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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패배자의 진정한 승리 (창 32: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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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의 진정한 승리 (창 32:24~32)


2008베이징 올림픽에서 자메이카 선수인 22살[우사인 볼트]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9.72의 기록을 0.03초 단축하는 9.69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됐습니다. 그 기록대로라면 시속 37.15km의 속도로 달린 셈이 되고 100미터를 41.5걸음 만에 주파했으니 1초에 4.28걸음을 달린 것입니다. 올림픽의 꽃을 육상이라고 하고 그 중에 남자 100미터 달리기를 육상의 꽃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승부가 10초 안에 갈리기 때문에 10초 안에 모든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선수마다 기록 단축을 위해 100분의 1초와의 전쟁을 벌입니다. 그래서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출발 반응속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땅'하는 총소리를 듣고 스타팅 블록을 차고 나가는 그 시간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소시간이 0.1초라고 합니다. 인간이 귀를 통해 받아들인 청각신호가 뇌까지 전달되는데 0.08초에다가 뇌가 판단을해서 근육을 움직이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0.1초 이내로 줄이기 힘들다는 결론입니다. 

따라서 육상에서 0.1초 이내에 출발을 하면 부정출발로 간주합니다. 참고로 이번에 우승한 볼트 선수의 출발 반응속도는 0.165로 8명 중7위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1위를 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가속도가 엄청나게 붙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자메이카 육상 감독의 이야기는 볼트가 마지막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뛰었다면 9.52의 기록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화면을 보면 마지막20미터 지점에서 이 선수가 관중석을 돌아보며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면서 들어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곧장 달려 들어왔다면 가능한 기록이었다는 말입니다. 

육상 경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조건은 바람이라고 합니다. 맞바람이나 옆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기록이 떨어지지만 뒤바람이 불어주면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베이징에서 볼트가 달릴 때 뒤바람은 0.0m/s로 전혀 불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선수입니까? 

