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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화위복의 기회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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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의 기회 (눅 5:1~11)


잘 알려진 대 기업 S보험사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부장의 이야기입니다. 
19년 전, 그 보험회사의 입사면접을 보는 날입니다. 지금은 그 그룹의 명예회장이신 당시 전무이사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으흠,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했구만. 영업을 하려면 융통성도 있어야 하는데, 거짓말은 조금도 못할 테니 우리 일과는 안 맞겠어.”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자신의 한 마디 대답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불현듯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예리한 추측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여기 계신 분들뿐만 아니라, 고객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저 사람은 종교학을 했으니 이 상품을 판매하며 거짓말은 하지 않겠군.’ 하고 말이지요.”

위기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당황하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악수를 두게 되고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침착하고 잘 극복하면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본래 “危機” 라는 말은 “위험하지만 잘 활용하면 아주 좋은 기회”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은 네 사람의 어부가 예수님의 제제자로 부름 받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는 같은 동내에서 사는 비슷한 또래의 어부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고기 잡는 일을 해온 전문가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지난밤은 완전히 헛수고였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아침을 맞았습니다.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착잡(錯雜)한 마음으로 빈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그 바닷가에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이 어부들은 뜻밖에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어부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일생을 위대하게 살았습니다. 실패를 위대한 성공의 기회로 만드시는 예수님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실패에서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1. 실패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 어부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이런 실패의 경험은 드물지 않습니다.   
  
최근에 탈랜트 안재환씨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에 손을 댔다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사채를 얻었고, 결국 그 사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들 가운데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특히 20~30대의 사망원인 중에 자살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자살은 대개 우울증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 우울증은 자기한계, 자신감상실에서 옵니다. 너무 힘들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전능하지는 않습니다. 부족함은 불평과 원망, 절망 열등감의 요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을 인정하고 서로 돕는 배필로 살아갈 때,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지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위대함은 서로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서로의 부족을 도와주며, 서로 의지하며 사는데 행복이 있습니다.  

갈릴리바다의 어부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실패하였습니다. 
단순히 실력이 모자라서 한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으름의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일하는 장소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실패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축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한 교우로부터 여러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 한권을 받았습니다.  그 책에는 교우의 작품과 함께 내게 보내는 별도의 짧은 편지글이 들어있었습니다. 
“목사님
교회와 예배를 떠나있던 저에게, 저희부부에게 
목사님의 인도하심으로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에 쫓겨 분주하기만 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중생의 체험과 참 기쁨을 알게 하시고
미약하나마 저의 달란트가 교회에 쓰임 받게 하심에 
얼마나 감사드렸는지 모릅니다.  
어느 듯 ‘고난이 축복’임을 알게 하시고
나눔과 섬김의 삶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듯 ‘고난이 축복’임을 알게 하시고”이 글을 읽다가 잠시 내 생각이 몇 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부부를 처음 만난 날이었습니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쓰러 넣어도 도무지 메워지지 않을 만큼 큰  수렁 앞에서 울고 있는 그분들과 함께 저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날 예수님이 그 부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 수렁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갈릴리바다의 어부들은 실패한 빈 배에서 예수님을 만나 엄청난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실패의 현장으로 찾아오시는 은혜로우신 주님이십니다. 


2. 예수님은 삶의 동반자이십니다.  
  
실패의 풍랑 속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은 낯선 이방인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친절한 동반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교회성도들은 누구나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 성령충만한 신앙을 은근히 거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너무 요란스럽게 믿는 것은 왠지 세련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너무 깊이 빠지면 광신도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가정도 직장도 도외시하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될까를 걱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충만은 완전한 인격이신 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완전한 능력이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지혜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에 묻혀서 일의 앞뒤도 분간하지 못하고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현장에 오십니다. 부부 생활이 꼬인 우리의 가정생활 속에 찾아오십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공부하는 현장에 오십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있는 직장의 현장으로 오십니다. 질병으로 치료받고 있는 병상으로 예수님은 오십니다.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격려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실패한 일에 짓눌린 우리의 마음에 힘을 주십니다. 복잡한 일상을 약간 거리를 두고 보게 하십니다. 나와 현실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게 하십니다. 삶의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하십니다.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새롭게 도전할 용기를 주십니다. 도전의 의지를 일으키십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스위트 스팟’(Sweet Spot) 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골프나, 야구나, 테니스에서 공의 최적지점을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공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장 멀리 가장 빠르게 날아가게 됩니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의 한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Max Lucado는 “Cure for the Common Life : Living in your Sweet Spot” 책에서 “스위트 스팟은 누구에게나 있다” 고 말합니다. “저마다 독특한 능력(나의 강점)으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면 삶의 자리에서 바로 이 ‘스위트 스팟’을 찾을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이 일하는 그 현장에 오셨습니다. 그들의 배에 오르시고, 말씀을 전하시며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안식은 사고의 쉼에서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집착되어 해어나지 못했던 자신의 일에서 떠나 전혀 다른 세계에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진정한 쉼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깊은 곳이 이 어부들에게 ‘스위트 스팟’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너무 얕아서 깊이 있는 세계를 보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표면적인 일들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고 그 이면에 있는 일의 깊이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 곳에 고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보다 깊은 곳으로 나아가서 그 곳에서 그물을 던져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온갖 기적들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사실에 감탄하였습니다. 그 감격 속에서 출애굽의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광야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어려움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그들은 새로운 기적을 기대하였습니다. 그 기적이 기대했던 대로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모세를 대적하였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불신하는 지도자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얄팍한 그들의 심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인생의 깊이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깊이가 필요합니다. 
주님께로 한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한걸음 더 다가서십시오. 
당신의 ‘스위트 스팟’이 그 곳에 있습니다. 
 

