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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이 있으라 (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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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창 1:1~5)


우리 속담에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또 안다고 해도 오히려 득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속담입니다.  그러나 서양 격언에는 반대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 주장한 말입니다.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사실 몰라서 가지 못하는 길이 있고,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많고, 몰라서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모르는 게 약보다도 아는 것이 힘이 됩니다. 

그런데 ‘조지 트루엣’이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진정 우리 인생에 아는 것이 힘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나를 알고,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성공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삽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곧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그 믿음을 갖기 위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칼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믿음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베드로 사도는 신앙생활의 성숙과 관련하여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힘에서 참된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배웁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첫째는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성경의 처음 책인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가운데에서도 가장 처음 말씀입니다.  창세기는 ‘기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과 출발을 보여줍니다. 우주의 시작, 자연의 시작, 인간의 시작, 만물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그 모든 시작의 중심에는 하나님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들어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이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다른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은 신화의 시작과 다릅니다. 신화의 시작은 그들이 믿는 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려주려고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전제로 출발합니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신 분임을 전제합니다.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바로 그곳을 향하여 ‘빛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세상을 여전히 강조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거룩한 말씀 속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는 놀라운 신비로 가득합니다.  우주를 여행한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세계가 얼마나 신비로운가를 듣습니다.  우주가 아니더라도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는 창조의 신비를 깨닫습니다.  자연은 질서를 따라 움직입니다.  만약 자연에 질서가 파괴된다면 우리는 세상에 살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 질서가 많이 파괴되고 있습니다만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원리는 질서에 따라 움직입니다.  한 치의 오차가 없습니다.  땅은 땅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산은 산대로, 계절은 계절대로, 모든 자연은 창조의 질서를 따라갑니다.  이런 자연세계의 아름답고 오묘한 광경을 우리가 피부로 느끼면서 창조의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창조의 절정은 무엇보다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에는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사람을 직접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처음 사람을 시작으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뜻에 따라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체의 어떤 신비보다 가장 놀라운 신비는 바로 생명의 잉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따라 빚어진 존재입니다.  여기에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종이나 주인이나, 모두 같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또 나를 만드셔서 이 땅에 보내셨기에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인간을 잘 아시고, 또 나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그 물건을 가장 아는 사람은 바로 만든 자입니다.  만든 자보다 더 많이 알 수는 없는 법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분이기에 나를 가장 아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기에 우리는 때로 두렵고 떨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을 결코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알기에 우리는 위로와 힘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누가 나의 사정을 알 수 있습니까?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경험한 다윗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139:1-4)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아십니다.  우리의 고민과 괴로움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픔과 슬픔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이제 나를 만드신 하나님,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을 다시 붙잡고, 날마다 힘과 용기로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빛이 있으라’는 말씀은 창조의 하나님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또한 나타냅니다.  모든 만물은 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에서 보여준 것은 한마디로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도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슨 재료나 도구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면 빛이 생겼고, 하늘이 생겨라, 물이 생겨라 하시니 하늘도 생겼고, 물도 생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못할 것이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습니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고, 세우기도 허물기도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잘 알고 살던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이 바울의 삶이고,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나는 할 수 없고 감당하지 못합니다.  나는 안 되고 늘 넘어집니다.  하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약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만 받으면 다 됩니다.  다 안 된다고 하는 것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아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고, 의사도,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귀신들린 아들로 인하여 심한 좌절감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주님 앞에 아들을 데리고 나아왔지만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라고 의심스러운 부탁을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너무도 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능력의 하나님을 보여주신 동시에,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당기느냐를 알려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당기는 동력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능력은 얼마든지 임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한대 내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 가정과 교회에 임하도록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늘 문이 열리도록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접속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 아주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요, 제목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어떤 정보든지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무수한 자료와 지식과 보화가 쌓여있지만 접속하지 않으면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접속하지 않으면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검색하고, 바이러스도 퇴치하고, 소중한 정보를 다운받듯이 하나님께 기도로 접속하여 능력을 검색하고, 의심의 바이러스를 버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다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고, 나는 할 수 없지만 분명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께 접속하기만 하면 위대한 일, 엄청난 힘과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이런 믿음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능력을 힘입고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빛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천지창조의 역사가운데 첫째 날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제일먼저 빛부터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어두움과 구분하셨습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셨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때부터 이 땅에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했고, 낮과 밤의 순리로 질서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세계에 낮은 낮대로 필요하고, 밤은 밤대로 필요했기에 낮과 밤, 빛과 어두움은 창조역사의 위대함을 나타내 줍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빛을 만드신 이후에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상대적으로 어두움, 밤에 대하여는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창조의 역사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반복하여 나옵니다.  그러나 첫째 날 분명 빛에 대하여는 좋았더라 하셨지만, 어두움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성경의 중요한 의도가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귀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빛을 창조하시고, 밝은 낮을 보시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은 빛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빛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빛은 곧 거룩하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어두움은 곧 죄와 사망과 세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대비되는 빛과 어두움의 진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빛이요, 죄는 어두움입니다.  낮과 밤이 공존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죄를 용납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빛으로 믿고 따르는 자녀들은 빛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이 빛이신 것처럼 주님도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의 세상이 빛의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통해 빛의 승리를 보여준 것입니다.  바로 그 빛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처럼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좋아하지 말고,  어두움을 따라가지도 말고, 모든 곳에서 빛이 되고, 빛의 자녀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의 삶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의와 부패와 부정을 멀리하고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모든 위선과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는 빛의 자녀처럼 살아야 합니다.  빛의 하나님을 안다면 빛을 좋아하시는 하나님도 알아야 하고, 어두움을 싫어하시는 하나님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작은 불을 켜서 세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작은 촛불이 되어 어두움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하고, 또 가야 할 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빛이 있으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웁니다.  창조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리고 빛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한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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