이렇게 사람들의 심리는 빨리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열광하고 또 선호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앞만 보고 더 빨리 달리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앞서가고 더 빨리 높은 자리에 앉고 출세하면 박수를 받는 세상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서려고 노력하고 앉기를 갈망하면서 살아갑니다. 아이들에게도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더 빨리 달리고 다른 사람을 앞설수 있는 방법과 훈련을 시킵니다. 고액과외를 해서라도 우리아이가 그 반열에 우뚝 서 주기를 바라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걸음만 물러서서 가만히 보십시오. 일등만 박수를 받고 승자만 칭송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패자도 있고, 위대한 패배도 얼마든지 있고 또한 그들도 박수를 받는 세상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인기가 급상승한 역도 선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배영 선수]입니다. 역기를 들어 올리다가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금방 다시 나와서 도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게를 정상적인 몸으로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데 경련이 일어난 다리로 지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합니다. 그런데 실패를 하는 장면에서 앞으로 엎어지면서도 끝까지 바닥에 굴러가는 역기를 놓지 못하고 4년 동안의 아쉬움을 쏟아내는 함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또 한 사람 우리나라 유도 선수[최민호 선수]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던[루드비히 파이셔]라는 오스트리아 선수입니다. 최민호 선수가 한판으로 금메달을 결정하고 하염없이 울고 있을 때 이 선수가 어깨를 다독이며 달래주다가 최민호 선수의 팔을 들고 진정한 승자임을 인정하고 자신이 패자임을 알리고 매트를 내려가는 모습에서 많은 관중들이 승자와 패자에게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때로는 승자도 필요하지만 위대한 패자도 필요한 것입니다. 패자가 없이 어떻게 승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승자를 위해서는 아름다운 패자가 있어야 하고 위대한 패자가 아름다운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만나는[야곱]이라는 인물도 앞만 보면서 빨리 달리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앞서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든 앞지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 꿈도 성취하고, 목표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래전에 혼자서 외로움에 떨며 도망갔던 고향의 그 길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금의환향하는 길이었기에 발걸음도 가볍고 의기양양할만합니다만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해놓고 도망쳤다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필연적으로 형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 형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자기의 잘못은 실수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의도된 것이었고 방법에 있어서도 너무나 비인간적인 권모술수로 형을 속인 것을 자기가 잘 압니다. 그래서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를 가로막는 것들은 과감하게 짓밟기도 했고, 무시하고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자기 모략으로 거뜬히 헤쳐 나왔습니다. 그런데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마음에는 온통 불안과 두려움뿐입니다. 더군다나 소문을 듣자하니 형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기를 향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가 앞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이것 저 것 생각해보지만 신통치 않습니다. 비상한 머리를 써서 재산을 나누어서 건너가게 하고 혹시 형 에서가 뭐냐고 묻거든 동생 야곱이 형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말하라고까지 합니다. 그것을 보고 형이 마음이 누그러질까 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신변에 느껴지는 위협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기도를 잊고 살았던 야곱이 어려움 가운데 빠져서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9-12까지가 그 내용입니다만 그 기도를 통하여 비로소 자기가 이룬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세울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살았던 사람이 고난의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고백을 가지게 되고 신앙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일행을 먼저 강나루를 건너게 하고 홀로 남아 깊은 밤에 생사가 걸린 문제 앞에서 몸부림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야곱의 몸부림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하나님을 놓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지금까지는 내 능력으로 살았습니다. 내 지혜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하는 심정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얼마나 처절하게 매달리고 있습니까?"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사실은 야곱의 이 모습을 보면서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도"하나님 결코 놓지 않겠습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이어야만 됩니다. 나를 책임져 주십시오."하는 이런 각오와 결심만큼은 야곱에게서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보세요, 이런 긴 간구와 몸부림 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해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이름을 바꾸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단순하게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속이는 자로 살아 온 야곱의 정체성을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두고 컬럼비아 신학대학원의 구약학 교수인[윌터 부르그만]은"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남고,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성경25절에는"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랬습니다만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게 긴 밤의 몸부림이 끝난 후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고 아침 동이 터 오를 때 야곱은 다리를 절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어지는 밤이 지난 후 찬란한 태양을 맞이하게 된 야곱은 "이제 하나님이 내 인생의 생명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아침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 이제는 더 이상 권모술수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되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야곱이 하나님 앞에 위대한 패배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승리자 야곱, 모든 것을 얻은 야곱, 진실한 믿음을 회복한 야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이며 작가인[프레드릭 부에크너]가 바로 이것을 보고<위대한 패배(The Magnificent Defeat)>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오늘 얍복 강에서의 이 패배로 이제 평생을 절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의 몸에는 하나님의 흔적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야곱을 이긴 싸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승리를 선언해 주십니다. 위대한 패배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순간을 봅니다. 

왜 야곱이 승리자입니까? 이제부터 야곱은 자신의 육체에 남은 그 흔적을 볼 때마다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살아갈 것입니다."더 이상 남을 속이고 권모술수 하는 야곱이 아니라 나는 이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만 속해 살아가고자 하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 맘대로 하십시오."라는 완전히 맡겨진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승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승리의 첫걸음을 인생의 최대 위기였던 형 에서와의 만남을 분쟁과 갈등의 분위기에서 평화의 분위기로 바꾸어 주시는 데서 맛보게 하십니다. 동생 때문에 인생을 망친 에서가 그 상처 앞에서"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고 말하면서 이를 갈며 잘 훈련 된 병사 400명을 데리고 나오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평화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33장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정말 극적이지 않습니까? 33:4절을 보세요."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를 무너뜨리고 지나간 내 삶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을 내려놓는 일이 어쩌면 내 인생에 큰 손실이요, 패배인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명성이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물질적인 성공이며,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패배자가 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위대한 패배요, 곧 진정한 승리자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리해야 합니다. 

오늘 야곱이 육신은 비록 망신창이가 되었지만 웃으면서 새아침을 맞이하며 걸어가는 그 길이 승리자의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서둘러 위대한 패배자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위대한 패배자가 곧 진정한 승리자라는 오늘의 진리를 깊이 기억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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