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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양의 피 (출 1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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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의 피 (출 12:5~14)

 
피는 우리의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어떤 외과의사가 의대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환자의 몸에서 갑자기 엄청난 출혈이 발생할 경우 멈추게 할 가장 유용한 도구가 무엇인가?” 그랬더니 학생들은 이런저런 도구를 제시했습니다. 그때 이 노련한 의사는 손을 가로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닐세. 그것은 바로 자네들의 손가락이야. 손가락을 사용해서 피를 멈추게 해야 하네.” 그리고 또 질문했습니다. “환자가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자네들의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학생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의사가 대답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일세. 피 흘리고 있을 때 시간이 가장 큰 적이라네.” 왜냐하면 피를 쏟아낼 때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이 희미해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자네들의 가장 좋은 친구는 누구인가?” 그때 학생들은 일제히 대답합니다. “시간입니다.” 

출혈이 멈춰지면 피를 통해서 다시 새 생명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의사들은 피가 생명이라는 성경적인 사실을 절감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존엄성을 가장 깊이 인식하는 사람들이 의사입니다. 피란 우리 몸을 유지하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의 몸에서는 4~5 리터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피는 심장에서 뿜어져 약 23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온몸을 한바퀴 돕니다. 이처럼 피는 우리 몸속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생명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리가 호흡한 산소를 폐에서부터 각 조직이나 세포에 실어 나르는 것이 피입니다. 피는 소화기간에서 얻은 영양분을 적재적소에 배치시킵니다. 각 세포에서 발생한 찌꺼기를 배설기관에 보내는 것도 피의 역할입니다. 피가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몸 안 세포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곳에 있는 세포부터 썩기 시작합니다. 피의 순환이 완전히 멈추면 우리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피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 안은 조직체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근육과 뼈, 신경과 지방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는 유동성을 지니면서 온몸 전체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죽은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몸입니다. 지금도 피가 우리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피를 먹지 말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피를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약간은 두렵기도 하고, 무언가 가슴으로부터 울컥 쏟아져 나오는 느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신비로운 느낌까지도 듭니다. 구약성경은 피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합니다. 무엇보다 피를 먹지 말고 고기를 먹어도 피와 더불어 먹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레위기 7:26-27) 

만약 피를 먹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위험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시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표현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한복음6:53-55)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를 살리는 양식과 음료수라고 말씀하십니다. 


피는 생명이며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한편으로는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피를 먹으라고 요청하실까요? 왜냐하면 둘 다 피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피는 너무 소중합니다. 짐승을 죽일 때 피가 흐릅니다. 그때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생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생명이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합니다. 

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짐승이라도 함부로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짐승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떠할까요? 성경은 사람이 피를 흘리는 것을 엄하게 막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살인은 불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엄성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피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피를 토해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피를 나누어 주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과제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숨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신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성찬을 할 때 사람을 죽여서 살과 피를 먹는 잔혹한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해서 우리의 피가 신진대사를 하듯이 예수님의 피가 영혼의 신진대사를 행하십니다.


기독교 신앙은 생명의 피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죄악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불의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허락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찌꺼기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영혼의 찌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없앨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속죄하는 은총임을 알고 예수님의 피 앞에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럴 때 주님께서 영혼의 찌꺼기를 다 제거하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생명의 피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월절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건에서부터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력화 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력을 불어 넣으십니다. 인류 역사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종 되었던 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0년 동안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자유 없이 복종하는 노예일 뿐이었습니다. 애굽의 성을 쌓기 위한 벽돌 만드는 기계에 불과했습니다. 인격도 없고 공의와 정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존재 가치는 제로 상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노예인 너희들을 억압에서부터 자유하게 해주고 싶다. 애굽에서 탈출하는 출애굽을 허락해주겠다. 이제는 노예로 그만 살고 자유자, 해방자로 살아라. 생명을 가지고 살아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죄악의 어둠과 사탄에 억눌려서 살지 말고 불안과 우울에서 뛰쳐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겠다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생명력을 줄 테니 너무 머뭇거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사건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종교, 정치, 경제, 문화를 다 바꾸시는 분임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출애굽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란 세상의 어떤 피조물에 의해서도 억압당해서 안 된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예배드리는 것이 인간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인간을 억누르고 핍박하며 자유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인간은 하나님께만 예배드립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예배의 대상이 되시고 경외의 대상이 되십니다. 하나님만이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심으로 인간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역사의 주체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종이였던 애굽 땅에서 끄집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의 역사, 해방의 역사, 구원의 역사, 용서의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초청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신 이유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의 시내산까지 부르셔서 십계명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정의와 공의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이란 이 땅의 모든 법의 기초가 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이 땅의 백성이 되라고 십계명을 통해 새로운 정치질서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목표는 어디일까요?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민족이 독립하여 삶의 풍요를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자리가 될 것이라는 약속과 현실이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인물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지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에 맞서는 정치와 종교 세력이 있었습니다. 

애굽왕 바로였습니다. 바로는 모세가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보일 때 마술사 등을 동원해서 같이 맞섰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재앙과 두 번째 재앙까지는 마술사들이 모세와 비슷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 번째 기적부터는 똑같이 흉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세상 권력과의 싸움에서 애굽이라는 권력이 하나님을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억압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저항하는 애굽의 권력은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바로 왕으로 하여금 확인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로왕은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서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날 때까지 저항했습니다. 애굽의 막강한 권력이 통곡할 때까지 저항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애굽기 7:3). 이것이 오만한 제국을 끝장내려는 하나님의 방식이 열 가지 재앙 때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장자의 죽음의 재앙을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질문하세요. 종종 하나님께 따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적대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세계 속에 들어갔을 때는 하나님께 항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적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럴 때 바로처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출애굽기 11:1) 

마지막 재앙은 첫 번째 아들, 짐승의 첫 새끼가 다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이것을 경험할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유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굽땅에 있는 유대인과 애굽인에게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양을 잡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를 내어 양쪽 문설주에 바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죽음의 천사가 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뛰어 넘어가게 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이 유월절입니다. 영어로는 뛰어 넘는다는 의미로 “Passover”라고 합니다. 이 유월절(逾越節)의 한자어를 몰라 6월에 하는 절기가 아니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유(逾)나 월(越)은 모두 뛰어 넘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겨주심이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출애굽기 12:13) 


예수님의 피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몸과 영혼에 바르십시오.  

재앙이 내려 멸하지 않겠다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픔이 들어 있습니다. 어린양이 죽는 것처럼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위해서 죽습니다. 어린양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죽었지만 앞으로 오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위해서 죽으실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 주신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우리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합니다. 우리 몸에 피가 생명을 주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영혼의 생명을 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죄 용서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을 때 그의 피가 죄를 용서받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새 생명을 준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때로 넘어지고 좌절하고 우울하고 흔들릴 때 다시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성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문 인방과 문설주에 피가 발린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온 몸과 영혼에 발라 생명의 기쁨을 다시 누리십시오.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우리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육체의 피가 우리를 살리듯이 예수님의 피가 생명의 능력을 주십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육체의 피가 우리 몸을 살아가게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시고 살아나는 능력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매일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영혼을 움직이고 이끌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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