님의 진정한 제자임을 분명히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랑이요 기쁨입니다. 
십자가를 어떻게 볼 것입니까? 단순히 고통으로만 볼 것입니까? 
다른 각도로 볼 수는 없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참 행복의 길을 여셨습니다. 십자가 후에 곧 부활과 승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 단순히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으로만 보지 말고, 그 후에 찾아올 영광과 기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십자가를 보는 온전한 시각입니다.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 시댁을 가고, 처가를 가는 것,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조금 고생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내가 조금 더 고생하면 형제 자매들이 얼마나 명절을 행복하게 보낼까 생각해봅시다. 아무나 십자가를 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 할 수 있는 영광스런 일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당장은 무척 힘들고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결국은 최고의 영광이 됩니다. 현재의 고통을 영광으로, 현재의 아픔을 기쁨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만이 힘든 십자가를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미래의 영광을 미리 보는 자만이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습니다.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지금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그 일이 주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이라면, 시작하신 그 분께서 반드시 마무리하시고 이뤄내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부모님을 섬기는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열매인 영광을 누리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4. 이 좋은 추석에 고향을 못 가신 분들은 하늘나라 고향을 바라보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저희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6) 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고향보다 더 나은 고향이 하늘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 본향을 향하여 순례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남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여도 하늘나라 본향에서 세상의 부귀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광을 다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나가서 평생을 보내고 이제는 은퇴하고 돌아오는 노부부 선교사가 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뉴욕항구에 도착을 하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군악대가 환영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환영인파는 자신들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비행사 린드버그를 환영하러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평생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고 몸과 마음이 피곤에 지쳐 고국으로 돌아오는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허름한 3류 호텔에 여장을 풀고 그날 밤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들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음 증거로 한 평생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환영은커녕 알아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겨우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한번 횡단했다고 해서 전 뉴욕시민이 환영을 하고 있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그러자 노부부 선교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종아, 린드버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환영을 받는 것이지만 너희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너희들의 고향은 뉴욕이 아니라 하늘나라니라. 너희들이 하늘나라 고향에 돌아올 때는 린드버그가 환영받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단다.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어서 너희를 환영할 것이고 천국에 먼저 간 사람들이 모두 환영할 것이며 너희의 구주 예수님께서 너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라. 그 때 까지만 참고 기다려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아직 하늘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늘 고향에 이를 때 까지,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며 함께 고통을 분담하여, 하늘 본향에 이르는 날, 주님 주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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