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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석류 나무 사이에 있는 사람 (슥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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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류 나무 사이에 있는 사람 (슥 1:7~17)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장차 보게 될 메시야 시대의 환상을 품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창 12:3)에 근거하여 그 주인공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요 8:56).

본문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 스가랴도 어두움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신약교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골짜기에서 화석류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나타내는 상징적 계시입니다.


1. 불완전한 세상

마귀가 활동하는 세상에는 어디에나 죄와 죽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1) 어두움의 시간

본문 8절에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환상을 본 시간과 상황을 이렇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스가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는 잇도의 손자요, 베레갸의 아들로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스가랴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밤중으로 묘사하게 하였습니다. 

밤은 어두움이 지배하는 시간입니다. 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한 어둠속에서 사람들은 다 그 속에 젖어들어 어두움의 일에 익숙해 버렸습니다(요 3:19). 그렇지만 성도는 체질적으로 어두움과 대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살전 5:5).

2) 골짜기의 화석류

에스겔이 본 사람은 붉은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본 골짜기의 화석류나무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방이 꽉꽉 막혀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본문말씀 7절에 나오는 “다리오 왕 2년 11월”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입니다. BC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곧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수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 공작에 말려 16년 동안이나 공사가 중단된 채 백성들은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스가랴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왔으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련의 골짜기에서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3) 세상속의 교회

옛날 솔로몬 왕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가 사랑하는 술람미를 향하여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고 표현하였습니다(아 2:1-2). 아가서의 주인공인 솔로몬과 술람미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되는 교회를 비유합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수선화처럼 세상이 알아주지 아니하고, 또 가시 가운데 백합화처럼 사방으로 찔림을 받는 수난의 형국이지만 그래도 거룩하고 순결한 모습으로 그윽한 향기를 토하는 교회의 특수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교회와 또 선택받은 자기백성을 에덴동산 같이 평화롭고 완전한 곳에 두지 않았습니다. 어둠의 세력에 짓눌리고 가시처럼 찌르는 수난과 박해 속에서 자기 교회와 성도의 존재 가치를 높이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2. 주권자 예수님

골짜기의 화석류나무 사이에는 붉은말을 탄 사람이 있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었습니다. 처음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주인이고 그 뒤에 있는 붉은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를 탄 사람은 모두 그를 수종드는 천사입니다.

1) 성육(成肉)하신 예수님

붉은말을 탄 사람을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였습니다(11-12절).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가 의도하시는 특별한 사역을 맡기실 때 흔히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는 계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창 22:11), 모세에게(출 3:4), 야곱에게(창 28:12) 그런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또 기드온의 아버지 마노아에게는 ‘기묘자’라는 이름으로 보여주셨습니다(삿 13:15-20). 이는 하나님의 삼위(三位)중에 제 2위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장차 세상에 오시게 될 것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이를 두고 이사야 선지는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의 몸을 빌려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 7:14). 예수님이 오신 것을 보고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요 1:14).

2) 자기 백성을 살피시는 예수님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또 다른 붉은말과 자줏빛 말과 백말을 탄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10절에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그를 호위하고 있는 천사들을 온 세상에 두루 보내 모든 사정을 살피게 명령하십니다. 

11절에 보면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온하고 조용하더이다”라고 보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평온할지 몰라도 교회와 성도들은 골짜기의 화석류나무처럼 온갖 핍박과 환난에 시달리며 긴장된 생활을 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며 자기 교회와 그의 종들을 살피고 계십니다(계 2:1). 역대하 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고하였습니다.

3) 중보자(仲保者)예수님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을 위하는 중보기도인 것이 분명합니다. 일찍이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선지자들의 권면도 듣지 않다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슥 1:3-6). 세상 나라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평온하다고 큰소리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고난당하는 자기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막 16:19).


3. 신약교회의 비젼

구약의 선지자들은 선민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수난의 역사를 통하여 멀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개될 신약교회의 비전을 제시하여 줍니다. 스가랴가 밤에 본 이 환상도 세상 속에서 펼쳐지는 교회 운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16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로지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다가 시련에 부딪쳐 중단된 상태로 있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 내 집이 건축된다는 것은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말하고,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고 한 것은 무너진 성곽을 복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오랜 세월동안 예루살렘을 향한 그리움과(시 137:1-9) 무너진 성곽을 생각하며 가슴을 조였습니다(느 2:1-3).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들어내는 일이 됩니다.

2)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스가랴 1장 7절에서 6장 8절까지 스가랴는 여덟 가지 계시를 받았습니다. 곧 ‘8대 환상’ 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방인에게 짓밟히며 밤 같은 어둠속을 헤매던 하나님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의 싸인(Sign)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로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성민의 자존심과 긍지를 회복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본문 17절에는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2:4에는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의 회복과 함께 성읍의 번영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친히 일을 하십니다.

여기 스가랴는 붉은 말을 탄 사람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고 하였습니다(8절). 이는 기동력 있게 행동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일곱 금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계 1:13). 지금도 교회의 주인되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교회와 함께 하시며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믿을 것이 못됩니다. 여간 은혜를 받고 회개를 하고 새출발을 다짐하다가도 잠시 곁눈질을 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옛사람의 상태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면 승리는 보장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열심을 잠시도 쉬지 않고 발휘하시기 때문입니다.(사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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