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심히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삶 (요삼 1:3~8)

  • 잡초 잡초
  • 318
  • 0

첨부 1


하나님의 심히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삶  (요삼 1:3~8)


(요삼1:3-8)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1. 요셉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투기하는 형들에 의해 17세 어린나이에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 가정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꿈과는 거리가 먼 듯한 현실 앞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만도 한데 그는 노예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주인 보디발에게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창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훗날 팔레스틴 전역에 7년 흉년이 들어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던 요셉의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청천벽력같은 말에 사색에 되어 두려워 떨고 있는 형들에게 말합니다. “

(창45:5-8)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20여년전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주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할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증거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역시 나라 민족이 망해 어린 나이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신분이었지만 왕궁에서 나오는 우상의 제물은 목숨을 걸고 먹거나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거나 그 제물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가증스럽고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렇게 깨끗한 신앙생활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벨론 전국 최고의 두뇌집단보다 그 지혜와 총명이 10배나 더 뛰어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벨론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지혜와 능력은 널리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느브갓네살 왕에 이어 다리오 왕 통치 시대에도 여전히 수석 총리로 뛰어난 행정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를 시기하던 장관들이 다니엘의 실책이나 도덕적 허물 등을 찾아 고발하고자 했으나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의 법을 문제삼지 않고는, 고발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악법을 제정하여 다니엘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그 법은 앞으로 30일 동안에는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자 굴에 집어넣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법이 제정되어 공포되었음을 알고도 다니엘은 평소대로 신앙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을 모함하는 자들이 때에 맞춰 다니엘의 기도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증인들이 되어 왕에게 고발했습니다. 다니엘의 인품과 능력을 익히 알고 귀하게 여겼던 왕은 심히 괴로워하며 다니엘을 구하고자 온갖 방도를 다 구했습니다. 그러나 악법이라도 이미 제정 공포되어 그 법을 다시 바꿀 수 없도록 되어 있어서 왕도 어찌할 수 없이 법에 따라 다니엘은 사자굴속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을 위해 단식하며 그 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왕이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곧장 사자 굴로 달려갔습니다. 왕은 슬픈 목소리로 외치며, 다니엘의 생존여부를 확인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늘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사자들로부터 구해 주셨느냐?” 

놀랍게도 사자 굴에서 다니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왕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나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왕께 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왕이 너무 기뻐서 당장 다니엘을 끌어올리고 보니 상처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왕은 즉시 악법을 제정토록 했던 자들을 사자 굴속에 던져넣고 전국에 이렇게 새로운 법령을 공포합니다. “내 나라에서 모든 백성은 반드시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야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신다.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며, 그의 권세 무궁하다. 그는 구원하기도 하시고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과 땅에서 표적과 기적을 행하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하여 주셨도다.” 이렇게 다니엘은 그 어떤 악법이나 세력에도 굴하거나 타협하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진리를 사수하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왕과 온 나라 백성들에게 증거했습니다.(단6장)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심히 기뻐하고 그 무엇보다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가이오라고 하는 성도가 하나님 말씀, 곧 진리를 증거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가이오 주변에 많은 형제들이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한다.”, 다시 말해 가이오는 가정과 교회에서, 그리고 그 어디에서나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생활한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대로 살게 될 때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가이오의 신앙생활을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신 분은 그 누구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3:8)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미 사도 바울 자신이 체험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그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외국까지 쫓아가 기독교인들을 무참하게 핍박했습니다.(행26:11) 

이러한 사울(예수 믿은 후로는 ‘바울’로 불리움)을 부활하신 예수께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추어 눈이 멀게 한 후 말씀하십니다. 

“(행26:1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이 “주여 뉘시니이까?”고 묻자, 

“(행26:15-18)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바울 자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그 누구라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그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진리’를 거스리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 유다 왕 여호사밧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경외하는 왕이었습니다. 반면 당시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은 그 아내 이세벨과 더불어 막강한 권력을 남용한 우상숭배 정책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합을 이미 죽이고자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 왕이 아합과 사돈지간인지라 아합 왕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아람과의 전쟁에 동맹군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이미 예언하고 경고한대로 그 아람과의 전쟁에서 아합을 죽여 개들이 먹어치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살아 돌아온 여호사밧 왕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하19:2-3)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이하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그래도 우상을 타파하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보시고 살려 주셨다.’는 뜻입니다. 다윗도 같은 경험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118:17-18)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이같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 왕은 훗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경제 동맹 제의를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함께 무역선을 건조하여 경제 부흥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를 모르실리 없으신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에셀을 통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대하20:37)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는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

이같은 하나님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 왕은 무역선을 공동 건조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파선시켜 바다에 가라앉혀버렸습니다. 아하시야가 거듭 경제 동맹을 요구했지만 여호사밧 왕은 뒤늦게나마 깨닫고 아하시야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왕상22:48-49)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게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의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지 아니하였더라

