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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요일 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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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요일 4:7~21)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간 윤리에 있어서 가장 높은 덕목이며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 성경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하여 그 사랑이 실천되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실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의 삶이 바로 사랑과 직결되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시며 주님과 우리가 연합된 자임을 나타내셨습니다(요 15:4). 이 시간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신앙고백을 합니다.

15절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13절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속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ἔ́ν Χριστῷ)’라고 표현하였습니다(롬 8:1).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말로 설명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롬 8:15). 성령과 교통하는 사람은 사도신경의 내용을 그대로 믿고 어디에서나 고백합니다(마 16:17).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께서 인(印)치시고 보증하셨습니다(엡 1:13-14). 


2) 보고 증거하는 자입니다.

 14절에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면 그를 통하여 지혜와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을 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마 11:27).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 세계의 신비로운 광경을 보는 자입니다(엡 1:18).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기도하던 중 체질세계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는 천당의 실체를 보았습니다(계 1:9-20). 

오순절 이후 성령 받은 사람들은 신비로운 환상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유대인 폭도들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하늘이 열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증언하였습니다(행 7:55-56).


3)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입니다.

일찍이 베드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 16:16). 이것은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마 16:17). 성령의 감동에 따라 예수가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구주이심을 믿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이를 자랑스럽게 고백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와 같은 신앙고백 때문에 엄청난 수난을 당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행 4:12).


2. 사랑을 실천합니다.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랑의 실천을 뜻합니다.

1) 사랑으로 연합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을 행하고자 하시는데 거기 연합된 우리들이 따로 놀 수는 없습니다. 불가불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게 되고 하나님과 행동을 같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대상은 무한합니다(행 17:24-25).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도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눅 6:32).

2)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안에 거하시게 되면 자기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의 형은 미워하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으로 환대해주었습니다(눅 15:20). 여리고 노상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이 죽어가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 본 척 그냥 지나갔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기며 다가갔습니다(눅 10:33). 세상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이 없거나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고도 외면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서 이를 외면하지 못합니다(고후 5:14).

3) 온전케 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1절에 “우리가 이 계명를 주께 받았나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계명의 본질이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눅 10:27).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롬 13:8). 입으로만 믿음을 말하고 사랑을 노래하더라도 그것이 실제적인 삶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온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신비적 체험과 산을 옮길 믿음이 있고 또 자기 몸을 불사를 만큼 열정이 있다하더라도 실천하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3:1-3).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사랑의 실천이 없는 믿음을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약 2:26).


3.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은 주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 두려움을 이기는 삶입니다.

본문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평안을 보장해 주셨습니다(요 14:27). 죄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디에나 두려움이 있고 불안한 일들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6-37절에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하였습니다(고전 3:9). 이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그가 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하도록 강권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동인(動因)이 되어 자기 속에서 우러나는 즐거움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여 이 일을 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고후 5:14).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먼저 베풀어 주시고 그 사랑의 힘에 이끌려 우리 또한 그가 원하시는 사랑의 사역을 하게 하십니다(10절). 19-20절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사랑의 행복을 즐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요 15:9). 그는 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5:11).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기쁨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옛날 솔로몬 왕의 애인 술람미 여인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사랑과 행복에 젖어있었습니다. 아가 2:6-7에 보면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는 동안 온갖 시련과 고달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감격이 있기 때문에 남이 알지 못하는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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