3. 예수그리스도의 가치에 따르십시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그물을 내립니다.”(5,6상)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그 어떤 변명도 핑계도 없이 말씀대로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대낮에는 고기가 잡히는 시간이 아니라든지,
깊은 곳이든 얕은 곳이든 고기가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든지, 
지금은 전혀 고기 잡을 생각이 없으니 이 다음에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보겠다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비켜가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스위트 스팟’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동일한 행동이라 해도 다릅니다. 
누구의 뜻이냐? 누구의 말씀이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를테면, 지금 찬양대 지휘자께서 크게 한 번 말해보십시오.
“예배당 안에 전등은 꺼져라.” 
소리쳐도 전등은 한등도 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예배당 전등은 꺼져라.” “예배당의 전등은 켜져라.” 
담임목사이니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을 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바람과 바다라도 잠잠해 집니다.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2008년도에 출판한 ‘스위트 스팟’의 저자 임붕영박사는 우리 삶의 ‘스위트 스팟’을 위하여 몇 가지 소중한 가치를 말합니다.  
“홀인원이라는 상상의 마법에 빠져라.” 
“너만의 폼을 잡아라.”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하라” 
중요한 것은 행동입니다. 순종입니다. 
순종위해서는 먼저 잘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순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미국대선전에서 공화당의 “페일린 효과”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10%포인트를 앞서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의 여성들은 ‘페일린’에게 푹 빠졌다고 합니다. 그의 헤어스타일을 닮으려고 가발이 유행하고, 그가 쓴 안경을 스타일의 안경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안경공장이 24시간을 가동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페일린의 인간됨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신문을 빠짐없이 읽음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신문에 기고하는 글들은 당대의 최고의 석학들입니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력을 섭렵하는데 익숙한 페일린이 오늘의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지식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행동해야합니다. 행동하는데서 삶의 변화가 만들어집니다. 
“페일린의 효과”는 자신을 “하키 맘”이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의 40대 어머니들이 겪고 있는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평범한 엄마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미국의 어머니들이 혹했습니다. 
행동입니다. 
순종하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스위트 스팟’이 있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이 말씀 앞에 어부들은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 때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두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 기적을 체험하고 난 다음 이 어부들은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사람을 취하는 어부로서 새 출발을 합니다. 

지난 목요일 새벽 우리교회에서 몇몇 목사님들이 모여서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한 목사님이 저의 집무실에 잠간 들리셔서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책들이 다 어디 갔습니까?” “몽골로 갔습니다. 몽골에 신학교를 건축하고 그 곳에서 가르치는 분들이 대부분 선교사님들이신데 그분들을 위하여 내 서재에 있던 책 전부를 보냈습니다.” 그 목사님은 어떻게 그 어려운 일을 했느냐며 놀라워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간단한 일입니다. 몽골을 다녀오면서 이 일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처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느 날 사무처에서 물어왔습니다. “목사님 이 책을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러라고 했지요. 그리고 나갔다 왔더니 책은 이미 없었습니다. 이보다 더 간단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고기가 그물 가득 잡히는 주님의 기적은 한 가지 일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그렇습니다. 
고기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그물을 내리는 사람에게 잡힙니다. 
내 판단에 의지해서 내리는 그물에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어제 밤까지 수없이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또 그대로 하실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같은 행동일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름이 절대적인 필요조건입니다. 

실패가 축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의 길목에서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실패한 대로 혼자서 악전고투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주님을 당신의 인생에 모셔 들이십시오. 
그리고 전능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인생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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