이처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거스려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거스려 비록 성공했다 해도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심판과 파멸이라는 지뢰를 품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대로 행하며 사는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길이 생명과 축복의 길입니다. 철저하게 진리대로 행하는 신앙생활로 가이오처럼 하나님의 심히 기뻐하심과 하나님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가이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요삼1: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저희가 교회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이오의 사랑을 인정하고 칭찬한 것입니다. 지금은 흔히 자기 ‘피알 시대’(P.R.-Public Relations)라고 합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을 남에게 알려서 인정을 받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리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종이 몇 장에 기록된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머리로 알게 하는 것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것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자신의 말보다는 행동이나 간접적인 요인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남자가 사귀고 싶은 여자가 생겼습니다. 그럼,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을 것입니다. 자신은 경제적 능력도 있고, 창의력있는 남자이고, 가정환경도 괜찮고, 성품도 좋은 편이며 유모감각도 있는 아주 쓸만한 남자, 신랑감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자기를 ‘PR'하면 쉽게 거부감을 가지거나 신뢰감이 떨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런 직접적인 자기 ‘PR’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큰 것은 다른 친구가 그 여자에게 남자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상품을 마케팅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 광고 홍보를 하며 <우리 회사 제품은 이러 저러한 점이 아주 좋습니다.>라는 말보다는 다른 사람이 <그 회사 제품 써보니까 참 좋더라.>라는 한마디가 더 강력한 광고효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PR’하는 것은 상품을 마케팅하고, 회사의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과 비슷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발견하고, 스스로 ‘PR’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 마켓팅 전문가들이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자신을 PR하고 있나?’ 그리고 잠언 27:2의 말씀을 인용하여 ‘솔로몬이 전하여 준 비즈니스의 비밀’을 말합니다. 

(잠 27:2)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지니라 

세상에서 성공하는 삶을 위해 자기 자신을 아주 효과적으로 알려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지 아니하면 무용지물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인생의 성공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독일의 정치가 비스마르크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가 오늘 한 일에 대하여 내일 다른 사람들의 여론을 들어보면 태반이 잘못되었다. 그러니 남의 칭찬을 받는다고 하여 기뻐하지 말고 남의 비난을 받았다고 하여 실망하지도 말아라. 본디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간에 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후세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사람도 있으나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 어려운데 어찌 백 년이나 천 년 후의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인가. 그러므로 너는 다만 하나님만이 네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 너무 세상의 칭찬에 관심을 두지 말아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칭찬 받도록 힘써라”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칭찬이야말로 진정한 칭찬이며, 최상의 칭찬입니다. 예수께서 빌립의 전도로 자기에게 오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요1:45-51)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을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지만 그의 사람됨을 벌써 아시고 그의 진실된 인격과 성품을 칭찬하시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로마의 한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 간구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대답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따르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백부장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8:5-10) 이렇게 그 누구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칭찬만이 옳다 인정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가이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은 “사랑의 증거”는 무엇보다 복음 전도자들에게 아낌없이 베푼 ‘사랑의 증거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 초기 복음전도자들은 오로지 복음 전파를 위해 아무런 보수도 없이, 또한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순수하게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열정적으로 봉사했었습니다. 그래서 남달리 그들을 이해하면서 따뜻하게 영접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후원하며 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해줌으로 해서 그들에게 복음전도에 힘을 얻게 하므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 이상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는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가장 복된 소식, 복음(福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때문에 복음 전도만큼 더 큰 이웃 사랑은 없습니다. 

가이오는 바로 복음 전도자들을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해 봉사하고 희생을 아끼지 아니했던 진정한 성도였습니다. 당시 가이오같은 성도가 베푼 사랑의 헌신적인 후원이 복음 전도자들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되어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복음 전도 사역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에 마케도니아 같은 교회와 성도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복음 전도의 판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 성도들은 극한 가난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복음 전도하는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마케도니아 교회의 선교비 지원이 사도 바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선교에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선교비 지원에 인색하기 그지없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고후8: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린도 교회는 마케도니아 교회에 비하면 돈 많은 교인도 많았고, 각종 은사와 능력을 받은 교인들도 많았고, 성경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말많고 은사와 능력의 우열을 따지며 분쟁을 일삼으며 복음전도와 선교비지원에 인색하기 그지없는 교회였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거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쓰임받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요15:12-1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무엇으로 증거하시겠습니까?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희생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손과 발, 시간을 주님께 드려 민첩하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음성과 보화, 물질을 주님께 드려 복음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드려 십자가 예수의 삶, 사랑을 증거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웃 사랑을 위해 복음을 전도하는 사람들에게 베푼 사랑의 증거들은 반드시 전도자와 같은 상급과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자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증거하는 모습을 심히 기뻐하시고 그 무엇보다 즐거워하십니다.(벧전2:9) 자신의 삶을 통해 살아계신 진리와 사랑을 증거하는 성도와 교회, 그래서 하나님의 심히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