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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보다 열심히 해야 할 일 (벧전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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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열심히 해야 할 일 (벧전 4:7~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바울은 자신의 순교가 임박함을 알고 제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 때에 바울의 생각은 디모데후서4:7에 잘 표현되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리는 삶을 살았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 이르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을 것이다. 사역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성취한 일을 말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과 믿음 지킴을 말하려고 한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믿음의 간증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 선한 싸움을 싸우며 충성을 다한 것,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은 것, 이것들을 간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믿는 우리들의 믿음이기도 하다.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다.우리가 끝까지 충성하고 믿음을 지킨 것, 그것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을 다하는 것이 바로 우리 믿음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다. 역경과 그로 인한 절망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흔든다.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든다. 우리는 stay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7월에 있었던 JAMA 행사에서 죤 파이퍼 목사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죤 파이퍼 목사님은 참석한 목사님들의 간증을 다 듣고 난 후에 이런 말을 하셨다. “Staying power is more important” 그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의 사역에 stay하는 power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그것을 약화시키는 많은 방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요즘은 불경기로 인해서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민생활이 가장 큰 방해가 아닐 수없다.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가 지금 보여야 할 것이 바로 믿음이다. 계속 지켜 나아가야 할 삶 속에서의 간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더욱 더 하나님 붙잡고 산다는 신앙의 legacy이다. 그래도 많은 것들이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왜 사도 베드로는 이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가? 그 당시에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있었는데 이것은 참으로 오래 지속되어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그 편지의 내용이 바로 오늘의 본문이다. 1장의 앞부분에서 그 당시의 환경을 말하고 있다. 

벧전1:6-7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12-14절을 이어서 보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사도는 이 불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 불시험을 통해서 하시려는 일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그럼므로 너희는 오직 믿음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신 것이 아니고 항상 우리를 정금과 같이 여기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핍박을 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바로 그 때에 오히려 붙잡아야 할 영적 자원이 있다. 모든 것이 바닥 난 상황에서도 우리가 든든히 붙잡아야 할 자원이 있다. 그것은 우선 기도이다. 

7절을 보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이 가까울 때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에 대하여는 지난 주에 이원상 목사님께서 너무도 잘 말씀해 주셨다. 인터넷에서 계속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본문 말씀에 집중하려 한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영적자원은 바로 성도들의 교제이다. 8-11절을 다시 읽어보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가 힘들 때에 기도와 함께 붙잡아야 할 것은 성도들의 교제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 계속 반복되는 있는 단어는 바로 ‘서로’이다. 이것은 서로 모여서 사랑하고 격려하며 은사대로 섬기라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마지막 영적자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이 세상이 읽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자원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 자원으로 우리를 채워야 한다. 이렇게 힘들 때에 그만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의 자원은 결단코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모여서 격려하고 섬기며 세워가야 한다. 물론 교회를 통해서 전체 회중이 모이는 예배의 자리가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서로’의 개념은 이 자리가 아니다. 

이 말씀의 적용을 이루려면 우리가 소그룹으로 모여야 한다. 소그룹 ministry는 바로 ‘다락방’이다.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았다. 우리 교회의 다락방은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소그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락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성인 교인들 중에 52%만이 다락방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절반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소그룹 program은 여유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믿는 성도로서 강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방법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원이 고갈될 때에 우리가 필수조건으로 선택해야 할 곳이 바로 다락방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성도의 바른 교제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 가지의 축복을 받게 된다.

(1) 극복하는 삶, 즉 이기는 삶을 살게 된다.

요16:33을 보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험을 받고 환난을 당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담대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낙심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의 믿음이 주님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님 때문에 우리도 승리하고 선한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은 결코 우리의 option이 아니다. 우리는 일어나야 한다. 극복할 힘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일어나라, 극복하라, 그리고 승리하라’ 

히3:13을 보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오직 오늘’이란 은혜가 있는 오늘을 의미한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성실하고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바로 오늘을 은혜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은혜가 있는 날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주님은 매일 피차 권면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피차를 격려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아픔을 서로 나누며, 날마다 갈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말씀을 sharing하면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지고 닫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큰 은혜 앞에서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으면 그 은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마음이 열려야 source를 볼 수 있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서 그것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리한 조건 중에 든든히 서 가려면 옆에 있는 성도들과 함께 엮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 지혜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연약하고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한 뿌리를 연합해야 한다. 

전도서4:12을 보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삼겹살이 아니라 삼겹줄이다. 혼자 있으면 패하나 둘이 있으면 쉽게 감당한다. 하지만 삼겹줄이 되면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세상을 극복할 힘이 있는 것이다. 다락방은 이렇게 사로 묶이는 곳이다.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이 일을 먼저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혼자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넉넉히 이길 힘을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2) 영적인 성장을 체험하게 된다.

영적인 성장은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은 반드시 수평적인 관계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수직적인 관계이지만 그 사랑으로 수평적인 이웃을 섬겨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다른 option은 없다. 10절을 보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모든 성도들에게는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은사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활용하여 봉사하고 이것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이 은사를 키워나가야 하며 또 다른 은사를 받기도 해야 한다. 은사는 영적인 근육과도 같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한 소년이 가지고 온 다섯 개의 보리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2000 명을 먹이는 기적이었다.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배고픈 무리들이 소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제자들에게 주문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소년의 것을 가지고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 

그런데 그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예수님은 한 번에 떡을 왕창 만드신 것이 아니었다. 50명 내지 100명을 그룹으로 하여 앉게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가지고 가서 나누어 줄 때에 기적이 일어났다. 소그룹을 통해서 제자의 도를 형성하였고 그 제자도를 가르치신 것이다. 제자들은 사명을 발견하였고 자신들의 은사를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반드시 성장하며 살아가야 한다. 몸은 쇠약해가도 우리의 영은 지속적으로 강건해져야 한다. 그러나 영적인 성장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다. 

잠언27:17을 보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사람의 인품과 성품과 영성은 sharpening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한 사람이 그의 친구들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이같이 sharpening되는 일은 다락방에서 가능하다.성도들과의 관계에서 가능하다. 우리는 결코 자신을 스스로 sharpening할 수 없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다. 믿음 생활의 슬럼프와 영적 성장의 정지가 찾아올 수 있다. 그 때에는 피차 은사를 가지고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세워가야 한다. 자라는 길은 오직 함께 모이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함께 모일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11절을 보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여 함이라고 했다. 서로 대접하고 격려하며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된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서로 위하고 사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그리하면 하나님은 저절로 웃으실 것이다. 

시편133:1을 보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성도가 연합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있다. 

마태18:20을 보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나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을 특별히 기뻐하신다는 뜻이다. 다락방에 우리 주님이 함께 계심을 인식하고 기뻐해야 한다.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능력으로 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자리에 우리 주님이 임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누리는 것은 물론 주일 예배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매사에 주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사랑과 격려와 교제를 할 때에 가능해진다.

동이 틀 때가 언제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동이 틀 때는 과연 언제인가? 그것은 사물이 구별될 때일 수도 있고, 움직이는 동물이 구별될 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합당한 답은 곁에 있는 나의 형제와 자매의 모습이 보일 때라고 한다. 그들이 my brother, my sister로 보일 때가 바로 하나님의 광명이 임하는 때이다. 이것을 아는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심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민 생활이 분주하고 힘 들어서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담이 되어도 좋은 것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책임이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락방의 맛을 볼 수 있기를 소원한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기를 바란다. 다락방은 주일 다락방, 아침 다락방, 그리고 저녁 다락방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적절한 시간을 택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승리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가 은혜를 소나기처럼 받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멘.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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